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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오은미 /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선임연구원 2020-06-16
우리는 매일 미래에 대한 크고 작은 결정을 내리고, 그에 따른 리스크를 떠안는다. 흔히 여기까지가 의사 결정자로서의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는 '리스크 관리'를 통해 그 후의 과정에도 개입할 수 있다. 특히 노후 준비처럼 우리의 미래에 큰 영향을 주는 결정이라면 우리는 리스크 관리를 통해 우리에게 유리한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여기 한 경제학자가 리스크 관리의 비밀을 밝혀내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그녀는 직접 서퍼(Surfer), 파파라치, 마술사, 세계 포커 챔피언, 유람선 오너, 경마 사육업자, 성매매 종사자 등 리스크가 큰 업종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 이들의 위험 관리 방식에 대해 연구했다.
리스크 최전선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이야기하는 리스크 관리 전략이란 과연 무엇일까? 초수명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어떤 시사점들을 얻을 수 있을까? 앨리슨 슈레거 교수에게 그 답을 물었다.
본인을 은퇴 경제학자(Retirement Economist)라고 설명한다. 은퇴 경제학은 어떤 학문인가? 노후 경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엄밀히 말해, 은퇴 경제학이라고 규정된 특정 학문은 아직 없다. 하지만 은퇴 문제를 오롯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제학자로서 거시, 고용, 금융, 그리고 행동 경제학적 전문지식이 필요하다. 딱 한 분야로는 내가 하고 있는 연구를 규정하기 어렵다. 내가 스스로를 은퇴 경제학자라고 소개하는 이유이다.
내가 은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은퇴가 궁극적으로 '시간에 따라, 사람에 따라 자원을 어떻게 배분하는 것이 최적의 선택인가'를 묻는 경제학적 질문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은퇴는 모든 사람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 연구해야 할 중요한 문제들이 상당한 주제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머튼과 은퇴저축전략설계를 했고, 리스크 자문사인 라이프사이클 파이낸스 파트너스를 공동설립했다. 로버트 머튼 역시 은퇴 설계분야의 대가인데, 그를 만나기 전과 후 '노후 설계'에 대해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는 내가 은퇴와 경제학에 대해, 그리고 일반적인 것들에 대해 이해하고 있던 방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그의 관점에 따르면, 리스크는 우리가 일상에서 매일 마주하고 있는 문제이다. 우리는 리스크라고 하면 흔히 실직, 파산, 사별 등 끔찍한 사건이나 최악을 떠올린다. 하지만 리스크는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매순간 감수해야 하는 그 무엇이다. 리스크를 회피하면 우리 인생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한다. 머튼은 내게 ‘리스크가 없는 것이면 무엇이나 리스크’라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또한 머튼은 은퇴에 대비할 때 과연 '리스크 없는 선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먼저 정확히 규정한 다음 리스크를 관리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식으로 은퇴 문제를 재구성했다. 내가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방식이었다.
현재 돈을 잃지 않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은퇴 후 현금흐름을 잃지 않는 것
리스크에 대한 개념부터 짚고 넘어가보자. 우리가 은퇴 후 생각보다 더 많은 리스크에 노출되는 까닭은 금융업계가 '무 리스크(Risk-Free)'상태를 잘못 규정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개인의 은퇴에 있어 '무 리스크', 즉 리스크 없는 은퇴란 무엇인가?
사람들은 단기 정부 채권이나 예금에 투자하는 것을 리스크 없는 은퇴 준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투자는 손실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리스크가 없는 은퇴'란 '예상 가능한 현금흐름이 지속되는 은퇴'를 의미한다. 당신이 현재 돈을 잃지 않는 데에만 집중한다면, 은퇴 후 현금흐름을 잃게 될 수도 있다.
실제 사람들은 원금을 잃지 않는 것을 '무 리스크' 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국의 경우, 퇴직연금의 90%가 원리금 보장형에 편중되어 있기도 하다.
리스크가 낮은 투자를 통해 충분한 노후 자금을 만들기 위해서는 애초에 상당히 큰 원금이 투입되어야 한다. 지금과 같은 초저금리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그 정도로 충분한 자금을 확보하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 우리는 선택권이 없다. 어떻게 리스크를 지니며 살아가는지를 배워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금융권 종사자나 경제학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 입장에서 리스크에 대비하는 것이 가능한가?
