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합니다.
말 씀: 사무엘상 2:12-26
설교일: 2024. 10. 13 (주일 낮 예배)
“ 우리 연세 가족 모두 하나님 앞에서 예배와 기도로 항상 복되게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요?
“이런 사람이 바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다” 라고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일은 분명히 하나님이 하신거야!”
“이 일은 하나님이 하시지 않았으면 이럴 수가 없어!”
이렇게 “모든 일에 하나님이 개입하셨다는 것을 아는 사람”
저는 그런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하나님이 하시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는데~”
하는 사건들을 수도 없이 경험했습니다.
교회에 처음 나온 청년이 집에서 그렇게 반대하고 핍박을 해도,
너무너무 기쁘게 신앙생활을 하는데,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그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교회를 떠난 분이 세상에서 여러 가지 고난과 환난을 당합니다.
그러나 감당한 만한 시험을 당하고, 하니님의 은혜로 피할 길이 열리고, 그래서 세상을 이기고
다시 교회에 나오는 것을 보면,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히 여기시는 하나님이 그의 생애에 개입하셨다는 확신이 드는 것입니다.
언제가 하루는 기도하다가 어느 집사님에게 전화를 해봐야 겠다는 마음이 생겨서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집사님이 전화를 받더니 “목사님! 어떻게 전화를 하셨어요? 마침 무슨 일이 있어서 목사님과 통화를 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러는 겁니다.
저는 이런 일들이 우연히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런 일들을 다 우연이라고 여긴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아는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사람입니다.
아는 것이 힘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는 것 중에서도 하나님을 아는 것이 가장 큰 힘이요, 능력이요, 은혜요, 축복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모두 지식의 근본인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날로 풍성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무엘상 2장은 그 내용의 구도가 아주 분명합니다.
검은색과 흰색을 구분해 보여 주듯이 아주 뚜렷하게 비교해 놓았습니다.
2장 11절과 12절입니다.
”엘가나는 라마의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그 아이는 제사장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기니라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
2장 21절과 23절입니다.
“여호와께서 한나를 돌보시사 그로 하여금 임신하여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셨고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
”엘리가 매우 늙었더니 그의 아들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행한 모든 일과 회막 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과 동침하였음을 듣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이 모든 백성에게서 듣노라“
무엇을 비교하면서 말씀하는지 아시겠지요?
두 가정, 두 가문의 비교지요 !
한나의 가정과 엘리의 가정
한나 가정의 사무엘과 엘리 가정의 두 아들
어떻게 비교되고 있습니까?
한나의 가정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높이 높이 올라가고 있는데,
엘리의 가정은 완전히 바닥으로 추락하고 있습니다.
한나의 아들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로 비상하고 있는데,
엘리의 두 아들은 멸망의 벼랑으로 사정없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왜 엘리의 가정과 그 두 아들이, 그렇게 멸망의 벼랑으로 떨어지고 있습니까?
무엇이 문제일까요?
엘리 가정의 첫째 문제는
자녀의 경건하지 못함을 방치한 것입니다.
12절을 보겠습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 “
그들은 아버지가 제사장임에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더 나아가 하나님을 무시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하는 나쁜 행실 곧 경건하지 못한 생활을 했습니다. 불경건 - 이것이 문제였습니다.
여러분 ! 그렇게 불경건한 생활을 방치하면 어떤 현상이 나타나는지 아십니까?
대표적인 것, 두 가지만 말씀 드립니다.
1) 하나는 도덕적으로 타락합니다.
22절을 보십시오.
(삼상2:22) 엘리가 매우 늙었더니 그 아들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행한 모든 일과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하였음을 듣고
불경건을 방치하면 영적인 타락을 초래하고, 영적인 타락은 도덕적 타락을 초래합니다.
“선 영적 타락 / 후 도덕적 타락”입니다.
이것은 공식입니다.
사람은 오늘 하나님 앞에 바로 서지 못하면 내일 도덕적으로 타락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겅건치 못한 생활을 해도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으니까,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불경건을 그대로 방치하면 공식대로 됩니다.
“선 영적 타락 / 후 도적적 타락”
2) 또 하나 불경건을 방치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약속이 무효 될 수 있습니다.
30절입니다.
(삼상2:30)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원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서 영원히 행하리라” 아멘
하나님은 엘리 가정에 축복의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아니하리라”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서 영원하리라” 하신 축복의 약속이 무효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나를 존중히 여기지 않고, 나를 멸시하는 불경건 그것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불경건의 가장 큰 죄는 제사, 곧 예배를 멸시하는 것입니다.
