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춧가루 매운맛이 코끝을 얼얼하게 하는 콩나물국의 얼큰함을 에멜무지로 두어 숟가락 되작거리다가, 아이들과 주섬주섬 시골에 갈 채비를 서둘렀다. 고추도 따야 하고 농약도 쳐야 하기 때문이다.
서로 엉겨 붙어 싸울 듯 줄기를 치켜세우고 있는 고추 고랑 사이를 조심스레 헤치며 빨갛게 익은 고추를 따기 시작했다. 고추밭은 농염한 교태를 부려 보려고 덕지덕지 새빨갛게 바른 립스틱을 차츰차츰 지워내고 있다. 바람날까 싶어 득달같이 달려온 발걸음에 그만 단단히 멱살을 잡히고 만 것이다. 막 고갯마루 올라선 말이 내뿜는 콧김처럼 씩씩거림에 꼬리를 슬그머니 내리고 고분고분 화장을 지워낸다.
드디어 홍역 앓듯 울긋불긋한 낯꽃을 띠던 하늘도 서서히 깨어나고, 팔뚝에 낀 토시에는 쓱 훔친 땀방울이 제법 흥건하게 들러붙어 축축해진다. 정부미포대에 가득 차면 리어카에 옮겨 실었다. 몇 번을 날라다 실으니 리어카 바퀴가 곱송그리며 실쭉한 표정을 짓는다. 붉은 고추가 가득 찬 포대가 실린 리어카 핸들을 잡아끌었다. 만선의 뿌듯함이 느껴진다. 득의한 마음으로 입항하여 마당에 늘어놓은 골함석에 쏟아 부었다. 아직 숨이 덜 죽은 그것들은 골함석의 노릇노릇한 기운에 할딱거리다가 서서히 전신 마취의 나른함에 빠져든다.
헛간에서 분무기와 농약 등을 챙겼다. 이렇게 고추를 따내게 되면 어김없이 농약을 쳐야만 한다. 녀석들이 따사한 볕살도 받아먹고 달콤한 빗물도 받아먹지만, 농약도 먹어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보름에 한 번 정도 고추를 따내면 농약을 먹고 싶다는 눈짓을 보이곤 한다. 그 지독한 농약을 안 주기라도 하면 된서리 친 늙은 호박처럼 폭삭 사그라진 꼴을 하고서 고약한 소가지를 부리게 된다. 재작년엔 제때 농약을 안 치는 바람에 탄저병에 걸린 고추들이 잔뜩 곪아 오도깝스런 꼬락서니를 보인 적이 있었다. 그래서 작년에는 고추를 따자마자 농약을 친 덕분에 시퍼런 고춧잎과 어린애 주먹만한 고추를 된서리 올 때까지 딸 수 있었다.
뚜껑을 여는 순간, 강하게 콧속을 움씰 후벼대는 살충제와 살균제를 분무기에 두어 번 병뚜껑으로 따라 넣고 기다란 막대기로 고루 섞었다. 통 속에서 출렁출렁 버무려지는 분무기를 어깨에 짊어지고, 오른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세차게 펌프질을 했다. 마스크 틈새로 농약의 구역질 나는 기운이 스멀거리며 기어오른다. 농약을 머금은 고추와 고춧잎에선 시허연 액체가 줄줄 흘러내린다. 얼마나 고팠던지 마구 들이켜느라 입가에 흘러넘쳐 목 줄기를 주르르 타고 내려오는 것도 모르고 꿀꺽꿀꺽 먹는 데 온 정신이 팔려 있는 듯하다.
