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오늘, 가톨릭 프레스 김근수 칼럼)
이런 교황 없었다.
교황의 쿠바와 미국 방문을 결산하며
프란치스코교황이 2박3일 일정의 쿠바 방문과 5박6일 미국 방문을 마쳤다. 교황은 개신교 국가 미국에서 예상 밖의 엄청난 환영을 받았다. 가톨릭신자, 가난한 사람들, 이민자, 소수민족, 여성뿐 아니라 미국 복음주의권 개신교에서도 교황 방문은 크게 환영받았다.
교황은 다른 나라를 찾을 때와 마찬가지로 쿠바와 미국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편드는 정의의 사도로서 교회와 자신을 보여주었다. 교황은 가톨릭교회 밖에서도 큰 인기를 얻으며 감동을 선사하였다. 자본가, 가톨릭 보수파들은 사람들의 이런 환영의 모습에 적잖이 당황하기도 하였다.
부자들과 권력자들에게 아주 못된 버릇이 있다. 자신들이 아주 중요한 사람들이며 세상은 자기들 중심으로 회전한다고 당연히 생각한다. 돈과 권력보다 인간에게 더 소중한 것은 사실상 없다고 자부하며 마치 인생의 승리자처럼 처신한다. 그런 생각과 습관을 대부분 부자들과 권력자들은 불치병처럼 가지고 있다.
부자들과 권력자들 가난한 사람들의 세계를 잘 모른다.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들은 아예 없는 존재처럼 생각하고 산다.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을 평생 구경 한번 해보지 못한 부자들과 권력자들이 많다.
교황은 이런 교만한 부자들과 권력자들과 확실히 다른 사람이다. 교황이 남긴 아름다운 모습과 명언은 너무 많아서 그중 몇 개를 골라내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교황의 무엇이 사람들을 매혹시켰는가. 누가 교황에게 열광하였는가. 왜 사람들은 교황을 종교 지도자 이전에 인류의 지도자라고 서슴없이 고백하는가.
먼저 교황 개인의 소박하고 겸손한 자세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오랫동안 몸에 밴 친절과 겸손은 교황이라는 직분에도 불구하고 더 빛이 났다.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보이는 종교인과 정치인의 교만하고 고압적인 자세와는 전혀 다른 교황의 소박함에 지구촌 공동의 집에 사는 사람들은 가슴 뭉클하였다.
가난한 사람들과 피해자들을 교황은 먼저 배려하였다. 미국 의회 지도자들과 식사를 사양하고 노숙자들과 함께 식사하는 교황의 모습은 감동을 주었다. 5살 난민 가정 소녀를 안아주는 모습, 여섯 달을 자동차로 달려 교황을 만난 아르헨티나 어느 가정, 교도소를 방문하여 재소자들을 형제라고 부르는 장면에 사람들은 감격했다.
이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교황은 미국 의회와 유엔총회 연설에서 강대국과 자본주의, 국제금융기구의 돈 욕심을 비판하고 가난한 나라와 사회적 약자를 확실히 편들었다. 중동 분쟁을 해결하지 못하는 유엔의 무능을 비판하였다. 정치, 금융, 환경 등 모든 분야에서 최대의 피해자요 가장 큰 희생자는 가난한 사람들임을 분명히 밝혔다.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종교에서 누가 중요한 사람인지 교황은 정직하게 보여주었다. 고통받는 자들과 연대가 중요하며, 가난한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 바탕에서 드러난 교황의 겸손한 자세, 가톨릭교회 쇄신 촉구, 강대국과 자본주의 비판 세 가지가 교황 인기의 주요 근거 아닐까.
교황은 자비로운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정의를 또한 강조하였다. 자비로운 교황은 역사에 많았지만 정의로운 교황은 보기 드물었다. 이런 교황은 예전에 없었다. 이런 교황을 다시 또 만나기 어려울지 모른다. 이런 교황이 있을 때 우리가 잘해야 한다.
교황의 쿠바와 미국 방문을 지켜보며 몇 가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작년 교황방한 때 우리가 무엇을 잘못 준비했는지 이제라도 반성해야 한다. 예를 들어, 방한 일정에 교황의 교도소 방문, 빈민촌 방문, 팽목항 방문은 없었다.
교황이 한국천주교회에 던진 두가지 숙제를 떠올려보자. 가난한 교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교회를 만들라고 교황은 우리에게 부탁하였다. 한국천주교회는 교황의 말씀을 착실히 따르고 있는가. 한국 주교와 사제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자주 만나고 있는가. 가난하게 살려고 애쓰고 있는가.
삼엄한 경호를 뚫고 달려온 5살 난민 소녀를 안아주는 교황과 7일간 단식하며 면담을 요청한 노동자를 만나지 않던 최기산주교의 모습이 대조된다. 프란치스코교황이 있어 우리는 기쁘다. 그러나 한국천주교회 지금 모습에 우리는 슬프다. 둘 다 우리 교회 현실이다.
헬조선 7포 세대의 고통과 외로움에서 한국천주교회는 희망을 선포하고 실현하고 있는가. 번영신학과 기업신학을 가르치며 각자도생의 신학적 비결을 전하고 있지는 않는가. 성당이 중산층 신자들의 사교 모임으로 추락하고 있지는 않는가.
한국천주교회의 존재 방식을 심각하게 돌아보아야 한다. 한국천주교회, 이대로는 안된다. 주교들부터 정신 차려야 한다. 깊은 겨울잠에 빠진 평신도는 언제 깨어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