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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사랑을 아는가(눅10장25-37)
성경본문: 누가복음10:25-37
25-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26-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27-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28-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29-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30-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31-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32-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33-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35-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36-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7-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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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하나님을 잘 믿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 잘 압니다. 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잘 믿고 기쁘시게 하는가 또 이런 일에 구체적으로 잘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하나님을 잘 믿는 길이 무엇인지 알지만 또 거기에 대해서 확실하게 자기 생활 속에 실천하지 못한, 잘못된 사람을 가르치는 말씀이 본문에 나옵니다.
어떤 율법사가 먼저 예수님께 질문을 했어요.
“우리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습니까? 영생을 얻는 길이 무엇입니까?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이렇게 질문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네가 율법을 읽지 않느냐 율법에 무엇이라고 기록되었느냐? 예, 율법에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 했습니다. 그리고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했습니다.
그래, 너무 잘 알았다. 그렇게 살면 구원함을 받는 거야. 그것이 바로 구원을 받
는 길이야“
이 사람이 다시 주님에게 질문을 합니다.
그러면 선생님,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우리가 어떤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까?
이 사람은 여기에 대해서 잘 알지를 못했습니다.
전자는 강조했지만 후자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전자는 잘 알았지만 후자의 뜻은 잘 몰랐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생명을 다 바쳐, 율법사이니까 하나님을 잘 믿어야 되는 것은 알았지만 이웃이 누군지 이웃을 위해 해야 할 일은 잘 알지를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한 비유를 들으셨어요.
예루살렘에서 어떤 사람이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다는 거예요. 그런데 제일 처음 누가 지나갔느냐 하면 제사장이 지나갑니다.
유대인 가운데 가장 존경받는, 하나님을 가장 잘 믿는, 제사를 집례하고 또 하나님께서 특별히 택한 백성 가운데도, 뽑은 자 가운데도 제일 뽑은 제사장이 지나갑니다. 요사이로 말하면 목사예요. 목사 가운데도 제일 높은 총회장급이 지나가는 거예요.
지나가면서 그 옆에 강도 만나서 쓰러져 있는 사람을 보고 그냥 지나가 버렸어요.
아마 자기도 그런 일을 당할는지 모르고, 시간이 바쁘고 좋은 데 초대를 받았는지 그냥 지나갔어요.
두 번째는 누가 지나갔느냐?
제사장만은 못하지만 그 다음 수준이 되는 레위 사람이 지나갔어요. 그 사람도 역시 그냥 지나가 버렸어요. 세 번째 지나가는 사람이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이미 사마리아에 대해 여러분께 말씀을 많이 드렸는데 설명할 필요도 없이 사마리아 사람은 유대인이 상종도 안하고 제사장 계급과는 비교도 되지 않고 유대인들이 흔히 사마리아 사람을 개처럼 취급을 했습니다. 사람이지만 사람으로 보질 않았어요.
대화도, 상종도 없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지나가다가 강도 만난 사람을 도와주는 거예요.
물어보겠습니다. “처음에 누가 지나갔다고요? 제사장, 두번째는요?
레위 사람, 세번째는요? 사마리아 사람, 어떻게 보면 사람으로 볼 때는 제일낮은 계급인데, 사람으로 보면 출세도 못하고 배우지도 못하고 환경도 좋지 못하고 여러 가지로 버림받은 사람인데 그 사람 마음에는 사랑이 있었어요.
그 사람 마음에는 이웃이 있었어요. 그래서 가서 일곱 가지 과정을 거칩니다. 먼저는 불쌍히 여깁니다. 불쌍히만 여겨도 대단하지요. 그런데 또 가까이 갔어요. 강도만나서 옷을 다 빼앗기고 피투성이가 되어 돈 다 잃고 쓰러져 있는 사람인데 가까이갔어요.
세 번째는 기름과 포도주를 부어서 상처를 싸매어 주고 치료해 주었어요.
