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 길
47: 1-12
○ 바로를 만난 야곱
1. 요셉이 바로에게 가서 고하여 가로되 나의 아비와 형들과 그들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가나안 땅에서 와서 고센 땅에 있나이다 하고 창46:31
2. 형들중 오인을 택하여 바로에게 보이니
3. 바로가 요셉의 형들에게 묻되 너희 생업이 무엇이냐 그들이 바로에게 대답하되 종들은 목자이온데 우리와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하고
4. 그들이 또 바로에게 고하되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하여 종들의 떼를 칠 곳이 없기로 종들이 이곳에 우거하러 왔사오니 청컨대 종들로 고센 땅에 거하게 하소서 창15:13, 신26:5
5. 바로가 요셉에게 일러 가로되 네 아비와 형들이 네게 왔은즉
6. 애굽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땅의 좋은 곳에 네 아비와 형들로 거하게 하되 고센 땅에 그들로 거하게 하고 그들 중에 능한 자가 있는 줄을 알거든 그들로 나의 짐승을 주관하게 하라 왕상11:28
7. 요셉이 자기 아비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하니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매 창47:10
8. 바로가 야곱에게 묻되 네 연세가 얼마뇨
9. 야곱이 바로에게 고하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 삼십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10.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 창47:7
○ 애굽에서의 생활
11. 요셉이 바로의 명대로 그 아비와 형들에게 거할 곳을 주되 애굽의 좋은 땅 라암세스를 그들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고 출1:11
12. 또 그 아비와 형들과 아비의 온 집에 그 식구를 따라 식물을 주어 공궤하였더라 창4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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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이 야곱과 그의 아들들이 애굽의 왕 바로를 만나는 장면이 기록됩니다. 먼저 요셉은 자신의 아버지와 형제들이 고센에 와 있음을 바로에게 알립니다. 바로 앞에 다섯 형제를 먼저 대면시키는데, 바로는 그들의 직업을 묻고 형제들이 요청한 대로 고센 땅을 그들의 목초지로 허락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가축들을 요셉의 형제들로 하여금 돌보도록 부탁하기도 합니다.
이어 바로는 야곱을 만납니다. 바로는 야곱에게 나이를 묻습니다. 여기서 야곱의 대답은 인생이 무엇인지를 너무나 잘 나타내줍니다. 인생은 나그네 길이라는 걸 말합니다.
(9절) “야곱이 바로에게 고하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삼십 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백발이 성성한 야곱은 자신의 삶을 나그네 세월을 지낸 것이었다고 회고합니다. 물론 야곱의 생이 힘들었기에 한 표현이지만,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 성경을 통하여 주님의 음성을 들읍시다.
만남과 관계의 삶
이미 요셉과 바로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형제들과 요셉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이후에 아버지 야곱과 요셉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오늘 성경은 그들의 만남이 결국 바로와 형제들, 바로와 야곱의 만남으로 이어집니다. 사람은 만남과 관계의 삶을 살아갑니다. 원하지 않는 만남도 있고 원하는 만남도 있습니다. 의도적인 만남도 있고 우연한 만남도 있습니다. 만나서 결과가 좋은 만남도 있고 만나서 손해나는 만남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관계 속에는 하나님의 깊숙한 개입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바로 오늘 성경은 그것을 잘 알려줍니다. 요셉이 종으로 팔려 애굽으로 내려와 보디발을 만난 것이나, 이어 바로를 만난 것은 하나님의 섭리가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가뭄이라는 도구를 통하여 기어이 하나님은 요셉의 형제들과 바로, 그리고 이어 야곱과 바로를 만나게 합니다.
먼저 요셉이 형제들과 바로가 만납니다. 형제들은 고센의 목초지에 거하게 되었고, 바로는 가축을 키우는 것이 업인 형제들에게 자신의 가축을 맡깁니다. 상부상조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누가 이런 관계를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4절) “그들이 또 바로에게 고하되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하여 종들의 떼를 칠 곳이 없기로 종들이 이곳에 우거하러 왔사오니 청컨대 종들로 고센 땅에 거하게 하소서”
먼저 형제들이 자신들의 요구를 합니다. 이어 바로가 답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요구를 합니다.
(6절) “애굽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땅의 좋은 곳에 네 아비와 형들로 거하게 하되 고센 땅에 그들로 거하게 하고 그들 중에 능한 자가 있는 줄을 알거든 그들로 나의 짐승을 주관하게 하라”
상부상조, give and take의 관계가 이리 명료할 수 없습니다. 최상의 관계는 사랑의 관계입니다. 그러나 주고받는 관계는 최선의 관계입니다. 최상의 관계는 아니지만 인간관계의 주류는 이런 것입니다. 이게 망가지면 서로의 관계는 불편한 관계가 됩니다.
