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청각·미각이 살아나는 '바다와 하늘이 함께 걷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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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덕 블루로드 B코스의 대미를 장식하는 축산항 길의 '죽도산 블루로드 다리'. 이 현수교는 바다와 강이 만나는 물길 위를 지나고 있다. 이른 봄 여행을 온 일단의 학생들이 다리를 건너고 있는 모습이 멀리서 보인다. |
며칠째 날이 잔뜩 흐려 기대하던 '환상의 푸른 바닷길'을 느끼기엔 부족했지만 집채만 한 파도가 물보라를 일으키며 끊임없이 부서지는 광경은 원 없이 볼 수 있었다. 답답하던 가슴이 확 뚫릴 정도로 말이다. 더욱이 영덕 대게의 참맛은 이 계절이 아니면 맛보기 어렵다는 것도 그곳을 찾은 이유 중 하나였다. 맛과 정취가 어우러진 여행, '바다와 하늘이 함께 걷는 길' 영덕 블루로드 B코스 '푸른 대게의 길'로 떠나 본다.
■영덕 블루로드 탐방로 총 64㎞ 최근 완공
부산을 출발, 경주를 거쳐 포항에 들어서자 가는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한적한 동해대로를 따라 1시간 남짓 더 가서 화진리에 들어서자 차창 밖으로 바다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그리고 곧바로 영덕군 남정면 부경리 대게누리공원. 대게 조형물이 반겨 준다. 지난달 최종 완공된 '블루로드 D코스'(쪽빛 파도의 길·총 14.1㎞)가 시작됐다. 장사오일장(2, 7일)이 열리는 곳, 장사해수욕장을 지나치면 계속 바다를 만날 수 있다. 강구항을 거쳐 영덕대게로로 이어질 때까지 펜션과 대게집이 줄을 이었다.
해맞이 공원서 축산항으로 이어지는 B코스
방문객 가장 많고 도보여행에도 최적
등탑 전망대 오르면 동해의 절경 한눈에
원조마을서 맛보는 대게 참맛 지금이 절정
승용차 편으로 부산을 출발한 지 2시간 30분 남짓 걸려 영덕 해맞이공원(영덕읍 창포리 산 5-5·054-730-6395)에 도착했다. 비는 그쳤지만 날은 여전히 흐리고 바다에는 짙은 안개다. 바람 소리가 파도 소리에 묻혀 구분이 되지 않는다.
블루로드 안내 지도를 얻기 위해 영덕풍력발전단지(영덕읍 해맞이길 254-6·054-734-5871) 내 신재생에너지관(영덕읍 해맞이길 254-20·오전 9시~오후 6시 개관·매주 월요일 휴관·054-730-7021)으로 향했다. 단지 내 '바람정원'은 걸어서 올랐다. 사방에서 돌아가는 풍력발전기 24기가 바다 풍광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어린 자녀를 동반한 가족 나들이객이 제법 눈에 띈다.
■방문객 가장 많은 블루로드 B코스
'블루(BLUE)' 로드는 그저 푸른 바닷길이 아니라 '푸른 바다(Beach)' '전설과 이야기가 풍부한 곳(Legend)' '가 보고 싶은 관광지(Utopia)' '희망의 에너지(Energy)'의 영문 첫 글자를 따 만든 것이었다. 이 길은 지난 2012년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국내 관광지 99곳',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스토리(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 탐방로 7선'에도 들었다.
