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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관도蟲觀圖
-이상은 이상이고 이상은 이상이 아니다
양해열
어떤 새라도 머릿속 칸막이 하나를 지우면 까마귀가 된다
이것은 날개 달린 상형문자의 엔트로피 상승에 관한 대국민 질문이 아니다 머리통을 비워 펜대 꽂힌 입으로 바꾸면 길들여진 언어와 기억을 버릴 수 있어 좋다 압축과 생략만큼 화려한 죽음이 또 있을까 일장기 나부끼는 경성부청 시계탑에 앉아 조감도鳥瞰圖를 그리던 공작孔雀 한 마리도 그렇게 추락했다 폐병은 생물학적 사망 원인일 뿐 지성과 야성의 뇌하수체를 뒤섞어 자신을 살해했다 어느 누구도 기소되지 않은 이 타살의 공소시효는 무한대, 70년 된 범인이 다시 일어선다
이 이상한 가역반응可逆反應의 이중나선형 사다리와 단백질 지도地圖는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고상한 신神을 다시 시험관에 들게 하리라 인큐베이터에 든 아버지는 있어도 형이나 누나는 없는 세상, 당신들의 어린 아버지들 사이, 야반 미아리공동묘지를 빠져나와 수암연구소로 달려가는 금홍이 치마폭에서 하얀 뼛가루가 흐른다 꿈틀거리는 고개를 넘고 강을 건너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어가는 날개와 입의 유전자들, 멀리서 보면 하나의 선분이다
분골쇄신의 수양을 끝마치니 살아가야할 차원이 이렇게 달라지는군
머릿속 태양에 사는 삼족오三足烏 발목 같은 내 시詩의 트라이앵글인 질주 도식화 굴레라는 세 꼭짓점은 오랫동안 악성종양에 시달려왔다 이젠 가야 할 목적지를 정했으므로 그림자로부터 강요당했던 서정抒情의 임의의 세 지점 A, B, C는 둘을 더하거나 빼거나 나머지 하나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다 세상에는 또 어떤 전위적인 자력이 남아 있어 나를 끌어당기고 일자一字로 펼 것인가 그 지휘봉으로 컴컴한 동굴 속 전파를 일으키고 그 큰 바늘로 너덜해진 세상의 입과 노래를 몇 땀 꿰매리라 3차원 4차원 4.2차원으로 솟구치는 오래된 내 병의 이름은 검지도 하얗지도 않은 상상력想像力, 초원의 무사 같은 당신들이 자충수自充手라 부르던 우주 반상 최대의 묘수妙手,
나는 하나의 행성에서 적어도 다섯 개의 우주를 앓고 있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더러 확정지을 수 없는 병명들이 있어 지구별 의사의 다른 이름은 의증환자疑症患者 아니던가 내 첫잠은 너무 길었어!
한숨 자고 일어나니 더는 내려다 볼 수 없는 세상, 지피에스GPS의 높이를 빌리지 않고서는 조감도를 그릴 수 없다
몸피가 작아지고 눈에 눅눅한 무지갯빛 알이 스는 섬망증譫妄症을 앓는 사람들이 벌레처럼 땅바닥을 기어다닌다 환상적으로 공중부양된 도시를 올려다본다 하늘천정 빽빽이 들어찬 초고층 건물과 번뜩이는 전광판들. 부도난 건축업자로 다시 태어났으니 이제 건축무한다면체를 지을 것이다 지구의 핵을 닮은 슬픈 늪이 고인 뇌, 당신들의 머릿속 거기에.
