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김민호 목사
주일설교.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장 20절)
----------------------------------------------------------------------------------------
지난 해 9월 중순 경에 한국의 침례교회 중 가장 큰 교회일 뿐 아니라, 국내 교회 중에서도 손가락에 꼽힐 정도의 대형교회인 지구촌 교회의 진재혁 담임목사가 케냐 선교사로 가기시기로 하시고 담임목사직을 사임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 결정에 놀라워하고 아쉬워하면서도, 주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는 모습에 많은 응원과 격려를 보냈습니다. 최근에 소식을 보니 후임목사님이 정해졌다고 합니다.
잠시 케냐에서 안식 기간을 지낸 진재혁 목사는 지난 3월 31일 주일에 돌아와서 설교하면서, 케냐 현지인들의 인사법을 소개했습니다. 그들은 인사 할 때 자기 이름을 말하고 나서, “I'm born again, I'm christian”이라는 말을 덧붙인다고 합니다. 케냐인들이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고백하는 모습이 귀하고 아름다웠다고 소개 하면서도,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런 고백과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삶 속에서는 그런 모습이 잘 나타나지 않는 상황과 형편을 보면서, 말씀과 행동하는 삶이 괴리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한국교회의 성도들, 곧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과연 우리의 진정한 삶의 주인 되시는가?” 라는 물음도 덧붙였습니다.
“예수님이 과연 우리의(나의) 진정한 삶의 주인 되시는가?” 이 물음에 대해 고민 할 때 가장 많이 떠올리는 구절이 갈라디아서 2장 20절 일 것입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된 나의 정체성, 나의 신분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밝혀 주면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인이 된 사람들이 걸어가야 할 삶의 방향을 뚜렷하게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사순절을 보내는 이 기간에, 믿음과 구원, 그리고 예수님과의 동행하는 삶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나의 신앙, 나의 본 모습은 언제 가장 잘 드러나는지 아십니까? 혼자 있을 때입니다. 혼자 있을 때는 아무도 나를 보지 않기 때문에 맘대로 할 수 있습니다. 혼자 있으니 조용한 가운데 하나님과 교제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기도에 열심을 내거나, 찬양하거나,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음란물을 보고, 남을 속일 생각, 나쁜 짓을 계획하고, 돈을 왕창 벌어서 펑펑 쓰면서 할 것 다해 보고 살아가는 허황된 공상을 하고, 미디어에 빠져 시간을 허비하고, 먹고 마시는 유흥을 즐길 거리가 없나, 이런 고민 아닌 고민을 하기가 쉽습니다.
혼자 있을 때는 자신의 내면에 잠재하고 있었던, 내가 가장 추구하며 살아가는 가치적인 것들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입니다. 혼자 있을 때 무슨 행동을 하며, 어떤 생각을 하면서 지내는가가, 곧 나의 믿음의 척도입니다. 우리 주님도 우리가 혼자 있을 때의 모습을 보시고, 우리 믿음을 평가 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
너무나도 중요한 말씀이기 때문에 다시 한 번 강조해서 말씀드립니다. 나의 지금의 신앙 수준, 영성 수준은 교회 안에서 겸손하고, 예의 바르고, 모범적인 것으로 평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혼자 있을 때, ① 나의 구원자요, 나의 주인이라고 고백한 우리 주님과 얼마만큼 영적인 교제 안에서 관계를 맺어 가는가 / ② 그분이 주시는 의와 거룩함을 채움으로 죄와 자아를 얼마만큼 걷어내느냐 / ③ 말씀이 주시는 능력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그 무엇보다도 갈급하게 요구하느냐 / ④ 내 믿음이 연약하고 작은 것을 슬퍼하면서, 어떻게 하면 믿음으로 완전한 구원에 이를 수 있는가를 고민하고 또 고민 하는가 / ⑤ 자녀들이 예수님을 깊이 만나게 해 달라고 눈물로 기도하는가 / ⑥ 믿지 않는 우리 가족들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간절하게 간구하는가.... 이런 엄청난 영적인 주제들을 가지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야 진정한 믿음을 가지고, 구원받는 길을 당당하게 걸어갈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을까요? 구원을 베푸시기 위해서이시죠.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하지만 구원만을 위해서만이 아닙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장 10절을 읽어 드립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아멘.