네 번째는 자기가 타는 나귀에다 이 사람을 태워 주막으로 가게 되었어요. 자기는 끌고요.
아주 보통 희생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다섯 번째는 주막에 가서 하룻밤을 같이 자면서 다시 말하면 머리에다 따뜻한 수건을 얹어주고 닦아주고 이불을 펴서 눕혀주고 이렇게 했어요.
지금도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그 길에는 그 주막이 아직 기념으로 있습니다. 한 40Km 되는데 집이 한 채도 없고 그것 하나만 남아 있습니다. 거기에는 사람이 살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강도들이 자연히 옛날에도 많이 등장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여리고는 무역항이에요. 상인들, 외국인들, 무역하는 사람들이 드나드는 요사이로 말하면 부산 같은 항구이고 부산 같은 역할을 하고 예루살렘은 서울과 같은역할을 하니까 자연히 사람의 왕래가 많았던 곳이에요. 그런데 강도를 만난 이 사람을 아무도 데려가지 않았는데 이 사람이 데려다가 그 주막으로 안내를 해서 하룻밤을 같이 지나고 치료비를 다 대어주고 그리고 거면서 하는 말이 돈이 더 들면 내가계속해 치료하겠다 그리고 가면 안 오는 것이 아니라 다시 오겠다. 이런 약속을 하고 갔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잘 믿는다 하면서 교회생활은 잘 하고 율법사처럼, 대제사장처럼, 레위인처럼 너무너무 영적인 생활을 잘 하는데 이웃이 없는 사람, 이웃을 모르는 사람, 이것은 잘못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배를 잘 드리고 기도를 길게 하고 철저하게 영적 생활, 안식일을 잘 지키는데 이웃이 없다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반쪽 신앙이에요.
고무신 반쪽을 쓸 수 없듯이 하나님 앞에 반쪽 신앙도 쓸 수 없다고 하는 뜻이 본문에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 한가지는 무엇입니까?
우리의 이웃이 누구입니까?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이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을 다닌 사람은 같은 동창이 이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웃을 생각 할 때 대체로 사람을 사귈 때, 조금이라도 높은 사람 지위가 높은 사람 많이 배운 사람 돈도 많은 사람을 사귀는 것이 영광이라고 생각하고 출세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성경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람 편에서 보면 그 사람이 출세한 사람인지 몰라도 하나님 편에서 보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편에서 보면 우는 자, 강도 만난 자, 슬프고 외로운 자를 사랑해 줄 때 그 사랑은 얼마나 가치가 있고 남에게 유익을 주는 정말 남을 위한 자기 희생이지만 이것은 자기유익을 위하여 높은 사람을 만나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는 이웃이 될 수 없고 상이 될 수 없다고 하는 그런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합니까? 우리 이웃이 누구 있습니까? 여러분은 사랑하는 사람 가운데 누가 있습니까?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보여주셨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온유하고 겸손한 삶으로 본을 보여주셨다고 말씀하셨는데 예수님의 생애는 또 어떤 생애였느냐? 삶을 통해서 남을 섬기는 삶, 가난한 이웃을 위해 살아간 삶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었습니다.
주님은 만왕의 왕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그런 전능하신 분이 사람의 몸이 되어서, 이 땅에 오셔서 일생을 살면서 누구를 가까이 하셨느냐, 배운 사람은 하나도 없고 돈 많은 사람도 하나도 없고 잘난 사람, 부유한 사람 아무도 없고 예수님의 주변에는 누가 있었어요?
귀신들린 사람이 있었고 눈 먼 자가 있었고 간질병 들린 자 문둥병자, 창녀를 사랑하셨고 세리를 사랑하셨고 소년소녀가장을 불쌍히 여기신 것이 그리스도의 일생이었습니다.
