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둘째주 그룹큐티나눔
소발의 말에 대한 욥의 대답
욥기 24:1-25
새찬송 325장(찬송 359장, 예수가 함께 계시니)
오늘 본문은 이 세상의 악인들이 하나님의 정의를 떠나 악을 행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내용(1-17절)과 그러한 악인들이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심판받을 거라는 예언자적 내용(18-25절)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말씀과 나눔
1. 악한 자들은 약한 자들을 억압하고 짓밟는 악행을 저지릅니다(1-12절). 이들은 단순히 세상 법과 도덕, 윤리를 거스르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에 의도적으로 불순종하는 하나님의 대적자들입니다(13-17절).
1) 욥은 그들의 악행을 어떻게 묘사합니까(2-4절)?
땅의 경계표를 옮기며, 양 떼를 빼앗고, 고아의 나귀를 몰아가며, 과부의 소를 볼모 잡으며, 가난한 자를 길에서 몰아냄
2절에서 경계표를 옮긴다는 것은 남의 땅을 속여 빼앗는다는 말입니다. 3, 4절에서 등장하는 고아와 과부와 가난한 자는 누군가를 의지하지 않으면 사회에서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는 가장 연약한 자들을 의미합니다. 그러한 사람들을 속이고 폭력과 힘으로 누르는 것은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악행 중에 악행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불의를 미워하며 정의를 사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신명기를 통해서 하나님의 법을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법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직접적인 실천사항입니다. 그래서 이 법을 따라 살면 하나님이 얼마나 정의로우시며 얼마나 긍휼하신지를 삶을 통해 증거할 수 있게 됩니다. 혼자 사는 삶이 아니라, 사람들과 더불어 함께 사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를 향한 우리의 태도입니다. 내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를 증명하는 수준이 아니라, 상대방이 실제로 나의 태도와 행동을 통해서 공동체적 유익을 누릴 수 있게 되는 수준까지 이르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정의이고 긍휼입니다. 욥은 이런 불의한 세상과 사회를 향해 애통해하며 하나님께 탄원하고 있습니다.
2) 욥은 악한 자들이 짓밟은 약자들의 형편을 어떻게 묘사합니까(6-8절)?
악인이 남겨둔 포도를 따며, 의복이 없어 벗은 몸으로 밤을 지내며, 소나기에 젖으며
악한 자들로부터 유린을 당한 약한 자들의 안타까운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6절은 약한 자들의 먹는 문제를, 7절은 입는 문제, 8절을 거하는 문제, 즉 그들의 의, 식, 주의 처참한 현실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고대 근동사회에서만 존재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 어떤 시대보다 자본과 학식이 많으며 과학, 기술의 놀라운 발전과 문명의 급진적인 진보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에도 곳곳에서 벌어지는 문제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받고 있는 교회와 성도들은 이러한 불의하고 부조리한 현실을 볼 줄 알아야 하며, 더 나아가 이 문제를 우리의 문제로 끌어안아야 합니다. 참된 신앙은 우리 주변과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을 진리를 근거로 재해석하며 예수님의 길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종교의 울타리에 갇혀 자신의 사익만을 챙기는 것이 아니라, 공적 영역에서 예수님의 빛을 드러내는 것이 진짜 신앙입니다.
● 나눔 1
2절의 ‘경계표를 옮긴다’는 말은 남의 땅을 속여 빼앗는다는 말입니다. 또 3-4절에서 등장하는 고아와 과부와 가난한 자는 누군가를 의지하지 않으면 사회에서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는 가장 연약한 자들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약자들을 속이고, 폭력과 힘으로 누르는 것을 가장 싫어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불의를 미워하고, 정의를 사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정의를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일은 무엇일까요?
● 나눔 2
본문은 악한 자들로부터 유린당한 약한 자들의 안타까운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6절은 약한 자들의 먹는 문제를, 7절은 입는 문제, 8절은 주거의 문제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고대근동사회에서만 존재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 어떤 시대보다 자본과 학식이 많으며 과학기술의 놀라운 발전과 문명의 급진적인 진보 속에서 살아가는 오늘날에도 곳곳에서 벌어지는 문제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받고 있는 교회와 성도들은 이러한 불의와 부조리의 현실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 비추어 우리 주변에 나타나는 사회적 부조리를 찾아봅시다.
2. 돈과 권력으로 불의를 일삼는 사람들이 더 잘나가는 것 같고, 더 행복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욥은 결국 정의의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실 거라고 강조합니다.
1) 욥은 악한 자들의 마지막을 어떻게 묘사합니까(18-20절)?
물 위에 빨리 흘러가고, 세상에서 저주를 받고, 포도원 길로 다니지 못하며, 스올이 그들을 빼앗아가고, 모태가 잊어버리고, 구더기가 먹으며, 다시는 기억되지 않을 것으로 묘사함
욥은 지금 최소한 악인은 아닌 자신이, 왜 이러한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조금씩 이해해가고 있다고 봅니다만)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이러한 고난을 받아야 할 악인은 아니라는 것을, 진짜 악인들의 모습을 들추어냄으로써 증명하고 있는 겁니다. 물론 이러한 욥의 자세를 완전히 바르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욥은 자기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부족함까지도 하나님으로부터 교정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욥의 말대로 악한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반드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주 되심을 인정하고 그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나 불의한 삶을 사는 것에 대한 온전한 두려움을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무시하고 죄를 탐닉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하나님의 심판을 가벼이 여긴다는 데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불법을 저지르고 불의한 삶을 사는 것에 대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악하고 불의한 사람들을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반드시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하십니다.
● 나눔 3
욥은 자신이 악해서 고난받는다는 친구들의 주장이 틀렸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진짜 악인들의 모습을 들추어냅니다. 물론 이런 욥의 자세를 완전히 바르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욥은 자기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고, 욥에게 있는 부족함은 하나님께서 교정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욥의 말처럼 악한 사람들은 반드시 심판받을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도 이 두 그룹(욥과 악인) 사이에서 길을 찾아가는 중일지도 모릅니다.
내용 정리
오늘 본문에서 비춰진 욥은 ‘예언자’입니다. 예언자는 미래를 점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아는 것을 근거로 자신을 보고 사회를 보는 자입니다. 하나님이 정의로우시다는 것을 아는 자는 불의한 자신의 모습과 불의한 사회의 모습을 동시에 보게 됩니다. 그러나 진정한 예언자는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러한 불의함 가운데서 슬퍼하며 애통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정의가 무엇인지를 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 땅의 교회와 성도들을 예언자로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 예언자적인 사역 앞에 우리의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함께 기도
하나님, 우리를 이 세상의 예언자로 부르셔서 감사합니다. 한 손에는 하나님의 자비와 다른 한 손에는 하나님의 정의를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도록 우리를 도우소서.
출처 http://www.su.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