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말 기억이 매우 흐릿하지만 시골에서의 겨울철은 너무나 추웠고 길었던 기억이다. 하물며 어른들에게는 얼마나 길고 힘든 계절이었을까.. 농한기(農閑期)로 없는 살림에 또 겨우내 하는일이 많지 않아서 사랑방에서 노름도 많았던 때여서 논문서 집문서가 왔다갔다 했다는 어른들의 소문도 어깨너머로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가장중요한 일..아들 딸 결혼시키는 대사, 인륜지대사란 말이 나올 정도로 중요하게 여겼던 대삿날이 농한기인 겨울철에 많았던 모양이다.
우리가 국민학교 들어가기도 전인 60년대에는 전통식 혼례가 주로 이루었고 결혼식을 준비하기 한참 전부터 준비해야 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결혼준비가 솜이불과 어른들 솜옷 만드는데 필요한 솜 준비가 아니었는가 생각된다. 집에 과년한 처녀가 있는 집에서는 몇년전부터 면화농사,..우리가 살던 시골에서는 미영농사..아마도 면(綿, 솜면)을 전라도 사투리로 발음을 '미영'이라 했던것 같다. 그래서 집집마다 미영농사를 해서 겨울철이면 솜을 미영나무에서 털어모아 솜공장에서 솜을 만들어 모았다가 두꺼운 솜이불 만드는 것이 가장 기초적이고 중요한 준비였고, 시아버지 시어머니 솜옷 만드는것 또한 매우 중요한 일이었던 것 같다. 미영이 꽃피고 자라서 열매가 오다마만큼 자라면 달작지근한 미영따먹는 맛도 쏠쏠했다. 또 미영씨는 매우 두껍고, 마치 대추씨같이 비슷하고 매우 단단해서 미영씨를 뿌리기 전에 재에 버무렸다가 미영씨 각질부분이 조금 연해지면 밭에 심었던 기억도 나는 것 같다.
이렇게 해서 이삼년 동안 미영농사도 해서 솜이불 준비도 마치고 하면 해남 읍내로 나가 선도 보고..경우에 따라서는 집에서 오고 감시로 선도 보다가 서로 맘에 맞으면 약혼식을 하게 되는데 사진관까지 가서 증명사진 찍데끼 사진관 사장이 받침대 있는 구식 사진기에 들러쳐 있는 꺼먼 천을 둘러쓰고 들어거서 옛날 형광등 스위치 같이 꿩알만한 스위치를 하나 둘 셋 함시로 사진도 찍어서 '1969. 12.28일 약혼식 기념' 이라고 밑에 캡숀도 달아놓은 옛 사진들을 지금도 볼 수 있다.
그리고 한가한 농한기인 겨울철에 인근 점쟁이 사주보는 당골네집 가서 '손'없는 날로 길일을 택해서 혼삿날을 잡아서 근 한달전부터 각종 음식준비를 자체적으로 모두 해결해야 했다. 산자, 오꼬시, 유과 등을 만들기 위해 찹쌀을 가루내어 빻고 또 쪄서 그걸 얇게 펼처 넓적하게 방망이로 모양을 만들고 동백기름 콩기름에 튀겨내고 조청 만들어서 조청을 묻혀 쌀 튀밥으로 붙여면 맛난 오색 산자가 탄생한다. 어려서 그 과정을 보면서 산자 튀겨놓은거 하나씩 돌라묵는 맛이 그렇게 맛날 수가 없었고..조청도 한 숟갈씩 오고 감시로 한볼테기씩 하는 맛도 기막힌 맛이 요새 그 어떤것하고 비교 할수 있을까....
혼사치르는 그 집만 바쁜거시 아니었다. 누구네 혼삿날이 정해지면 마을 전체가 같이 바빠진다. 암묵적으로 또 전통적으로 마을공동체라는 시스템아 잘 갖춰져서 운영되었다. 누구네 집은 콩나물을 길러서..누구네 집은 찹쌀찐밥을..누구네 집에서는 호박나물을 준비하는 등 품앗이로 다들 바쁘게 준비하면서 다음 차례에는 또 돌아가면서 같이 준비하고 했다. 이렇듯 누구네 대삿날이면 할머니, 어머니들 숫가락으로 호박껍데기 벗기는 모습이 생생하다. 대삿날 온종일 손님들 먹거리가 있어야 하나 충분하지 못했던 관계로 중요한 음식은 대사치는 집에서 준비하지만 나머지 먹을거리는 동네 집집마다 나눠서 품앗이 한 걸로 기억된다.
우선 고구마 가리통 위에 보관하던 늙은호박 꺼내어 숫가락으로 껍데기 긁어서 벗겨내고 사카린 쳐서 삶아 가는집, 집에서 기른 콩나물 삷아가는 집, 그리고 좀 있는 집에서는 팥 넣은 찰밥 쪄서 시루째 가져간다. 바로 이 세가지 음식이 보통 동네사람들이 온종일 먹는 주요 음식이고 귀한 음식들은 그냥 맛봬기로나 얻어먹고...구경이나 할 따름..멀리서 오신 손님상에나 들여지고, 이무런 동네 아짐들은 방에서 호박삶은거나 콩나물, 찰밥으로 배채우던 시절이었다.
