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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부가 산지개발을 선언한 뒤, 국립공원 설악산을 시작으로 지자체마다 산지 개발을 앞다투어 추진하고 있다. 산지가 63퍼센트 정도인 나라에서 숲과 공존하려면 숲에 대한 생태적이고 철학적인 바탕 위에서 지속가능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산과 숲과 마을이 함께 사는 공존의 길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지난 9월 17일 건국대학교에서 지역 공동체와 사회적 경제를 연구해온 건국대학교 커뮤니티비즈센터 김재현 교수와 농산촌마을을 조사하고 대안마을을 연구해온 마을연구소 정기석 소장이 이야기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다.
산은 단순한 흙더미가 아니라 공공의 미래자산이다
김재현 : 산과 숲이 공동체 자산인지, 개인 자산인지 관점부터 정리할 필요가 있어요. 우리나라 사람에게 산림은 농사처럼 땅을 일궈 수확하는 게 아니라 자연이 키우기 때문에 ‘숲은 공유자산’이란 의식이 더 강해요. 사적소유권제도가 도입된 게 100년 정도밖에 안 됐고 그것도 일제 강점기 때 만들어졌어요. 하지만 봄 되면 산나물 뜯고, 버섯을 누구에게 허락을 받지 않아도 따서 먹어요. 법으로는 불법이지만, 우리 유전자 속에는 공유자산으로 각인되어 있는 겁니다. 공유가치에 대한 인식 자체도 시대에 따라 변하고 있어요. 60~70년대엔 사적소유권을 강하게 주장했는데, 90년대 들어서는 공익 가치나 산림 복지까지 얘기하고 있잖아요. ‘복지’가 나오는 순간 사회적 개념이 들어가기 때문에 정부가 공유가치를 인정하는 셈이에요. 한편으로는 산림법 체계 속에서 자원육성과 이용 관련 법체계를 가지고 있어 사적소유권을 명시한 부분도 있어요.
정기석 : 제주도발전연구원에서 발주한 일에 참여한 적이 있어요. ‘사회적 자본을 활용한 제주지역 농촌 공동체 활력화 방안’이란 주제였어요. 제주도는 농촌에 산촌이나 어촌이 다 포함됩니다. 제주도 마을은 산에서부터 바다까지 세로로 늘어서 있는 형태거든요. 크게 쟁점이 된 게 땅 문제입니다. 제주도는 마을 하나 면적이나 인구가 육지의 읍면 정도 규모거든요. 한라산 중산간 자락에 있는 표선면 가시리에 약 200만 평 규모 마을공동목장이 있었는데 개발압력이 거셌어요. 인근 마을 공동목장은 압력에 못 이겨 골프장이나 리조트가 들어선 곳이 많아요. 가시리는 주민들 반대로 일단 개발을 막았지만, 결국 공공성을 앞세워 민자 풍력발전기가 들어섰죠. 발전기에서 발생하는 10억 정도 수익 10퍼센트를 마을 기금으로 돌리겠다는 조건이었어요. 마을마다 공유지 개발문제를 겪었고, 이 과정에서 2~3년 만에 땅값이 10배 정도 치솟은 곳도 있어요. 공유지 개발에 대한 대응은 기업과 마을 이해관계가 얽혀 복잡하게 전개되는데, 정책이나 행정 단위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선명하지 않고, 원칙도 잘 지켜지지 않아요.
제천시 백운면 평동리 안골에서도 마을산 110만 평을 되찾기 위한 싸움이 오랫동안 이어졌었죠. 일제 강점기 때 국가 소유로 편입된 뒤 1961년 제천시가 소유했다가 기업에 판 사례였어요. 마을산을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해 주민들이 움직였어요. 자연환경과 마을공동체를 지키는 일이기도 했죠. 하지만 재판에서 지고 산악형 콘도가 들어섰어요.