과부가 우는 곳으로 가셔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건져주시고 가난한자의 무덤에 가서 눈물을 흘리며 그들을 건져주셨고 예수님의 이웃은 어부들, 냄새나는 옷을 입었던 분들이 주님의 주변에 있었습니다.
주님은 한번도 어느 한 순간에도 귀한 자들과 사귀는 유혹을 받지 아니하셨습니다.
출세가 무엇이 출세입니까?
우리는 높은 사람만 사귀어서 잘난 사람 출세한 사람만 가까이 하는 것이 이것이 축복이요 출세가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자리에 올라가기를 바랍니다. 축복을 받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이웃은 가난한 이웃을 두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올라갈지라도, 아무리 성공할지라도, 여러분은 언제나 손을 위에 사람하고만 잡지 말고 아래 사람과 잡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손을 밑으로 내려놓은 거예요. 위로 잡아봐요. 얼마나 팔이 아파요?
위엣 분 잡다가 잘못하면 감옥에 들어갑니다. 아래 사람을 사귀다가 감옥에 들어간 일은 없습니다. 낮은 사람을 사귀어서 불행한 일은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길이 하나님 성전에 나와서 교회생활만 잘 하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밖에, 교회 옆에, 교회 전에 교회 나오기 전에 어디에서 교회에 나왔느냐 하는 From을 찾는 거예요.
“너 어디에서 나왔느냐? 너의 이웃이 누구였느냐? 누구하고 손잡고 누구를 사랑하다가 주님 앞에 나왔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상은 아무 것도 모르기 때문에 우상은 앞에 가서 무슨 짓을 했든지 어떤 짓을 했든지 절만 하고 돈만 내면 우상은 좋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많이 가져오는 것도 기뻐하지 않습니다.
이웃을 위하여, 불쌍한 자를 위하여 많은 일을 하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신다는 것을 여러분이 이해하셔야 합니다.
축복이 어디 있습니까? 이웃을 섬기는데 있습니다.
내 자녀가 잘 되는 길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 나라에 내려오는 이야기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가난한 선비가 어머니 모시고 두 모자가 어렵게 살았습니다. 하루는 어머니께서 장롱 안에서 문서를 하나 꺼내시더니 "얘야 우리가 먹을 것도 없이 우리가 어떻게 살겠느냐? 산너머 마을에 가면 옛날 우리가 잘 살 때 그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종노릇하였느니라. 그 문서 여기에 있으니까 이것을 가져다주고 먹을 것을 좀 가져오너라" 하였습니다.
이 아들이 그 문서를 들고 산너머 마을에 갔습니다. 그 마을은 온 동리가 잘 살았습니다. 동네 사람들을 불러서 "여러분들은 전에 우리 집에 종노릇하였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문서를 주시면서 “이 종 문서를 다 불태워서 양반 만들어 줄 테니 양식을 좀달라고 하셨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돈을 2천냥이나 거두어서 돌아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돌아오다가 강가에서 노인 두 분과 젊은 며느리 세사람이 서로 말리며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시아버지가 죽으려하니까 며느리가 "제가 죽겠습니다" 며느리가 죽으려하니 시어머니는 자기가 죽겠다고 하며 서로 죽으려 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이 아들이 가까이 갔습니다.
오늘 사마리아 사람처럼, 가까이 가서 “왜 그러시냐?고 물었습니다.
그 집에 외동아들이 있는데 죄를 지어 관가에 끌려가서 내일 죽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는 길은, 돈이 2천냥 있어야 하는데 돈이 없어 살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너무 감동을 받아서 돈도 귀하지만 돈 때문에 네 사람이 다 죽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 돈 2천냥을 다 주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머니가 어떻게 되었냐고 물었습니다.
