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여행 둘째날
참으로 일찍도 해가 떳다. 한국이었으면 모두 잠에 취해 있을 시각인데 4시부터 밝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새벽기도가 있어 일어나 새벽기도에 임했기도 했지만 참으로 일본에 새벽은 밝았다.
거기다가 우리나라에서 흉조라고 명명되는 까마귀가 귀에 거스릴 정도로 까악 까악 울어대는 것이 아닌가 날씨는 아주 습했고 3층 교회건물 도로는 우리나라 60~70년대 사진에서나 볼법한 양철담장과 양철지붕들이 몹시도 정갈하게 보였다. 이곳에 일본 동경인데 양철지붕이나 담장이 제법 있는 풍경에 적잖히 놀랐다.
일단 새벽예배를 마치고 잠도 오지 않고 해서 동네를 한바퀴돌아보기로 했다. 건물들은 아주 작지만 정갈해보였고 내가 어렸을적 처럼 동네할머니들은 자기집 앞을 쓸어 무척이나 깨끗했다. 그리고 화초들을 모든 집들이 다 키우고 있었다. 화분이나 이층같은 틈에도 모두 화초를 몹시도 정성들여 가꾼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단아해 보였다.
모든 건물들은 작아보였지만 알차보인다는 인상도 주었다. 왜 일본인들에게 쪽바리라고 표현했는지 한국남성들을 왜 좋아하는지를 알수있을것 같은 외모들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음식문화가 많이도 바뀌었을텐데도 남성들이 작고 아주 아담해 보였고 어떤사람들은 외소해 보이는 사람들도 많았다. 전체적으로 한국남자들과는 아주다른 느낌을 받았다.
거리 어딜가나 자판기가 왜 그리도 많은지 자판기 천국이라는 말이 맞다 싶을 정도였고 도로는 자전거를 타기에 아주 좋은 환경을 갖췄으며 동경인제도 우리내 시골마을처럼 2차선 도로가 대부분이었다. 차들도 얼마나 질서적인지 초등학교도 초미니 시골 학교처럼 작지만 알차보였다.
그렇게 한시간 가량을 지나 아이들이 막 학교로 등교하기 위해 분주해 지는 시간이 되었을때 교회로 들어갔다. 때마침 목사님 둘째 아이가 감기로 고열에 시달린 터라 급히 병원으로 가고는 식사는 밥솥에 된것을 먹으라고 한상태라 우리는 배가고프기도 하고 그릇을 찾지못해 우리가 가지고 갔던 햇반을 꺼내 식사를 시작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병원에서 급히 돌아오신 목사님이 몹시도 서운해서 우리가 먼저 식사를 했다고 두 번이나 일르신다. 나는 목사님이 속이 좁다고 마치 오래된 지인들처럼 놀리며 웃어댓다.
목사님은 우리를 가이드 하기 위해 하루정도 시간을 할애하신다고 했으나 우리는 그냥 우리가 알아서 다닌다고 하고는 일정을 짜기 시작했다. 상협이를 위해 떠난온 여행이라 상협이가 가고싶은곳 위주로 움직이기로 결정했다.
상협이가 짜놓은 일정은 빡빡하기 그지 없었으나 일단은 격어보기로 하고 신쥬꾸를 구경한다는 상협이에 제안과 서점을 들러야 한다는 남편에 말에따라 닛보리 역으로 향했다. 몹시도 깨끗하다는 인상을 받으며 거리를 지나다보니 일본인들의 정서가 느껴졌다. 사뭇 한국과는 많이 다른 나라라는 생각 공무원들이 철저한 원칙에 의해 움직여질거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치마를 입고도 자전거를 잘 타고 다니는 많은 사람들이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닛보리역에서 신주꾸와 지브리박물과을 어떻게 표를 끊어야 비용을 아낄수 있을까? 고심하다 역에있는 안내원에 도움을 받기로 했다. 아니 아예 요금을 싸게 갈수 있도록 계산해주는 창구 직원에 역내에 상주하고 있었다. 관광 도우미 같은 분이었다. 그러나 한참을 계산하더니 별로 싼 방법이 없다며 가는곳마다 끊어서 가라고 한다. 그리고는 안내소를 나와 표를 끊으려고 고심하고 있는데 한국말의 중년부인이 도와주겠다며 다가왔다. 우리가 표를 끊기 위해 끙끙거리는 것을 보고 도움을 주러 나타난 것이다. 내용을 예기하고는 간신히 표를 끊었다. 정말 용감하다 못해 무모하기까지 했다.
그리고는 신주꾸역에서 물어서 찾아가려 했던 서점을 무한정 지나 지나친 서점을 찾느라 이리저리 헤메고 5살 박이 아가까지 데리고 거기다 비까지 내려 나는 상협이에게 길 안내를 잘못했다고 화내고 싸우고 또 걷고 고행에 시작이었다. 어찌보면 이리 헤메는 것이 당연했는지도 모르리라
헤메고헤메서 서점을 도착했지만 책을 찾는것도 만만치 않았다. 종업원이 G열에 있다고 하는데 잘못 가르쳐 준것이다. 그래서 눈이 빠지게 책을 찾다 찾다 다시 물어서 책을 아예 안내직원이 찾아줘 상협이 책과 함께 사고는 그 서점을 간신히 나왔다.
점심을 먹기위해 음식점을 찾는데 한국음식이 별로보이질 않아헤메고 또 헤메고 “하하하”첫날부터 고생이 정말 이루말할 수가 없다. 간신히 상협이는 일본음식이 입에 맞아 아무곳이나 상관이 없어 상협이가 좋아하는 음식은 1층에 우리가 먹겠다는 비빔밥은 2층에 그래서 헤어져 먹고는 만나기로 했는데 일본어가 안되는 우리는 영어와 바뒤랭귀지를 섞어서 비빔밥을 시켰다. 그러나 비빔밥은 우리가 알고 있는 비빔밥이 아니었다. 덜적지근하고 한국에서 먹었던 맛과는 너무나 틀린 돌솦비빔밥이었다. 어찌하였든 점심을 해결하고는 이교수님이 들르라던 지브리 박물관으로 향했다.
박물관은 역에서 15분가량 도보였다. 우리는 안내원에게 안내를 받으러 들어가니 안내원들은 노인들이었다. 노인정책에 일환으로 그들에게 좀 편하고 쉬운 안내일을 맡긴듯 보여졌다. 친절한 안내와 버스는 한시간이 지나야 도착한다는 말을 듣고는 숲이 우거지고 카페들이 드문 드문 너무도 예쁘게 늘어서 있는 길을 걸어갔다. 왼쪽으로는 마치 시골에 온듯한 깨끗한 도랑이 흐르고 있었고 공기는 몹시도 좋았다. 중간 중간 비가 왔지만 나무밑이라 우산이 없이도 박물관으로 들어가는 길은 걸을만했다.
드디어 박물관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때부터 비는 몹시도 내렸다. 장마비처럼 많은 비가 내려 상협이에게 표를 예매하라고 하고는 우리는 어느 상가같은 처마밑에서 기다리고 서 있었다. 심심해서 자세히 상가같은 안을 들여다 보니 상가가 아닌 전기공사 주식회사였다. 일본도 한자가 많아 대략 뜻을 알수 있는 글들이 많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