김재현 : 제천 평동리 마을숲에서도 가장 문제가 됐던 게 행정이에요. 전문가들이 확인해보니 도장을 빠트린 것도 있고, 주민들 모르게 땅이 넘어가버린 것 같아요. 보상도 없이 빼앗긴 셈이죠. 제주도는 육지와 상황이 많이 달라요. 마을을 수직분할 하는 이유는 밑에서 물이 나오고 택지와 농경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내륙은 숲을 둘러싼 공동체들이 더 많이 와해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일본 공공경제학자 우에다 가즈히로는 《순환의 선진공간》이란 책에서 산촌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질문하고 있어요. 우리나라에서 ‘산촌’은 읍면 단위로 임야가 70퍼센트를 넘어야 하고, 인구밀도는 농촌 평균보다 낮아야 돼요. ‘낙후된 공간’으로 개념규정을 하고 있어요. 그래야 지원사업을 할 수 있다는 거죠. 하지만 이런 개념은 산촌 주체도 모호하고 의사결정력도 없어 실효성이 없다고 생각해요.
독일은 임야율이 평균 30퍼센트밖에 되지 않아요. 프랑스도 그렇고요. 우리는 63퍼센트, 일본이 66퍼센트 정도에요. 그런데 산촌 정의를 70퍼센트 넘어야 한다고 정의하는 게 이상한 거죠. 10퍼센트 정도여도 그걸 잘 활용하는 게 산촌이라고 봐요. 산촌을 거점으로 순환형 사회를 만들어내기 위해 지속가능성이 있는 사업사례가 필요한데, 산촌만으로는 불가능해요. 사람도 부족하고 자원을 연계하는 것도 그렇고요. 순환하는 산촌 경제는 시군 단위에서 정책지원이 이뤄져야 합니다. 읍면 단위로 쪼개면 지자체 정책 방향이 모호한 경우가 많거든요.
몇 해 전 강원도를 스위스처럼 관광 거점으로 만드는 구상을 갖고 스위스를 다녀왔어요. 스위스는 26개 향촌으로 이뤄진 연방국가예요. 170년 전 26개 향촌이 더는 개발하지 말고 숲과 자연환경을 복원하기로 결의해서 지금 세계 최대 관광국이 된 거잖아요. 하지만 강원도는 스위스 사례를 4년 안에 실현할 수 없기 때문에 정책에서 배제한 거죠. 산촌은 멀리 내다보고 접근해야 하는데 임기 때 성과물을 내려고 자극적인 정책만을 들고 나와요. 전경련이 제안한 산악관광개발을 청와대가 받아들여 정책으로 밀고 가겠다고 하니까 모든 부처는 일단 복종하는 태도를 취하는 겁니다.
정기석 : 마을을 많이 돌아다니다 보니 산림청 산촌생태마을 사업의 부작용과 폐해를 많이 확인하고 있어요. 유난히 눈에 띄고 욕을 많이 먹는 이유는 1990년대에 시작해 다른 사업에 비해 너무 일렀던 것도 있고, 사업비 액수가 너무 컸어요. 농촌에도 사람이 없는데 산촌은 더 없어요. 그런 사업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던 겁니다. 그러니 잇속 빠른 외부 업체들이 달라붙었고 정작 주민은 배제됐어요. 설계부터 잘못된 겁니다. 최소 마을 단위에서 시작했는데 역부족이니까 권역을 넓혔지만, 산촌 마을 몇 개 합쳐봤자 사람 없는 마을 몇 개 합쳐 놓은 거랑 똑같은 거죠. 시군 기초지자체 단위로 규모의 경제 바탕으로 풀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역량 있는 주체를 기초지자체 규모에서라야 찾을 수 있는 거죠. 최근 진안에서 ‘진안마을주식회사’를 군민출자로 만들었어요. 책임을 맡는 사람이 지역 공동체 활동 경험도 있고, 사업에 대한 경험도 있어 의미 있는 모델을 만들고 있어요. 농식품 가공시설과 로컬푸드 직거래 매장도 만들고 농가 레스토랑도 만들어 이른바 중소농 중심의 6차산업형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함께 일하는 사람도 주민들 가운데에서 교육을 통해 15명 정도 뽑아 안정된 고용을 이어가고 있더라고요.
