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가 직접 택한 남자…“그가 내 앞에서 울먹였다” [박근혜 회고록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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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출범 초기 총리 인선 못지않게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것이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인선이었다. 나는 대통령 당선인 시절인 2013년 2월 17일 11개 부처 장관 인선을 발표하면서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로 김종훈 미국 알카텔-루슨트 최고전략책임자(CSO) 겸 벨연구소 사장을 내정했다. 김종훈 후보자의 낙마를 생각하면 지금도 한숨이 나온다.
김 후보자는 가난한 미국 이민자의 아들인 ‘교포 1.5세’였다. 하지만 벤처 사업가로 성공해 38세인 1997년에 포브스가 선정한 ‘미국 400대 부호’ 반열에 올랐다. 2005년에는 무려 13명(2013년 2월 기준)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세계 최고 IT 연구기관인 벨 연구소의 수장이 됐다. 이처럼 미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분이었지만, 국내에선 다소 생소했고, 특히 미국 시민권을 가진 이가 장관에 내정된 것은 처음이라 화제를 모았다.
인선 발표 뒤 다른 장관보다도 김 후보자의 스토리를 궁금해 하는 기자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정치권에서는 “박 당선인이 누구의 추천을 받아 김 후보자를 지명했을까”라는 반응이 많았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의 추천을 받고 김 후보자를 지명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한나라당 국회의원 시절 김 후보자를 만난 적이 있다. 정확한 시점은 기억이 나질 않는데 김 후보자가 한국에 잠시 방문했을 때였다. 벨 연구소에 특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던 윤종록 전 미래창조과학부 2차관이 김 후보자를 내게 소개했다. 당시 김 후보자와 경제, 일자리, IT 분야에 걸쳐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 자리에서 김 후보자는 자신이 미국에서 어떻게 창업에 성공했고, IT 벤처 신화를 이룩했는지, 또 앞으로 어떤 아이디어나 구상을 가졌는지 담담하게 설명했다.
김종훈 깜짝 발탁…첫 만남서 신선한 충격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가 2013년 2월 18일 서울 세종로에 있는 사무실로 들어서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중앙포토
정쟁에 휩쓸린 정치판에서 조금씩 지쳐가고 있던 그때, 김 후보자와 만나 미래 비전을 이야기하는 것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고, 같은 이공계 출신이라는 공감대도 대화에 깊이를 더했다. 언젠가 나에게 그럴 기회가 온다면 김 후보자를 중요한 직책에 꼭 추천하고 싶었다. 몇 년 뒤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창조경제를 뒷받침하고 신성장동력을 책임질 핵심 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를 신설하면서 장관 후보로 김 후보자를 떠올린 건 우연이 아니었다. 나는 지금도 그가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적임자였다고 확신한다.
김 후보자는 우리가 무대로 삼아야 할 세계 IT 시장에 정통했을 뿐만 아니라 현장 이해도가 높았고, 우리 벤처 생태계를 역동적이고 창의성 있는 공간으로 뒤바꿀 경험과 지식을 갖추고 있었다.
난 욕 먹고 연금개혁했는데…文, 손 하나 까딱 안 하더라 [박근혜 회고록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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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대통령으로서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했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사드(THAAD) 배치처럼 갑작스레 떠오른 현안도 있었지만, 전임 정부들이 손대지 않고 뒤로 떠넘긴 ‘인기 없는’ 정책들을 떠맡게 된 것도 적지 않았다. 공무원 연금개혁이 그 대표적인 사례였다.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전문가들을 만나 시급하고 중요한 국정 과제에 대해 논의했던 나는 연금 문제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었다. 이미 한나라당 대표 시절이던 2006년 1월 26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공무원 연금과 군인 연금도 국민 혈세를 부담하며 언제까지나 개혁을 미룰 순 없다”고 강조한 적이 있다. 그래서 대통령에 취임할 무렵 연금 개혁만큼은 반드시 해놓고 퇴임하겠다고 결심한 상태였다.
2013년 9월 26일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열린 임시국무회의에서 기초연금 문제에 대한 해결을 강조했다. 중앙포토
연금 제도는 출발부터 적자가 예정되어 있었다. 도입 당시 정부는 가입자를 늘리기 위해 적게 내고 많이 받을 수 있도록 설계했기 때문이다. 가입자 수를 확보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적자 폭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여기에 더불어 고령화도 무섭게 가속화했다. 과거엔 청년 두 사람이 노인 1명을 부양하는 수준이었다면, 얼마 후엔 청년 한 사람이 노인 3~4명을 부양하는 시대가 예정되어 있다.
하지만 연금의 속성상 일단 주기 시작하면 이것을 도로 빼앗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매번 연금 개혁을 꺼내 들었던 역대 정부는 결국 근본적인 수술 대신 세금을 더 걷어 적자를 메우는 쪽으로 물러서곤 했다. 포퓰리즘이 이래서 무섭다는 것이다. 이렇게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땜질 처방이 계속되다 보니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돌리기나 다름없었다.
얼마 전 프랑스에서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정년을 62세에서 64세로 2년 늦춰서 연금 수령 시점을 늦추는 법안을 추진하자 프랑스 전역에서 시위가 열리고 폭력사태가 발생하는 등 난리가 난 적이 있다. 어느 나라든지 가장 추진하기 어려운 정책 중 하나가 연금개혁이다.
연금 개혁 손 안 댔다면 가슴 치며 후회했을 것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1주년인 2014년 2월 25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경제혁신 3개년 계획 관련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중앙포토
늦으면 늦어질수록 개혁하기가 힘들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나는 2014년 2월 집권 2년 차를 맞아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공무원·군인·사학 등 3대 연금개혁 계획을 핵심 과제로 꺼냈다. 당정청은 우선 공무원연금을 ‘더 내고 덜 받는’ 방식으로 손질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