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공서(周公書)를 편집한 여러 신하들의 문목(問目)에 답하다
[서형수(徐瀅修)가 말하였다.]
주자(朱子)가 처음에 《대학(大學)》과 《소학(小學)》의 이름을 소학지서(小學之書), 대학지서(大學之書)라고 하였으니, 이 책 역시 주공지서(周公之書)라고 이름을 붙이는 것이 높이는 뜻에 합당할 듯합니다.
책머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책 이름이다. 소학지서(小學之書)라는 말이 주 부자(朱夫子)의 왕복한 편지에 나와 있고, 《소학집성(小學集成)》의 강령편(綱領篇) 및 제사권(題辭卷)에서도 역시 소학지서로 쓰기는 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꼭 정착(定着)이 된 책 이름은 아니다. 그리고 《대학(大學)》에 이르러서는 바로 《예기(禮記)》의 편명(篇名)이니, 중용(中庸), 곡례(曲禮), 단궁(檀弓) 등의 이름과 서로 비슷한 것이다. 지금 만약 《대학》 서문(序文) 중의 대학지서(大學之書) 한 구절을 가지고 이것을 《대학》의 편명이라고 말한다면, 《중용》은 어찌하여 중용지서(中庸之書)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옛날부터 지금까지 종이를 허비하고 붓을 닳게 하면서, 서고의 마룻대까지 채워지고 소가 운반하면서 땀을 흘릴 정도의 많은 서적에서 일찍이 이런 책 이름이 있지 않았으니, 《주공서(周公書)》로 이름을 짓는 것이 가하겠다.
[서형수가 말하였다.]
가화(嘉禾), 포고(蒲姑) 등 일서(逸書) 및 급총주서(汲冢周書) 등 의심스럽게 전해지는 것은 따로 기록하여 외편(外編)으로 만드는 것이 아마도 갖추어 기재하는 체재에 합당할 듯합니다.
성인(聖人)의 문자(文字)는 체재가 근엄(謹嚴)하니 이 책의 취하고 버리는 것은 마땅히 정자(程子)와 주자(朱子)의 정론(定論)을 준적(準的)으로 삼아야 하며, 이 밖에 의심스럽게 전해지는 글은 결단코 기록하여 실을 수 없다. 더구나 외편이라고 말한 것은 《노자(老子)》와 《장자(莊子)》 등의 여러 책에 처음으로 보이는데, 어찌 원성(元聖)의 글에다 원용(援用)할 수 있겠는가. 급총주서 및 일서 두 편은 모두 기록하여 넣지 말아서 간략하고 근엄함을 따라야 한다.
[서형수가 말하였다.]
육덕명(陸德明)이 《이아(爾雅)》의 석고(釋詁)는 주공(周公)이 지은 것이라고 하였는데, 그 설(說)은 북위(北魏)의 장읍(張揖)이 이른바 주공이 예(禮)를 제정하여 천하를 다스렸으며, 《이아》 한 편(篇)을 지어 그 뜻을 해석하였다고 한 데서 근본하였습니다. 그러니 이제 석고 한 편을 취하여다 외편에 싣는 것이 아마도 적합할 듯합니다.
육씨(陸氏)가 석고(釋詁)를 주공(周公)이 지은 것이라고 한 것이 비록 장읍(張揖)의 광아표(廣雅表)에 근본하기는 하지만, 장읍보다 앞서 곽경순(郭景純)과 같은 무리는 단지 그것이 중고(中古)에 일어나 한씨(漢氏) 때 융성하였다고만 말하였고,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 역시 지은 사람의 명씨(名氏)가 드러나지 않았으니, 이는 후세 유자(儒者)들이 장읍의 설(說)에 대하여 의심이 없을 수 없는 까닭이다. 재록(載錄)하지 않는 것이 마땅하겠다.
나의 생각으로는 《주역(周易)》, 《서경(書經)》, 《시경(詩經)》 세 경서(經書)는 부자(夫子)가 일찍이 편정(編定)한 것이다. 그런데 《주역》에서는 주공의 효사(爻辭)를 취하고 부자의 상전(象傳)과 문언전(文言傳)으로 이었으며, 《서경》과 《시경》의 여러 편은 한결같이 주 부자(朱夫子)가 이미 정한 논의를 따라 취하였으며, 《주관(周官)》에서도 역시 주자의 정론(定論) 가운데 “《주례(周禮)》의 규모는 모두 주공(周公)이 지은 것을 따랐으니 이는 성인(聖人)이 아니면 지을 수 없다.”는 교훈을 준수하여 취한 것이다. 그리고 동관(冬官)의 《고공기(考工記)》의 경우는 한 글자 낮추어 부용(附庸)으로 붙이는 것이 온편하겠다.
