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수행이야기]〈87〉두려워 말자, 희망이 있다 (끝)
불교적 삶과 수행의 귀감이 되는 선지식
수행자의 진실 보여준 이들이 있어
종단은 앞으로도 유유히 흘러갈 것…
한국불교사에 세속적 명리(名利)보다 출가수행 길을 선택한 이들이 많다. 이 가운데 신라 때 자장율사(590∼658)는 26대 진평왕이 ‘도와달라’고 불렀지만 응하지 않았다. 율사는 칙사를 통해 왕에게 이런 전갈을 보냈다.
“하루 계를 지키다가 죽을지언정 계를 파(破)하면서 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자장은 진골 출신으로, 부모를 일찍 여의었다. 율사는 출가한 뒤에 자신의 집을 사찰로 만들었다. 이후 깊은 산골에서 홀로 백골관을 닦으며, 작은 토굴을 지어 가시덤불로 둘러막고 벗은 몸으로 그 속에 앉아 수행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가시에 찔리도록 가시를 둘러친 것이다. 또 끈으로 머리를 천장에 매달고 수행했는데, 조금이라도 졸면 머리카락이 당겨져 바로 깰 수 있도록 자신을 경책하였다. 이렇게 자장이 용맹정진하고 있는데, 조정에서 재상 자리가 비어있다고 그를 불렀지만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렇게 세속의 명예보다 참 수행 길을 보여준 선지식이 또 있다. 조선 중기 청허휴정(1520~1604)이다. 소납에게 있어 휴정은 역대 선지식 가운데 존경하는 인물 가운데 한분이다. 선사는 18세에 부용영관(1485~1571)을 의지해 선(禪)을 배웠고, 영관에게서 인가를 받았다. 영관과 휴정은 고려 말 태고 보우 법맥이며, 현재 우리나라 스님들이 이 법통을 잇고 있다.
휴정은 “선(禪)은 부처의 마음이고, 교(敎)는 부처의 말씀(禪是佛心 敎是佛語)”이라며 선교일치를 주장하였고, 사람의 근기가 각각 다르므로, 혹 어떤 이에게 타력이 필요하다면 염불ㆍ주력ㆍ참회ㆍ보시 등 다양한 수행법을 용인했다. 하지만 휴정은 수행하는 중 막착언설(莫着言說), 곧 문자를 초월한 선에 마음을 기울인 뒤 “차라리 일생동안 어리석은 사람이 될지언정 다시는 말만 중얼거리는 ‘문자법사’는 되지 않으리라”라고 다짐하였다. 곧 휴정의 선교관은 선이 주(主)가 되고, 교가 종(從)이 되는 선 입장에서 교를 받아들였다.
선사는 33세에 승과에 급제해 대선을 거쳐 허응당 보우의 청으로 선교양종판사를 맡았다. 그러나 휴정은 판사를 맡은 지 2년 만에 직위를 버리고, 금강산으로 들어가 제자들을 제접하였다. 이후 선사가 70여세 무렵,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도 선조의 청으로 8도16종도총섭(八道十六宗都摠攝) 직위를 받아 의승군을 이끌었지만, 이 직책도 얼마 뒤에 사명에게 물려주고 산으로 들어갔다. 조선 500년 억불숭유로 불교가 암울한 시대에 휴정이라는 선지식은 등불과 같은 존재였다. 한국선의 중흥조로서 휴정의 선사상은 한국불교에 면면히 흐르고 있다.
무엇보다도 휴정은 자장율사처럼 명리보다는 수행자로서의 면모가 귀감이 된다는 점이다. 하기야 이 점에 있어 원조를 거슬러 올라가면 단연코 부처님이다. 마가다국 빔비라사왕이 막 출가한 싯달타에게 “다시 왕자로 돌아간다면 석가족을 위해 땅과 군사를 주겠다”며 세속 황제의 길을 제안했을 때, 부처님은 단호히 사문의 길을 보여주셨다.
가끔 종단이 혼란스러울 때마다 소납은 종단에 공감능력이 깊어진다. 젊을 때는 비판이 강했는데, 이제는 소납이 몸담고 있는 절집 문중에 안쓰러움이 앞선다. 하지만 염려하지 않는다. 자장 율사, 보조 지눌, 휴정 등 명리보다는 수행자로서의 진실됨을 보여준 이들이 있어 앞으로도 이 종단은 유유히 흘러갈 것이다. 이에 조계종단은 희망이 있다. 두려워 말자.
불교신문, ‘삶과 수행이야기’ 코너를 통해 만 2년간 불자들에게 다르마의 기쁨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려고 하였다. 허나, 혹 이 지면을 통해 마음이 어지럽혀진 분이 있다면 용서 바란다. 앞으로 소납은 글 나부랭이나 나열하는 문자법사가 아닌 참 수행 길을 제시하는 납자로 거듭날 것을 서원한다. 나무석가모니불.
정운스님… 서울 성심사에서 명우스님을 은사로 출가, 운문사승가대학 졸업, 동국대 선학과서 박사학위 취득. 저서 <동아시아 선의 르네상스를 찾아서> <경전숲길> 등 10여권. 현 조계종 교수아사리ㆍ동국대 선학과 강사.
[출처 : 불교신문]
☞'삶과 수행이야기' 목차 바로가기☜
첫댓글 _()()()_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