여행에 앞서 영덕군 문화관광과 직원 최현순 씨에게 물었다. 시간이 여의치 않은 관광객을 위하여 딱 한 코스만 추천해 줄 수 없겠느냐고. 최 씨가 서슴지 않고 대답했다. 해맞이공원에서 죽도산(축산항)으로 이어지는 길, 블루로드 B코스(해파랑길 21코스라고도 한다). 방문객도 가장 많고, 도보 여행에도 가장 좋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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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 해맞이공원서 만날 수 있는 창포말등대. 대게 집게발을 형상화했다. |
영덕 블루로드 B코스(총 15.5㎞) '푸른 대게의 길' 시작 지점은 통상 해맞이공원으로 잡는다. 바로 인근에 자리한 24m짜리 '창포말등대'가 랜드마크처럼 우뚝 솟아 있다. 영덕 대게의 집게발을 형상
화한 등탑 전망대에 오르면 동해의 푸른 절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승용차 편으로 그곳까지 간다면 해맞이공원 쉼터에
주차한 후 축산항까지 걸어가서 버스나 택시를 이용(상자기사 참고)해 원위치로 돌아올 수 있다.
B코스는 대략 대탄해수욕장~오보해수욕장~노물리 방파제~노물리 군부대 부근(해안도로)~석리방파제~경정항~경정낚시터~대게원조마을~죽도산 블루로드 다리~죽도산 전망대 등을 지난다. 블루로드 중에서도 가장 많은 바닷길을 품고 있다. 가다 보면 알겠지만 이 길엔 어촌마을이나 해수욕장, 정자와 장승, 숲도 있으며 방파제와 현수교, 해안초소도 포함된다. 그리고 동행인과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더라도 바다와 산을 양 옆으로 끼고 나 홀로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블루로드 B코스 전체를 걸으면 5시간 남짓 소요된다. 1박 2일이라도 할 요량이면 상관없지만 당일치기 여행이라면 일부 구간은 걷고, 나머지는 차로 이동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그리고 이 구간의 빼놓을 수 없는 재미, 경정2리 '대게원조마을'(차유어촌
체험마을·영덕군 축산면 차유길2·gyungjeong.seantour.com·어촌체험 문의 010-8707-9834)에서 즐기는 대게 맛이 있다.
■대게원조마을에서 맛보는 영덕 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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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게원조마을'을 알리는 영덕 대게 그림이 방파제에도 그려져 있다. |
기자가 대게원조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식사 시간이 한참 지나 있었다. 경정2리 김수동 이장 댁(영덕군 축산면 차유1길 14-13·054-732-4459)으로 향했다. 그날도 일기가 고르지 못했지만 전날도 기상 상태가 좋지 않아 며칠째 대게 잡이를 못하고 있어서 혹시나 게 맛을 못 보는 건 아닐까 걱정했다. 알려졌다시피 대게원조마을에선 바깥에서 잡은 게를 절대 들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바깥으로 반출되는 양도 많지 않다. 전국택배나 버스
배송을 일부 시행하고는 있지만 현지를 찾는 사람에게만 판매해도 소화는 충분하단다. 즉, 위판 대게는 없다는 말이다.
32년째 이장을 하고 있는 김수동 씨가 말했다.
"현재 우리 마을에만 대게잡이 배가 22척 있습니다. 12월엔 그나마 많이 잡혀 척당 200~300마리를 건져 올렸지만 지금은 하도 잡다 보니 100~150마리로 줄어들었지요. 그런 만큼 가격은 올라가겠죠. 6월엔 잡아 봐야 산란기 이후라 빈껍데기에 가까워서 상품 가치도 없어요. 그래서 통상 대게 조업 기간이 12월부터 5월인 거죠. 대게 살은 늦겨울에서 초봄으로 이어질 때 가장 통통해요. 2, 3월이 절정입니다."
그렇다면 영덕 대게의 매력은 무엇일까? 김 이장의 말은 이어진다.
"영덕 대게의 '대'자는 '크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다리 마디가
대나무처럼 연결돼 있어서 '대게[竹蟹]'라고 부르지요. 흔히 대게는 수심 70~400m 바다에 서식하는데 영덕 앞바다에는 수심 90~200m의 대륙붕이 있어서 그곳에서 잡히는 게를 특히 영덕 대게라고 합니다. 다른 지역에서 잡히는 것보다 속살이 꽉 찼을 뿐만 아니라 맛이 담백하고 쫄깃한 편이죠. 내장 색깔도 푸른색을 띱니다."