[심상규(沈象奎)가 말하였다.]
문왕 괘사(文王卦辭)를 이미 기재하여 넣지 않았으니, 단전(彖傳)과 대상(大象)을 기재하여 넣은 것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단지 육효(六爻)의 소상(小象)만 효(爻)의 아래에다 재록(載錄)하는 것이 아마도 간편하고 쉽게 하는 뜻에 적합할 듯합니다. 그리고 소상을 한 글자 낮추는 것이 미안(未安)한 것 같지만 이 책에 이미 주공의 글을 주로 삼았으니, 아마도 한 글자 낮추어 쓰지 않을 수 없을 듯합니다.
부자(夫子)가 소상(小象)을 한 글자 낮추어 쓴 것은 의례(義例)가 명확하니 논의할 필요가 없다. 대체로 단(彖)과 상(象) 두 전(傳)을 괘(卦)와 효(爻)의 아래에다 나누어 붙인 것은 비직(費直)의 본(本)에서부터 시작되었는데, 마침내는 고경(古經)의 진면(眞面)을 잃게 되었으며, 여동래(呂東萊 여조겸(呂祖謙)의 호)가 조씨(晁氏)의 서(書)를 인하여 고역(古易)을 다시 정하자, 주자(朱子)가 자주 고본(古本)에 가깝다고 칭찬하였으며, 그가 지은 바 《본의(本義)》 역시 그 본을 활용하였다. 명(明) 나라 영락(永樂) 중에 《주역대전(周易大全)》을 찬수(纂修)하면서 《본의》와 《정전(程傳)》을 합하여 하나로 하였으며, 다시 비직과 정현(鄭玄)의 본을 떠왔기 때문에 상하경(上下經)과 십익(十翼)의 고본 편목(古本篇目)을 아는 자가 적었다. 그래서 내가 일찍이 한스럽게 여겼다. 그러나 이 책은 이미 주공(周公)의 전서(專書)로 《주역(周易)》의 전경(全經)과는 체재(體裁)가 같지 않으니, 소상(小象)의 글을 각효의 아래에다 나누어 붙여서 도로 비직과 정현의 전례를 활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나의 생각으로는 곧바로 상왈(象曰) 두 글자를 없애 버리면 그것도 오히려 고본(古本)에 가까울 것이다. 그리고 지금 ‘잠긴 용이니 쓰지 말라고 한 것은 양이 아래 있음이오[潛龍勿用 陽在下也]’라고 한 여덟 글자를 한 글자 낮추어 초구효(初九爻)의 다음 줄에다 써넣는 것이 매우 합당하다.
또 생각건대, 고역(古易)에는 초구(初九) 등의 효(爻) 이름을 말하지 않고, 초구효(初九爻)의 경우는 一을 긋고, 구이(九二) 이하는 이를 모방하였다. 그러니 지금도 이 사례를 활용하는 것이 옳겠다.
이미 소상(小象)의 글을 기록하였다. 그러니 문언전(文言傳) 가운데의 “초구(初九)에 이르기를 잠긴 용이니 쓰지 말라고 한 것은 무엇을 이르는 것인가?[初九曰 潛龍勿用 何謂也]”라고 한 이하 역시 각효(各爻)의 아래에다 나누어 기록하되, “잠긴 용이니 쓰지 말라고 한 것은 무엇을 이르는가?”라고 한 아래에다 곧장 ‘용덕을 지니고서 숨은 자이니[龍德而隱者]’라는 한 구절을 접속시키는 것이 옳겠다.
[심상규가 말하였다.]
금등(金縢)을 주공(周公)이 지었다고 하는 것은 고금(古今)으로 공통되게 전송(傳誦)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주공 언행(言行)의 대절(大節)은 금등이 최고이니, 대고(大誥) 등 여러 편의 위에다 기록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금등을 주공이 지은 글이라고 한 것을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어렵게 여기는 까닭은 그 전편(全篇)이 모두 주공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여러 사람의 논의가 이미 이와 같으니, 우선 기록하도록 하라.
[심상규가 말하였다.]
《시경(詩經)》의 의례(義例)에 대해서 어떤 사람이 육의(六義)는 각장(各章)의 아래에다 써넣고 각편(各篇)의 취지는 각편의 끝에다 써넣는 것이 합당하다고 하니, 삼가 성상의 결재를 기다립니다.