이제 결혼식 이삼일 전에 신랑측 우인들이 신부집으로 가는데 사주단자 들고 쩌그 동네 밖에서부터 소리지르고 난리다. 그러다, 신부네 집앞에 와서는 이리오너라..하고, 신부집측에서 사람이 나가서 공손하게 먼길 오시느라고 고생많이 하셨으니 어서 들어오시라고 황제가 보낸 칙사처럼 대접하지만 신랑측 우인들은 들은체도 안한다. 에헴..헛기침도 해감시로 '못간다고 여쭤라..하면서 한참동안 실레기하면, 전라도 지방 잔치의 최고의 음식..그중에서도 젤 맛나게 푹 삭힌 홍어에 막걸리도 대접하며 한발 한발 집안으로 들여 모시고,,누구는 정개로 들어가 가마솥밑에서 껌땡을 잔뜩 퍼다가 젤 앞에선 마부얼굴에 새카맣게 칠해서 중방이라 불렀던 기억이 나는데..확실한지는 잘 모르겠다. 암튼 이런 과정에서 여비도 좀 타고, 막걸리도 얻어묵고 해서 하루종일 떠들다 가고..
드디어 결혼식날...아침부터 바쁜 것은 물론 대사치는 당사자들이만 동네 아그들도 겁나 바쁘다.
우선 한겨울에 꽃피어오른 동백나무꽃가지를 잘라다가 거기에 또 습자지로 맹근 조화를 달고, 오색 종이 테프로 이쁘게 화환을 맨들어서 양쪽에 놓고, 그집에서 가장 멋지고 잘 자란 장닭, 암닭을 산채로 묶어놓고 집사의 진행으로 사모관대로 근사한 차림의 신랑과, 온갖 장식이 딸랑거리는 쪽두리에 연지곤지 곱게 찍어바른 어여쁜 새색시가 양쪽에 마주보고 서서 하객, 온동네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신랑신부 재배...한창이나 진행되고..이 시간이 거의 오전 아침부터 시작해서 오후 저녁나절까지나 게속된다.
이제 어느정도 식이 끝나면, 사진촬영이 시작된다.
바로 이때가 동네 애들이 최고로 기다리던 순간이다. 때락 큰 삼발이에 사진기를 설치하고 사진사가 까만 천을 뒤집어쓰고 들어가 마춰놓고 나와서 하나, 둘..함시로 꿩알같이 생긴 스위치를 누르고..몇번 하고 촬영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로 테이프로 단장한 습자지로 만든 조화쟁탈전이 벌어진다..그 꽃하고 테이프를 차지하기 위해...온종일 아침부터 좋은 자리잡고 기다린다.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가 그리 울대끼...
저녁이면 결혼식의 하이라이트... 신랑신부 가운데 앉혀놓고 악다구다..
신부를 언제 알었냐. 첨 볼 때 으쨌냐.그러다 신부가 대답이라도 좀 늦으면..왜 대답이 늦냐고 빨래방망이로 무릅 성문을 사정없이 문대불면..신랑은 아~ 아~ 알았어롸..어이 대답좀 얼릉하소..하고 신부한테 닥달하고..첨엔 부끄럽고, 낮설어서 대답하기에 머뭇거리던 새 각시도 대답도 빨라지고 목소리도 커진다.
그런 저런..절차가 한참 진행되고..닭모가지 비튼다고..또 노래도 한곡씩 들어보고..첨에는 잘 못한다니 어쩐다니 빼다가고 역시 신랑 거꾸로 매달아 두둘겨패기, 빨래방맹이로 성문 문대기, 허벅지 꼬집기 등 당하면 여지없이 바로 노래 나온다. 잘하든 못하든 목소리 크게 열심히 한다. 그러면 고향무정, 찔레꽃, 마포종점, 섬마을 선생님, 노란 사쓰입은 사나이, 무너진 사랑탑...젓가락 장단에 잘도 부른다. 왜 그리 젓가락 장단들..잘도 했다. 특이한 재주를 가진 사람이 한두사람은 꼭 있어서 손바닥으로 비비면 뽁뽁짝 소리를 내어 또 재미나게 장단도 맞추고..
하루종일 낮에는 마당에서 서서 고생하고..초저녁이면 이렇게 또 댕기풀이로 시달리고...
새벽녘에야 신방을 꾸미는데..여기서도 통과의례가 있다. 초롱불 끄고..멋잔 할라하믄 밖에서 창호지 침묻혀서 구멍뚫어 구경하니라고..난리고..이렇게 길고 긴 결혼식은 끝나고..
다음날이면 어머니가 시집가는 딸 뒤따르면서 빨간 팥을 머리에 뿌려주며 시집가서 시부모 잘모시고, 아들딸 잘낳고 인제부터는 친정생각일랑 하지말고 으짜든지 느그들만 생각하고 잘살어라 하고 당부하며 흘쩍거리면...앞서가던 딸도 어깨를 들썩이며 흘쩍거리고, 뒤따르던 어매도..동생들도 콧물 반 눈물 반 범벅되어 따라가고..저 마을앞에는 바꾸 셋달린 삼륜차가 마을앞에 대기하고 있다가 '아따 지달리가 손자 환갑다치것소, 얼렁 갑시다' 하고 부추긴다. 세발달린 삼륜차에는 딸 여울라고 몇년씩 걸쳐 미영농사지어 솜타서 만든 두꺼운 솜이불을 비롯하여 요강, 숮넣어서 쓰는 숯대리미, 인두..등 살림살이, 시집에 갖고갈 이바지 등이 가득하고 속없는 갱아지만 꼬랑지 마구 흔들어 댄다.
적어도 60년대 말 70년대 초 시골에서의 결혼 모습이 아닌가 싶다.
요새 청첩장 받으면 아무 감동도 없이 세금고지서 받은 것처럼 어쩔 수 없이 안가거나 모른체 하면 나중에 만날때 어색해질 것을 두려워하여 아지못해 축의금이나 보내고, 예식장을 찾아도 혼주에게 눈도장만 찍고 식당으로 바로가버리는 요즘의 세태와는 너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올만에 남진..각시와 신랑 함 들어보셈..
http://www.youtube.com/watch?v=4t5Gx808kc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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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나는대로 연습좀 해두소..
나중에 음식하면 맛날것 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