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발길 뜸한 비밀 낙원…20㎏ 씨앗, 원초적이라 민망했다
세이셸 여행 ① 태초의 풍경, 프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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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양의 섬나라 세이셸은 1억5000만 년 전 지구의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특히 프랄린 국립공원 '발레드메 자연보호지역'을 가면 오직 세이셸에만 자생하는 6종 야자수가 밀림을 이룬 모습을 볼 수 있다. 다른 열대국가에서는 볼 수 없는 풍광이다.
모리셔스, 몰디브, 세이셸.
인도양 3대 휴양지를 아시는지. 낯선 세상에서 은밀한 시간을 누리고픈 신혼 여행객이 주로 찾는 섬나라다. 셋 중 한국인 발길이 가장 뜸한, 그러니까 가장 비밀스러운 곳이 세이셸이다. 코로나 사태 이전인 2019년 한 해 515명이 찾았다. 가까운 동남아시아에도 지상 낙원이라 불리는 휴양지는 수두룩하다. 그런데도 세이셸까지 가야 하는 이유는 뭘까. 경유 시간을 포함해 꼬박 하루를 날아가며 계속 의문이 들었다. 세이셸에서 일주일 머문 뒤 물음표는 진한 느낌표 세 개로 바뀌었다. 형용 불가능한 바다 빛깔부터 지구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자연환경, 프랑스·영국·아프리카가 뒤섞인 독특한 문화까지. 여느 열대 섬나라와 다른 점이 또렷했다. 3회에 걸쳐 세이셸의 매력을 전한다. 먼저 프랄린(Praslin) 섬으로 간다.
1억 5000만 년 전 태어난 섬
김경진 기자
세이셸이 어디 있는지, 심지어 나라 이름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다. 기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도를 보자. 세이셸은 아프리카 동부 인도양에 떠 있는 작은 섬나라다. 케냐 몸바사에서 직선거리로 약 1600km 거리다. 북쪽으로 약 4000km를 올라가면 아라비아 반도가 나온다. 150여개 섬으로 이뤄진 군도로, 모두 합친 면적은 400㎢. 서울의 3분의 2 수준이다. 인구는 10만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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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셸 국제공항이 있는 수도 빅토리아에서 경비행기를 타고 프랄린 섬으로 건너갔다. 섬을 이동할 때는 페리를 많이 이용하지만 무역풍이 강한 여름에는 멀미 탓에 비행기를 타는 사람도 많다.
지난 7월 말, 두바이를 거쳐 세이셸 수도 빅토리아에 도착했다. 목적지는 빅토리아가 아니었다. 다시 20인승 경비행기를 타고 프랄린 섬으로 건너갔다. 이유가 있다. 프랄린이 세이셸의 독특한 생태를 가장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섬이어서다. 세이셸의 역사는 짧다. 짧아도 무척 짧다. 세이셸이 영연방으로부터 독립해 공화국을 세운 건 1976년이었다. 18~19세기에는 프랑스가 점령했고 이후 쭉 영국이 통치했다. 최초로 사람이 찾은 건 15세기 무역상과 해적이었다. 이전엔 사람 살았던 흔적이 없다. 섬이 탄생한 건 한참을 거슬러 올라간다. 약 1억5000만 년 전, 하나의 초대륙이었던 남반구가 갈라졌을 때 파편처럼 떨어져 나와 군도가 됐다. 인도양에 외따로이 떠서 억겁의 세월을 지냈고, 인간 손길이 안 닿은 채 오랫동안 고립됐기에 지구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생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지구에서 가장 섹시한 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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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셸 프랄린 섬
프랄린 ‘발레드메(Vallee de mai) 자연보호지역’은 에덴동산 같은 곳이다. 흔한 열대 밀림처럼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딴 세상이 펼쳐진다. 유네스코는 세계자연유산인 이곳에 관해 설명한다. “훼손되지 않은 천연 야자수림이 거의 원시 그대로 남아 있다. 깊은 바다에서 자랐다는 전설이 있는 ‘코코드메르’는 식물계에서 씨가 가장 크고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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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드메르는 암수가 확연히 구분된다. 여성의 엉덩이 모양을 닮은 암 열매(왼쪽)와 남성 성기 모양을 닮은 수 열매(오른쪽).
