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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역사정의실천연대 원문보기 글쓴이: 역사연대
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
한상권(역사정의실천연대운영위원장)/2011.11.30
1.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의 새 역사교과서 교육과정 고시로 촉발된 ‘자유민주주의 논쟁’이 갈수록 가열되고 있다. 사태의 발단은 이렇다. 지난 8월 9일 교과부가 “2009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사회과 교육과정”을 고시하면서 개발 연구진도 모르게 ‘민주주의’란 용어를 모두 ‘자유민주주의’로 수정하였다. 교과부는 “일부 심의위원들과 역사학회 전문가들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으나, 교과부가 말한 ‘역사학회’는 뉴라이트 계열 인사들이 대거 포진한 ‘한국현대사학회’였다.
이에 대해 새 역사 교과서 집필과 검정의 토대가 되는 교육과정 개발을 담당한 ‘역사 교육과정 개발정책 연구위원회(정책위)’ 위원들은 8월 16일 성명을 내고 "교육과정의 핵심 개념을 교과부가 임의로 변경한 것은 인정할 수 없으며, 지금까지 우리 사회와 교육현장에 합의해 온대로 ‘민주주의’로 되돌아 가야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책위는 성명서에서 “헌법의, 우리가 신봉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법제처 공식 홈페이지의 영어 번역에 ‘the basic free and democratic order’라고 되어 있듯이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를 하는 것이지, 좁은 의미의 ‘자유민주주의’에 해당하는 ‘liberal-democratic’이 아니라는 설득력 있는 견해가 학계에 제시되어 있다”고 주장하였다. “‘민주주의’는 그 자체로서 충분한 개념이며 가능하면 그에 대한 제한이나 수식을 피하는 것”이 좋으며, “현행 교육과정에서도 초⋅중⋅고교 한국사의 단원명과 성취기준에 모두 ‘자유민주주의’ 아닌 ‘민주주의’를 그 내용으로 삼고”있으므로, “시민 사회와 학계의 충분한 토론과 합의를 거치지 않고서는, 지금까지 헌법정신에 따라 수행되어 온 역사 교육의 핵심 개념을 변경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어 지난 9월 19일에는 교과부 산하 자문기구인 역사교육과정개발추진위원회(추진위) 위원들이 집단 사퇴하였다. “교육현장에 심대한 변화를 불러올 교육과정안 변경 고시를 추진위가 회의 한번 없이 그대로 수용한다는 것은 그 동안 한국 역사 교육의 중책을 자임해온 위원회의 위상이나, 교육과정 개발의 방향을 제시하고 최종 단계까지 개정안의 문구 하나하나를 검토하여 승인한 역할에 비추어볼 때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며, “추진위의 무책임과 무소신, 그리고 비민주적 현실”에 항의하면서, 추진위원 20명 가운데 9명이 사퇴한 것이다.
정책위원들과 추진위원들의 잇따른 사퇴로 촉발된 ‘자유민주주의’ 논쟁은 국정감사에서도 쟁점이 되었다. 9월 19일 열린 교과위 국감장에서 한나라당 박 아무개 의원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국회의원이 있다면 북한에 가서 국회의원을 하라”는 색깔 발언은 곧 파행으로 이어졌고, 23일 서울시교육청 국정감사도 ‘자유민주주의’ 논쟁만 되풀이했다.
2.
국가권력의 간섭을 배제하고 시민의 자유를 옹호하는 시민계급에 의해 주창된 사상인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의 기원은 18세기 유럽의 계몽주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럽의 군주들은 군주의 왕권은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라는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에 기초하여 왕은 신의 대리인으로 국가권력을 행사하므로, 국가권력은 왕에게 모두 독점되고 국왕의 권력에 의문을 품는 것은 신성 모독이라고 주장했다. 군주는 국가였다. 국가의 모든 재산은 신으로부터 군주에게 부여된 것이므로 개인의 재산권은 군주가 인정한 범위 내에서 누리는 이익에 불과하였다. 군주는 왕권신수설을 지탱해준 카톨릭을 부정하는 개신교를 철저히 탄압했다.
