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파(主思派)는 김일성의 주체사상(主體思想)을 따르는 사람들(派)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주체(主體)는 어떤 단체나 물건의 주가 되는 부분이나, 사물의 작용이나 어떤 행동의 주가 되는 것을 말한다.
1960년대에 소련과 중국은 공산주의 체제 내에서의 우두머리 자리를 놓고 주도권(헤게모니. 패권) 다툼을 했다.
중국은 소련을 수정주의(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공존 가능하다)라 비난하고, 소련은 중국을 교조주의(교조적으로 제국주의를 침략적이라고만 보고 또 다른 전쟁으로부터 인류를 구하기 위해 새로운 요인들을 이용할 필요가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라고 비난한 것이나, 국경 분쟁도 그러한 맥락에서 발생한 것이다.
이를 ‘중소 분쟁’이라고 한다.
참고로 교조(敎條)는 종교상의 신조(信條. 굳게 믿어 지키고 있는 생각)나, 역사적 환경이나 구체적 현실과 관계없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절대로 변하지 않은 진리인 듯 믿고 따르는 것을 말한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진다고, 당시 북한의 김일성은 소련 편도 중국 편도 들기 어려웠다. 중소 분쟁으로 북한은 중국을 따르기도 소련을 따르기도 곤란한 입장이 되었다. 그런 틈바구니에 북한에 대한 소련과 중국의 경제적, 군사적 교류와 지원(원조)이 감소하여, 북한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인다. 이는 군사력과 국방력의 약화로 이어졌다. 북한의 사회주의 체제, 공산주의 체제의 유지에 위기가 온 것이다.
김일성은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북한식 사회주의를 도입한다. 사회주의(공산주의) 국가로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따르기보다, 북한만의 길을 가겠다, 이게 ‘김일성主義’이고 ‘주체사상’이다. 북한식(김일성 방식)의 사회주의 독자 노선(路線)이, ‘김일성주의’이고 ‘주체사상’이다.
주의(主義)는 중심이 되는 뜻이나 의견이다. 주의는 굳게 지키는 주장이나 방침을 말한다. 주체는 사물의 작용이나 어떤 행동의 주(主. 주요하거나 기본이 되는 것을)가 되는 것을 말한다. 북한 사회에서 김일성이 주체(중심. 주인)가 되고, 김일성만이 옳고 김일성의 절대성이 강조, 강화된다. 이게 김일성주의이고, 주체사상이다.
주체사상의 겉모습(명분)은 주체, 자주, 자립, 자위로 외국의 간섭이 없는 자주적으로 국가를 운영한다는 것이었지만, 속모습(실제)은 김일성의 개인 우상화(偶像化. 신처럼 숭배의 대상이 되는 물건이나 사람)를 통한, 1인 독재체제의 강화가 궁극적 목적이었다. 이로써, 북한 사람들은 김일성을 신(神)처럼 숭배하게 되었고, 김일성에 이어 김정일, 김정은으로 권력이 세습되고 있는 것이다.
종북(從北)은 원래 친북(親北)과 구별하기 위해 1990년대 말부터 이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북한 김일성의 주체사상과 북한(北韓) 정권의 노선을 비판없이 추종(追從. 남의 뒤를 따라서 좇음)하는 경향을 일컫는 말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운동권(運動圈)’은 노동 운동, 인권 운동, 학생 운동 따위와 같은 사회 변혁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의 무리(圈. 울타리. 경계) 라고 정의되어 있다.
사전적 정의로만 놓고 볼 때, 노동, 인권, 학생 운동 등의 사회변혁운동이 뭐 그리 잘못된 것은 아닌 것 같다. 사회변혁운동은 기존 사회의 불평등, 불합리, 억압적인 구조를 변화시키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운동이다.
계급 타파의 평등(형평) 운동, 노예제 폐지 운동, 여성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기 위한 여성 참정권 운동, 노동자의 권익 개선을 위한 노동 운동, 환경 운동 등등은 사회변혁운동에 해당한다.
대한민국은 미국을 포함한 연합군의 승리와 짐작조차 어려운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수고와 희생이 있었기에, 일본제국(제국주의 성향을 가진 일본)으로부터 자유(광복. 독립. 해방)를 얻었다.
대한민국은 산업 발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분들인 산업 역군(役軍. 일정한 부문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일꾼)의 수고와 희생이 있었기에 산업화(産業化)에 성공했다.
대한민국은 지각(의식. 생각) 있는 선각자들과 운동권의 수고와 희생이 있었기에 과거보다 더 민주화(民主化)되었다.
1980년대 운동권 가운데서 일부는 친북이든 종북이든 했던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일반적인 통념으로 볼 때, 누가 누구와 친하게 지내거나 누구를 따를 때에는, 그로부터 얻을 것이 있거나 배울 점(본받을 점)이 있거나 친하고 지낼 수 있는 여지가 있을 때에 가능한 일이다.
역사는 현재와 미래만의 기준으로 과거를 보는 게 아니다. 그때는 그때 나름의 사정과 처지, 입장이 있기 마련이다. 그땐 최고라 여겼던 것이 지금은 최악이 될 수 있는 게 인간의 삶이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1980년대 운동권의 사회변혁운동에도 공과(功過. 공로와 과실. 잘잘못)가 있을 것이다.
어느 국가든지 역사엔 백역사(白歷史. 더 평가되고 알려져야 하는 과거의 일. 자랑스러운 과거)와 흑역사(黑歷史. 없었던 일로 치거나 잊고 싶을 만큼 부끄러운 과거)가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백역사(白歷史)만 언급하는 것도 흑역사만 언급하는 것도 역사의 왜곡( 歪曲)이다. 왜곡은 사실과 다르게 해석하거나 그릇되게 말하는 것을 말한다.
모든 운동권이 주사파였던 것도 아니고, 모든 운동권이 종북 세력이었던 것도 아니다.
이를 등치(等値. 값이 같음)시켜 말하는 것은 심한 왜곡이다. 프레임이다.
모든 세상의 삶이 그런 것처럼, 1980년대 운동권을 한쪽 눈으로만 보고, ‘종북 세력’으로 운운하는 것은 그들에 대한 왜곡이고 심하면 날조(捏造.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거짓으로 꾸밈)가 될 수도 있다. 세상은 단안경( 한쪽 눈에만 대고 보는 망원경)이 아니라 쌍안경으로 봐야 한다.
독립화, 산업화, 민주화, 선진화로 이어지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2024년 현재에, 그 어느 누가 자유가 억압된 군주적 독재자 김정은이 통제하고 지배하는 북한을 추종하는 자들이 있겠는가? 그들로부터 뭘 배울 게 있다고 그들로부터 뭘 얻을 게 있다고 그들을 추종하겠는가? 가정하여, 설혹 종북이 있다고 한들 그들의 주장을 따를 국민과 시민이 있겠는가?
아직도 시대착오적이고 시대에 역행하는 종북 프레임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자유로운 대한민국을 통제하려 드는가? 반문(反問. 물음에 대답하지 아니하고 되받아 물음)해본다.
당신이라면 독립, 광복, 해방, 자유가 좋은가? 아니면 통제, 억압, 강압, 고압, 억제 등이 좋은가? 어느 세상과 세계에서 살고자 하는가?
우리 대한민국 국민은 매우 지혜롭고 똑똑하다.
국민과 시민을 어리석게 여기는 자가, 정작 어리석은 자다.
새는 두 날개로 자유롭게 난다.
사람도 그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