육의(六義)를 이미 각장(各章)에다 나누어 붙였으면 각편(各篇)의 취지 역시 《집전(集傳)》에 의거하여 수장(首章) 육의의 아래에다 써넣어야 하고 다만 ○표시를 하여 구별하는 것이 옳다.
《주역(周易)》의 소상(小象)에 이미 상왈(象曰) 두 글자를 쓰지 않았다. 그런데 《시경(詩經)》에서만 주자왈(朱子曰)이라고 써넣는 것은 체제가 서로 동떨어진 혐의가 없을 수 있겠는가.
答周公書編輯諸臣問目
臣瀅修曰。朱子初名大小學曰小學之書。大學之書。此書亦名周公之書。似合尊閣之義。
開卷第一義。卽篇名也。小學之書云者。雖見於朱夫子往復柬牘,小學集成綱領篇及題辭卷。亦以小學之書書之。然未必是定著之篇號。至於大學。卽禮記篇名。而與中庸曲禮檀弓等名相似。今若以大學序文中大學之書一句。謂是大學之篇名。則中庸何不曰中庸之書也。自古至今。費楮剟毫。充棟汗牛之籍。未嘗有似此篇號。以周公書爲名可耳。
臣瀅修曰。嘉禾蒲姑等逸書及如汲冢周書等傳疑者。別錄爲外編。恐合備載之體。
聖人文字體裁謹嚴。是書取舍。當以程朱定論爲準的。外此傳疑之書。決不可載錄。况外篇云者。始見於老莊諸書。豈可援用於元聖之書乎。汲冢周書及逸書二篇。竝勿錄入。以從𥳑嚴。
臣瀅修曰。陸德明謂爾雅釋詁。爲周公所作。其說本於魏張揖所謂周公制禮。以道天下。著爾雅一篇。以釋其義者也。今取釋詁一篇。載之外編恐宜。
陸氏之以釋詁。爲周公所作。雖本於張揖廣雅表。而
張前如郭景純輩。但稱其興於中古。隆於漢氏而已。漢藝文志。亦不著撰人名氏。此後儒所以不能無疑於張說者也。宜勿載錄。
吾意則易書詩三經。夫子之所嘗編定者也。於易取周公爻辭。系之以夫子象傳文言傳。於書詩諸篇。一遵朱夫子已定之論。取之。於周官。亦遵朱子定論中周禮規模。皆從周公做。直是非聖人做不得之訓。亦取之。如冬官之考工記。低一字。屬之附庸。爲穩。
臣象奎曰。文王卦辭。旣不入載。則彖傳大象。亦不當入載。只以六爻之小象。載錄於逐爻之下。恐合
𥳑易之義。小象之低一字。雖似未安。而此書旣以周公文爲主。則恐不得不低一字書之。
夫子小象之低一字書之。義例較然。無容議爲矣。蓋彖象二傳之分附逐卦逐爻之下。始自費直本。遂失古經眞面。呂東萊因晁氏書。更定古易。朱子亟稱其近古。所著本義。亦用其本。明永樂中。纂修周易大全。合本義程傳而一之。復從費直鄭玄之本。故上下經十翼之古本篇目。尠有知之者。予嘗恨之。然此書旣爲周公之專書。與周易全經。體裁不同。則不得不以小象之文。分附於各爻之下。還用費鄭之例矣。然吾
意直去象曰二字。則猶爲近古。今以潛龍勿用陽在下也八字。低一字。書之於初九爻之次行甚當。又思之。古易則不言初九等爻名。初九爻則畫一。九二以下倣此。今亦用此例爲可耶。
旣錄小象之文矣。文言傳中初九曰。潛龍勿用。何謂也以下。亦分錄於各爻之下。而潛龍勿用何謂也下。直接龍德而隱者之句爲可耶。
臣象奎曰。金縢之爲周公書。古今之所共傳誦。且周公言行之大節。金縢爲最。當錄於大誥諸篇之上。
金縢之爲周公書。非曰不然。而吾所以難之者。爲其全篇之不皆出於周公也。僉議旣如是。第姑錄之。
臣象奎曰。詩經義例。或云六義。書於各章之下。篇旨。書於各篇之末。爲當。恭俟睿裁。
六義旣分屬於各章。則篇旨亦當依集傳。書之於首章六義之下。惟加圈而別之爲可。
易之小象。旣不書象曰二字。則只於詩經。書以朱子曰者。得無嫌於參商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