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의 일독이호색삼음주(一讀二好色三飮酒)
석야, 신 웅 순(시조시인․평론가․서예가, 중부대교수)
김정희의 ‘일독이호색삼음주’ , 개인소장
임어당이 극찬한 최고의 잠언집 장조의 『유몽영』에 이런 글귀가 있다.
젊은 시절의 독서는 틈 사이로 달을 엿보는 것과 같고
중년의 독서는 뜰 가운데서 달을 바라보는 것과 같으며
노년의 독서는 누각 위에서 달구경하는 것과 같다.
모두 살아온 경륜의 얕고 깊음에 따라
얻는 바도 얕고 깊게 될 뿐이다.
독서의 경지도 경륜이라 했다. 독서의 중요함을 말해주는 경구가 아닐 수 없다. 추사의 ‘일독이호색삼음주’도 장조가 펴낸 『소대총서』별집 중「오어」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 글귀는 추사에게는 어울리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솔직한 그의 인간적인 이면 모습을 볼 수 있어 그가 취미도 즐길 줄 아는 고지식한 선비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일독이호색삼음주’는 추사의 만년, 칠십이구초당시절의 글씨이다. 이 시절은 제주도 유배에서 풀려난 63세부터 세상을 떠나기 71세까지, 8년간이다.
유홍준은 이 시기를 전반과 후반으로 나누어 전반기를 ‘강상의 칠십이구초당’이라 명명하고 이 시기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주도에서 돌아온 뒤의 2년 반과 북청 유배 1년간은 완당 일생의 편년 중 거의 공백으로 비어 있고 조사된 것도 알려진 것도 거의 없다. 심지어는 어디서 살았는지조차 확인된 게 없다.
그러나 완당은 이 시절에 수많은 명작을 남긴다. 완당 글씨 중 최고의 명작의 하나로 꼽히는 「잔서완석루」, 거의 신품의 경지로 말해지는「불이선란」등이 모두 이 시절의 소산이다. 추사체 가 제주도에서 성립되었다는 것이 정설이지만 정작 추사체다운 본격적인 작품이 구사된 것은 오 히려 이때부터이다.
그 뿐만이 아니라 이 시절의 글씨는 훗날 과천 글씨와 구별되는 뚜렷한 특징이 있으며 물리적 인 기간으로 따져도 완당 만년기의 절반이다.
‘일독이호색삼음주’도 완성된 추사체 시절의 작품「잔서완석루」,「불이선란」시대의 작품이다. ‘일독이호색삼음주’는 21.0×73.0㎝ 크기의 서첩 글씨와 나무 현판으로 되어있다.
추사는 만년의 건강을 지켜준 것으로 공부하는 행복, 제자를 가르치는 즐거움, 예술을 하는 열정을 들었다. 그래도 그에게 제일의 취미는 역시 독서였다.
'일독이호색삼음주‘, ’첫째는 독서, 둘째는 섹스, 셋째는 술‘이라는 글귀에서도 추사는 독서가 제일의 취미라고 한 것을 보면 그의 삶과 학문, 예술의 깊이가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과천 시절의 추사의 자작시이다.
평생을 버티고 있던 힘이
한 번의 잘못을 이기지 못했네
세상살이 삼십년에
공부한다는 것이 복임을 알았네
완당은 이 시의 끝에 특히 셋째, 넷째 구절은 동학들에게 꼭 전하고 싶다고 별도로 부기까지 달아놓았다.(유홍준의 김정희 완당평전,397쪽) 그가 진정한 예술가이면서 학자라는 것을 이 시가 증명해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유홍준의 완당 평전에는 추사의 잡기와 취미로 장기와 바둑 그리고 술을 들었다.
추사의 필사본인 가장 오래된 박보 장기책, 바둑에 관한 추사의 세편의 시, 연경에 갔을 때 조옥숙이 쓴 “추사는 술도 잘하고…‘라는 구절을 들었다. 그런데 술은 한때는 즐기다가 나중에 끊었다고 한다.(위의 책,394-395쪽)
뭐니뭐니해도 그의 진짜 취미는 독서였다.
두 줄로 나란히 쓴 이 ‘일독이호색삼음주’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뭉클하다. 이 글씨는 획이 전부 직선으로 되어 있다. 이 맛은 무엇일까. 직선으로 만든 단순화한 그림 글씨 같다. 추상도 구상도 아닌, ‘예서 글씨인 그 무엇’ 그 무엇이 무엇인가.
‘혼자 독서하고, 둘이 사랑을 하고 셋이 음주를 하고’ 이런 모양의 글씨라고 말하면 어떨지모르겠다.
-주간한국문학신문,2015.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