중세사상에 도전을 감행한 세력은 근대 계몽주의자들이었다. 존 로크(J. Locke: 1632-1704), 장자크 루소(J. Rousseau: 1712~1778) 등 계몽주의자들은 인간의 이성과 자유를 강조하고,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고 주장하였다. 이들은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사회계약을 체결하여 국가가 성립하고 국가권력이 형성되었다’는 사회계약론에 입각하여, 시민이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시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시민의 자유와 권리는 국가에 의해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천부적(天賦的)인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계몽주의사상은 18세기 말에 이르러 미국독립과 프랑스혁명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으며, 두 역사적 사건은 자유주의 이념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결합한 정치원리인 자유민주주의는 자유를 주장하는 부르주아지세력과 평등을 주장하는 민중세력 간 타협의 산물이었다. 이후 자유방임적 자본주의에서 경제적 강자가 경제적인 힘을 이용해 경제적 약자를 인격적으로 종속시키고 경제적 약자에게 불리한 근로조건을 일방적으로 강요하였다. 국가가 개입하지 않은 상황에서 경제적 강자와 경제적 약자 간의 허울 좋은 계약 자유원칙은 경제적 약자의 경제적 불평등과 빈곤을 더욱 심화시켰다. 이런 심화된 경제적 불평등과 빈곤은 사회유지를 위한 기본적인 틀을 붕괴시킬 정도로 심각해졌다.
3.
유럽에서 18세기에 성립된 자유민주주의가 국가권력의 간섭을 배제하고 시민의 자유를 옹호하는 시민계급에 의해 주창된 사상인 반면, 19세기 중엽에 등장한 사회민주주의는 형식적 민주주의가 경제적 약자의 경제적 불평등을 해결하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으로 실질적인 평등을 지향하는 민주주의이다. 자유민주주의가 시민의 자유의 보장을 최고이념으로 하는 민주주의인데 반해, 사회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에 사회적 정의·복지와 평화주의를 가미한 민주주의인 것이다. 생산수단의 사회적(공적) 소유와 사회적(공적) 관리에 의한 사회의 개조를 민주주의적인 방법을 통해서 실현하려고 하는 사회민주주의가 등장하게 된 까닭은 자유민주주의의 폐해 때문이었다.
시민혁명을 통해 부르주아들은 국가의 사회에 대한 개입을 최소화시킴으로써 사회영역의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회영역에 있어 국가의 사회에 대한 개입금지로 사회적 강자에 의한 약자의 착취로 인한 사회의 부정의 현상이 발생하고 갈등이 표출되면서 사회적 불안이 가중되었다. 이에 사회정의와 사회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국가의 사회에 대한 규제가 부분적으로 허용되는 사회국가(복지국가)원리가 헌법상 권리로 인정되기에 이르렀다.
사회주의자들이 자본주의 틀을 완전히 다른 생산체제로 바꾸려하는데 반해, 사회국가원리는 자본주의 틀 안에서 개량적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원리로 등장하였다. 현존하는 사회질서가 즉 사실상 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더 이상 원칙적으로 정당한 것이라고는 인정할 수 없으므로, 국가는 사회질서의 방관자가 아니라 사회적 정의· 평등을 실현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국가원리는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이념으로 하고 사회적 약자의 생존권 보장과 자유·평등·정의의 실현을 목표로 한다. 사회국가원리의 이념적 기초는 사회적 정의, 사회적 안전, 사회의 통합에 있다. 사회적 정의란 법적 평등을 기회의 균등을 통하여 보충하여 시민들이 기본적으로 보장된 자유를 사회국가원리를 근거로 현실적으로 향유하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사회적 안전이란 국가가 개인의 능력만으로 어찌할 수 없는 개인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전제들 즉 사회보험, 노동력 보호, 가정의 보호 등을 창출 또는 확보해주는 것이다. 사회의 통합이란 사회 경제적으로 필요한 자들을 보호하고 지나친 사회적 차이를 균형화 시켜 사회를 통합시키는 것이다. 사회국가원리를 구현하는 방법은 사회적 시장경제질서의 확립, 사회적 기본권의 보장, 사회적 강자의 재산권과 계약의 자유제한, 사회보장제도, 교육제도 등이 있다.