미래에 대해 결정을 내리고 그 결과에 자신을 내맡기는 리스크를 떠 안는 것. 이는 생을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진리이다. 따라서 누구나 리스크를 인식하고 이에 대비하는 방법, 리스크의 정도에 영향을 행사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리스크 대응 전략은 구체적으로 다각화(Diversification), 헤징(Hedging), 보험(Insurance) 3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다각화는 여러 종류의 자산을 보유함으로써 특정 리스크에 노출될 가능성을 제거하는 것이다. 다각화는 리스크는 줄이면서도 비슷한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효율적이다. 가령 다양한 주식으로 구성된 인덱스 펀드를 투자 포트폴리오에 포함시키거나, 특정 업종 외 다른 분야의 여러 사람들과 교제하거나, 몇 가지 다양한 직업을 유지하는 것이 예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다각화는 체계적 리스크(경제 전반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는 위험)를 관리할 수 없다. 체계적 리스크를 대비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헤징과 보험이 있다. 헷징은 하방 리스크를 줄이는 대신에 기대 수익의 일부를 포기하는 것이다. 최악의 결과를 피하는 대신에 더 얻을 수 있는 잠재적 이익도 포기하는 것이다. 보험은 다른 사람에게 일정금액을 지불하고 우리의 손실위험을 맡기는 한편, 잠재이익을 그대로 유지하는 방법이다. 즉 손실 리스크를 남에게 떠안기는 대가로 보험료를 지불해야 한다. 전체 이익에서 보험료를 뺀 만큼이 내 몫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헷지가 보상분을 포기한다는 점에서 보험과 구분해 볼 수 있다.
저서인 <리스크의 과학>에서 성매매 업소, 영화 산업 종사자, 파파라치, 포커 챔피언, 말 사육업자, 마술사, 빅웨이브 서퍼 등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리스크 관리 방법에 대해 조사했다. 개인의 은퇴준비에 적용해 볼만한 사례가 있다면? 앞에 이야기했던 3가지 리스크 기술을 적용해 설명 부탁한다.
물론 모든 사례들이 다 시사점이 있지만, 은퇴를 앞둔 사람들이 눈여겨 볼 부분은 큰 파도를 타는 빅웨이브 서퍼들의 리스크 관리 방식이다.
서퍼들에게 리스크란 물에 빠지게 되는 경우다. 서퍼들은 바다에 빠졌을 경우 구조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숙련된 팀을 구성한다(다각화 방법). 또한 상어나, 암초, 수심, 물의 온도 등 파도 조건들을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위험 요소들을 파악한다. 무리 지어 이동하는 파도를 탈 때 아무리 첫번째 파도가 크다고 해도 사고가 날 확률을 감안해 네번째 파도를 타는 식이다. 일정 정도의 스릴과 재미를 포기하는 대신 안전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헤지 방법). 마지막으로 이들은 제트 스키 등 최신 기술을 이용해 서프보드에서 떨어진 사람을 구조하는 장치도 마련해 두었다(보험 방법).
실제로 나는 책에서 빅웨이브 안전 정상회의(BWRAG)라고 하는 리스크 컨퍼런스를 소개했다. 빅웨이브 서퍼들은 무작정 바다에 나가기보다, 이 컨퍼런스를 통해 계산과 정보에 근거한 리스크 분석방법을 배우고, 사전에 바다에 빠질 경우를 대비한 ‘리스크 기술’을 익힌다.
부(Wealth)보다는 인컴(Income)에 투자해야
은퇴 전문가 입장에서 볼 때 은퇴 후 삶에서 가장 큰 리스크는 무엇인가?
은퇴 후 맞게 되는 가장 큰 리스크는 물론 은퇴 자금의 고갈이다.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현금수입이 꾸준히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은 은퇴생활에 있어 큰 위기가 될 수 있다. 사람들은 언젠가 얼마만큼의 돈이 필요할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하지만, 실제로 은퇴 기간에 필요한 건 예상 가능한 현금 흐름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인컴(income) 대신 부(wealth)에 투자하는 경향이 있다.
현금흐름을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공적 연금을 비롯해, 종신연금 등 연금보험에 가입해 은퇴 후 꾸준한 현금흐름이 발생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리스크 없는 은퇴생활을 할 수 있을 만큼 거액의 연금보험료를 너끈히 감당할 여력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보유하고 있는 자산들을 연금화하는 방법도 대안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책에서 언급된 가수 데이비드 보위의 리스크 헤지 방식도 인상적이었다. 10대 시절 음악의 소유권을 보유했던 그는 50대에 보위채권을 발행하면서 노래의 로열티를 증권화했다. 과거와 정반대의 거래를 감행한 셈인데, 은퇴를 준비하는 입장에서 볼때, 생애주기에 따른 리스크 대비 전략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나이가 들수록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기간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측면에서, 우리는 더 많은 리스크에 노출된다. 따라서 생애 주기에 맞는 전략을 세우고, 이를 고수해야 한다.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서 통상적으로 더 안전한 자산에 투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데이비드 보위도 이렇게 생애주기에 맞는 전략을 세울 줄 알았던 사람이다. 그는 음악적으로도 뛰어나지만, 리스크 전략가로서도 재능이 있었다. 신인 시절, 음반사로부터 약간의 선지급금만 받고, 자기 음악의 소유권을 보유하는 계약을 했다. 자신이 성공할 경우를 염두에 둔 선택이었지만, 자신의 음악이 뜨지 못할 경우에 대한 리스크를 감수한 셈이다.
