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 짓기에 어려움이 있는 고령 농민의 농지를 임대해 영농형 태양광을 운영하면, 농민 소득을 더 높일 수 있습니다. 또 일반 태양광은 산지를 훼손해 피해가 많은 반면, 영농형 태양광은 주로 농지 위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농지 훼손도 전혀 없습니다."
경남 함양군 기동마을에서 영농형 태양광 발전소 운영을 맡고 있는 이태식 기동마을 사회적협동조합장. 그는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발전 운영 수익금으로 마을 주민 복지 혜택을 확대할 수 있어 주민 만족도가 아주 높다"고 말했다.
한화솔루션 큐셀부문(이하 한화큐셀)과 한국에너지공단이 지난 1일 경남 함양군 '기동마을 영농형태양광 발전소'에서 기자 설명회를 열었다. 이날 행사에는 발전사업을 지원한 한국남동발전, 발전소를 운영 중인 기동마을 사회적협동조합, 시공협력업체인 클레스(KLES), 영농형태양광 표준화 국책과제를 연구하는 영남대학교 정재학 교수 연구팀 등의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했다.
지역 주민으로 구성된 기동마을 사회적협동조합은 고령인 농민들의 농지를 임대해 약 100kW(킬로와트) 규모의 영농형태양광 전용 모듈을 설치했다. 이 마을은 연간 150명이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기동마을 발전소는 한국남동발전이 출연한 농어촌상생협력기금으로 2019년 4월에 준공했다. 전력 판매 수익금은 마을회관 보수, 공동 CCTV 설치 같은 마을 공동기금으로 사용하고 있다.
◆산을 깎을 필요 없는 영농형 태양광, 농경에도 도움줘
영농형 태양광은 농작을 멈추고 농지에서 발전만 진행하는 일반 농촌 태양광과 다르다. 발전시설을 설치하기 위해 산을 깎을 필요도 없다.
[서울=뉴시스]경남 함양군 기동마을 발전소 현황을 설명하고 있는 이태식 기동마을 사회적협동조합장 (사진=한화큐셀 제공)
영농형 태양광은 작물 생육에 필요하지 않은 빛으로 전력을 생산하기 때문에 농민들은 계속 농사를 지을 수 있다. 태양광 모듈의 크기와 배치, 각도 등을 조절해 작물 재배에 적합한 일조량이 충분히 공급되게 하면서 남는 태양광으로 전기를 생산한다. 예컨대 벼의 광포화점은 50klus(킬로럭스)로, 이를 초과하는 태양광은 벼의 광합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영농형 태양광은 토질에 영향을 주지 않고 철거하기 쉬운 구조물을 사용하며 이앙기, 콤바인 등 농기계가 다닐 수 있도록 3~5m 높이에 모듈을 설치한다.
폭염, 폭우, 냉해 등 악천후에 따른 농작물 피해를 감소시키는 '그림자 효과'도 있다.
정재학 영남대 교수는 "영농형 태양광이 물 증발을 막아 토지 습도를 유지해 가뭄을 예방할 수 있고, 겨울철에는 추운 공기의 흐름을 막아 냉해 피해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벼농사 대비 3배 소득…농지 5% 설치시 1년 사용 전력
영농형 태양광은 위기에 처한 농촌의 새로운 수익 모델로 활용할 수 있다. 정재학 교수 연구팀이 지난해 국내 전력 가격을 기준으로 영농형태양광 발전 수익을 계산한 결과, 100kW(킬로와트) 규모의 발전소를 기준으로 연간 787만~1322만원의 소득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함양=뉴시스]최희정 기자= 경남 함양군 기동마을 영농형 태양광 단지 전경. 2022.09.01. dazzling@newsis.com
이는 같은 면적의 농지(약 700평)에서 벼 농사를 지을 경우 기대되는 연간 농경 소득인 약 240만원의 3~5배 이상이다.
정 교수는 "농지가 점차 소멸되고 있어 농사만 지어서는 농민들의 소득 보전이 안된다"며 "영농형 태양광을 하면 농민 소득이 늘어나는 것은 물론, 여전히 농지로 묶이기 때문에 농토 보존도 잘 된다"고 강조했다.