최근 제안 하나를 했는데 사람이 없는 문제, 책임 있는 체계를 만들 수 없는 문제를 우선 해결해야 한다고 봤어요. 기존 마을이나 권역에 흩어져 있는 숙박, 교육, 가공시설 같은 유휴 자원 연결망을 만드는 겁니다. 지자체 단위 주식회사를 만들어 주민들과 연계해 자유롭게 활용하면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 수 있고, 임대수입을 비롯한 이익을 배분하는 방식으로 운영할 수 있다고 봐요.
사진2_정기석 △ 마을연구소 정기석 소장
김재현 : 산촌사업이 현재 농림부로 넘어가버렸어요. 지금처럼 행정단위 주도로 갈 것인지, 지역 연대와 협력 중심으로 갈 것인지 원칙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산악관광이나 케이블카는 행정주도 방식이잖아요. 하지만 지역 협력체계를 배제하면 어떤 사업이든 성공할 수 없어요. 행정이 밀어붙이는 식이 아니라 전문성 있는 지역 추진 주체를 세우고 하나의 지역에서 비전을 모아 운영되도록 해야 하는 겁니다. 이러한 과정을 제도로 만들고 원칙을 만드는 것이 우선되어야 해요. 그 뒤에 케이블카 설치를 할 건지 말건지를 지역사회에서 결정해야 되는데, 과정에 대한 얘기는 일절 없이 ‘논쟁’부터 부각되니까 정부가 밀어붙이는 방식으로 귀결되는 겁니다. 스위스도 케이블카를 설치하지 않았느냐 하는데 어떤 시대 상황이 있었는지, 지역공동체가 어떤 의사결정을 했는지, 어떤 과정을 밟았는지 보지 않고 결과만 이야기합니다. 대화가 안 되는 거죠. 임기 안에 무언가 결정하고 결과물을 내려는 조급함만 널뛰는 형국입니다. 그러니 계속 사회적 갈등이 발생하고 그게 사회적 비용으로 남게 되고, 어떻게 만들어놔도 잘 운영이 안 되고 결국 국민 자산을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죠. 무엇을 할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가 더 중요합니다.
정기석 :스위스나 독일 같은 유럽은 150년 동안 우여곡절 끝에 사회적 자본을 축적했고 그걸 바탕으로 지역사회를 만들어 왔지만, 우리나라는 불행히도 겉모습만 따라한 탓에 성공할 수가 없었던 겁니다. 농산촌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만한 사회적 자본 체계가 없지 때문에 우선 이를 찾아내고 개발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저는 ‘지역사회전문가와 생활기술 직업전문학교’를 지역마다 만드는 것을 제안합니다. 실제 제주도에서는 조한혜정 님이 하자센터 출신 학생들 중심으로 지역 교육프로그램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간디학교 전 교장 양희창 님도 ‘지구평화센터’라는 집짓는 기술, 옷 만드는 기술, 음식 만드는 기술을 가르치는 2년제 대안대학 과정을 제주도에 만들고 있어요.
다른 하나는 은행입니다. 산재돼 있는 유휴 시설들을 ‘지역공유 사회적경제 자산은행’으로 구성해 연결망을 만드는 겁니다. 도시에서나 볼 법한 건물이 농촌마을에 세워져 있는데 가보면 건물밖에 없어요.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 결과물인데 내용이 없는 거죠. 이런 시설 90여 개 정도를 찾아 가동률과 유휴화 정도를 조사한 보고서가 있어요. 50퍼센트 정도로 나왔지만, 저는 약 80~90퍼센트 정도 될 거라고 생각해요. 농어촌공사가 ‘농지은행’을 꾸리듯 유휴 건축물 은행을 만들어 지자체 단위 주식회사나 협동조합 형식으로 운영하는 것은 어떨까 싶어요. 권역 단위 별로 감당할 수 없는 것을 끌어안는 출구전략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고 봐요. 새로운 입구전략도 필요해요. 그것은 사회적 자본을 생산하고 개발하는 학교, 교육부터 시작하는 거죠. 쓸데없는 예산을 쓰지 말고 기존에 있는 것들을 다시 꾸미고 재활용하는 쪽으로 활용해 마을공동체나 지역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사회적 경제, 공동체 사업을 풀어내야 하는 거죠.
