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자따삿뚜의 참회 (70)
“어쩜, 이렇게 사랑스러울까.”
궁전 뜰에 화사한 웃음꽃이 만발했다. 빔비사라왕의 폐위를 둘러싸고 서로를 의심하고 공격했던 친족들이 새로운 왕자의 탄생을 계기로 모처럼 한자리에 모였다.
“아버지를 닮아 인물이 훤하군요.”
묵은 감정을 털어내려고 애써 너스레를 떨며 수선을 피웠다. 한껏 과장된 말들로 축하하는 사람들 틈에서 한 발 물러난 이가 있었다. 웨데히였다. 누구보다 기뻐해야 할 할머니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손자를 바라보자 아자따삿뚜는 속이 상했다.
그러나 웨데히의 속내를 모르는 바 아니었다.
‘정치는 비정하고 냉혹한 것이다. 어머니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두 마리 숫사자가 한 숲을 지배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이유야 어찌 되었건 아자따삿뚜는 부왕을 폐위시키고, 감옥에 유폐시키고, 그것도 모자라 물과 음식을 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남편을 살려보겠다고 꿀에 갠 곡물을 몸에 바르고 감옥을 드나드는 훼데히의 발걸음마저 막고, 찌는 더위 속에서 목마름과 굶주림에 지쳐 죽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자신이었던 것이다. 아자따삿뚜는 긴 한숨을 쉬었다.
‘ 이 깊은 골을 무엇으로 메워야 하나?’
아자따삿뚜는 왕비의 품에서 칭얼거리는 아이를 건네받았다. 그리고 귀여운 손자를 받아주길, 헤맑은 손자의 얼굴에서 지난 일을 잊어주길 고대하며 웨데히에게 다가갔다. 웨데히가 선뜻 손자를 받아안지 않자 아자따삿뚜는 아이를 얼렸다.
“어쩜, 이리 예쁠까요?”
“사랑스럽니?”
“ 네, 이보다 사랑스러운 아이는 이 세상에 없을 거예요.”
오랜만의 대화는 짧게 끝났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답답함을 깨트려보려는 심사로 아자따삿뚜가 다시 말을 꺼냈다.
“어머니, 제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도 저처럼 기뻐하셨나요?”
웨데히는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친족들의 떠들썩한 웃음이 멈추고 무거운 침묵이 오래도록 궁전을 휘감았다. 눈물을 훔친 웨데히가 애써 웃음 지었다.
“ 네 아버지보다 더 너를 사랑한 사람이 어디 있겠니? 네 엄지손가락을 보거라.”
“엄지손가락을요?”
“그래, 큰 흉터가 있지?”
“예, 이 흉터는 언제 생겼죠?”
“네가 태어나고 돌이 되기 전 일이란다. 엄지손가락에 큰 종기가 생겼지. 생 손을 앓던 무렵부터 경기를 하며 너는 잠을 이루지 못했단다. 의사란 의사는 다 불렀지만 이 넓은 마가다국에서 까무러치는 너의 울음을 그치게 할 사람은 없었단다. 그 울음을 그치게 한 사람이 바로 네 아버지셨다. 퉁퉁 부어오른 손가락을 네 아버지가 입으로 빨아주자 거짓말처럼 울음을 그쳤지....
울음을 멈추고 방긋거리는 네 모습이 좋아 아버지는 입을 떼지 않고 밤을 새우셨단다.
다음 날 아침, 뼛속까지 배었던 고름이 터졌지. 입을 떼면 행여 또 울까 싶어 네 아버지는 그 고름을 모두 삼키셨단다.“
“어머니, 제가 잘못했습니다.”
주저앉아 통곡하는 아들을 늙은 웨데히가 다가가 품에 안았다.
그날 이후, 아자따삿뚜는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눈이 감길만하면 온몸을 송곳으로 찌르는 통증이 기다렸다는 듯 엄습했다.
나날이 신경이 날카로워져 만사에 짜증이 났고 사소한 일에도 분노를 참지 못했다.
지와까가 백방으로 약을 써보았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지와까도 치료를 포기하였다.
“저는 대왕의 병을 고칠 수 없습니다.”
“마가다국 최고의 의사가 치료하지 못한다면 낫지 못할 병이구먼”
“대왕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사람이 한 분 있습니다.”
“그가 누군가?”
“세존이십니다.”
아자따삿뚜왕은 고개를 돌렸다. 아버지 빔비사라왕의 더없는 벗으로서 자신에게도 위협적 존재였던 부처님이었다. 그래서 한때 데와닷따와 모의해 살해하려고까지 했던 것이다.