모든 죄는 예배를 소홀히 하고, 예배를 멸시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또 하나 엘리 가정의 문제는 아버지의 권위가 상실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 23-25절을 보면 엘리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책망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권위가 상실되었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탈선하는 과정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때 부모의 권위 특히 아버지의 영적권위가 상실되지 않으면 그 자녀들은 다시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에서는 부모의 권위 특별히 아버지의 권위가 세워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어머니가 아이들 보는 데 아버지를 비하하는 말을 하면 안됩니다.
그것은 아이에게 독약을 먹이는 것과 같습니다.
아버지의 영적 권위가 세워지면 그 영향과 혜택은 아이들에게 돌아갑니다.
유대인들의 가정에서는 아버지의 영적 권위가 대단합니다.
아버지가 예배를 인도하고, 자녀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축복기도를 해 줍니다.
자녀들은 아주 당연하고도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축복기도를 받고 자라납니다.
자녀들은 아버지의 축복을 받지 못하면 에서처럼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모의 권위가 세워지면 그 축복은 자녀들에게 돌아갑니다.
이 원리는 학교에서도 적용됩니다.
학교 다니는 아이를 둔 부모들은 그 아이 선생님의 권위를 세워주어야 합니다.
선생님의 권위가 세워지면 그 축복은 아이에게 돌아가는 것입니다.
나라도 그렇습니다.
나라의 지도자들의 권위가 떨어지면 그 피해는 국민들이 받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말씀대로 나라의 지도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기관 모든 조직에서 권위주의는 사라져야 하지만, 정당한 권위는 세워져야 합니다.
세 번째 엘리 가정의 문제점은 자녀의 우상화였습니다.
29절을 보겠습니다.
(삼상2:29)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나의 처소에서 명령한 내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의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너희들을 살지게 하느냐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기느냐?”
하나님보다 더 중히 여기는 것이 우상입니다.
“자녀 우상화”
이런 현상은 오늘 우리나라에 아주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지극히 비정상인데 정상처럼 되었습니다.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기느냐?”
많은 부모들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일은 못들은척 하면서도, 아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어떻게 하든 다 들어 주려고 합니다.
물론 자녀들이 하나님 앞에서 복받을 일을 요구하면 다 들어 주어야지요!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저주를 자청하는 요구까지 다 들어 주면서,
저주를 자청하는 불경건은 금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엘리 가정이 그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상 3장 1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삼상3:13) 내가 그 집을 영원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말한 것은 그가 아는 죄악때문이니 이는 그가 자기의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아멘
엘리 가정처럼 자녀를 하나님보다 더 중히 여기는 "자녀 우상화“는
아이가 안될 뿐만 아니라 집안이 망하는 일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축복 특별히 자녀의 복을 받은 한나의 가정은 어떠했습니까?
첫째, 한나의 가정은 하나님 앞에서 살았습니다.
오늘 말씀 11절을 보십시오.
(삼상1:11)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 한나는 아이를 원할 때부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한나의 기도를 우리가 잘 알잖아요!
아주 간절히, 제사장이 볼 때 술취한 것처럼 보일 정도로, 서원하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한나는 기도만 한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 앞에서 기도한 대로 살았습니다.
여러분 ! 교육은 매로 하는 것도 아니고, 잔소리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부모의 본으로 되는 것입니다.
자녀가 아침마다 자기를 위해 기도하는 어머니의 기도 소리를 듣게 해 보십시오
주일은 천하없어도 철저히 지켜 보십시오
자녀를 기쁘게 하는 일보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열심을 내 보십시오
그러면 그 자녀도 언젠가는 부모처럼 하나님 앞에서 살면서 기도하고 예배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를 세워 주십니다. 사무엘처럼 위대한 일에 사용하십니다.
둘째 한나의 가정은 부모가 모두 신앙의 본을 보였습니다.
1장 3절을 보면 “이 사람이 매년 자기 성읍에서 나와서 실로에 올라가서 만군의 여호와께 예배하며 제사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21절도 보면 “ 그 사람 엘가나와 그의 온 집이 여호와께 매년제와 서원제를 드리러 올라갔다”고 했습니다.
한나의 가정은 부모가 함께 예배의 본을 보였습니다.
특별히 어머니가 기도의 본을 보이고, 아버지가 예배의 본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 아들 사무엘은 기도의 사람, 예배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는 사람, 예배하는 사람을 사무엘처럼 높이 세우시고, 사용하십니다.
우리 모두
경건하지 못한 일들을 방치하지 않고,
부모의 권위가 상실되지 않고,
자녀가 우상이 되지 않고
한나의 가정처럼 어머니가 기도의 모범이 되고, 아버지가 예배의 모범이 되어
항상 복되게 살아가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