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장에 갔다 석진 어머니 영선 어머니와 같이 가려고 약속을 해 놓았는데 벌써 기다리다가 갔다고 한다 나는 약속을 어긴데 무척 미안함 감을 한 아름 안고 장(양평 양동 소재 5일장)으로 갔다
장에 가는 사람들(종학 어머니, 정규)과 함께 가서 큰 콩 한 말에 460원을 받고 질금콩 1.5말에 870원 모두 1,330원을 받아 가지고
석유 1.8L들이 5병과 백조(담배갑 당 20원) 5갑과 노래책 한 권 60원 화투 160원 석유등 하나 50원 점심 20원 고추 60원 백조 또 한 갑 20원 술약(제일 이스트) 1깡통 150원 그래서 모두 940원을 쓰고 나머지 돈은 아버지께 드렸다
그런데 아버지가 웬 시계를 외상으로 사가지고 오셔서 나의 손목에 끼워주셨다 나는 시계가 여자용이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설레고 기쁜 것이 들뛰었다 나는 좋아라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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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970년 11월 3일 화요일 날씨는 개어있었던 듯싶다 띄어쓰기 외에는 본문대로 옮겨 적는다
양평 양동장이 3/8장이었으니 3일이면 장날이 확실하다 강원도 원성군 지정면 월송리에서 웃다둔 마을은 산촌이었고 내가 살던 편알이란 골짜기는 치악산 상원사에 버금가는 산골이다
사는 곳은 당시 강원 원성군이었으나 경기 양평군 양동장을 이용하였다 왜냐하면 지정면 간현에서는 장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무 깊은 산중이라 장에 가려면 혼자서는 다닐 수가 없었기에 동네 사람과 미리 약속한 뒤 무리를 지어 다니곤 했다 그런데 나는 약속을 어겼다 내게는 시계가 없었기 때문이다
남들이 장에 간다고 하면 시래기 짊어지고 따라나선다고 5일장이 기다려지는 것은 당시로써는 하나의 설렘이었다 하긴 요즘도 쇼핑만큼은 즐거움이다 당시 산촌이나 시골에서는 곡물과 함께 일용품을 만들어 시장에 나가 물물교환을 하거나 돈을 장만하여 필요한 것들을 샀다
일기를 보며 50여 년 전 70년대에 당시 물가를 짐작할 수 있으며 겨우 18살밖에 안 된 내가 다음 장날까지 한 파수에 대여섯 갑을 피운 골초 중 골초였음도 일기를 통해 알 수가 있다
시계가 없어 약속을 못 지킨 내게 아버지가 함께 간 시장에서 외상으로 시계를 사주셨으니 아버지의 아들 사랑이 엿보인다 발이 꽤 넓으셨나 보다
이 일기장은 1970년 4월 6일 양평군 양동장에서 구입하였으며 그로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1971년 2월 17일까지 쓴 일기다 이제 보니 당시까지는 내 이름이 주민등록상 李鎭均이 아니라 보배 진 자 李珎均이었네
당시 일기장 노트가 50원이면 꽤나 비싼 편이었던 것 같다 나는 나 스스로를 일컬어 '미스터 코리아'라 하고 '미스 코리아' 난에는 나의 어머니(모)를 넣었다 시나브로 50년 전 추억에 빠져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