4.
민주주의 발전의 역사에 비추어 볼 때, 교과부가 새 역사교과서 교육과정을 고시하면서 ‘민주주의’란 용어를 모두 ‘자유민주주의’로 수정한 것은 민주주의의 발전을 추구하는 나라에서는 생각조차하기 어려운 조치라 하겠다. 교과부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조차 부정한 2011년 개정 교육과정 고시를 철회해야 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절차의 민주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정 고시된 교육과정은 애초 ‘공청회’에 제출된 초안에도 없었고, ‘정책 연구위원회’가 올린 최종안에도 없었으며, 심지어 ‘심의위원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이 공개적으로 제기하고 토론을 통해서 반영된 것이 아니라 고시 직전에 추가된 데 대해, 교과부는 ‘한국현대사학회’의 건의를 받아들인 것이라고 해명하였다. 현재 역사학 계통의 학회는 200여개 가량 된다. 교과부가 지목한 한국현대사학회는 올해 5월 20일 창립된 뉴라이트 성향의 역사 관련 단체로 역사학계에서 전혀 주목받지 못하는 단체이다. 창립한 지 반년도 채 안 되었으니 지금껏 학술지를 발행했을 리 만무하다. 교과부가 유서 깊은 수많은 학회의 의견은 철저히 외면하면서 아직 학문적 성과도 내지 않은 신생 학회의 의견을 전폭적으로 수용한 것은 학문의 전문성과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침해하는 불법적인 처사이다.
둘째, 교과부가 편애하는 한국현대사학회가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부정하는 역사인식을 지닌 단체라는 점 때문이다. 뉴라이트는 조선이 식민지 통치를 경험하면서 자본주의적인 발전을 이루었다는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해왔다. 뉴라이트 단체인 교과서포럼은 자신들이 편찬한 근현대사 교과서에서 일제강점기를 “근대문명을 학습하고 실천함으로써 근대 국민국가를 세울 수 있는 ‘사회적 능력’이 두텁게 축적되는 시기”라고 서술하였다(교과서포럼 『대안 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기파랑, 2008, 78쪽) 일제강점기를 ‘침략과 수탈’이 아닌 새로운 ‘근대문명에 관한 학습기’, ‘근대문명의 제도적 확립기’로 보는 입장이다. 이처럼 일제강점기를 ‘문명화=근대화의 수업기간’으로 볼 경우, 반민족행위자인 친일파는 근대문명의 선각자로 둔갑하게 된다. 그러나 친일행위는 민족적 억압과 차별을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반민족적이며, 지극히 폭력적인 파시즘적 지배를 옹호하였다는 점에서 반민주적이며, 일제의 전시총동원체제 하에서 전쟁에 협력하였다는 점에서 반인도적인 범죄행위이다.
뉴라이트의 역사관은 친일미화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독재찬양으로 이어진다. 뉴라이트는 1945년 8월 15일 ‘광복절’ 보다는 1948년 8월 15일 ‘건국절’을 더 중요하게 기념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대한민국을 항일투쟁을 통해 성립한 자주독립국가로 상정하고 광복절을 기리면 친일파들은 설 땅이 없기 때문이다. 뉴라이트는 친일파들을 건국공로의 주역으로 만들고,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국부(國父)로 떠받들기 위해 1948년은 ‘정부수립일’이 아니라 ‘건국절’이라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그러나 뉴라이트가 독립운동가로 찬양하는 이승만은 1925년 3월 임시정부에 의해 탄핵 당했다. 임시정부의 임시의정원은 이승만이 임시 대통령이면서도 그동안 미주에 머물면서 전혀 임정을 돌아보지 않았고, 임시 의정원이 박은식을 대통령 대리로 임명했으나 이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미주 동포들로부터 거두는 인구세를 임정에 보내지 않고 임의로 사용하였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그를 탄핵하였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 된 이승만은 친일파를 중용하여 헌정질서를 유린하고 독재정치를 일삼다가 4·19 의거로 다시 한 번 쫓겨났다.