“예, 이런 사람들을 만나 2천냥을 다 주었습니다. 얘야 그럴 수가 있느냐 우리는 먹을 것이 없는데 조금이라도 남겨와야지 어떻게 2천냥을 다 주었느냐 네가 정신이 있냐 없냐? 그렇게 말하지 않고 ”정말 잘했구나 산 사람이 죽겠느냐 돈 2천냥으로 한 가족 네 사람을 다 살렸으니 너는 참 착한 일을 했구나“. 하면서 어렵게 그대로 살면서 세월이 흘러 그 어머니는 돌아가셨습니다.
장례식을 치러야 하는데 돈도 없고 산소 자리도 없는 것입니다.
풍수지리 하는 분에게 좋은 자리를 물었습니다. 자리를 물어 가서 보니 그 자리는 그 동네에 제일 부잣집이 그 주인이었어요.
지금도 시골에 가면 그렇습니다. 장례를 치르면 우리 땅에다 묻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이웃집 것을 얻어서 묻곤 합니다. 서로 시골은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 아들도 그 집에 찾아갔어요.
사정이 이러한데, 이 곳에 우리 어머니를 모시고 싶은데 은혜를 좀 베풀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 집 부인이 나오는데 그 부인이 그 때 강가에서 본 며느리였습니다. 너무 놀라며 '그 때 그 은혜를 갚으려고 백방으로 찾았는데 못 찾았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늘이 도와 이렇게 만났다'고하며 반가워하는 것입니다.
2천냥과 논과 밭도 준비해 주었습니다. 산소자리가 문제입니까? 우리는 그로 인해 네 식구가 다 살고 부모님은 가셨지만 우리는 부족함 없이잘 삽니다. 그러니 장례를 이곳에 잘 치르라는 거예요. 그래서 그 때 2천냥의 돈 때문에 2천냥도 다시 생기고 논, 밭이 생기고 그리하여 잘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성경에도 이런 말씀이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몰라요.
남을 해롭게 했던 사울왕은 안되고 남에게 긍휼과 사랑을 많이 베풀었던 다윗은 그렇게도 잘되고요.
유다지파가 잘 되고 요셉이 잘 되고요. 선한 일을 행한 사람이 잘 되고 자손이 잘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녀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렵니까?
그것은 재산 하나만 잡고 사는 것과 같아요.
사람에게 많은 선한 일을 하면 그 자녀의 주변이 다 울타리가 되고 담이 되어주고 힘이 되어 주고 전부 밀어주어서 자손들이 잘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 때 어떻게 살아야 잘 살고 어떤 사회가 되어야 좋은 사회가 되고 어떤 신앙생활을 해야 후회함이 없는 영생을 이루는 삶이 되는 것입니까?
정말 이 나라가 앞으로 GNP가 늘어나고 고속도로를 많이 닦고 남북통일이 이루어져야 이 나라가 잘 살겠습니까? 좋은 사회가 되겠습니까?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이 나라가 이만한 경제를 가지고도 우리 이웃을 귀히 여기고 이웃 사랑하는, 강도 만난자를 불쌍히 여기고 강도 만난 자를 사랑하는 이 마음만 가지면 이사회가 낙원같이 될 것이고 오늘 이 민족은 축복 받은 민족이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이 민족을 들어 쓰실 것입니다.
정말 이 사회가 오늘 없어서 이렇게 못 견딜 정도로 불안하고 환난과 끊임없이 일어나는 이 엄청난 사건들이 다 어디에서 일어납니까?
나 하나만 생각하는데서 일어납니다.
네가 어떻게 되든 나 하나만 출세하고 나 하나만 행복 하려고 하는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왜 이 나라에 교인은 많은데 사마리아 사람은 없습니까?
