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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2월17일(日)雲
▲팔공산(八公山)(수태골-동봉-신령재-능성재-갓바위-약사암)*사진7컷
해봉산악회(32명)
♠지명유래가 궁금하여 대구광역시 사이버민원실에 오도재, 신령재, 능성재,
선본재에 대해 문의하였더니 아래와 같은 답변이 올라왔습니다.
1. 평소 시정발전에 적극 협조하여 주신데 대하여 감사드립니다.
2. 문의하신 팔공산의 오도재, 신령재, 능성재, 선본재의 지명유래에 대해 찾아본 바
책자 "팔공산" (1987. 2. 25 발행 : 대구직할시, 편집 : 경북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에서
오도재의 유래만 찾을 수 있었습니다.
오도재의 경우 옛날 큰홍수로 전세계가 물바다였을 때 오도재(오도봉)는 까마귀 한 마리
앉을 정도만 남기고 물이 다 차올랐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이며, 오늘날에는 해가 오도봉
상봉에 있을 때 한낮이 된다 하여 우두봉(牛頭峯)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합니다.
3. 더 필요하신 사항이 있으시면 대구광역시청 환경녹지국 녹지과 안은영(053-429-3594)
에게 연락주시면 답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신령재, 능성재, 선본재의 한자명과 지명유래를 아시면 댓글로
알려주시면 대단히 고맙겠습니다.
♠참 고
경북의 남부, 팔공산을 중심으로 하는 도립공원.
내용 출처:두산세계대백과
면적 122.1 km2(대구 30.6km2, 칠곡군 29.7km2, 군위군 21.7km2, 경산시
10.6km2, 영천시 29.0km2). 1980년 5월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팔공산(1,193m)은 대구 북쪽 끝에 위치하여 군위군 부계면(缶渓面)․영천시
신녕면(新寧面)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최고봉인 비로봉(毘盧峰)을 중심으로
동봉(東峰:1,155m)과 서봉(西峰:1,041m)의 양 날개를 펴고 있다. 남동쪽으로는
염불봉(念仏峰)․수봉(寿峰)․인봉(印峰)․노적봉(露積峰)․관봉(冠峰) 등이 이어져 있고,
서쪽으로는 파계봉(把渓峰)을 넘어 가산(架山)에 이른다.
대한불교 조계종의 제9교구 본산(本山)인 동화사(桐華寺)를 비롯하여 은해사
(銀海寺)․파계사․부인사(符仁寺)․송림사(松林寺)․관암사(冠岩寺) 등이 있고, 비로․
부도(浮屠)․양진(養真)․염불(念仏)․거조(居祖)․백흥(白興)․운부(雲浮)․묘봉(妙峰)․중암
(中巌)․내원(内院) 등의 암자가 산재한다.
국보 제14호인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
(靈山殿), 국보 제109호인 군위 삼존석불을 비롯하여 동화사 입구 마애불좌상․
동화사 당간지주의 금당암(金堂庵) 3층석탑․비로암의 석조비로자나불좌상․운부암
청동보살좌상 등의 보물 9점, 가산산성(架山山城) 등의 사적 2점, 그 밖에
30개소의 명소가 있다.
팔공산의 북쪽 사면에서는 위천(渭川)․남천(南川) 등이
발원하고 남쪽 사면에서는 문암천(門岩川)이 흘러 금호강(琴湖江)으로 흐른다.
동화사 근처에는 자연공원이 있어 공중케이블카 등 위락시설을 갖추고 있다.
♣산행 코스
10:30=수태골
11:55=주능선 등산로(101번)
12:20=동봉
14:40=등산로(55번) 점심식사
14:44=신령재
15:13=헬기장
16:02=능성재
17:13=등산로(1번)
17:18=관봉 갓바위
17:52=주차장
총 7시간22분
☞☞☞낮 한때 비나 눈이 온다는 일기예보를 들으면서 집을 나섭니다.
몇 년 만에 나온 이 수경님, 잉코 부부 오 지호님, 모처럼 나오신 조 사장님
부부와 신 회장님 부부와 반가운 인사를 나눕니다.
팔공산은 곰뫼 즉 웅산(熊山)이란 뜻인데 '곰'이 '공'으로 표기되었고 이 공산이
팔공산이라 불리게 된 데는 다음과 같은 설이 있다고 합니다.
