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학들의 교훈으로 보이는 구사(九思) 구용(九容), 오륜(五倫) 편액글은 1909년(己酉) 6월 초서한 것을 2004년(甲申) 7월 새로운 편액으로 교체하면서 재서하였다.
현재 관수재에 소장된 편액 7점(액호 2점, 시운 5점)은 2004년 종중에서 복원하였다. 이중 시운 편액글 5점을 후손 학운(鶴雲) 김주환(1931년생)이 새로 썼다.
용산면 금곡마을 영광김씨는 지난날 용산면 칠리안속 어산~청전마을 간 1,000두락을 소유한 부자 집안이었다. 이런 바탕에서 자손들의 교육을 위해 학문이 뛰어난 선비들을 훈장으로 모셔왔다. 이중에는 용산 묵촌 태생 남파(南坡) 이희석, 사복재(思復齋) 송진봉(1840~ 1898), 안양면 기산 태생 신헌(愼軒) 김옥섭(1878~1930) 등 다수가 훈장을 맡아 주로 농한기인 겨울~봄철간에 강학하였다. 특히 일제강점기때 가진탄압에도 종중의 지도자 지헌(芝軒) 김한기(1863~ 1930)를 중심으로 단합하여 강학을 계속 이어가 서재를 발전시켰다. 나갔다. 신학문이 확산되면서 서재는 자연적으로 쇠퇴해가 마지막 훈장인 만곡(晩谷) 김창주 때 1980년 말경 폐하였다. 강학 대상은 주로 금곡, 인암 등 주변 마을 거주 학동이었다.
금곡파종중에서는 영광김씨 시조 문안(文安) 김심언(?~1018) 이하의 선대 유고를 체계화 하여 정리한 "金谷遺文集"을 2010년 간행하였다.
지난날 관수재에서 수학했던 현재의 대표적 인물로는 前 문화체육관광부 영화진흥공사 감사 김채환(1937년생), 前 영광김씨 대종회장 김효전(1937년생), 前 서울시 중구 상공회의소장 김정전(1946년생), 前 EBS부사장 김명전(1955년생), 한학자 김규정(1959년생),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김득환(1961년생) 등 다수이다.
관수재는 영광김씨 금곡파종중에서 소유 관리하고 있다. 오랜 흔적을 엿볼 수 있으나, 연혁 등 안내 시설물이 없고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당국의 문화재 지정을 통한 관리 등 대책마련이 필요하다. 이는 요즘을 살아가는 금곡 출신 후손들의 관심과 선도적 추진이 중요한 과제라 사료된다.
자문 : 김규정(한학자, 금곡마을 1959년생, 현 서울시 관악구 거주)
본글에서,
남파 이희석(1804~1889)은 용산면 묵촌 태생으로, 노사 기정진의 핵심 문하생 입니다.
남파 선생의 선대 인천이씨는 위문과 주로 혼사를 맺는 등 인연이 각별합니다.
성균진사 청강공(이 승)의 손녀딸은 반계공(정명)의 配이며, 公의 묘갈명을 영이재공(문덕)이 撰하였습니다.
이런바탕에서 1874년 다암공(영복)은 남파 이희석을 통해 스승 기정진에게 존재공의 문집 교정 편집을 부탁한 사례가 있습니다.
최근 용산면 접정 태생 이병혁(1956년생, 부친 이영숙)은 남파 이희석 선생의 <남파집>에 관해 문학박사 학위 논문으로 제출하여 전남대학교대학원에서 인준하였습니다.
이병혁 박사의 외가는 방촌리 산저마을로, 위 백 종친의 고종사촌 형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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