농약과 화학비료가 땅에 뿌려지면서 생태계의 원활한 순환 고리가 끊어지게 되었다. 천적이 없어진 세상에서 병 해충은 농약의 독성을 이겨내고 무차별적으로 저항력을 키우며 증식하기에 이르렀다. 그 화학비료와 농약으로 지력이 약해진 토양에서 병 해충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갈수록 더 강력하고 많은 양의 농약으로만 농작물과 그 수확물들은 보호를 받는다. 안 그러면 내항성을 가진 병 해충들이 제 세상 만난 것처럼 날뛰는 꼴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렇게 침투된 수확물에는 농약 성분 자체가 검출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 성분이 화학변화를 일으켜 생성된 물질도 잔류한다고 한다.
간과할 수 없는 또 하나의 문제는 바로 태양초라는 말린 고추이다. 고추를 대량으로 재배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벌크라는 건조기에 집어넣고 억지 말림 하고 있는 실정이다. 마당에 깔린 멍석 위에 가지런히 널려져 내리쬐는 태양을 흠뻑 맞고 스쳐 가는 바람도 쉬엄쉬엄 들이마시며 알금솜솜 말려지는 고추가 점점 사라져 가는 추세이다. 그렇게 자연스레 말린 태양초 꼭지는 본래의 색깔이 남아 있지만, 벌크에서 삶겨진 고추 꼭지는 까맣게 변해 확연히 판별되고 있다. 말 그대로 태양의 덕을 톡톡히 본 고추가 별로 없는 편이다.
어머니도 마당에서 말리시다가 요즘같이 얄궂은 비가 오락가락하게 되면 하는 수 없이 아래채에서 말리기도 한다. 고향집 아래채에는 아직도 불을 때는 아궁이가 그대로 남아 있다. 예전에 쇠죽을 쑤던 가마솥이 걸려 있고, 그 아궁이에 장작불을 지피면 아랫방 구들이 누릇누릇해진다. 아랫방에 널린 고추들은 불목에 누워 알금알금 말라 간다.
어제 새벽에 어머니가 아래채 아궁이에 불을 지피려고 가마부엌에 가니까, 미지근한 온기가 남아 있는 솥전에 기대어 꾸벅꾸벅 졸던 새끼 고양이 세 마리가 후다닥 도망치더란다. 시골에는 예전처럼 고양이를 키우지 않아도 이 집 저 집 기웃거리는 고양이들이 가끔 눈에 띈다. 보름 전쯤에 가마부엌 시렁 위에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는지 아옹거리더란다. 그러나 이레 전에 어머니가 빨랫감을 들고 냇가에 가려고 신작로에 나가셨다가 차에 치여 죽은 고양이를 보았단다. 가마시렁 위에 새끼를 낳았던 고양이의 어미는 설마 아니겠거니 했는데, 며칠간 어미 고양이가 보이지 않더란다. 먹잇감을 찾으러 들랑날랑할 터인데 그림자도 비치지 않더라는 것이다. 영문도 모르고 어미를 기다리는 새끼들이 앙칼지게 울기에 차에 치여 죽은 고양이가 바로 어미 고양이일 것이라고 여겨지더란다. 끝내 그 어미는 돌아오지 않고, 그렇게 앙잘거리던 새끼들이 며칠간 기척도 없이 조용하기에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갔거나 아니면 어미를 찾으러 돌아다니는 줄 알았는데, 어제 새벽엔 다시 돌아와서 가마솥의 온기를 제 어미마냥 껴안고 쌔근거리다가 도망치더란다. 그 새끼들이 너무 애처로워 솥전에 찬밥 한 덩이 놓아두면 어느새 왔다가 먹고 갔는지 말끔하더란다.
어릴 적, 우리 집에 고양이를 길렀었다. 이름은 살진이라고 지었다. 기다란 마루 한쪽에 나락을 보관하던 곳집이 있었고, 그 곳집 위에 둥지를 틀고 살았다. 곳간문짝은 규격에 맞게 재단된 송판을 여러 겹 끼워 맞추게끔 되어 있었고, 그 널빤지에는 한문으로 숫자 번호가 매겨져 있었다. 번호를 틀리게 꽂으면 조그만 틈새가 생기기 때문에 널빤지를 순서대로 맞춰야 했다. 맨 아래 판자가 1번이었고, 차례대로 22번까지인가 적혀 있었다. 아버지가 붓으로 큼지막하게 써 놓은 한문 숫자를 마루에 걸터앉아 보면서, 문자를 하나하나 애써 머리에 또박또박 새겨 넣기도 했다.