즉 8장군이 순절했다고 하여, 8고을에 걸친 산이라 해서, 8간지를 봉안했고,
8성인이 득도했다 등등으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부산T/G에서 승차한 문 박사를 비롯해 32명이 정 대장의 안내방송을 듣고
지난 지리산종주 산행비디오를 보며 달리다 건천휴게소에 들리고 동대구 나들목을
빠져 대구공항 옆으로 하여 거대한 藥師大佛석비앞 사거리에서 좌로 빠져 한참 달리다
산행기점인 옛날 어떤 왕의 태(胎)를 묻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의 수태골 입구 도로변에
도착한 게 10시22분.
10시30분, 인원점검과 상견례를 마치고 곧 출발합니다.
입산감시초소 앞을 거쳐 완만한 오름을 탑니다.
조선왕조 헌종의 부친인 익종의 릉으로, 봉산은 산의 출입을 봉(封)한다는 뜻인데
이 표지는 집단시설지구 입구에 있는 '수릉향탄금계' 표석과 동일한 의미로,
이 일대가 봉산으로 지정된 보호림을 말해주는 표지석인
오른편으로 보이는 수릉봉산계표석을 지나
좌측으로 암벽훈련장을 지나면서 가팔라지는데 오른편 암벽에 먼저 간 어느 악우의
추모비가 보입니다. 좌로 바위계곡을 끼고 잠시 가드레인을 잡으며 오릅니다.
개울을 건너고 완만한 등산로를 따라 오르는데 왼편 작은 암벽에 거대한 고드름이
폭포처럼 붙어있는 게 보입니다. 서봉, 동봉갈림길 샘터에 도착 한 게 11시28분,
오른쪽으로 오르니 바위 돌 사이에 눈이 쌓여있는 눈길이 시작됩니다.
11시34분, ‘동봉, 염불암, 스카이라인’ 갈림길 이정표를 거쳐 가파르게 오르다가
11시55분, 거대한 철탑들이 솟구쳐 있는 비로봉 기지가 앞을 가로막는 주능선,
이정표(서봉800m 동봉300m)앞에 올라선 게 11시55분.
그 옆에 또 다른 표지판이 보입니다, '정상등산로 101'
팔공산 종주 산꾼들을 위해 만들어놓은 모양입니다.
오른편으로 비탈진 눈길을 거쳐 비로봉을 바라보고 서있는 석조약사여래입상 앞에
올라서니 12시02분, 매서운 삭풍이 몰아칩니다.
일반 유산객들이 눈 빙판에 미끄러워 못 올라가겠다는 소리에 준비한 아이젠을 신고
올라가는데 위에서 한 아가씨 등산객이 아이젠 대신 면장갑을 신발에 끼워 신고
내려오는 광경을 캠코더에 담으며 동봉에 올라선 것이
12시18분, 이정표(파계재6.2km 갓바위7.2km)와 ‘정상등산로98’이라고 쓴 표지판이
서 있습니다.
막힘이 없는 시야, 우선 찾아갈 동능을 촬영하고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며 캠코더에 담습니다.
오늘의 후미담당 하 군이 멀리 동쪽 관봉을 바라보고
'東峯' 정상석비 옆에서 많은 등산객들이 기념촬영하고 있습니다.
서봉을 바라본 뒤 관봉을 향해 출발합니다.
아이젠을 벗고 '갓바위7.2km 신령재2.7km'의 암능을 탑니다.
모가 없는 암괴군,
하 군이 앞서며 그 뒤를 따라가다
좌로 벼랑에 밧줄이, 오른쪽으로 벼량에 바위.
왼쪽으로 돌아 밧줄을 타고 내려가
뒤 쪽에서 내려오는 남자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바위를 딛고 내려오는
부녀등산객과 오른편으로 벼랑 밧줄을 잡고 내려오는 중년등산객을 캠코더에
담습니다. 한동안 암능을 타다 암능코스와 헤어져 왼쪽 등산로로 내려섭니다.
눈 빙판의 비탈진 등산로.
한 장년등산객이 뒤돌아보며 일행에게 소리칩니다.
"여기는 억수로 미끄럽데이! 조심해서 내려 오이라!"
방심한 한 중년이 보기 좋게 미끄러집니다.
음지인 등산로는 빙판과 눈길이 혼제하여
다시 아이젠을 신고 밧줄과 나뭇가지를 잡으며 내려갑니다.
