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렌트
이 말은 사람의 天賦的(천부적)인 모든 재질을 일컫는다. 신약성서 마태복음서 25장 예수의 탈렌트(talent) 비유에서 유래한다. 이는 성서 원문 희랍어(τάλαντον, 탈란톤)이 그대로 영어화했으며, 영어에서 이는 또 gift(선물), faculty(재능)와도 통한다. 이는 곧 탈렌트가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선물로서의 재능임을 말한 것이다. 원래 탈렌트는 유대의 돈의 단위로서, 우선 여기서 놀라운 것은 그 액수가 굉장히 크다는 점이다. 이것이 마태에서 세 사람에게 각각 다르게 지급되고 있는데, 요새 우리 돈으로 적은 것이 약 8천만 원, 다음이 1억 6천만 원, 많은 것은 무려 4억 원이다. 이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은사의 大, 그 주신 능력의 위대를 말하는 것이다. 이는 또한 하나님의 그 전지전능과 전적인 사랑으로 미루어 볼 때, 또 인간이 그의 창조의 으뜸이라고 할 때, 사실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오늘날 원자 연구에 의한 물질의 위대한 에너지를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요는 무한대한 능력이 우리의 생활과 일과 생애에서 얼마나 제대로 발휘되는가 하는 것이다. 여기 비유에 나오는 적은 돈을 받은 종같이, 이를 死藏(사장)시키고 죽어가는 것은 아닌지! 다만 우리에게 각자의 대소의 문제가 아니고, 또 타인의 것에 눈을 팔 것도 없고, 자기 것을 최대한 쓰는 것이, 활용이, 그것도 나의 것이 아니니 저의 뜻대로, 그렇다, 웰하우젠(Wellhausen)의 말대로 내가 아니고 타인을 위해 쓰는 것이 문제이다.
그런데 인간이란 대체로 이를 사장시키거나 아니면 이를 실로 악용하고 죽는 것이 아닌가! 예수는 이 비유에서 사람은 종말에 神(신) 앞에서 각자 받은 탈렌트에 대한 계산을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어떤 이는 여기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꽃도 아니고 열매를 요구한다고 했다. 오늘날 인간은 철저히 무위, 행복, 돈, 또 무엇을 위해 탈렌트와는 전혀 무관한 삶을 살고 있는 것 아니냐? 이래서 인류는 더욱 비인간화되어 파멸로 치닫고 있다. 깊은 반성이 있어야 하겠다.
(1983년 4월 제338호)
첫댓글 John Milton의 시 "On His Blindness"에도 시인이 자신의 달란트를 꽃피우지 못하고 저주받을 것을 두려워하는 장면이 나오죠.
대학 교육까지 받은 사람이 할머니 신앙 운운하면서 공부에 게으른 것도 이 경우에 해당한다고 봅니다.
오죽하면 노평구 선생은 박사 학위 받을 정도로 공부 하기 전에는 성경 공부 하지도 말라고 하셨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