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리학(性理學)에 천인합일(天人合一)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천주교 신앙의 기본 방향을 잘 표현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늘과 사람이 결국은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뜻은 천주교회에서 가르치는 교리의 대목과 일치할 만큼 놀랍고 훌륭한 대목입니다. 천주교 교리에 따르면 사람이 하느님께 나가는 신앙생활의 마지막 단계는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는 것인데, 천인합일(天人合一)이라는 말은 이 내용을 단적으로 잘 나타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천주교회에서는 ‘하늘’이라고 하는 말에 ‘님’자를 붙여서 ‘하느님’이라고 부르면서 인격적인 하느님을 믿고 섬깁니다. 바로 이 점에 놀라운 의미가 있으며 동시에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 대한 전통적인 인식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천주교는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과 손길을 구체적으로 깨닫고 하느님과 일치하는 명확한 길을 보여줍니다. ‘하느님’이라는 존재를 무시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십니까? 만약 하느님의 존재를 무시한다면 천인합일(天人合一)이라는 말은 무의미할 뿐입니다.
문제는 ‘하느님은 어떤 분이실까, 또 우리가 하느님께 나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하는 것이지, 하느님의 존재를 두고 ‘있다’ ‘없다’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문제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생각해 온 막연한 하늘이 아니라 바로 ‘하느님’하고 부르면 당장 대답하시는 분이라고 믿는다면, 그래도 가만히 앉아 뒷짐만 지고 계시겠습니까? ‘아이구, 골치 아파’하지 마시고, 곰곰이 그리고 차분하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마음 속 아주 깊은 데서 하느님의 소리가 들린다면,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소리가 들린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지금으로서는 어떤 것이 하느님의 목소리인지 구분하지 못하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우리 천주교 신자들은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기도하는데, 이것은 하느님께서 두렵고 절대적인 힘을 가지신 분이라기보다는 ‘사랑’이시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즉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는 보통 관계가 아닌 ‘부모와 자식의 관계’이며, 따라서 ‘아버지 하느님’이라는 말은 그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친근감을 주고 우리를 끌어 당기는 말인 것입니다. 모든 이들의 아버지이신 하느님께서는 지금 이 순간 당신을 기다리고 계신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볼 때 천인합일(天人合一)이라는 말은 하늘과 사람이 하나가 된다는 어마어마한 표현이 아니라, 하느님과 사람은 한 식구가 된다는 아주 부드러운 말로 들릴 수가 있습니다.
이렇듯 천주교회는 새로운 가정을 만들어 주는 곳이며, 새로운 관계를 맺어 주는 곳입니다. 하느님은 아버지이시고 우리는 그 자녀가 되는 아주 부드러운 관계를 천주교회에서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아버지이신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당신 품으로 돌아와 ‘아버지’하고 불러 주기를 간절히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면서 아버지로서의 사랑을 보여 주시고 아버지의 뜻을 가르쳐 주시며 또 아버지께로 모든 사람들을 이끌어 주십니다.
외짝교우의 남편이 되시는 분들을 ‘아버지 하느님’께서 얼마나 기다리고 계시는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아내를 생각해서라도 더 많은 사랑으로 기다리고 계십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성당에 나가면서 교리를 배우시게 된다면 ‘인격적인 하느님’에 대해서 배우시게 될 것입니다. 또한 하느님은 한 나라의 임금과 같이 우리와 멀리 떨어져 계시는 분이 아니라 바로 ‘우리 아버지’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실 것입니다.
- 2023년 11월 2일(목), 서석성당 주임 이태원 시몬 신부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