오늘 모두 사마리아 사람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 교회 하나만 잘 되려고 하면 이 나라도 안되고 우리 교회도 안되고 하나님도 이 예배를 받지 아니하시고 우리는 손과 발길과 우리에게 주신 모든 하나님의 은혜가 우는 자에게로 찾아가고 갇힌 자를 찾아가야 되고 버림받은 자를 찾아가야 되고 과부와 고독한 자와 고아와 소년 소녀 가장들과 항상 우리의 주변에 일어나는 한없는 절망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싸매어 주고 끝까지 우리가 돌보아 줄때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도 받으시고 이 민족을, 이 땅을 복을 내려 주시고 살길을 인도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성경에 십계명이 있는데 십계명이 하나님만 섬기라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에게 관한 것은 4가지밖에 없고 십계명 가운데 6가지가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웃을 해롭게 하면 안됩니다.
이웃을 유익 되게 하고 이웃을 잘되게 하는 것이 여섯 가지나 됩니다.
더 많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기독교는 긍휼과 인애와 사랑을 베풀어야 기독교의 색깔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예배를 드릴 때도 예배가 오직 기도만 하고 예배를 거룩하게 하면 하나님이 예배를 받으시는 줄 압니다.
기도는 인류역사에 예수님 승천하신 후에 한국교회 같이 기도 많이 하는 곳이 없습니다.
새벽기만 해도 대단한데 철야기도가 있고 철야기도만 해도 대단한데 금식기도를 또 하고요. 교회에 기도만 해도 대단한데 산에 기도하러 또 올라가고요.
산마다 교인들이 다 점령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도를 많이 하는데도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안 들으시는 이유가 하나예요.
“너는 이웃을 향하여 손을 펴지 아니하는데 어찌 하나님이 받으시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이사야 58장에 너희가 병을 치료받으려 해도 네가 자꾸 기도만 하지 말고 오히려 이웃을 도와주고 와서 내게 기도해 보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치료를 빨리 해 주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빨리 응답 받는 길이 무엇입니까? 빨리 잘 되는 길이 무엇입니까?
나 혼자 잘되려고 하면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무도 가지가 쭉쭉 뻗어야 나무노릇을 하듯이 우리 하나님 앞에도 이웃을 향하여 많은 가지를 만들어서 사랑을 베풀어야 하나님 앞에 내 균형을 가지고 견고한 훌륭한 인재가 되고 축복의 사람이 될줄 믿습니다.
이사야 1장 11-17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보세요. 기도해도 안되고 제사를 아무리 드리고 양을 아무리 잡아도 안 받는다 라는 거예요.
월삭은 유대인들이 한달에 한번 드리는 절기입니다. 대단한 절기, 유월절과 같은 대회를 말하는 거예요.
그러나 이것도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내 마당만 밟지 말지니라. 무엇 때문이냐?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17절에 나옵니다.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무엇이 중요합니까? 하나님만 섬기는 것은 하나님은 받지 않으십니다. 이웃과 하나님을 똑같이 섬길 때에, 이웃과 하나님을 같이 사랑할 때, 하나님이 우리의 예배도 받으시고 기도도 받으시고 축복해 주시는 줄 믿습니다.
어떤 심리학자는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세 단계를 거쳐야 성숙한 사람이 된다고 합니다. ☞첫 단계는 받는 단계입니다.
부모님을 통하여 사랑을 받고 양육을 받고 은혜를 받는 단계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소유하는 단계입니다.
가정을 이루고 물질도 얻고 지식도 얻고 행복도 얻고 벌어들이는 단계, 전부 자기의 주머니로 채우는 단계입니다. 마음도 건강도 행복도 물질도 명예도 지위도 채우는 단계입니다.
☞세 번째는 받은 것을 주는 거예요.
이 땅을 떠날 때가 되면 주는 과정이 마지막 그 열매를 맺는 단계인 것입니다.
식물도 자연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식물도 곡식이 땅에 심겨져서 여름에 무성하게 자라나고 가을이 되면 열매가 맺어져서 자기를 심어준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자연의 법칙이에요.
적은 것을 심었는데 많은 열매가 거두어지는 것입니다. 땅콩도 고구마도 밤, 사과 모두가 주인을 기다립니다. 주인에게 돌려주므로 또 다시 그 주인은 심어지고 사랑하게 되고 열매맺게 되고, 물고기도 그렇습니다.