과연 입구부터 전 세계에서 세이셸에만 산다는 코코드메르를 전시해뒀다. 20㎏에 달하는 씨앗은 크기만 놀라운 게 아니었다. 암나무 씨앗은 여성의 엉덩이를 닮았고, 수나무 씨앗은 남성 성기를 빼닮았다. 유네스코는 ‘진화가 덜 된 원시 상태의 자연’이라고 설명했는데 원시적인 식물이 너무 원초적으로 생겨서 민망했다. 암나무 씨앗을 일컬어 ‘지구에서 가장 섹시한 씨앗’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담과 하와가 발가벗고 살던 시절의 에덴동산이 이랬으려나.
발레드메 자연보호지역에서 본 줄무늬녹색도마뱀붙이.
발레드메 관람은 어렵지 않다. 산책로를 따라 걷고 깊은 만큼 들어갔다가 나오면 된다. 입구부터 안쪽까지 풍경은 거의 달라지지 않는다. 코코드메르를 포함해 세이셸 고유종인 6종 야자수와 다채로운 활엽수, 열대식물이 하늘을 덮은 밀림이다. 어떤 야자수 잎은 너무 커서 대형 파라솔을 펼친 듯하다. 지저귀는 새들과 만화 캐릭터처럼 생긴 도마뱀, 주먹만 한 달팽이도 불쑥불쑥 나타난다.
세계에서 가장 예쁜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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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수많은 언론이 세계에서 가장 예쁜 해변 중 하나로 꼽은 앙스 라치오. 프랄린 섬 북쪽에 있다.
사실, 발레드메를 빼면 세이셸은 바다다. 관광객 대부분이 바다에서 쉬고 논다. 오로지 저 바다 때깔을 보려고 유럽과 북미에서 머나먼 세이셸까지 찾아온다. 한 가지 주의할 점. 5~10월 남동 무역풍이 불 때는 이따금 매서운 파도가 일어난다. 섬들이 작다 해도 해변에 따라 바다가 잔잔하기도 하고, 거칠기도 하다. 마헤에서 프랄린으로 올 때 페리가 아니라 경비행기를 탄 이유다.
섬 북서쪽 해변 ‘앙스 라치오(Anse Lazio)’는 잔잔했다. 콘데나스트 트래블러 등 여러 매체가 세계에서 가장 예쁜 해변으로 꼽은 바다다. 물놀이를 즐기거나 몸을 구릿빛으로 태우는 사람 틈에 세르비아 커플 젤리카와 두산도 있었다. 이들은 결혼을 기념해 친구들과 함께 세이셸을 찾았단다. 두산은 “바다가 없는 우리에겐 지상낙원 같은 곳”이라고 말했다. 참고로, 세이셸에는 무수한 ‘앙스(Anse)’가 있다. 앙스는 해변, 작은 만(灣)을 뜻한다. 세이셸 지명 대부분이 프랑스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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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랄린 섬 주변에는 스쿠버다이빙, 스노클링을 즐기기 좋은 섬이 많다.
프랄린 주변에는 스노클링, 스쿠버다이빙을 즐기기 좋은 작은 섬도 많다. 배를 타고 40분쯤 이동해 ‘그랑 쇠르(Grande Soeur)’ 섬 앞바다에 뛰어들었다. 푸른바다거북이나 고래상어를 보진 못했지만 떼 지어 다니는 열대어 사이를 누비는 재미가 남달랐다. 애니매이션 ‘도리를 찾아서’의 주인공 남양쥐돔을 비롯해 전갱이, 돔이 많았다. 느릿느릿 엉금엉금. 같은 어류인데도 동남아 바다에서 만난 녀석들보다 훨씬 여유롭게 사람을 덜 경계하는 것 같았다. 바닷속도 억겁의 세월 전 그대로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