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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 챔피언과의 대결은 누가 봐도 당연한 결과를 예상할 수 있다. 궁리 끝에 대결 장소를 스크린 골프게임으로 급변경했다. 장안의 화제를 몰고 온 스크린 골프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나 이용이 가능해 최근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특히 겨울에는 날씨 걱정 없이 편하게 즐길 수 있고, 네트워크를 통해 전국의 골퍼와 동반 라운드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혹시 스크린 골프게임 해본 적 있나요?”
“아뇨, 아직 없어요.”
“그럼, 이번 기회에 저랑 스크린 골프게임으로 한판 붙는 거 어떠세요? 필드에서야 당연한 결과일 거고, 스크린 골프게임이라면 해볼 만할 것같은데요.”
“스크린 골프요? 그거 재밌겠는데요. 한번 해보죠, 알았어요.”
김형태 프로가 기자의 요청에 대결을 수락했다. 김형태 프로와 함께한 라운드는 2007년 11월부터 약속했던 터라 시즌을 마치고 일본투어와 호주투어 출전 후 돌아오자마자 대결 일정을 잡았다.
기자가 라운드 대결 장소를 스크린 골프게임으로 정한 이유는 그동안 대여섯 차례 스크린 골프게임을 즐긴 경험이 있어 좀더 유리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스크린 골프게임은 실제 라운드와 달리 실내에서 치러지기 때문에 적응하는 데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고, 게임의 특성을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 유리하다. 따라서 경험이 없는 김형태 프로보다는 몇 차례의 라운드 경험을 갖고 있는 기자에게 훨씬 좋은 조건이었다.
요즘은 스크린 골프게임이 워낙 인기가 높은 탓에 골프장처럼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시간을 잡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게임 전날 회사 앞에 위치한 골프존에 협조를 구하고 티오프시간을 다음날 오전 11시로 시간을 예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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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결전의 날이다. 정확하게 시간을 지켜 도착한 김형태 프로가 스크린 골프게임장 안으로 들어오면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말로만 들었는데 생각보다 잘 꾸며져 있네요. 근사하고 아늑한 게 마음에 드는데요.” 안내 데스크를 지나 게임장 안으로 들어오는 김형태 프로가 몇 번이나 감탄사를 연발하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기자와 김 프로는 잠깐 동안 안내 도우미에게 게임의 방법과 기능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 드라이빙 레인지에서 몸을 풀기 시작했다.
드라이버부터 아이언, 웨지, 퍼팅까지 차곡차곡 샷을 하면서 거리를 체크하는 김 프로의 모습에서 ‘역시 프로는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가졌다. 드라이버샷 평균 비거리는 약 240m가 나왔다. 프로 치고는 장타는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100% 파워로 스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늘 이렇게 연습을 하나요. 주로 어떤 점에 중점을 두고 연습하죠.”
“간단하게 몸을 풀어 주는 게 좋습니다. 아이언과 웨지는 거리 체크, 그린에서는 빠르기 등에 중점을 두고 연습합니다.”
김 프로가 타석에서 내려온 후 기자가 드라이버를 들고 타석으로 들어섰다. 내심 김 프로보다 멀리 쳐보겠다는 욕심이 생겨 힘껏 드라이버샷을 날렸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굿샷이 나왔다. 잘 맞은 볼은 무려 246m에 떨어져 김형태 프로보다 더 멀리 날아갔다. 기자의 드라이버샷에 짐직 놀랐는지 김 프로는 “멀리 나가네요. 드라이버 샷이 일품이에요”하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스크린 골프게임의 장점은 코스를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김 프로님, 오늘 어느 코스에서 라운드할까요?”
“이왕이면 PGA투어 코스로 가죠. 국내 골프장은 많이 경험해 보았으니 미국이 좋을 것 같은데.”
“그럼 페블비치 어때요?”
“좋아요. 저도 아직 라운드 경험이 없는데 오늘 한번 해보죠.”