예수님은 우리가 죽든지 살든지, 함께 살고 싶어서, 함께 대화 하고, 상담하시고, 위로해주시고, 능력주시고, 하늘나라로 무사히 데리고 가시고 싶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말씀입니다. 함께 하시고 싶어서 죽으셨다는 말씀이, 너무나도 기가막하고, 눈물 나는 말씀이 아닙니까?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죽기까지 하셨는데, 그런데 왜 대다수의 신앙인들은 예수님을 믿는 다고 하면서도 이렇게 교회 안에서와 교회 밖에서의 이중적인 태도가 도무지 고쳐지지 않는 것일까요? 어째서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불손하고 불량한 언행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일까요? 믿기 전이나 후나 그리스도인다운 칭찬이나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도 올바른 신앙생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 것일까요?
오늘 갈라디아서 말씀이 이러한 의문에 대한 답변입니다. 결론부터 말씀 드리면, 두 가지 문제 때문입니다. 첫째는, 우리가 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더 솔직하게는, 죽는 것을 한사코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사도 바울은 이 말씀을 자신의 믿음으로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정말 죽은 자처럼 살아갔습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죽으셨기 때문에 다시 영광의 모습으로 부활 하셨듯이, 우리가 십자가에서 죄와 불순종에 찌들어져 있는 나의 옛 자아, 내 멋대로 말하고, 내 마음대로 행동하려고 하는, 하늘을 찌를 듯한 교만하기 짝이 없는 나의 옛 자아를 못 박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 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만 십자가에 달리시고, 나는 여전히 나대로 살아간다면, 예수님은 나의 구원자로 역사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시간에 진지하게 물어 보겠습니다. 여러분의 옛 자아는 십자가에서 못 박히셨습니까? 아니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는 그 사실만 전해 들으셨습니까? 우리는 이 답변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냥 슬쩍 짚고 넘어갈 문제가 아닙니다. 사도 바울과 같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나의 과거는 십자가에서 완전하게 죽었습니다!” 라고 선언해야 합니다. 이 선언은 외침이 아니라 참회와 돌이킴을 결단하는 진실 된 믿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고백의 시작이 믿음의 출발선입니다. 이 고백이 토대가 되지 않으면, 믿음은 한 발자국도 성장의 길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이 시간에 참회하고 용서를 구하는 심정으로, 그리고 내 양심에 대고 진실 되고, 참으로 진실 되게 한 번 고백해보겠습니다. 여러분 가슴에 손을 얹으시고, 제가 먼저 하면 큰 소리로 고백하겠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나의 과거는 십자가에서 완전하게 죽었습니다!” 아멘. 이 두 마디 믿음의 선언을 잊지 마시고, 믿음이 약해 질 때마다 반복하십시오. 오늘 주님 앞에 믿음으로 선언 하셨으니, 부드럽고 겸손한 말과 거룩한 행동으로, 교회 안과 교회 밖에서, 칭찬받고 인정받는 믿음의 그리스도인들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혼자서 살아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앞서 죽었다는 선언을 했는데, 진짜 죽을 수만 있다면, 이제는 더 이상 홀로 살아가지 않습니다.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아멘.
죽었기 때문에 나온 결과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으로 귀결이 되었습니다. 죽지 않으면 나 혼자인데, 죽었더니, 예수님과 나와 함께 둘이서 살아가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죽어야 살고, 죽어야 둘이 함께 할 수 있다니, 참, 기독교라는 종교는 반전 또 반전의 종교입니다.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오직 이라는 말씀을 유의해서 보아야 합니다. 왜 오직 일까요? 죽은 사람은 말도 없고 움직임도 없습니다. 앞서 나는 죽었다고 선언 했으면, 나는 말도 할 수도 없고, 몸도 움직일 수 없는 진짜 죽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앞으로 나를 대신 하시는 분이 오직, 오직,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셔야 합니다. 이 말의 뜻은, 나는 죽었고, 내 안에 예수님이 살고 계시기 때문에, 내가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곧 예수님에 대한 평가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내가 남을 욕하거나 험담을 하면, 그 더러운 말들이 곧 예수님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남에게 사기를 치고 거짓을 말하면 예수님이 곧 범죄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내가 유흥과 도박에 빠져 흥청망청 살아가면 그 향락이 곧 예수님을 품위 없는 분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내가 예배 중심, 교회 중심, 복음 전도 중심의 삶을 살아가지 못하면 곧 예수님이 거룩하심을 훼손하는 것이 됩니다.
