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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변 멸치는 굵어서 식감 뛰어나] 손님이 가장 많이 찾는 4월과 6월 사이 대변에서는 매년 멸치 축제를 연다. 기장 멸치 축제는 2013년 5월 17회째 열렸다. 1997년 제1회를 시작으로 매년 4~5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대변항 일원에서 열렸다. 남해군에서는 보물섬 미조 멸치 축제가 매년 열린다. 올해 10회째다. 남해 멸치 축제는 기장 멸치 축제를 벤치마킹한 것이라고 박 총무는 단언한다. 참고로 대변항은 부산항과 함께 한국 근대 항구로는 가장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인천 제물포 개항이 1883년인데 반하여 대변포는 부산포와 함께 1876년에 개항하였다. 당시로선 한국 최대 항만이었다. 내·외 무역 거점이었으며 대일 관계 주요 관문이었다. 1871년 전국 요충지에 세운 대원군 척화비가 대변에도 있는 이유다. 서두에 약간 언급하였듯이 대변 지명 유래는 이렇다. 조선 시대는 공물 보관 창고를 대동고(大同庫)라 하였다. 변두리 포구(邊浦)에 있는 대동고라 해서 대동고변포(大同庫邊浦)였고 이를 줄인 말이 대변(大邊)이다. 대변에서는 멸치 터는 장면을 쉽사리 볼 수 있다. 배를 선착장에 대 놓고 배에서 그물을 푸는 사람, 선착장에서 그물을 터는 사람으로 나뉘어 작업한다. 그물 터는 작업에는 보통 6~7명이 동원된다. 막노동 A급에 해당된다고 할 만큼 노동 강도가 세어 땀을 비 오듯 흘린다. 지역 일간지에 부산 등대를 연재하면서 대변에 현장 답사를 간 적이 있다. 항구에 배를 대고 멸치 터는 장면을 접하였다. 멸치 철이 아니었던지 멸치 양은 얼마 되지 않았고 멸치 터는 장정도 셋에 불과하였다. 비닐 소재 물옷을 입고서 일사불란 멸치를 터는데 온 얼굴이 땀범벅이었다. 다음은 멸치 터는 장면을 묘사한 대목이다. “‘돼 죽겠는데 말 시키지 마소!’ 대변 등대는 가는 길부터 삐딱하다. 반골이다. 말도 못 붙이게 한다. 장정 셋, 4.6톤 연안 자망 어선을 접안하고서 그물에 낀 봄 멸치를 터는 중이다. ‘에야디야 에야디야’ 소리에 맞춰 동작이 일사불란하다. 어디서 잡아 온 멸치냐고 묻자 버럭 짜증부터 낸다. 말대답하느라 소리가 어긋나 짜증이고 동작이 어긋나 짜증이다.”[동길산 시인의 『시가 있는 부산 등대』 중 「대변 등대」편에 대한 내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