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독교계 지도자들이 지난 7월 22일 노르웨이에서 발생한 기독교 근본주의자의 총기테러라는 충격적 사건에 기독교와 무관하다는 점을 잇따라 강조하고 나서고 있다.
<크리스천투데이> 등 기독교 언론들은 최근 노르웨이 무차별 총격 테러 사건과 관련, 한국 기독교계 지도자들이 충격과 애도를 표함과 동시에 “이는 기독교 정신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고 보도하고 있다.
기독교계가 이렇게 “노르웨이 테러와 기독교 정신과의 관련 없음”을 강조하고 나선 것은 ‘이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안데르스 베링 브레이빅은 극우 민족주의자며, 특히 자신을 기독교 근본주의자라고 밝힌 것’에 대한 한국 내에서의 후폭풍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기독교 1등 매체를 표방하고 있는 <크리스천투데이>는 이번 총기 테러와 관련해 기독교계 지도자들의 입장을 매우 구체적으로 전하고 있다.
기독교 근본주의자에 의해 노르웨이에서 발생한 총격테로로 희생된 사람들의 명복을 비는 꽃다발들이 사고 인근 바닷가를 가득 메우고 있다. 사진=가디언 지에서 캡쳐.
한기총의 총무인 김운태 목사는 이에 대해 “기독교는 남을 배려하고 봉사하며, 섬기고 사랑을 베푸는 것”이라며 “테러행위는 기독교 정신과 전혀 연관성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언론들이 이번 사건을 보도함에 있어 “(테러는) 이기주의와 민족주의, 배타주의적인 사상에서 나온 것이지 기독교 사상과는 전혀 관계없다는 것을 분명히 했으면 한다”고 요청하기도 했다.
한국복음주의협의회 김명혁 목사는 “이번 사건 용의자가 ‘극우 민족주의자’, ‘기독교 근본주의자’, ‘반(反)다문화주의자’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한국 기독교계 역시 이를 경계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 목사는 먼저 민족주의에 대해 “우리나라에서도 은근히 정당화하고 미화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승훈·조만식·주기철 등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이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 시대는 민족주의가 아닌 세계주의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고, 근본주의와 반(反)다문화주의에 대해서는 “근본주의 자체를 정죄할 필요는 없지만, 배타적 근본주의는 문제다. 타종교와 타문화도 이해하고 협력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기독교학술원장 김영한 교수는 “(이번 테러가) 분명히 기독교적인 정신에 맞지 않는 것”이라며 “근본주의는 기독교의 근본 진리를 수호하자는 취지에서 시작했지만, 1930년 이래로 미국의 근본주의자들은 그러한 차원에서 벗어나 사회에 대해서 적대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일부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폭력을 통해 자기 견해를 표명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어떤 형태의 폭력도 거부하는 것이 우리 개혁주의 정신”이라며 “복음의 핵심은 예수의 십자가이고, 십자가는 증오와 폭력을 사랑과 희생으로 이겨낸 사건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한국교회언론회 대변인 이억주 목사는 “기독교는 남을 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남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기독교 정신”이라며 “이유가 뭐라고 해도 남의 생명을 빼앗는 짓을 했다면, 그가 아무리 스스로 기독교인이라 하더라도 이름만 기독교일 뿐”이라고 밝혔다. 이 목사는 “근본주의란 예수님의 근본정신을 지키는 것인데, 예수님의 근본정신은 상대가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도 내어주는 것”이라며 “이번 사건을 두고 기독교가 폭력적 종교라고 한다면, 그것은 기독교를 모함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총신대 안인섭 교수(교회사)는 “기독교는 초대교회 때부터 이미 많은 민족주의와 갈등 관계에 있었다. 당시 유대인들과의 할례에 대한 논쟁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독교는 배타적인 민족주의와 함께 갈 수 없다”며 “이것이 성경의 정신이다. 하나님은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의 주이시고 그 사이의 막힌 담을 허시는 분이다. 