라운드할 코스까지 정했으니 이제 남은 건 대결뿐이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플레이에 앞서 ‘파이팅’을 외친 후 드라이버를 뽑아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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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티샷은 프로의 진가를 그대로 드러냈다. 쭉 뻗어 약간 페이드로 날아간 볼은 페어웨이 중앙 한복판에 떨어져 좋은 세컨드 샷 지점을 확보했다. 실제 골프장이라면 세컨드 샷의 위치까지 확인하기는 힘이 드는데 스크린 게임에서는 떨어진 지점까지 미리 볼 수 있어 다음 샷을 준비할 시간이 넉넉했다. 기자의 티샷도 만만치 않았다. 거리는 10m 정도 적게 나갔지만 왼쪽 페어웨이로 떨어져 2온을 노릴 수 있는 위치였다. 그린까지의 거리는 146m 남아 있는 것으로 나왔다. 평소 같았으면 7번 아이언을 잡겠지만 스크린 게임에서는 좀더 거리가 많이 나는 것으로 나와 8번 아이언을 잡고 온그린을 시도했다. 결과는 약간 짧아 그린 에지에 떨어졌다. 김형태 프로의 세컨드 샷은 예상대로 무난히 2온이 됐다. 핀까지 거리는 6m밖에 되지 않아 첫 홀부터 버디 기회를 맞았다.
기자의 경험상 처음 스크린 골프게임을 하면 거리 측정과 밋밋한 환경 때문에 실수를 연발하기 십상인데, 의외로 김형태 프로는 분위기에 잘 적응하고 있었다.
“김 프로님, 혹시 스크린 골프게임 해본 거 아니에요. 이렇게 잘할리 없는데….”.
“아뇨, 오늘이 처음이에요. 그냥 평소처럼 플레이하고 있어요.”.
기계도 프로는 알아보는지 김형태 프로가 샷을 하면 예상했던 거리와 위치에 정확히 떨어지는 게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첫 홀은 모두 파로 마무리했다. 그린 앞에서 어프로치를 한 기자의 볼은 홀 1m에 붙어 컨시드를 받았고, 김형태 프로의 퍼팅은 거의 홀에 들어갈 뻔하다가 멈춰서 파 세이브를 기록했다. 그런데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그린에서 볼이 홀의 1.5m 지점 안으로 들어가면 무조건 컨시드를 주게되어 있어 퍼팅 대결을 할 수 없었다.
쉽게 앞서 나갈 것이라는 기자의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불과 한 홀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린에 정확하게 떨어지는 아이언샷과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퍼팅은 마치 실제 골프장에서 플레이하는 것처럼 정교함을 자랑하며 빠르게 적응해나갔다. “첫 홀에서는 비겼으니 2번 홀은 자동 배판입니다.”. 기선 제압을 위해 김 프로에게 큰소리로 기자가 소리쳤다. 그러자 김 프로가 별 것 아니라는 듯 “당연하죠”하며 받아 쳤다..
2번 홀은 짧은 파5 홀이었다. 프로의경우 파5 홀에서 많은 버디를 잡아내는 만큼 내심 걱정이 앞섰다. 아니나다를까. 첫 티샷보다 두 번째 티샷에는 자신이 붙었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스크린을 강타한 드라이버샷은 떨어질 줄 모르고 계속해서 날아가더니 250m를 넘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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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프로의 티샷에 약간 주눅이 들었지만 무언가 보여 주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강하게 솟구쳐 올라왔다. 다행히 기자의 티샷은 실수를 범하지 않았다. 약간 내리막 홀이었던 탓에 그린까지 남은 거리가 180m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이에 기자는 2온을 노릴 생각으로 5번 아이언을 잡고 힘껏 휘둘렀다. 하지만 160m를 조금 더 날아가 그린 앞에 멈춰 섰다. 반면 김 프로의 세컨드 샷은 그린 앞에 떨어져 구르더니 온그린에 성공해 이글 기회를 맞았다. 기자가 김 프로와 비기기 위해선 어프로치로 최대한 핀에 가깝게 붙여야 하는 상황이었다. 잘 컨트롤된 샷은 핀을 향해 똑바로 날아갔지만, 그린에 경사가 심해 홀을 훌쩍 지나쳤다.