김재현 : 지역사회의 자원이라는 측면도 봤으면 좋겠어요. 조금 관대하게 보는지도 모르지만, 이미 어느 정도는 사회적 자본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을 ‘사회적 자본화’를 못 시킨 것이 문제인 거죠. ‘사회적 자본’은 고정 개념이 아니거든요. 똑같은 것도 사라져버릴 수 있고 계속 축적이 될 수도 있는데, 사회적 자본이 축적될 수 있는 구조를 어떻게 만들어내느냐가 중요합니다. 가령 괴산은 굉장히 큰 사회적 자본을 갖고 있어요. 한살림 솔뫼마을, 흙사랑 영농조합 같은 곳은 지역 사회에서 30~40년 농민운동 과정을 통해 만들어져 정착한 것이거든요. 이 과정이 굉장히 소중한 사회적 자본이라고 생각해요. 마을 단위 영농조합도 그렇고요. 이것을 발전시킬 지역사회 지도력이 더 큰 문제이지, ‘있다, 없다의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어떻게 보면 ‘잠재력이 있다’고 표현하는 게 더 맞겠네요. 이미 있는 사회적 자본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문제를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누구도 배척하지 않고 함께 끌고 갔을 때 사회적 자본이 축적된다고 생각해요.
가장 큰 문제는 산과 숲을 개발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겁니다. 산촌이 가지고 있는 전통과 역사성, 사람들이 경험해온 자연 치유력, 자연지에서 작물을 재배하고 채취하며 살아온 방식을 소중한 자산으로 존중하지 않고, 주민은 배제한 채 뜬금없는 개발 사업을 들이미는 것이 문제입니다. 지금 가진 지역자산을 어떻게 미래자원으로 만들어 낼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조금 더 긴 시간을 두고 단계에 따라 접근해야 하고, 이런 부분에 대해 정치, 시민사회, 지역사회가 사회적 합의를 이뤄야 하는데 자꾸 개발 쪽으로 가서 안타까워요.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를 원하니까 결정된 것도 없는데 먼저 나선 사람들이 챙겨가려고 하니까 문제가 되고 있어요. 하나의 성공모델을 만들려면 보통 에너지만 갖고는 불가능한 측면들이 많아요.
나라를 바꾸는 것보다 한 마을을 제대로 만드는 게 더 의미 있다
정기석 : ‘사람이 살고 있는 마을’이란 개념으로 바라본다면 새롭게 농산촌에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산촌마을 가운데 단양 한드미마을은 좋은 사례입니다. 완전히 오지 산골에 사람들이 살고 있어요. 농촌유학센터에 아이들 50여 명이 공부하고 있고, 지역아동센터도 들어와 있어요. 최근 한 20년 만에 아이가 새로 태어났다고 마을 주민 모두가 기뻐하는 것을 봤어요. 그곳에서 산이 무차별 개발 대상이 될 수 없어요. 산을 그저 돌덩어리로 바라보기 때문에 케이블카를 놓고 호텔을 짓는 식으로 접근하는 겁니다. 산은 사람이 살고 있는 터전이라는 것을 우선 고려해야 합니다. 좋은 산촌마을 사례를 자꾸 만들어야 해요. 사실 개발을 막으려면 정치권이 결단하는 것이 중요하잖아요. 스위스 같이 지자체들이 모여 합의를 이뤄낼 수 있을까요?