한화큐셀 한국사업부장 유재열 전무는 "영농형 태양광을 하면, 찻잎은 수확량이 늘어나는데 벼농사 생산량은 15~20% 감소한다" 며 "하지만 농가 입장에서는 태양광 발전을 통한 수익이 늘기 때문에 전체 수익은 훨씬 더 올라간다"고 말했다.
영농형 태양광의 활성화는 국내 재생에너지 전환 및 국가 차원의 탄소중립 목표 달성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환경연구원이 2021년 5월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국내 전체 농지 면적 총 1만5760㎞(약 160만 ha)의 5%에만 영농형 태양광을 설치해도 약 34GW(기가와트)의 발전소를 지을 수 있다. 이는 국내 총 인구의 90%가 넘는 약 4800만 명이 가정에서 1년 간 사용할 수 있는 전력 규모다. 우리나라의 지난해 태양광 신규 보급량이 4.4GW였던 것과 비교하면 약 8년간 신규로 보급할 수 있는 양이다.
[함양=뉴시스]최희정 기자= 경남 함양군 기동마을 영농형 태양광 단지 전경. 2022.09.01. dazzling@newsis.com
◆현행 농지법이 걸림돌…국회에서 잠자는 개정 법안들
그러나 영농형 태양광을 제도적으로 지원하는 유럽·일본과 달리 국내에선 법령 미비로 영농형 태양광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현행 농지법 시행령에 따르면, 농지의 다른 용도 일시사용 허가 기간은 최장 8년에 불과하다. 이 기간이 지나면 수명이 약 25년 이상인 발전소를 철거해야 한다. 이는 영농형 태양광 사업의 비효율성을 초래해 발전 단가(LCOE)를 올려 재생에너지 전환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농민들 입장에서는 8년 짜리 발전소를 운영하기 위해 자본금을 투자하는 셈이어서 영농형 태양광 설치를 주저하게 만들고, 이는 영농형 태양광 확산에 걸림돌이 된다.
현재 영농형 태양광 활성화를 위한 관련 법률 제·개정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승남 의원(전남 고흥·보성·장흥·강진)은 지난해 11월 영농형 태양광을 위한 타용도 일시 사용허가 기간을 20년으로 하는 '영농형 태양광 발전사업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2020년 6월에는 박정 민주당 의원(경기 파주시을)이 같은 내용의 농지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며, 2021년 3월 위성곤 민주당 의원(제주 서귀포시)도 영농형 태양광 사업을 하는 농가 소득을 보장하기 위한 ‘농업인 영농형 태양광 발전사업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이날 설명회에서 기동마을 주민은 물론, 전문가와 영농형 태양광 업계 관계자들은 "현행 농지법이 '영농형 태양광 활성화'에 발목을 잡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함양=뉴시스]최희정 기자= 경남 함양군 기동마을 영농형 태양광 발전소에서 농민이 농기계로 추수를 하고 있다. 2022.09.01. dazzling@newsis.com
이태식 조합장은 "농지법상 일시적으로 허가를 받다 보니 문제가 있다"며 "농가들이 이렇게 시설 투자를 해 놓고 시설비를 회수할 수 있는 기간이 단축된다면 (영농형 태양광 설치를)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장기적으로 20년 이상으로 허가를 해줘야 농가가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유재열 한화큐셀 전무는 "농민 입장에서는 영농형 태양광을 설치할 경우, 전체 소득이 농작물 생산량 감소를 상쇄하고도 남기 때문에 관심을 갖고 있지만, 법령 미비로 하고 싶어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발전시설 수명과 경제성을 고려해 설치했다가 몇 년 만에 해체하는 것은 낭비"라며 "법 제·개정이 되면 실제 농민과 태양광 발전을 운영하면서 농촌 문제를 해결하고 탄소 중립까지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영농형 태양광', 농민들 반기지만 못하는 이유는? ::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 (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