일단의 20대의 젊은이들이 아무런 등산장비도 없이 용을 쓰며 내려갑니다.
얼마나 내려갔을까.
몸집이 큰, 붉은 샤스 입은 젊은이가 극심한 근육 경직통이 일어났는지
큰 대자로 눈밭에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누워있고 다른 젊은이는
오른다리 종아리를 주물고 있는데
한 장년등산객이 안타까운 듯 내려다 보고만 있습니다.
먼저 내려간 하 군이 뭐라고 말했는지 한 장년등산객이
"수지침은 있는데 이런 일은 처음이라서..."
하며 침통을 내밉니다.
항상 준비해 갖고 다니는 삼능침과 소독통을 꺼내어 힘을 빼게 하고
오른쪽 소지, 비기맥에서 사혈 해주고 조금 있다 일어나게 하고 가는데
뒤에서 바라보고 있든 일행 중 한 젊은이가
"아! 이제 일어났다. 감사합니다!"
며 소리칩니다. 평소 운동부족에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힘을 너무 쓰다 근육이
긴장을 한겁니다.
빗긴 너럭바위 고정밧줄을 내려가다 다시 두 곳의 고정밧줄을 잡으며 내려갑니다.
‘정상등산로86’을 거쳐
13시20분, 84번 이정표(동봉700m 갓바위6.5km)를 지나 계속 이어지는 눈길의
오르내림을 촬영하며 갑니다. 다시 밧줄이 나타나고
13시47분, '정상등산로66번 동봉1.6km 갓바위5.6km'이정표를 거쳐
마주 오는 일단의 남녀등산객들과 인사를 나누고
14시10분, 정상등산로55번에서 식사하고 출발하려는
이 수경, 김 신회원등과 만납니다.
그들을 먼저 보내고 따끈한 귤차 한잔하고
하 군이 준비해온 어머니가 만들어 주었다는 따뜻하고 구수, 화끈한 시래기
된장찌개를 찬으로 오랜만의 토종 별미 점심식사를 합니다.
14시37분, 출발하면서 가끔 산행에 나오는 활달한 노처녀 회원과 성품이 진국인
노총각 하 군을 중매서보려고 자세한 자기소개를 듣습니다.
14시40분, 갈림길 이정표(동봉2.7km 동화사3.5km 공산폭포3km 갓바위4.5km)의
지명유래를 알 수 없는 신령재를 거쳐 된비알의 993봉에 올라 멀리 갓바위를
캠코더에 담고 우측으로 암괴를 낀 된비알을 내려가다
15시13분, 헬기장을 거치고 팔공약수터70m의 갈림길 잘록이에서 내려오는 평상복
차림의 남녀대학생들을 만납니다. 산행을 포기했는지 하산 길을 물어 동화사 코스를
알려줍니다.
눈 덮인 완만한 오름 끝에 바위에 걸친 밧줄을 잡아 올라서니 '정상등산로32번'이
나타나고 평지를 걷다
2시 방향으로 벌목과 농약으로 무수한 생명체를 살상하여 누렇게 찌든 광대한
골프장이 나타납니다.
올라오는 장년등산객들과 조우하며
15시50분, 등산로23번의 이정표(신령재2.3km 갓바위2.2km)를 지나고 헬기장을
거쳐
16시, 오른쪽으로 가까이 닥아 온 갈색 팔공산 골프장을 내려다보며
환봉가드레인 쳐져있는 바윗길을 오릅니다.
얼마가지 않아 멀리 인봉과 관봉이 손짓합니다.
16시02분, 갓바위 쪽에서 확성기로 날아오는 염불소리를 들으며
능성재이정표(은해사5.5km 갓바위1.8km 동봉5.5km)와 작은석비(대학동3.7km)를
지나고 얼마가지 않아 관봉과 인봉, 동봉과 비로봉, 서봉을 한눈에 담습니다.
16시07분, 비탈길을 내려가다 다시 올라 등산로14번을 지나고 밧줄 2개를 거쳐
오른편으로 ‘위험절벽’간판을 지나 흐릿한 선본재를 거칩니다.
16시37분, 다시 ‘위험절벽’간판이 나타납니다.
오른편으로 산봉우리가 도장(印)과 같다하여 불러지는 인봉을 쳐다보며 가다 갈림길
이정표(동봉4km 갓바위1.2km)왼편으로 지나치고 짧은 밧줄과 암괴사이의 긴
밧줄을 잡으며 눈과 눈 녹아 진탕 길의 오름을 거쳐 '정상등산로12번',
암봉이 마치 쌀가마니를 쌓아 놓은 것처럼 보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의 노적봉
(露積峰)옆을 지나칩니다.