지난해 독일에 다녀왔어요. 독일 농정은 ‘돈 되는 농업’이 아니라 ‘사람 사는 농촌’에 초점이 맞춰져 있더군요. 농민은 2퍼센트밖에 안 되지만 국민 60퍼센트가 농산촌에 살아요. 농촌이 농사만 짓는 곳이 아니라 사람 사는 곳이라는 생각이 바탕에 있어요. 헌법에 농촌 인구밀도가 명시되어 있을 정도에요. 우리 정부가 ‘살농정책’으로 가는 것이 안타깝더라고요. 6차산업화 등 농업기업 인증심사 때 가보면 농업이 아니라 대부분 공업 중심이거든요. 300여 개 정도 인증을 받았는데 많은 농업법인이 2차 농식품, 즉 공업에 치우쳐 있어요. 이런 방향으론 사람 사는 농산촌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김재현 : 경제 관점으로 보면 산촌과 농촌은 자원 특성이 전혀 달라요. 어떻게 보면 어촌하고 산촌이 비슷해요. 육성도 하고 자연 채취도 하니까요. 지금은 큰 틀에서 농업과 농촌정책 안에 산촌 산림이 섞여 있어 공간 개념에서 보는 게 아니라 자원 관점에서만 바라보고 있어요. 그러니 이용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거예요. 해양오염과 산림 개발 문제는 비슷한 맥락입니다.
제가 한드미마을과 관계를 맺은 건 오래됐어요. 자문위원단을 3년 했고 계속 인연을 유지했지요. 그곳은 변증법적 발전을 했어요. 순탄하지 않았어요. 소백산 자락 오지였지만 정문찬 이장이 마을의 사회적 자본을 잘 활용했다고 생각해요. 부가가치를 높이는 방식으로 지역 전통성을 많이 살리려고 했어요. 농촌종합사업이 들어가면서 확장하려고 했는데, 다른 마을을 끌어안는 것이 쉽지 않았어요. 결국 50세대 정도 마을에 머물러 확장성의 한계가 있었어요. 하지만 체험프로그램을 계승한 산촌유학을 통해 부가가치를 높였어요. 젊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의 방식을 연결한 거죠. 사회적 기업으로 18명이 급여를 받고 있어요. 이것이 마을을 지키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죠.
국립산립과학원이 하는 ‘에너지자립마을’은 70세대 정도를 중앙난방으로 묶어 마을기업이 운영하는 구상인데, 원료를 싼 가격으로 확보하는 방법이 많지 않거든요. 1백 억 넘게 들어간 사업이지만 성공사례가 나오는 게 쉽지 않아요. 한 마을 단위는 한계가 분명히 있어요. 지자체 단위에서 전체 그림을 그리고 그 안에서 한 마을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홍성 홍동면 같은 경우 문당리를 중심으로 다양한 공동체가 엮여 있고, 풀무학교가 중심이 되어 지역사회 연결망을 만들어 가니까 군 단위로 확장성이 있는 성공 가능성이 높은 사례를 만들고 있다고 봐요.
최근 제가 주목하는 건 문화관광체육부 문화관광연구소에서 운영하는 ‘관광두레사업’입니다. 시군 지자체단위에 관광두레 피디를 한 명 선정해 3년 동안 급여를 주고 기존 지역의 공공재를 관광사업 사례로 만드는 지역 연결망 사업입니다. 곡성과 순천, 여수에서 나름 좋은 성과를 내고 있는 것 같아요. 건물이 아니라 사람에 투자한 사업이라는 점에서 더 의미가 있어요. 행정단위가 대표성을 지원해주고 일정한 권역의 자원과 협력체계를 만드는 겁니다. 어려운 작업이기는 한데 농림 쪽보다는 문화 쪽에서 접근하는 게 훨씬 더 파급력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기석 : 과연 우리나라에서 에너지자립마을이 가능할까 계속 의문이 들어요. 지금처럼 전원특별법이라든가 한전이 에너지를 독점하는 상황에서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매전 요금이 지금의 5배 정도는 올라야 해요. 신재생에너지를 매입해야 하는데 지금 우리는 그런 인센티브를 안 주잖아요. 신재생에너지는 에너지원끼리 긴밀한 연결망이 중요하고, 부처들이 저마다 가진 정책자원들을 모아내는 부처 협력문제도 우선되어야 해요. 아무리 기술 측면을 연구해도 문제 해결이 안 돼요. 부처 사이 지식의 흐름과 소통문제가 있는 거죠. 전부 벽이에요. 어디에서 어떻게 소통의 허브를 만들 것인지 고민하게 되는 거죠. 결국 ‘거버넌스(협치)’ 문제입니다.
