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인석보..훈민정음에 날개를 달다.
월인석보는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 두책을 합본한 책이다.
1446년 훈민정음을 반포한지 10개월만에 24권의 대작 석보상절을 완성하였다.
새로운 문자를 만들고 10개월만에 24권의 불전대작을 훈민정음으로 펴냈다는것은 세종 주변에 불교 전문가 집단이 존재했다는 것을 알수 있다.
석보상절(釋譜詳節)은 석가모니의 일대기이다.
석보는 석가의 족보라는 뜻이다.상절은 중요한 내용은 상세하게 덜 중요한 내용은 간략하게 줄여서 편집했다는 뜻이다.
세종이 52세 되던해에 소헌왕후 심씨가 죽고 5남 광평대군과 7남 평원대군 두아들이 죽었다.국왕인 세종도 인생의 덧없음을 통감하였다.
세종은 소헌왕후의 공덕을 빌기 위해 할수있는 최고의 불사로 수양대군을 시켜 석보상절을 정음으로 편찬하게 하였다.
수양이 가져온 석보상절을 우리글 정음으로 읽은 세종은 부처님의 대자대비에 감동하여 600수에 가까운 찬불 대서사시를 노래하게 된다.
세종이 직접지은 찬불시를 월인천강지곡이라 부른다.
세종의 아들 세조는 12년이 지난 1459년 고인이된 부모님 세종과 소헌왕후..그리고 20세에 요절한 자신의 아들..의경세자의 공덕을 빌고 왕생극락을 발원하는 마음으로 월인석보를 만든다.
아버지 세종의 월인천강지곡의 월인과 석보상절의 석보를 따서 월인석보라고 이름붙인 것이다.
월인석보 1권의 이야기는 10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처께서 삼계의 높은 분이 되어 중생을 널리 제도하시니 사람들과 하늘이 다 기리지 못하도다.
세간에서 불법을 배우려고 하는 이가 있어도 부처가 태어나고 출가하고 깨닫고 설법하고 열반에 드신 내력을 아는 이가 드무니 비록 알고자 하여도 팔상도에 나오는 그림을 넘지 못하느니라
세종께서 나(수양)에게 말씀하기를 소헌왕후의 공덕과 극락왕생을 빌기 위하여는 경전을 읆겨쓰는 것보다 좋은 일이 없으니 네가 석보를 번역하여 펴내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대왕의 뜻을 받들어 여러경전에서 중요한 내용을 가려내어 한책을 만들어 이름지으니 석보상절이다.
이미 차례를 헤아려 만든바에 따라 세존의 도리 이루신 모습을 여덟개의 그림으로 그리고 또 훈민정음으로써 번역하여 새기니 사람마다 쉽게 알아 삼보에 나아가 귀의하기를 바라노라.
정통 12년 1447년 7월 25일 수양군이 서문을 쓰노라..
석보상절을 펴내면서 수양대군이 책을 펴내는 연유를 서문에 표현하였다.
훈민정음으로 월인석보가 발간된지 560년만에 월인석보 25권중 첫번째 책을 현대 우리말로 옮기고 친절한 해설을 덧붙여 한권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저자는 정진원선생이다.그는 홍익대학교에서 석보상절과 월인석보를 주제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국어학자이다.
훈민정음 창제의 비밀과 석보상절.월인천강지곡의 내용을 깊이 알고자 하는사람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는 책으로 소개한다.
월인석보 훈민정음에 날개를 달다..
조계종 출판사..
정진원 지음..
사진 1번 월인석보 ㅡ훈민정음에 날개를 달다.
사진 2번 월인석보를 펴내는 공덕으로 일체중생과 더불어 보리도를 이루고 피안 언덕에 오르기를 서원하노라..
천순 3년 세조 5년 1459년 기묘년 7월 7일
서문을 쓰노라..
사진 3번 세종께서 친히 지으신 월인천강지곡을 들으시고 소헌왕후시여 위대한 깨달음을 이루소서
사진 4번 금상찬술 석보상절 자성왕비 공성불과..라는 글귀가 축원패에 적혀있다.
석보상절을 펴내고 읽은 공덕으로 자성왕비(정희왕후)도 깨달음 의 열매를 이루게 하여 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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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인석보 훈민정음에 날개를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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