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한흠 목사님 추모2주년 기념으로 디사이플지 9월호에서 "내수동교회 대학부 수련회"가 나와서 읽었다.
진짜 원조는 성터교회 대학부이다. 그런데 성터교회 대학부는 주목을 덜 받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그 곳은 기업가들이 많이 나왔다고 한다.
내수동교회 대학부는 20~30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서 친목을 주로 다지는 곳이었는데 옥한흠 목사님이 수련회 인도를 하면서
전격적으로 변화되었다고 한다.
그 때 당시에 오정현 지도간사가 큰 역활을 하였다고 한다. 그렇지만 전도사는 아니다.
그리고 대학부에서도 담당 전도사가 있었다.
담당 전도사의 역활도 컸다.
내수동 교회 대학부 부흥의 비결은 누구 한 사람이 아니라 팀원들과,내수동교회 당시 담임목사와,대학부 전도사 모두가 힘쓴 결과라고
생각한다.
오정현 지도간사는 선파워(sun power)라는 별명도 갖고 있었고 매우 열심히 사역을 했다고 한다.
대학부 내의 아이돌 같은 인기(?)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젊은 시절들의 사진을 보니깐 신기했다.
이런 시절도 있었네??
그리고 송태근 목사는 사실 장애인 교회로 옮겨 갔는데 "증인들"이라는 소식지는 계속 받아 본 사람이었다.
대안교회인 나들목교회의 김형국 목사도 내수동교회 출신이다. 그러고 보면 내수동교회에서 대형교회 목회자들이 꾀 나왔다.
그런데 5.18이나 이럴 때 학교 휴교령이 내렸을때 교회에서 매일 모였다고 하는데 나는 그게 잘못되었다고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시대의 변혁에 같이 동참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예배와 공부는 꼭 교회에서만 하는게 아니다.
그리고 민주화 운동이 곧 예배였다고 믿는다.
민중과 분리된 신앙은 존재하지 않는다.
제일로 인상 깊었던 내용은 지방에서 올라온 10여명의 청년들이 공동체 생활을 한 것이다.
"라브리 공동체"라고 이름 짓고는.
어떻게 보면 요즘 아이들도 많이 하는 방 나누기 인데, 그렇게 라브리 공동체 라고 하면 좀 다른 성격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회가 있으면 들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시절의 그렇게 힘써서 대학부를 섬기고 매주마다 빠지지 않고 철도병원 전도도 다닌 누구 한 사람이 아니라 모든 내수동 교회의 대학부원들이
참으로 대단하다고 느꼈고 그렇게 헌신되지 못한 내가 본 많은 대학부원들을 생각하며 그들과 우리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고민해 본다.
사람수는 훨씬 더 많았다. 대학부만 3000명 가까이 되었다.
이름없이 무명으로 살아가는 내수동 교회 대학부원들의 참된 헌신에 감탄을 보내고 이렇게 열심히 젊은 시절을 산 오정현 지도간사님은
내 젊은 시절보다 더 열심히 교회를 섬겼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자랑스럽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런데 왜 오정현 전도사 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설교도 아니었고 7분 메세지였다고 한다.
실제 전도사였던 당시 대학부 담당 교역자와 설교를 하였던 대학부 담당 교역자가 들으면 섭섭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건 잘못된 용어선택이라고 생각한다.
하여튼 중요한 것은 내수동 교회 대학부원들의 참된 헌신은 매우 뜻깊은 것이었고, 내 담임목사님이었던 오정현 씨가 젊은 시절에
그렇게 열심히 섬기고 열정적으로 행동했다는 거를 알게 되어서 자랑스럽다는 생각이 드는 읽을거리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럼 나는 어떻게 복음을 들고 세상과 교회를 섬길 것인가?
모르겠다.
왜냐하면... 이 복음이 나의 생명을 걸것인가를 진심으로 아직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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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