알라스카에 가면 연어가 있습니다.
작은 연어가 바다로 들어가서 장성하여 자란 다음에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시 길러준 곳으로 돌아옵니다.
수많은 연어들이 돌아와 자기 낳은 곳에서 다시 알을 낳고는 그 속에서 죽는 것입니다.
그러면 태어난 새끼들이 죽은 어미를 뜯어먹고 영양분을 섭취하고 자라나서 또 바다로 갔다가 또 다시 돌아오는, 이런 법칙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평생 배우려고 하는 사람도 있고 평생 행복 하려는 사람도 있고 우리가 자라나서 힘을 얻고는 힘이 없어질 때가 와야지, 평생 힘이 있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돈을 벌다가는 도로 돌려주는 이런 삶이 되어야지 죽는 날까지 벌려고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미쳤다니까요. 어느 정도 되면 돌려주어야지 자기를 길러준 국가와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그리고 가야 될 것 아니예요.
미국에 C.N.N 회장이 가난한 자를 위해서 국제적으로 어려운 분들을 위해서 9천억 원을 내놓았습니다.
미국사람들이 공연히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지난번에 미국에 홍수가 났는데 <맥도날드 회사>의 미망인이 1천5백만 불을 기증했습니다. 그것도 언론에 일절 알리지 않고 집집마다 이천 불씩 돌렸습니다.
지난번 미국 공항면세점에 있는 분은 자기는 집도 없으면서 차도 조그마한 것을 타고 다니면서 남을 위해 쓴 것이 수천 억이 된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몰랐다가 누가 추적을 해서 찾아냈어요. 자기를 숨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천만 원이라도 내면 TV에 나오려고 야단입니다.
성경에는 그러면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내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미국에 카터는 대통령을 지내고 난 다음에도 지금까지 한 가지 직업을 가지고 있어요. 집 없는 사람에게 주택을- 이런 슬로건을 가지고 항상 목수로서 자기는 망치를 들고 부인은 나무를 붙잡고 하여서 가난한 이웃을 위해 집 없는 분, 돈 없는 분에게 집을 지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입주할 때는 성경 한 권과 열쇠를 준다고 합니다. 그러면 저절로 전도가 되고 예수를 어떻게 안 믿겠어요. 가만히 두어도 그냥 이렇게 사랑해주고 가만히 두어도 교회에 나오는 것입니다.
전도는 우리 나라 교인들이 별나게 전도하면서 이웃을 향하여 사마리아 사람 될 생각은 안 하는 거예요.
높은 사람 찾아오면 좋고 높은 사람들이 모인 파티장에 가면 좋아하고 잘난 사람 사귀고 전화 받으면 좋아하고 불쌍하고 가난한 사람 전화하면 힘들어하고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정신이 아닙니다. 이것은 복 받는 길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문을 열어 주시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이 세상에 아름다운 것이 꽃입니까?
이 세상에 아름다운 것이 자연입니까? 성경은 말합니다. 그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사람의 마음입니다. 잠언 3장 27절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베풀기를 아끼지 말라"고 했습니다.
“나는 많은 축복을 받았기 때문에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는 땅에 있는 날 동안 얼마나 좋은 일을 많이 하셨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영원히 살 생각을 하지 마시고 젊고 건강하십니까?
돈을 많이 버세요. 그러나 해가 질 때가 되거든 빨리 사회를 향하여 좋은 일 많이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그렇게 살순 없을까
욕심도 없이 어둔 세상 비추어 온전히 나을 위해 살 듯이
나의 일생에 꿈이 있다면 이땅에 빛과 소금되어
가난한 영혼 지친 영혼을 주님께 인도하고픈데
나의 욕심이 나의 못난 자아가 언제나 커다란 짐되어
나를 짓눌러 맘을 곤고케하니 예수여 나를 도와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