고강도 강선을 삽입한 코어 월core wall을 땅속 깊숙이 박아 척추를 세우고 지구 생명체의 엑기스, 오일oil의 팽창 압력을 건드려 200Mpa(메가파스칼, 2800㎏/㎠) 초강도 콘크리트를 초고속 압송하고 3일을 양생하여 슈퍼맨의 근육을 만든다 이런 한 층 골조의 공법으로 층층이 쌓아 119미터 높이에선 허리를 왼쪽으로 52˚ 비틀어 배신하기 시작하는 태양의 일조량을 가슴과 등에 나누어 받고, 386미터쯤에선 테라스 젖가슴을 앞뒤로 하나씩 매달아 볼륨을 주고, 588미터에선 심장에서 머리가 멀어 해종일 현기증에 시달리는 혈압 낮은 기린의 목 같은 스카이라운지를 해 뜨는 동쪽으로 빼내고 외벽은 딱딱하지만 살갗보다 가벼운 커튼 월curtain wall을 덮어씌운다 투명해서 유리라고 불리지만 공기에서 빼낸 탄소 덩어리의 나열이지 곧잘 비껴선 하늘이나 그에 속한 졸개들의 거울이기도 하고, 하늘을 비춰보고 들여다보고 비꼬기도 하는 것이 최전방에 배치된 이 벽체의 임무이지 이제 비바람에 견딜 수 있도록 동공과 내장 속에 거대한 추, ‘댐퍼’를 매단다 직경 6미터에 무게 660톤짜리 강철공, 이놈은 오로지 건물의 흔들림만을 먹고 살지 고층에서 늘어진 4개의 로프에 매달아 8개의 유압 범퍼로 고정시키면 건물의 최대 진동치를 1/3이나 먹어치우지 어느 천자天子의 입에 물린 여의주보다 영악하지만 밖으로 나오진 못하니 제 주인의 승천에겐 악재. 지진이 날 때는 땅에서 발을 살짝 떼면 되지 않겠는가 그 옛날 변동림의 스카이콩콩 방중술처럼. 탄성 높은 강재鋼材 스프링을 신기는 거야 슬리퍼처럼. 옥상에 풍력과 번개 발전기만 놓으면 이제 한 마리 짐승
땅에 꼬리를 묻고 위로 커가는 이 다면체의 빌딩이 공중을 잡아먹고 있다 21세기에 치켜든 고개가 너무 아프지 않는가 다들 벌레처럼 기어오르시라
나는 벌써 130층 축구전용구장.
숫자 13에 대한 예우이지 중력이 작아진 공중운동장에서 축구를 하자 우리는 누구나 지성파-波 아닌가? 지난 날, 일자一字로 일어섰다 나자빠진 세 개의 선분은 초라한 만년필과 가는 성기와 팔뚝. 탄생 백 년을 기념하여 이 세 개의 도구로 다시 시를 쓰겠지만 작대기 세 개를 매단 시인은 죄인, 1+3. 이렇게 열한 명의 선수와 코치와 감독, 합이 열셋 꼭 예술 축구를 하리라
팀워크를 강조한 이 기표에 스티븐 호킹만이 동의하지 않아 등번호 0번을 달고 골대 앞으로 밀렸다 플러스와 십자가를 혼동한 골키퍼 뒤엔 화이트홀을 마시고 취한 4.9차원의 블랙홀이 평면, 입체, 곡면도 아닌 얼굴로 쿨렁거리고 있다 내 발등에 차여 지구 밖으로 뛰쳐나간 축구공은 5차원의 심사를 가지지 않는 한 빛조차도 탈출할 수 없는 강력한 중력에 갇혀 나오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거울에 비추나 마나 이 토너먼트의 스코어는 언제나 0 : 1, 반성하면 죽고 반성하지 않는 자는 살아 있으므로 항상 승리하리라! 수억 곡의 응원가가 흐르지만 이런 한 곡만을 나는 선택해 듣는다 그 사이, 복제인간 고객을 위해 미아리에서 용인까지 논스톱 지하철 노선이 급조되었다 탑승자 한 명의 이름은 팝의 제왕 마이클 잭슨, 그러나 걱정 놓으시라 히든카드는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나 있으므로 죽은 당신도 물론 탈 수 있다 문 워크Moon- Walk 춤은 지구에서 출 수 있는 마지막 춤이 아니다 마이클! 이 스타디움에 도착하기 전에 노래 부르며 춤부터 추게! 오른발잡이는 레프트윙이 적합해 포지션에 구애받지 않는 지성의 저 현란한 드리블
하프타임 230층 축구박물관.
가까운 행성의 사람들과 희화적인 369게임이나 쓰리섬게임을 하지 않은 오류를 범한 이 별은 미래가 없다 잡식성 도시건축물의 면을 짝수로 증식시키며 무한대 문명의 보조장기補助臟器로 키울 뿐. 정삼각형은 정사면체가 될 수 있으므로 잘 접힌다 평면의 십자가가 접혀 정육면체가 되었듯 부메랑은 정팔면체 코스모스 꽃잎 두 장은 정십이면체, 톱날은 정이십면체가 되었다 각 꼭짓점에 모이는 면의 개수가 같은 다면체가 정다면체 아닌가 우리는 새로이 추가될 정다면체 몇 개를 더 그리려 하고 있다 언제까지 커져가는 축구공만을 꿈꾸려 하는가
330층 축구전쟁기념관.