쥐들이 곳간의 나락을 탐내지 못하도록 철저한 경비를 서는 게 살진이의 임무였다. 마루 끝에 놓아둔 그릇에 고등어 가시나 밥 두어 숟갈 담아 놓으면 잽싸게 내려와 먹고는 마루 끝에 웅크리고 앉아 꾸벅꾸벅 졸다가 다시 올라가곤 했다. 살진이가 그 곳집 위에 오를 때면 12번인가 13번 정도의 판자를 한 번 짚고 껑충 뛰어올랐다. 그 날렵하게 뛰어오르는 고양이를 경이로운 느낌으로 쳐다보며 14번이나 15번을 딛고 뛰어오르기를 바라기도 했다. 조금 더 크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며 곳집 위에 올라설 때마다 유심히 지켜보곤 했다.
이맘때쯤이었다. 그날도 더위가 온 세상을 삶을 듯 엉겨 붙어 치근덕대었다. 살진이가 목쉰 울음으로 왝왝대며 곳간의 널빤지 15번인가 16번을 딛는 것을 우연찮게 목격하게 되었다. 하지만 곳집 위로 곧장 튀어 오르지 못하고 그대로 발라당 떨어지는 게 아닌가. 다시 몸을 곧추세우고 힘차게 솟아오르는가 싶다가도 떨어지고, 그러기를 거듭하더니 그만 마룻바닥에 떨어져 다리를 바릊거리기 시작했다. 급히 달려오신 아버지가 살진이의 뒷다리를 묶어 감나무에 거꾸로 매달아 놓고 양잿물을 억지로 먹였다. 그러나 살진이는 기어이 토해 내지 못하고 눈꺼풀의 힘을 스르륵 놓고 말았다. 당시 쥐들이 한창 설치던 때라 여기저기 길목에 놓아두었던 농약을 버무려 놓은 음식물을 먹은 모양이었다. 형과 삽을 들고 뒷산에 올라 양지바른 둔덕에 묻어 주고 내려오는데, 살진이의 웅절거림이 귓속에 담겨져 왱댕그랑 끊임없이 들려오는 바람에 왈칵 눈물을 쏟았던 기억이 꿈틀거리며 되살아난다.
조용히 밤이 타고 있다. 이 밤에도 새끼 고양이들은 고향 집 가마부엌 솥전에 웅크리고 앉아 뜬눈으로 지새우며 제 어미를 기다리고 있겠지. 그 희망을 조그만 가슴에 품고 올망졸망한 눈을 끔뻑이며 부스럭 소리에도 예민한 귀를 쫑긋 기울이겠지. 아궁이에 장작불이 지펴져 노글노글한 아랫방에는 농약을 먹어야 살 수 있는 고추가 뜨듯한 불목에 다리 쭉 펴고 누워 한잠이 들었겠지. 그 고추는 고양이들의 애틋한 사연을 전혀 알 리가 없겠지. 먹고 사는 게 완전히 다르니까 알려고도 하지 않겠지.
농약을 먹어야 살 수 있는 고추와 어미 잃은 새끼 고양이들의 안쓰러운 기다림, 거기에 쥐약 먹고 죽어 가던 살진이의 애간장 녹는 듯한 왝왝거림이 오버랩 되어 머릿속에서 심통 사납게 풀썩거린다. 꼬깃꼬깃 구겨 휴지통에 던져 버리지 못한 그 애꿎은 필름이 되살아나 여전히 움찔대게 하는, 비감 한 조각이 이 밤에 암울하게 씹히며 불걱거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