공교롭게도 김 이장 댁에선 부산에서 차를 몰고 와 오로지 대게를 먹고 가는 일행을 만났다. 그들은 "2시간 30분을 달려온 시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맛있는 제철 대게를 맛볼 수 있어서 참 좋았다"면서 게장밥과 대게탕, 밥식해,
미역장아찌,
김치 등에도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기자 역시 영덕 대게찜 몇 마리를 '게 눈 감추듯' 해치운 것도 모자라 게장밥까지 뚝딱 해치웠다.
이장 댁을 나와서 노란 화살표를 따라 다시 길을 떠났다.
혹여, 대게원조마을까지 차편으로 곧장 왔다면 거기서부터라도 걷는 방법도 있다. 대게원조마을 광장에 차를 세워둔 뒤 숲길 혹은 모래사장길을 거쳐 바다와 강이 만나는 물길 위를 지나는 현수교 '죽도산 블루로드 다리', 전망대에 이르는 1시간짜리 코스로 왕복해도 2시간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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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미산 해안초소에서 바라본 죽도산 유원지 일대 풍경. 죽도산 정상의 전망대와 블루로드 다리가 보인다. |
마지막으로 해발 80m 죽도산 정상의 전망대(축산면 축산항길 86-1)에 올랐다. 축산항과 블루로드 B코스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송골송골 맺혔던 땀이 단번에 식으면서 기분이 정말 좋아졌다.
혹자는 말했다. 블루로드를 걸어 보지 않고 감히 영덕의 진가를 안다고 하지 말라고. 과연, 그 말이 실감났다. 영덕 여행은 입만 즐거운 게 아니라 눈도, 귀도, 마음도 즐거운 길이었다.
글·
사진=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TIP
■찾아가는 길내비게이션은 영덕 해맞이공원, 신재생에너지관, 대게원조마을 등으로 입력하면 된다. 승용차의 경우, 2시간 30분 남짓이면 도착한다.
대중교통은 부산동부버스터미널(1688-9969)에서 영덕터미널(054-732-7374)까지 운행하는 시외버스가 있다. 부산 출발 영덕 행 첫 차는 오전 6시, 영덕 출발 부산 행 막차는 오후 7시 35분. 요금은 1만 3천700원(중고생 1만 1천 원). 3시간 걸림.
영덕터미널에서 해맞이공원까지는 시내버스(오전 8시~오후 6시20분)가 운행된다. 해맞이공원에 차를 세워둔 뒤 축산항까지 걸어가서 다시 돌아올 경우에도 시내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축산항~해맞이공원 구간을 운행하는 버스는 오전 7시25분, 9시 10분, 11시, 오후 1시, 3시, 4시 등 모두 6편이 있다. 축산에서 택시(054-732-4269, 732-5552)를 이용하더라도 대게원조마을까지 6천 원, 해맞이공원까지는 1만 5천 원.
■맛블루로드 A~D코스의 먹을거리는 블루로드 안내 지도를 구하면 쉽게 알 수 있다. 대게원조마을을 이용할 경우, 차유마을 이봉(010-3553-4967) 어촌계장이나 김경예(010-8707-9834) 사무장, 경정2리 김수동(011-500-4459) 이장한테 연락하면 된다. 대게찜은 크기에 따라서 약간 다르지만 현 시세는 마리당 1만 5천 원 정도 받고 있다.
■제17회 영덕대게축제 올해는 지난해보다 일정이 약간 늦춰졌다. 4월 3일부터 6일까지 영덕군 강구항 일원에서 개최된다. 축제 정보는 인터넷
홈페이지(www.ydcrabfestival.com)를 참고하면 되지만 아직은 자료 준비 중이라고 나온다. 영덕대게축제추진위원회 문의 054-730-6682. 축제 전이라도 영덕 대게 경매 광경을 보고 싶다면 강구수협(054-732-9178)으로 가면 된다. 대게 경매 시간은 오전 8시 30분부터. 김은영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