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복의 사고방식
근대 과학은 유럽 제국 덕분에 번창할 수 있었다.
근대 과학이 고전시대 그리스, 중국, 인도, 이슬람 등의 고대 과학 전통에 큰 빚을 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독특한 성격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근대 초기에 이르러서였다.
이 과정은 스페인, 포르투갈, 영국, 프랑스, 러시아, 네델란드의 제국주의적 팽창과 나란히 일어났다.
근대 초기 동안 중국인, 인도인, 무스림, 아메리카 원주민, 폴리네시아인은 계속해서 과학혁명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애덤 스미스와 카를 마르크스는 무슬림 경제학자들의 통찰을 배웠고,
아메리카 원주민의 의사들이 개척한 치료법은 영국의 의료 문헌에 자리를 잡았으며,
학자들이 포리네시아인들로부터 얻어낸 정보는 서구 인류학에 혁명을 가져왔다.
하지만 20세기 중반까지, 이런 방대한 과학적 발견을 수집, 분석하고
그를 통해 과학적 학문을 창조한 것은 세계적 유럽 제국을 지배하는 지적 엘리트들이었다.
극동과 이슬람 세계에도 유럽 못지 않게 지적이고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1500년에서 1950년 사이에 이들은 뉴턴 물리학이나 다윈 생물학에 비슷하기라도 한 것조차 전혀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것은 유럽인들이 과학을 잘하는 독특한 유전자를 지녔다거나
이들이 물리학과 생물학을 영원히 지배할 것이란 의미가 아니다.
이슬람교가 아랍인 독점으로 시작되었지만 이후 터키인과 페르히아인도 믿게 된 것처럼,
현대 과학은 유럽인의 전문 분야로 시작했지만 오늘날은 다민족의사업이 되고 있다.
무엇이 현대 과학과 유럽 제국주의 사이의 연대를 구축했을까?
19세기와 20세기에는 기술이 중요한 요인이었지만,
근대 초기에는 기술의 중요성에 한계가 있었다.
핵심요인은 식물을 찾는 식물학자와 식민지를 찾는 해군장교가 비슷한 사고방식을 가졌다는 데 있었다.
과학자와 정복자는 둘 다 무지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했다.
이들은 "저 밖에 무엇이 잇는지 나는 모른다"고 말했다.
이들은 둘 다 밖으로 나가서 새로운 발견을 해야겠다는 강박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새로운 지식이 자신을 세계의 주인으로 만들어 주기를 둘 다 희망했다.
유럽 제국주의는 역사상 존재했던 다른 모든 제국주의 프로젝트들과 완전히 달랐다.
과거의 제국 추구자들은 자신들이 이미 세상을 이해하고 있다고 추정하는 경향이 있었다.
정복은 단지 '그들의' 세계관을 활용하고 퍼뜨리는 것에 불과했다.
예를 들어 아랍인들은 이집트나 스페인 혹은 인도를 정복했지만,
자신들이 모르고 있던 무언가를 발견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로마인, 몽골인, 아즈텍인들이 탐욕스럽게 새 땅으 정복한 것은
권력과 부를 찾아서였지, 새지식을 찾아서는 아니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유럽 제국주의자들은 새 영토뿐 아니라 새 지식을 회득한다는 희망을 안고 먼 곳의 해변을 향해 떠났다.
이런 생각을 한 최초의 탐험가가 제임스쿡은 아니었다.
15~16세기 포르투갈과 스페인 항해자들도 이미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포르투갈의 항해자 엔히크 왕자와 바스코 다 가마는 아프리카 해안을 탐사하고 그 과정에서 섬과 항구의 지배권을 강탈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아메리카를 '발견'하자 즉각 스페인 왕의 통치권을 선포했다.
페르디난드 마젤란은 세계 일주 항로를 찾아냈고, 이와 동시에 스페인이 필리핀을 정복할 기초를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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