뉴라이트의 친일미화·독재찬양은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全文)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하여, 대한민국은 항일투쟁을 통해 성립한 자주독립국가인 동시에 이승만 독재에 항거한 민주주의국가임을 천명하였다.
셋째, 현 교과서 검인정 체제를 무력화시키고 국정체제로 되돌림으로써 역사교육을 후퇴시키기 때문이다. 현행 역사 교과서의 검인정화는 1998년 김영삼 정부에서 제정한 교육과정 개정안에 따른 것이었다. 이로써 우리 정부는 역사교과서 국정제도를 극복하고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보편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검인정제도로 전환하게 되었다. 역사학계나 역사교육계는 이를 역사학 연구와 교육의 발전에 중요한 전기로 받아들였다. 그 후 검인정 교과서에 대해 일부 논란도 있었으나 교육부나 국사편찬위원회는 정해진 교육과정과 엄격한 검인정 기준에 따르고 있으므로 문제가 없다고 거듭 확인한 바 있다. 교과서 검인정제도는 국민적 합의에 따라 진행되고 있는 학계와 교육현장의 목소리를 최대한 반영하며, 다양한 견해의 교과서에 대한 교사와 학생들의 선택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뉴라이트의 의견만을 쫓아 ‘민주주의’를 축소 왜곡하여 ‘자유민주주의’로 하려는 것은 검인정제도를 사실상 부정하고 국정화 하려는 행위이며, 역사교육의 자율성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다.
넷째, 민주주의 이념을 축소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모든 억압, 착취, 배제, 차별 등에 저항하면서 성립 발전하였다. 민주주의에는 자유권보장에 주안점을 두는 자유민주주의와 사회경제적 권리를 보장하는 사회민주주의 이외에도, 생산과정의 의사결정에 노동자들을 참여시키는 산업민주주의, 일상적인 삶에 내재화된 권력관계를 민주화하려는 일상성의 민주주의 등이 있다. 민주주의가 실질적인 시민의 자유권과 평등권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확장되기 위해서는 단지 선거가 공고하게 실행되는 선거민주주의 차원을 넘어서 한 단계 높은 질적 측면들이 발전 의제로 제시되어야 한다. 민주주의 이론가인 래리 다이아몬드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질 높은 민주주의’의 특징으로 ‘모든 개인과 조직의 자유, 더 공정하고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선거, 정권에 대한 견고하고 다양한 견제, 정부를 감시할 시민사회의 권한, 사법부 독립 등 법치주의 확립, 군이나 정보기관에 대한 민선 지도자들의 통제 등에 대한 보장’ 등을 거론하였다.
우리 사회는 협소한 자유민주주의 개념으로부터 이미 벗어나 있다. 예컨대 복지가 사회문제가 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따라서 협소한 자유민주주의 개념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더 높은 절차적 투명성, 사회경제적 평등, 책임성을 내포하는 방향으로 민주주의를 확대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학생들에게 미래가치를 가르치는 교과서에서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 테두리에 가두려는 퇴행적인 기도는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참고한 글:
황남기, 『헌법』, 2005, 도서출판 찬글
역사교육연대회의, 『뉴라이트 위험한 교과서, 바로 읽기』 2009, 서해문집
조희연, <민주주의에 자유만 붙였는데… 난장판입니다-교과부의 ‘자유민주주의’고시 파동…왜 과거로 회귀하려는가> 오마이뉴스 201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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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11년 9월 민가협 양심수후원회 소식지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