하지만 30년 뒤 보위가 50대가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의 노래에 대한 로열티를 매각했다. 음악 산업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고, 앞으로 얼마만큼의 로열티가 창출될지도 불투명했다. 보위 자신의 리스크 감수 성향도 달라지고 있었다. 그는 5,500만 달러를 선지급금으로 받고 15년 동안 자신의 노래에 대한 로열티를 포기한 것이다. 10대 때와 정반대의 선택이었다. 헤지를 통해 리스크를 대비한 셈이다.
인생의 리스크를 관리하는 5가지 원칙
은퇴를 비롯해, 살면서 만나는 리스크를 제대로 평가하고 감수하는데 필요한 원칙이 있다면 소개 부탁한다.
첫째. 보상을 위해서는 리스크를 져야 한다.
손실을 무릅쓴다는 것은 더 많이 얻기 위해 치르는 대가다. 그래서 우리는 리스크를 감수하는 사람들을 우러러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무조건 과감한 리스크를 감수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상황에 맞게, 자신이 원하는 보상을 얻을 수 있는 리스크를 감수하는 사람이 승자다. 우리는 생각 없이 그저 변화를 원해서 리스크를 감수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중요한 것은 '리스크는 결국 눈앞에 보이지 않는 보상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기억하고, 어떻게 하면 더 제대로 된 리스크를 감수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 사람들이 리스크를 감당할 때 하는 가장 큰 실수는 목표를 정확히 규정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 즉 보상을 명확하게 하지 않으면, 리스크를 감수하더라도 그 결과에 만족하기 어렵다.
둘째. 내가 비합리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스스로를 합리적인 존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비합리성은 우리가 위험한 결정을 할 때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다. 사람들은 손실에 굉장히 민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감당할 수 있는 능력 이상의 리스크를 감수하기도 한다. 포커에서 지고 있을 때 그만두지 않고 그 판에 더 많은 돈을 거는 것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손실에 대한 거부감을 극복하고, 리스크를 인식하는 방법 등을 파악하면 조금 더 현명한 판단이 가능하다.
셋째. 리스크 부담으로 얻는 보상을 극대화하라.
보상을 얻을 수 있을 때 선택지가 두 가지라면 리스크가 적은 쪽을 선택해야 한다. 필요 이상으로 많은 리스크를 감수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다각화를 통해 불필요한 리스크를 줄이라.
넷째. 자기 영역의 주인이 되라.
리스크 관리에 관한 이야기이다. 내 결정에 따라 발생하는 리스크에 우리는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리스크 관리에는 앞서 이야기 했던 헷지와 보험의 방법이 있다.
다섯째. 불확실성은 발생할 수 밖에 없다.
리스크 계획을 세우면,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에 완벽하게 대비했다는 착각에 빠질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첫 단계는 아무리 훌륭한 리스크 전략을 세운다고 해도 어느 정도의 불확실성은 불가피하다는 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대비할 수 없는 일이 발생했을 때 처리 방법은 필요한 만큼의 유연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최근 <월스트리트 저널> 칼럼에서 지금의 코로나 위기를 사전에 계산할 수 없었던 불확실성에 가깝다고 이야기했다. 은퇴를 앞둔 개인들의 입장에서 이러한 불확실성은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가?
리스크는 충격 상황이라 해도 발생 가능성을 계산하고, 준비할 수 있다. 하지만 불확실성이란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예상치 않았던 충격에서 내 은퇴생활을 지키려면, 유연성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 유동성 자산들을 확보하고 지나친 레버리지를 피해야 한다.
책에서 소개했던 미국의 맥마스터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경우, 불확실성에 대한 최선의 대응책으로 유연성을 꼽았다. 그리고 돌발 요소에 대한 연습, 교육, 훈련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극심한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도 훈련을 거친 군사들은 자신의 계획과 다른 상황에 대해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의 조언을 인생의 여러 분야에 적용해 볼 수 있다.
오은미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선임연구원
http://retirement.miraeasset.com/contents/view.do?idx=12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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