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
오늘은 예수님을 잉태하신 성모님께서 사촌 언니이자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인 엘리사벳을 방문하신 것을 기념하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입니다. 교회가 오늘을 이 축일로 정한 것은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3월 25일)과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6월 24일) 사이에 이 축일을 기념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두 가지의 ‘아름다운 만남’을 전해줍니다. 첫째 만남은 두 여인의 만남, 즉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만남입니다. 두 번째 만남은 마리아의 태중에 계신 예수님과 엘리사벳의 태중에 있는 세례자 요한의 만남입니다. 사실,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보다 6개월 형이지만, 아우 예수님을 보고서 어머니 엘리사벳의 태중에서 먼저 기뻐 용약합니다. 마리아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엘리사벳은 당황했지만, 세례자 요한은 어머니의 태중에서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뵙고 기뻐 뛰놀았습니다.
“그 무렵에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고을로 갔다.”(39절)
복음에서는 마치 성모님께서 옆 동네를 방문한 것처럼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지만, 마리아가 살던 나자렛에서 엘리사벳이 살던 유다 산골의 아인 카림까지는 직선 거리로는 약 130㎞ 정도이지만, 걷기 쉬운 요르단 강 계곡 길을 따라 꾸불꾸불 걸어가면 160㎞나 넘는 매우 먼 거리입니다(서울에서 대전). 걸어서 나흘에서 닷새가 걸리는 이 길에는 중간에 산봉우리를 넘어야 하는 험난한 길입니다.
즈카르야의 집에 들어간 마리아는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인 엘리사벳에게 인사합니다.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큰 소리로 외칩니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εὐλογημένη σὺ ἐν γυναιξὶν καὶ εὐλογημένος ὁ καρπὸς τῆς κοιλίας σου”: 루카 1,42ㄴ)
이스라엘로 성지 순례를 가면 아인 카렘에서 차에서 내려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 성당’까지는 약 30분 정도 걸어갑니다. 성당 입구에는 ‘엘리사벳과 마리아’가 서로 마주보며 인사하는 성상이 있습니다. 성당 마당에는 각 나라의 말로 쓰인 ‘마리아의 노래’가 붙어 있습니다.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아름다운 성당이 있습니다. 제대의 오른쪽 벽면에는 성모님과 관련된 다섯 개의 성화(聖畫)가 그려져 있습니다. 하느님의 어머니(테오토코스)이신 마리아, 교회의 어머니이신 마리아, 하느님 은총의 중개자인 마리아를 표현하는 카나의 혼인 잔치, 성모님의 전구로 이슬람 세력과의 전투에서 승리했던 레판토 해전, 그리고 성모님의 원죄 없이 잉태되심(임마꿀라타)을 기념하는 성화가 있습니다.
보통 여자가 임신하면 가장 편한 곳을 찾아가 안정을 취하고 싶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친정 어머니를 찾고, 어떤 사람은 집 안에만 머무르며 안정을 취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전체 임신 기간 중에 가장 힘들고 민감한 시기 동안, 자기보다 더 힘든 처지에 있는 친척 엘리사벳을 위해 봉사합니다.
그러면 마리아가 그러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던 내적인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마리아의 노래’, 곧 Magnificat을 보면 그 힘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Magnificat anima mea Dominum’),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루카 1,46-49)
자신의 앞날에 어떤 위기가 닥쳐올지, 얼마나 힘들고 괴로운 일들이 생길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두려운 상황에서 마리아는 원망이 노래가 아닌 감사의 노래를, 투정이 아닌 찬미의 노래를, 절망이 아닌 희망의 노래를 부릅니다. 이러한 마리아를 향한 엘리사벳의 찬송이 이루어집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καὶ μακαρία ἡ πιστεύσασα ὅτι ἔσται τελείωσις τοῖς λελαλημένοις αὐτῇ παρὰ κυρίου.”: 루카 1,45)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을 지내는 오늘 우리도 성모 마리아와 같은 마음을 간직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 어렵고 힘들어도,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몰라 두렵고 막막할 때, 그런 우리의 처지를 비관하며 살아갈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뜻이 우리 안에서 온전히 이루어질 것을 굳게 믿으며 적극적으로 사랑과 선행을 실천하고 우리 곁에 있는 이웃 형제자매들을 더욱더 따스하게 보살핍시다. 그러면 그들 안에서 그리고 우리 안에서 놀라운 일을 이루시는 하느님의 섭리를 알아보고 진정으로 기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령의 궁전이신 동정 마리아님, 당신은 항상 부드러움과 신중함으로 아들 예수님의 곁을 지키셨으니, 시련을 당할 때 저희를 버리지 마시고, 믿음이 흔들리는 어둠의 순간에 저희 손을 잡아 이끌어 주소서. 저희를 은총의 샘이신 예수님께로 인도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