‘어떻게 세존에게 찾아가 고통을 호소하고 머리를 숙인단 말인가’
두려운 밤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아자따삿뚜왕은 수많은 미녀들을 모아 숲과 노래로 밤을 새우기도 하고, 용감한 장군들을 불러 정벌 계획을 세우기도 하고, 혹 권신들이 모의를 획책하는 것은 아닌지 염탐꾼들을 풀어 정보를 수집하기도 하고, 그것도 지치면 종교지도자들을 불러 만나보았지만 마음속 불안과 답답함은 조금도 가시지 않았다.
아자따삿뚜왕의 얼굴에는 나날이 그늘이 짙어갔다.
도톰하던 눈두덩이 내려앉고 횃불처럼 빛나던 눈동자는 생기를 잃었다.
그러던 어느 보름이었다. 정기적인 조례를 위해 화려한 복식을 갖춰 입은 신하들이 장신구를 착용하고 발아래 머리를 조아렸다.
난간으로 쏟아지는 달빛을 퀭한 눈동자로 바라보던 아자따삿뚜왕이 넋두리처럼 중얼거렸다.
“오늘 밤은 청명하여 낮과 다름없구나, 이런 날 뭘 하면 이 가슴이 시원해질까?”
서로 눈치만 살필 뿐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처음 듣는 질문도 아니었고, 나름 권해본 일마다 왕의 불쾌함만 더했기 때문이었다. 공연히 나섰다 도리어 대왕의 미움을 살까 다들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지와까가 앞으로 나섰다.
“대왕이여, 오늘 밤은 청명하여 낮과 다름없습니다. 이런 밤은 세존을 찾아뵙기에 더없이 좋은 날입니다.”
“세존....”
눈을 감고 한참을 생각에 잠겼던 아자따삿뚜왕이 입을 열었다.
“지금 어디에 계시는가?”
“저의 망고동산에 계십니다. 세존을 만나보시면 대왕의 답답한가슴이 시원해질 것입니다.”
“가자, 그대의 망고동산으로 .”
오백 마리 하얀 코끼리에 일산과 비단 휘장을 드리웠다. 상아를 황금으로 장식한 왕의 코끼리에는 마가다국의 휘장이 펄럭였다. 왕과 부인들을 태운 코끼리 행렬 주위는 번쩍이는 창으로 무장한 군사들이 에워쌌고,검은 말을 탄 수많은 신하들이 왕 뒤를 뒤따랐다.
성문을 나서자 밝은 달빛에도 숲 속은 어두웠다. 아자따삿뚜왕은 어둠이 두려웠다. 흔들리는 횃불의 물결처럼 그의 마음도 따라 흔들렸다.
‘지와까는 선왕의 주치의로 오랜 세월 총애를 받은 신하가 아닌가? 혹 반역을 꾀할 것일지도 몰라’
아자따삿뚜왕은 손을 들어 행렬을 멈췄다. 지와까가 다가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아자따삿뚜왕은 매서운 눈매로 지와까를 노려보았다.
“사실대로 말하라. 감히 날 함정에 빠뜨리려는 것이냐?”
“대왕이여, 제가 어찌 대왕을 속이겠습니까.”
지와까의 진실한 눈빛에 아자따삿뚜는 의심을 거두고 다시 길을 나섰다. 숲은 여전히 어둡고 정적이 감돌았다.
1,250명의 비구는커녕 사슴 한 마리도 살지 않는 죽의 숲 같았다.
‘오랜 벗을 죽이고 자신마저 살해하려 한 나에게 세존이 원한을 품고 있을지도 몰라....’
문득 숲 속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왕은 급히 행렬을 멈추고 칼을 뽑아 들었다.
“숲을 뒤져라.”
용감한 친위대가 순식간에 숲으로 흩어졌다. 아자따삿뚜는 지와까의 목에 칼날을 겨눴다.
“실토하라, 숲속에 군사와 비구들을 매복시키고 날 유인한 것이지.”
지와까는 애원하였다.
“대왕이여, 어찌 감히 대왕을 속이겠습니까.”
한참 지난 후 , 친위대장이 돌아왔다.
“숲 속에는 매복한 흔적이 없습니다.”
아자따삿뚜왕은 힘없이 칼을 거뒀다. 왕 일행은 다시 앞으로 나갔다. 멀리 동산의 정문이 보였다. 행렬이 멈췄다. 두려움과 의심을 거두지 못한 아자따삿뚜왕의 마음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지와까, 오늘은 그만 돌아가자.”
지와까는 왕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 용기를 북동았다.