처음으로 마른 널따란 등산로를 따라갑니다. 왼편으로 앙상한 나뭇가지에 무수한
갈가마귀 떼가 요란한 소리를 내고 선회하기도 합니다.
16시54분, 갈림길이정표(능성재1.2km 복지장사2km 갓바위400m)를 거쳐
음지인지 눈과 진탕으로 미끄러운 오른쪽 암벽에 자일이 옆으로 걸쳐있는 코스를
지나 ‘등산로3’번을 거치고 다시 마른 등산로가 나타납니다.
옛날엔 곧장 갓바위 뒤편으로 이어지든 등산로는 철망으로 폐쇄하여 왼편으로 빠져
17시13분, '정상등산로1번'을 지나칩니다.
눈이 녹아 진탕이 된 비탈진 등사로를 따라 내려가다
17시18분, 집행부 하 군의 인내심 있는 안내로 갓바위 포장로 위에 내려섬으로서
6시간30분의 산행이 끝납니다.
곧 돌계단을 올라 간절한 소망이 있는 선남선녀의 인파로 덮인
갓바위 앞에 올라섭니다.
보물 제 431호인 석조여래좌상은 갓 모양으로 다듬어 올려놓았기 때문에 '갓바위'
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데 대구에서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한 가지 소원은 들어
주는 부처로 알려져 있어 지금도 대학입시를 앞두거나 큰일을 맞게 되면 이곳을
찾아 치성을 드리는 행렬로 인산인해를 이룬다고 합니다.
갓바위 불상은 화강암을 재질로 양각되어 있는데, 광배는 원래 없었던 듯하며
주의를 병풍처럼 둘러싼 바위들이 광배의 구실을 하고 있고 머리는 소발이며
육계가 확실하여 그 위에 삼판향의 자연석을 올려놓았습니다.
일몰전의 황금빛 햇살을 왼쪽으로 받으며 석조여래 부처님이
대리석으로 깐 광장에 수많은 남녀가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염불소리를 들으며
간이 매트위에서 수없이 합장하며 절하며 기원하는 모습을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그 온화한 모습을 캠코더에 담으니 미소 지으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힘든 오름 길, 내 앞에 찾아온 정성만으로도 반 소원을 풀렸겠지만
이렇게 힘들게 하기보다 가까운 이웃을 사랑하고, 배려하고, 최선을 다한 뒤
마음을 비우고 기다리면 네 소원은 자연히 풀릴 것이다."
시간에 쫓기어 하군과 바쁘게 내려가다 뒤늦게 길을 잘못 든 걸 판단하고
김신회원과 교신, 되돌아 올라가 한산한 약사암을 들리고 도로변에 주차해 있는
관광버스에 오릅니다. 예정시간보다 약 30분 늦게 그래도 둥지를 찾아 부산으로
출발합니다.
배 기사님의 판단으로 영천 지름길과 영천I/C로 빠져 부산T/G는 예정시간보다
1시간20분 빠른 19시43분, 무사히 빠져 나왔습니다.
★그 뒤 영천시청에 신녕재와 선본재의 지명유래를 문의했더니
아래와 같은 답변 올라 왔습니다. (2004.5.31.)
답변 : 신녕재 관련 답변
작성자 문화공보담당 박도현 작성일 2004-05-31 오전 10:33:04
답변부서 문화공보담당
o 평소 우리시정에 관심을 가져 주신데 대하여 감사드립니다.
o 귀하께서 건의하신 신녕재에 관한 지명유래는 우리시문화원과
관련서적을 찾아본 결과 신녕재에 관한 자료나 기록은 없으며
o 한자는 "신녕(新寧)"으로 옛날 교통이 발달되지 않은시절
영천시 신녕면에서 대구로 넘어가는 지름길 이었으며
유래는 신녕에서 넘어가는 재로 "신녕재"라 했을것이라 하며
능성재는 대구사람들이 신녕재를 능성재로 부르고 있다함.
(영천문화원 사무국장 전민욱)
o 아울러 선본재는 팔공산 갓바위 쪽의 재로 이 지역은 영천시
관할이 아니라 경산시 지역임을 알려드립니다.
산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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