이글 기회를 맞은 김 프로의 눈빛은 예사롭지 않았다. 마치 금강산아난티NH오픈 우승 때의 퍼팅 장면을 연상시키듯 집중하고 있었다. ‘탁’하고 퍼터를 맞고 나간 볼은 경사를 따라 굴러가더니 홀 바로 앞에 멈춰서 컨시드를 받아 버디가 됐다. 경사를 정확하게 읽어 내는 능력과 정확한 거리 컨트롤은 스크린 골프게임을 처음 해본 사람이라고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실력을 과시했다.
“역시 프로는 다르네요. 퍼팅이 정말 정교하고 정확한 게 당해내지 못하겠어요.”
첫 버디에 하이파이브를 건네자 김 프로가 기분이 좋은지 함박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더니 김 프로는 “이거 하면 할수록 재밌네요. 스윙 분석도 되고 경사에 따라 발판도 움직이는 게 쉽게 생각했던 스크린 골프게 임과는 차원이 달라요. 겨울에 동계 훈련 떠나지 않는 프로들 여기로 불러서 게임해도 되겠어요”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어느덧 김 프로는 스크린 골프게임에 완전히 적응한 모습을 보였다. 스크린에 표시된 바람의 세기나 클럽 선택법, 거리 계산까지 모두 끝내고 스스로 게임 모드를 조작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빨리 적응한 게 자만으로 이어진 것일까. 김 프로가 3번 홀에서 위기를 맞았다. 티샷이 우측으로 밀려나 OB구역으로 떨어진 것이다. 기자가 앞서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김 프로의 티샷이 바람에 밀려 우측으로 날아가는 것을 참고해 기자는 왼쪽으로 티샷 방향을 정했다. 페어웨이에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무난히 파온이 가능한 지점에 떨어졌다. “OB를 낸 게 얼마 만이에요? 꽤 오랜만일 것 같은데….”
“그러게요. 티샷으로 OB를 낸 건 오래된 것 같은데, 근래에는 OB를 내본 적이 거의 없거든요. 평소에도 구질이 페이드인데 이 홀에서는 바람까지 불어서 볼이 오른쪽으로 많이 밀린 것 같아요.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계산을 잘못한 것 같아요.”
김 프로가 본인의 실수를 인정하고는 다음 홀에서 만회하겠다며 굳은 의지를 내비쳤다. 세 번째 샷으로 페어웨이에 떨어트린 김 프로는 4온 후 2퍼트로 마무리하면서 더블보기를 범했고, 기자는 파 세이브로 마무리해 순식간에 역전됐다.
3번 홀까지의 승부는 팽팽하게 이어졌다. 아마 필드에서 대결했더라면 벌써 몇 타의 차이를 보였을 텐데 그나마 스크린 골프게임으로 대결한 탓에 박빙의 승부를 펼칠 수 있었다.
4번 홀에서는 행운까지 따랐다. 기자의 세컨드 샷이 그린 앞 벙커에 빠져위기를 맞았지만 벙커샷이 핀에 맞은 뒤 홀 앞에 바로 떨어져 행운의 파 세이브를 기록했다. 반면 김 프로는 3번 홀에 이어 4번 홀에서 티샷이 오른쪽으로 밀리는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모두 파 세이브를 기록하기는 했지만 흔들리는 김 프로의 모습에서 섣부른 승리의 예감을 갖게 했다.
3번과 4번 두 홀에서 티샷이 흔들린 탓에 고전한 김 프로가 5번 홀에서 또다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파3홀에서 티샷을 핀에 가까이 붙이면서파 세이브로 보기를 범한 기자와 동타를 이루었다.
“이거 라운드에 열중하다 보니 페블비치의 아름다운 광경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하고 지나온 것 같네요. 이제부터는 페블비치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면서 좀 여유롭게 플레이하죠.”