기독교가 극우 민족주의와 연결됐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성취해 가시는 방법은 섬김과 희생이지 결코 폭력과 테러가 아니다”며 “만약 테러 용의자가 자신을 기독교 근본주의자로 공공연히 밝힌 가운데 이런 일을 자행했다면 이는 성경과 복음에 대한 이해가 매우 부족한 데서 온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안 교수는 ‘근본주의자’라는 말 자체가 정형화된 의미를 발견하기 어려운 애매한 단어이며, 대부분의 건강한 기독교 그룹들은 이 단어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표현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근본주의는 1900년대 성경 해석의 자유주의와 교회의 세속화 현상에 대한 저항으로, 기독교 근본 교리를 지키자는 학문적 운동의 하나였다. 지금의 이슬람 근본주의처럼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뜻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며 “이번 테러에 대한 정확한 의도가 아직 밝혀지지 않은 만큼, 기독교 신앙이 과연 용의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신중히 생각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만석 목사(한국이란인교회 담임)는 “근본주의라는 것은 교리를 따라 그대로 행하는 것을 말하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단 한 번도 생각이 다른 사람은 죽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으며 오히려 원수를 사랑하라고 그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셨다”며 “용의자는 이런 가르침과 정반대의 일을 했고 따라서 기독교 근본주의자라고 볼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또한 용의자가 스스로를 기독교 근본주의자로 밝힌 데 대해서 “정말 신앙이 좋은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철저히 따라 살고 싶다고 하지 스스로를 근본주의자라고는 하지 않는다”며 “이는 말 끼워 맞추기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한편, 이 목사는 반이슬람 정서를 갖고 있었던 테러 용의자가 기독교 근본주의자라는 보도가 무분별하게 확산됨으로써 ‘기독교는 가해자, 이슬람은 피해자’로 부각될 수 있다며 우려를 밝히기도 했다.
교회언론회는 논평에서 “기독교의 교리는 폭력을 조장하거나 폭력적인 방법으로 타인의 생명을 빼앗으라는 가르침이 전혀 없다. 예수님은 원수라도 70번씩 7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고,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도 내어주라고 하셨으며, 십자가에서 자신을 못 박은 사람들을 용서해 달라는 기도도 잊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남을 해하는 종교가 아니며, 오히려 남을 위해 희생하고 사랑하고 봉사하는 것을 덕목으로 삼는 종교”라면서 “이번 노르웨이에서의 사건과 같은 비극적인 사건이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것이며, 이를 범인의 말만 인용하여 기독교의 근본주의와 결부시켜 기독교를 폭력적 종교로 비난하는 것도 옳지 못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교회언론회는 특히 “그의 살인 행위는 기독교의 종교적 가르침보다는 오히려 극우 민족주의적이고, 자신의 정치적인 신념에 따른 악마적인 행위로 규탄 받아 마땅하며, 따라서 어떠한 폭력도 인류 공공의 적으로 규정한다”고 밝혀 이번 테러가 기독교의 종교적 가르침이 아닌 극우 민족주의에 의한 것임을 강조했다.
테러가 발생한 곳을 가까스로 피해나온 생존자들.
노르웨이 총기테러에 대한 기독교계의 반응과 주장을 장황하게 인용해보았다. 모처럼 기독교계가 기독교의 정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는 듯한 움직임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아마도 기독교계의 이런 움직임은 기독교 근본주의자의 끔찍한 총기테러 사건의 불똥이 ‘특정종교의 공격적이고 배타적인 행동’으로 인해 종교 간의 갈등이 거의 임계점에 도달한 한국사회에서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 여론으로 확산될 것에 대한 우려가 그 배경일 것으로 분석된다.
이같은 기독교계의 발언과 입장을 지켜보며, 그들의 발언이 제발 진정성을 가진 발언이기를 기대한다. 이번 테러로 입을지도 모를 피해(이미지 실추 등)를 최소화하기 위한 제스처가 아니기를 간곡하게 바란다. 이 사태의 책임을 기독교 가르침을 잘못 이해한 젊은이의 빗나간 행동으로 보지 않고, 극우 민족주의자의 소행으로 몰아가려는 조짐이 보이는 것은 그래서 안타까운 일이다.
한국 기독교계의 이번 기독교 근본주의자에 의한 테러 사태와 관련된 발언이 국민과 이웃종교계의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이 땅에서 기독교를 믿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겪고 있는 유무형의 불편함에 대한 진솔한 고민과 반성, 그리고 그 고민과 반성을 뒷받침할 구체적인 개선의 움직임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