여기 6각방은 참회하기 좋은 방이라는 죄 지어본 적 없고 꿀벌에 쏘여본 적 없는 전쟁 심리학자의 주장에 따라 축구의 메카 남한산성 축구장은 화랑표 성냥곽처럼 팔면체로 쌓여갔다 모서리각 60도에서 재범확률이 높다는 걸 모르는 이 건축술은 세계평화에 크게 기여했다 머리에 불을 켜고 뛰쳐나가는 탈영은 줄을 이었고 무기중개상과 축구전쟁은 곧 사라졌다 지금 공중부양 건축물로 가득 찬 창공에서의 워 게임이나 에어쇼는 축구 챔피언리그의 다른 이름이다 어제까지 이 별은 평화로웠다
후반전 430층 다면각체 축구장.
여전히 열셋의 아해다 공격은 막혀 있고 수비는 뚫려 있는 꿈의 구장, 11명의 총알 같은 선수들은 각자의 포지션에 폐병에 걸려 발기력만 좋아진 감독과 69성기키스의 선구자 금홍 코치는 벤치에 배치되었다 누군가 감독과 코치의 관계를 3-, 로 기호화 시켰지만 금홍이는 후배위를 싫어하는 에이즈 퇴치 전도사. 나는 시를 쓰는 축구감독으로서 죄를 짓고 싶지는 않다
‘詩’와 ‘罪’가 13획인 것과 지금 열셋의 아이들이 뛰고 나는 것과 1+3에서 누군가 떼어버린 십자가가 사라진 곳이 궁금할 뿐이다
나는 화려한 이력을 가져야 꼭 감독시인이 되는 건 아니지만 시인감독은 꼭 화려한 이력을 가져야 한다고 믿었으나 또 1 : 0, 서쪽 면의 가짜 거울이 동쪽 면의 착한 거울에게 한 골을 내주고 말았다
530층 패자의 라커룸, 패자의 동굴.
0 : 1은 꼭 화를 부른다 그런 내가 맥도널드햄버거를 외치면 철근콘크리트 벽에서 동그란 빅맥이 나온다 맨하탄의 빅맥환율은 떨어지고 케냐의 카페라떼지수는 오른다 벽은 또 이중 삼중으로 자라며 평면의 공간을 잡아먹고 둥글어진다 지구별의 혹이 커지면 아프리카의 전성시대가 올 것이다 지금 적도는 만원이다 자전축이 상당히 기울어졌다 당신 허리는 지금 몇 인치inch인가? 거울 앞에 선 상대 팀 감독은 수상한 시인이나 화가처럼 야윈 흡혈박쥐, 더러 재래식 축구장에서 진짜 시인감독을 위협한다 내 뱃속에는 없는 신자본의 냄새를 맡은 신신자본주의자, 이럴 때 감독은 주먹을 내밀고 시인은 성기를 내민다 그래서 나는 늘 이 둘을 동시에 세운다 흡혈박쥐는 자웅동체 자신에게 질려 제 날개를 팔진미처럼 뜯어먹는 것이다 덜 고통스럽게 죽는 방법을 알고 있는 몸 바깥엔 비가 오고 날개 잃은 흡혈박쥐는 파이시즈의 빛을 버린 물고기처럼 순화된다
630층. 스카이라운지.
지구별을 벌레들의 소굴이라 부르며 뻥뻥 발로 차는 우주의 축구쇼가 시작된다 벌레 아닌 지구민地球民은 벌레뿐이다 벌레의 눈으로 그린 그림은 커다란 벌레이다 나만 아는 나의 첫 우주 붉은 장미꽃 한 송이도 그랬었다
-시산맥 2011 겨울호
첫댓글 우와~ 이 긴 호흡속을 단숨에 달리며 숨이 딸깍 멎는 줄 알았습니다.
서쪽 면의 가짜 거울이 동쪽 면의 착한 거울에게 한 골을 내준 건 어쩌면 이미 예견할 수 있었던 결과,
혹시 못 보실까봐 회원들의 시란에서 옮겨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