김재현 : 거버넌스는 믿음이라고 생각해요. 세상이 너무 다양해져 정책 하나로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 없으니까 다양한 이해관계 주체가 참여해 해결하는 것인데, 그 바탕에는 믿음과 신뢰가 있어야 해요. 공무원들조차 거버넌스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현실이 답답하고 안타까워요.
일본에는 산촌마을경제에 좋은 사례들이 많아요. 법과 제도 문제만으로 해결된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에 시민사회와 산업계, 행정과 공공조직이 긴밀하게 협력하는 체계가 있더군요. 하나의 사업이 있다면 누가 해야 하는지 함께 고민하고 논의해 공동의 사업모델로 만드는 것이 가능한 거죠. 저마다 고르게 주체의식을 가지고 협력하는 구조인 겁니다.
요즘 일본 홋카이도 비에이라는 산촌마을을 주목해요. 폐교를 거점으로 사회적 자본을 축적하고 있는 곳입니다. 경관이 굉장히 아름다운 곳인데 처음엔 동네에 식당이 하나도 없었어요. 도쿄의 유명 셰프를 불러 셰프 양성학교를 만들고 수익모델을 만들기 위해 식당을 운영하면서 그 돈으로 거점을 만들었어요. 지역이 가진 공공자산으로 미래에 대한 투자를 하려면 지자체와 협력이 아주 중요하거든요. 또 하나는 비에이의 아름다움을 제일 먼저 알린 사람이 유명한 사진작가예요. 농촌 경관을 상품화 한 거죠. 폐교에 ‘탁신관’이란 곳을 만들어 마을 사진 전시도 하고 있어요. 사시사철 마을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공간인 거죠.
농가들은 마을 경관을 위해 경작할 때 어떤 작물을 어떻게 배치해 심을 것인지 함께 고민하죠. 사람들이 오니까 자연스럽게 공예품도 만들어 팔고요. 공유 공간들을 잘 활용해요. 미술관으로 활용하는 공간에는 유명한 작가들이 상설 전시도 하고 기획 전시도 합니다. 우리나라는 사회적 자본을 축적하지 않고 분할하는 체계이기 때문에 전체를 아우르는 방향을 잡지 못하는 거예요. 혼자만 잘 살거나 결국 혼자도 못 버티는 구조인 겁니다. 비에이에 목장도 하나 있는데, 도쿄의 유명한 셰프였던 사람이 목장을 사서 젖소를 방목하고,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판매하더라고요. 풍광을 보면서 음식을 먹는데 마음이 그냥 확 편해지는 거죠.
선거가 끝날 때마다 항상 고민하는 거지만, 나라를 바꾸는 것보다 한 마을을 제대로 만드는 것이 더 의미가 있겠다 싶어요. 하나의 제대로 된 마을을 만드는 것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기돈님-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너무 길고 글로 읽고 이해하고 정리하자니 정확하게 인지를 못한 부분이 있을 수 도 있습니다.
김재현님의 의견에 토를 달고 싶지만 일부만 읽어 본 것 같아 나중에 다시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길지만 한 번 일거볼만 하네여~~♡♡♡♡♡^^
@두메원(부산) 끝까지 읽어봤습니다.
새로운 전원 산촌마을을 구성하는 프로젝트를 생각중인데... 일본의 예가 인상적이네요.
부처간 이해도 문제될 게 많겠다는 생각도 들구요.
감사합니다.
아~ 좀 길어서 나중에 다시와야겠어요.
저 지금 여주가야 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