서로 돕고 사는 것이 인생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어려운 때 위기에 처한 하나님의 택한 백성 야곱을 당시 최선의 도우미인 바로에게로 인도하셨습니다. 도울 만한 사람을 붙여주셨습니다. 우리의 삶을 통하여 돕는 자를 만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생활을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축복하는 삶
오늘 성경에서 아주 초라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을 만납니다. 그는 야곱입니다. 그는 가뭄을 피하여 애굽으로 온 이방인입니다. 그런데 강대국의 국왕 바로를 축복합니다. 세상적으로는 바로왕은 야곱보다 위에 있지만 야곱의 축복을 받습니다. 축복은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위에 있거나 높은 자이거나 많이 가졌을 때 성립합니다. 그러나 바로 앞에 선 야곱은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는 다만 하늘나라에서 큰 자이기 때문에 축복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는 당시 가장 부강한 나라의 왕이고 야곱은 늙고 힘없는 노인입니다. 그러나 바로가 야곱을 축복한 게 아니고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합니다.
(히7:7) “폐일언하고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복 빎을 받느니라”
바로는 왕이지만 그에게 축복하는 야곱은 이 축복을 하는 순간은 그보다 더 높은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바로 그런 사람들입니다.
축복을 받는 이보다 축복을 하는 자가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들은 행복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빌3:20)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렇습니다. 지상에서 성도들이 약하고 가진 것은 없지만 세상 사람들을 축복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야곱은 애굽의 바로 왕에게 두 번이나 축복합니다. (7절) “요셉이 자기 아비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하니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매” 또,
(10절)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
처음 만나서 축복하고 돌아서 나오면서 축복합니다. 사람을 만났을 때 축복하고 돌아서 나올 때 또 다시 축복할 수 있는 관계라면 더할 나위 없는 좋은 관계입니다. 여러분의 삶이 그런 삶이되기를 바랍니다. 축복하며 만났다가 저주하며 헤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부자 청년은 영생을 얻기 위해 웃는 낯으로 예수님께 찾아왔다가 근심하는 빛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런 만남은 차라리 없으면 더 좋은 만남입니다. 늘 축복하며 만났다가 축복하면서 헤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주었던 축복을 야곱이 실천하고 있습니다.
(창12:2)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아브라함 가문만이 아니라 영적 아브라함의 자손인 여러분에게도 이런 축복권이 있음을 믿으십시오. 늘 이웃을 축복하는 행복한 사람을 사시기 바랍니다.
(벧전3:9)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할렐루야!
나그네의 삶
우리의 삶이 나그네 길이라는 것은 영원한 진리입니다. 그리고 쉽게 누구나 말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정작 그런 것을 알고 사는 사람은 적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주인공 야곱은 그것을 알고 산 사람입니다. 애굽의 왕 바로가 나이를 묻자 느닷없이 인생을 이야기합니다.
(9절) “야곱이 바로에게 고하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삼십 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이것은 야곱 자신도 그의 조상도 모두 이 땅에서 나그네였음을 뜻하는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말은 인생은 누구나 나그네임을 밝히 말해 줍니다.
야곱은 덧없는 게 인생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야곱은 자기 나이가 130이나 얼마 못되는 것이라 말합니다. 실제적으로 나이가 얼마 안 되서라기보다 130년의 세월을 살았지만 인생은 실로 덧없는 것이란 걸 표현하는 것입니다. 순간순간마다 힘들고 어려운 삶의 고비들이 있었음을 회상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를 속여 장자권을 빼앗은 날부터 시련과 고난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혈혈단신으로 외삼촌 집에 가서 20년 동안 머슴살이를 하였고, 가족을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겪은 어려움과 말년에 이르러 요셉을 잃고 20년간 슬픔과 한탄으로 보낸 세월 등은 그의 뇌리에 험악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나이를 묻는 바로 왕 앞에서 실로 험악한 세월을 살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삶이 그만의 것이겠습니까. 사람의 삶이 모두 고난과 슬픔의 역정입니다.
(시90:10)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900년을 살아도 40년을 살아도 인생은 모두 역경의 나그네 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야곱의 삶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게 있습니다. 그는 그 험악한 세월을 살면서 한결같이 축복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앞으로 좋은 관계를 만드는 분들이 되시고, 다른 이들을 축복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출처/저자| 김학현목사(예은교회)
출처: 성경 벌레들 원문보기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