매사에 나의 말과 행동이 곧 내 안에 사시는 예수님을 욕되게 할 수도 있고, 높여드릴 수도 있습니다. 얼마나 말조심, 행동 조심을 하고 살아야 하는지가,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 말씀에 함축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짓게 되는 모든 죄는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를 의식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무시하기 때문에 발생을 합니다.
선한목자교회의 유기성 목사는 지난 2월 19일 ‘세상에 한 눈 팔지 않는 비밀’이라는 제목의 글을 SNS에 게재했습니다. 이 글은 청년들이 은밀한 죄에 빠져 세상에 기웃거리는 것을 경계 하는 권면의 글이지만, 모든 신앙인들에게 적용되는 권면이라고 생각하여 소개를 합니다.
“우리의 문제는 우리 안에 주님이 임하신(사시는) 것이 실재라는 믿음이 없었던 것이다. 주님은 막연하고 세상은 실재였기 때문에, 주님과 세상을 저울질하고 산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주님이 눈에 보이듯 믿어지는 것은 정말 꿈같은 일이다. 우리는 정말 악하고 더러운데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주님이 우리 안에 오셨다. 우리가 할 일은 이 놀라운 사실을 정말 믿는 것뿐이고, ‘왕이신 주님이 내 안에 계시다!’라는 것을 믿는 것뿐이다. 이것이 모든 문제의 답”이라며 말씀 하면서, “정말 사랑에 빠져서 그 사람과 함께 걷는 사람은 결코 한 눈 팔거나 곁눈질 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면서, 청년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사랑하고 동행하기를 권면했습니다. 저도 이 글을 읽고 매우 감동 받고, 격하게 공감을 했습니다.
우리 육체가 짓는 죄는 모조리 죽게 하시고, 그 안에 성결의 영으로 함께하시는 우리 주님과 깊은 사랑에 빠지지 않고서는, “오직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를 경험해 나갈 수 없습니다. 나는 죽었고,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는 고백이 진심이었다면, 이제는 그리스도인답게 세상에서 살아내야 합니다.
오후 찬양예배에 많이 부르는 찬양 중에, “주님의 뜻대로 살아낸 만큼 자유를 얻으리 살아낸 만큼 / 예수의 맘으로 사랑한 만큼 평안을 얻으리 사랑한 만큼”(마커스 살아낸 만큼, 사랑한 만큼)이라는 곡을 기억 하실 겁니다. 그리스도인답게 세상에서 살아낸 만큼, 우리의 영혼은 자유와 평안을 얻게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하반절이 우리가 앞으로 이렇게 살겠다는 결심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여기서부터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아멘.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한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자기 자신을 아낌없이 버리셨습니다. 나를 위해 피 흘려 죽으신 우리 주님 앞에 너무나도 고맙고 감사하고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양심에 화인 맞은 가짜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면, 존귀한 타이틀인 그리스도인답게 당당하게 살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 뿐 입니다. 돈과 세상을 더 이상 쫓아가지 마시고,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오직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를 자랑스럽게 드러내기 위해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데 전심전력을 해야 합니다. 유기성 목사님 말씀처럼, 정말 “내 안에 사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뿐, 믿음 이외에는 정답이 있을 수 없습니다.
4월 한 달 동안은 기도 하실 때 세 가지를 꼭 고백하십시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매일 매일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여 주옵소서! /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아 역사하여 주옵소서! / 내가 살아가는 동안, 오직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도록 성령 하나님 동행하여 주옵소서!” 이 기도 위에,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이 내 신앙생활의 이정표가 되어, 오직 예수, 오직 믿음의 길을 걸어가시는 00교회 모든 성도와 후손들의 인생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 오직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여기고, 오직 믿음으로, 세상 바라보지 않고, 하늘 영광, 부활 소망으로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오직 믿음의 성도 안에 살아 역사 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