게임의 긴장감을 풀기 위해 기자가 분위기 반전을 시도했다. 이에 김 프로가 “그러게요. 이렇게 좋은 코스에서 라운드하면서 너무 플레이에만 집중한 것 같네요. 좀 천천히 돌아요”라며 열기를 식히자고 제안했다. 게임을 승리로 이끌기 위한 기자가 잔꾀를 부린 것인데, 김 프로가 흔쾌히 받아들여 내심 흥이 났다. 다시 아너로 나선 김 프로가 6번 홀에서 힘찬 티샷을 뿌렸다. 파5 홀이어서 그런지 좀더 과감한 티샷을 시도했다. 볼은 김 프로가 의도한 지점까지 잘 날아가 페어웨이에 떨어졌고, 이번에도 세컨드 샷으로 그린 앞까지 보내 버디 기회를 잡았다.
김 프로의 절제된 샷에 흥분했던 탓일까. 기자의 실수가 이어졌다. 세컨드 샷부터 어프로치 그리고 퍼팅까지 실수가 연발했다. 처음으로 3퍼트까지 범하면서 결국 더블 보기로 자멸하고 말았다. 순식간에 타수가 4타차까지 벌어졌다. 그렇지만 포기할 상황은 아니었다. 스크린 골프게임의 특성상 한순간이라도 방심하면 쉽게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김 프로가 스스로 무너지길 바라는 기자의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7번 홀에서 파를 기록하면서 침착한 스코어 관리를 이어갔다.
8번 홀에서 드디어 기자의 꿈이 현실로 나타났다. 첫 번째 티샷이 페어웨이 오른쪽 절벽 아래 바닷가로 떨어져 OB가 됐고, 세 번째 티샷마저 똑같은 상황으로 한꺼번에 두 번의 OB를 범했다. 페블비치의 악명 높은 바람과 난이도 높은 코스를 정확하게 공략하지 못하면서 최악의 상황이 연출됐다.
기자 역시 첫 번째 티샷이 OB가 됐지만 세 번째 샷을 페어웨이로 떨어트려 한발 앞서 나갔다. 마지막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골프라는 게임이 장갑을 벗어 봐야 결과를 알 수 있다는 말처럼 기자 역시 연속되는 실수를 범하면서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결국 기자와 김 프로 모두 쿼드러플 보기를 범하면서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저야 그렇다고 쳐도. 프로님이 두번이나 OB를 내는 건 믿기지 않네요.”
“그러게, 저 역시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어리둥절합니다. 프로의 자존심이 무너지는 듯한 기분입니다.”
8번 홀에서의 실수로 게임의 승부는 결정이 지어졌다. 5타 차의 간격을 좁히지 못하고 마지막 9번 홀 플레이를 맞이했다. 실수를 범했지만 김형태 프로는 곧 다음 홀의 공략에 들어갔다. 마치 실제 게임에서 위기를 극복하고 다음 플레이를 이어 가듯 앞선 홀의 성적에 크게 개의치 않으며 마지막 티샷을 날렸다. “시합 중에 실수를 범하면 어떻게 대처하는 편인가요?”
“대개는 실수에 대해 빨리 잊으려고 애씁니다. 그래야 다음 플레이에 영향을 주지 않거든요. 그렇지 않고 실수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있으며 나머지 플레이까지 나쁜 영향을 주어 모든 플레이가 엉망이 되거든요.”
마지막 홀을 파와 보기로 마치면서 투어 챔피언과의 스크린 골프게임은 싱겁게 막을 내렸다. 애초부터 프로를 이겨 보겠다는 기자의 바람은 끝내 수포로 돌아갔다. 쉽지 않을 것이 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이처럼 허무하게 승부를 빼앗길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기에 패배의 아픔은 더욱 쓰리게 다가왔다.
플레이를 마친 직후 김 프로가 기자에게 다가와 한마디 조언을 해주었다. 그는 기자에게 ‘퍼팅 자세가 좋지 않다’고 지적하며 퍼팅 방법을 지도해 주었다. 김 프로의 친절한 지도탓에 패배의 아픔은 금세 사라졌다. 코스에서 펼쳐진 화끈한 라운드 대결은 아니었지만 스크린 골프게임을 통한 대결만으로 김형태 프로가 투어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특히 위기에서 당황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지혜롭게 탈출해 나가는 경기운영법과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퍼팅은 그동안 노력해온 땀의 결과로 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