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와 오빠의 축하 메시지가 빗발쳤다. 아르헨티나 언니에게서도 왔다. 백송이 장미다발을 비롯한 꽃다발이 연거푸 날아왔다. 제부 생일 축하해요 항상 고마워요 늘 베풀어주는 정을 어찌 갚겠소 우린 먼저 가니까 남은 생도 즐겁게 행복하게 자주 만나게 인도해줘요. 매부 생신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함께 밥을 먹기로 했다. 마침 논볼로 늘 바쁘게 연습하고 시합에 참가하시던 작은 오빠도 시간이 있으시단다. 익산에 계신 둘째언니 생신을 이래저래 그냥 지나쳐버렸으므로 이번 기회에 함께 축하하기로 했다. 노인 일자리에 참여하고 계시므로 만나는 날짜를 늦춰 둘째 언니에게 맞추었다.
신림동 강강술래에서 만났다. 큰언니의 연세가 85세 둘째언니가 82세 작은오빠가 76 셋째언니가 73. 작은오빠는 운전을 잘 하시니 어디든 쉬이 오실 수 있다. 그나마 세째언니는 운전을 그만둔 지 꽤 되었다. 막내제부인 최서방이 한바퀴 돌기로 했다. 위례에서 한남동으로 상도동을 거쳐 신림동으로. 점심을 먹고 나면 다시 신림동에서 상도동으로 한남동을 거쳐 위례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이 정도는 내가 해드려야지. 그의 말이다. 언니들이 막내제부인 내 남편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최서방은 40대 청년이야 최서방 최고야! 그때마다 최서방은 진짜 40대처럼 젊게 웃는다.
강강술래. 갈비살에 칼집을 내어 양념한 것으로 입에서 살살 녹는 맛이다. 주로 60대 이후의 노인들이, 특히 할머니들이 주를 이룬다. 1인분에 30,000원. 수입이 없는 노인들에게는 싼 값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젊은이보다 노인들이 부자라는 말이 맞는다. 광장만큼 넓은 홀은 손님들로 꽉 차 있고 음식을 서빙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주방 옆이자 홀 가운데 테이블에 앉은 우리는, 시끌시끌 한데다가 서빙하는 사람들이 앞뒤와 옆으로 바삐 지나다니는 바람에 정신이 없다. 시장통이 따로 없다. 그래도 달달한 갈비살은 맛있다.
둘째언니가 공부하는 노인대학에 아흔이 넘은 총장님께서 말씀하셨단다. 악착같이 사세요. 아프다고 자꾸 눕지 말고 멈추지 말고 무엇이든 하라는 말씀이시란다. 악착같이 움직여 몸의 균형을 잃지 말라는 것. 악착같이 무언가 새로운 것을 공부해서 정신의 균형을 지키라는 말도 될 것이다. 악착같이 먹으라는 말도 포함되지 않을까. 양념갈비를 악착같이 실컷 먹었다.
그러고보니 내 언니와 오빠의 일상이 악착같다는 말에 가깝다. 여든다섯 큰언니는 아침 수영을 꼭 다녀오시고, 다섯 자식을 위해 시장을 보고 반찬을 만드신다. 올해는 허리수술을 받고 한동안 어쩔수 없이 손놓고 지내시더니 조금 나아졌는지 틈틈이 반찬을 엄청나게 많이 만드신다. 자식들이 맛있게 먹으니 재미있으시단다. 큰언니를 비롯한 자식 다섯집의 김장도 주도하셨다. 물론 딸 넷과 며느리가 동참했지만 앞장서는 사람의 일이 더 많다.
여든 둘 둘째언니도 자식들에게 무엇이든 만들어주는 일은 큰언니 못지 않다. 청국장을 만들어 형제들에게도 나눠주셨고 들기름과 단감과 키위까지 나누셨다. 거기다가 시조니 국화 분재니 장구니 한학이니 계속 공부중이시다. 놀라운 일은 익산과 서울을 이웃처럼 들락거리신다. 상황에 맞춰 버스와 지하철과 기차와 전철을 자유자재로 옮겨타시며 다니신다. 사람을 많이 만나고 경험을 많이 하시니 치매와는 멀리 떨어져 똑똑하게 오래 사실 분이다.
작은오빠는 론볼선수로 활동하신다. 우리나라 곳곳을 다니며 시합을 하시고 호주까지 다녀오셨다. 아파트 주변 산책을 열심히 하시고 틈틈이 헬스장을 다니신다. 정기적으로 물리치료를 받으시고 다리에 힘이 많이 생겨 지팡이 없이도 잘 걸으신다. 셋째 언니는 매일 만보를 걸으시고 일년에 서너번은 골프여행을 다니신다. 평소에는 테니스 모임에서 왕언니로 맹 활동중이시다. 넷째 언니네는 골프와 오래 걷기로 얼마나 몸이 단단하신지 아르헨티나에서 한국에 오신 날 피곤함을 엿볼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쉬지 않고 고스톱을 재미있게 치셨다. 악착같이 살고 계신다. 우리도 텃밭 농사로 봄부터 가을까지 부지런히 살고 뒷동산을 산책하는 일을 열심히 한다.
그럼에도 신림동 강강술래를 찾아갈 때 처음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다른 길로 들어섰다. 여기인가 저기인가 헤매었다. 최서방이 운전을 하고 그 옆에 기억력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않을 셋째언니가 앉았음에도 말이다. 서울길을 골목골목 다 알고 계시는 작은오빠도 길을 잘못 들어 한참 헤매셨단다. 그러더니 고스톱을 치는 속도가 늦어졌다고 이구동성으로 말씀하신다. 화투를 잡는 속도뿐만 아니라 화투가 깔린 판을 보고 무엇을 내놓을 것인지 무엇을 쥐고 있을 것인지를 계산하는 능력도 떨어진 게 분명하다. 기본 3시간인데 이번에는 1시간반 정도에서 끝났다. 꼼짝않고 앉아 있다보니 여기저기 쑤시고 아픈데가 많아지셨단다. 재미도 덜 하신지 웃음소리가 줄었다. 늙음은 이렇게 소리없이 다가와 곁에 있다가 불현듯 나타난다.
둘째언니는 팔목과 손가락이 아프고 셋째언니는 손목이 아프고 나는 안구건조증으로 숯불을 멀리해야 한다. 바지런하고 답답한 것을 못 견디는 셋째언니가 고기를 구웠다. 막내인 나는 죄송한 마음으로 고기를 먹었다. 고기 굽는 일조차 쉽지 않다니. 나이 들어가는 우리와 딱 마주쳤다. 씁쓸했다.
밥을 먹었으니 케잌은 생략하자는 우리 생각과는 달리, 양반 가문의 딸 순응 안씨 어머니를 빼닮은 세째 언니는 케잌을 샀다. 생신은 생신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역시 세째언니는 나의 인생길 모범 모델이다. 케잌에 촛불을 켜고 생일 축하노래를 불렀다. 노래 부를 사람은 너하고 나야. 세째언니가 나를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큰소리로 신나게 즐겁게 박수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모두의 얼굴이 환하고 보기 좋았다. 바로 이 순간을 놓치면 안된다고 생각한거지 세째언니는.
지금까지는 언니와 오빠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기쁘고 행복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형제자매 단체카톡방에서 그 기쁨을 다시 맞보고는 했다. 오늘은 아니다. 쓸쓸함, 안타까움, 서글픔이 앞서고 있다. 늙음을 어찌 역행하랴. 다만 지금을 현재를, 주어진 정신과 육체로 악착같이 살아내는 일이야말로, 나이든 사람들의 최선의 방책일 터. 악착같이 살아보자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