“대왕이여, 더 나아가소서, 반드시 행복을 얻고 경사를 맞이할 것입니다.”
머뭇거리는 아자따삿뚜왕을 대신해 지와까가 명령을 내렸다.
“모두 전진하라.”
곧 동산 관리인이 달려나왔다. 코끼리에서 내린 왕은 신하들과 함께 동산으로 들어섰다.
동산은 말끔하고 아담했다. 아자따삿뚜왕은 지와까의 안내를 받으며 부처님이 계시는 강당으로 향했다. 두발을 깨끗이 씻고 강당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는 순간, 오랜 시간 몸과 마음을 짓눌렀던 의심과 두려움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넓은 강당 사자좌에 앉은 부처님은 작은 등잔 빛에도 황금의 산처럼 찬란하고, 주위를 에어싼 1,250명의비구는 숲의 어둠보다 고요하고 얼굴은 달빛보다 맑았다. 머리털이 곤두설 만큼 거룩하고 아름다운 풍경에 왕은 희열을 주체할 수 없었다. 아자따삿뚜왕의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 우리 왕자도 이처럼 평온하고 지혜로운 눈빛이기를...”
강당에 메아리가 울렸다.
높은 하늘에서 떨어진 빗방울
그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듯
부모는 좋고 유익한 것 있으면
사랑하는 자식을 먼저 떠올리는 법
부처님의 맑은 목소리에는 한 점 질책도 원망도 묻어 있지 않았다.
“ 잘 오셨습니다. 대왕이여, 가까이 오십시오.”
평온한 얼굴로 맞이하는 부처님에게 아자따삿뚜왕은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질문을 진솔하게 여쭈었다.
수행자들은 세상에 빌붙어 사는 무익한 존재들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던 아자따삿뚜왕에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나의 가르침에 들어와 부지런히 노력하고, 가르침을 마음에 새겨 고요한 곳에서 즐거워하며 방일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뛰어난 지혜를 얻게 되고 나아가 모든 번민과 고뇌가 사라진 지혜를 얻게 됩니다. 대왕이여, 나의 가르침을 따르는 이는 현생에 이와 같은 이익을 얻습니다.”
손에 잡히지 않는 관념들로 화려한 궁전을 짓고 그 속에 앉아 목소리를 높이던 다른 수행자들과는 전혀 달랐다. 부처님의 말씀은 지금 이 자리에서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지혜들이었다. 아자따삿뚜왕은 공손하게 예의를 갖웠다. 그런 아자따삿뚜왕에게 부처님께서는 차문하게 말씀하셨다. 선하고 유익한 결과를 가져오는 마음가짐과 행동을 부지런히 실천하고, 악하고 무익한 결과를 가져오는 마음가짐과 행동은 삼가라고 일러주셨다. 자신의 지난 과오를 거울처럼 비춰주는 말씀이셨다. 아자따삿뚜왕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두 발에 머리를 조아렷다.
“세존이시여, 저의 참회를 받아주소서. 선왕께선 독단과 편견 없이 나라를 다스린 성군이셨습니다. 그런 아버지를 다른 사람도 아닌 제가 욕심에 눈이 멀어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세존이시여, 어리석고 철없던 저의 잘못을 용서하소서.“
“그대는 진정 어리석고 철이 없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눈길을 거두고 먼 허공을 바라보셨다. 가물거는 촛불아래에서 아자따삿뚜왕은 흐느겼다. 그의 흐느낌이 잦아들 무렵 세존께서 다시 따뜻한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잘못을 잘못인 줄 알고 뉘우치는 이는 현명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스스로 이익을 얻고 편안할 것입니다. 대왕이여, 그대의 잘못을 용서합니다.”
눈물로 참회하는 아자따삿뚜왕에게 부처님은 가르침을 베풀어 그를 이롭게 하고 기쁘게 하셧다. 보름달이 하는 꼭대기에 다다를 무렵 아자따삿뚜왕은 무릎을 꿇고 합장하였다.
“세존이시여,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저 아자따삿뚜가 바른 가르침 안에서 우바새가 되도록 허락하소서. 지금부터 목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살생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고, 삿된 음행을 하지 않고, 거짓말하지 않고, 술을 마시지 않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부드러운 미소로 허락하셨다. 부처님의 제자로 다시 태어난 아자따삿뚜왕은 이후 교단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일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으며, 국가의 대사를 결정할 때면 항상 부처님께 자문을 구하였다.
선정을 베풀며 법도에 따라 국정을 시행한 아자따삿뚜왕은 마가다국을 강국으로 성장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