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허선사 참선곡(鏡虛禪師 參禪曲)
홀연히 생각하니 도시몽중(都是夢中)이로다.
천만고(千萬古) 영웅호걸
북망산(北邙山) 무덤이요
부귀문장(富貴文章) 쓸데없다.
황천객을 면할쏘냐.
오호라!
이내 몸이 풀 끝에 이슬이요
바람 속에 등불이라.
삼계대사(三界大師) 부처님이 정령이 이르시대
마음 깨쳐 성불하여
생사윤회 영단(永斷)하고
불생불멸(不生不滅) 저 국토에
상락아정(常樂我淨) 무위도(無爲道)를
사람마다 깨치라고
팔만장교(八萬藏敎) 유전(有傳)이라.
사람 되어 못 닦으면 다시 공부 어려우니
나도 어서 닦아보세
닦는 길을 말하려면 허다히 많건마는
대강 추려 적어보세.
앉고 서고 보고 듣고
착의끽반(着衣喫飯) 대인접화(對人接話)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是)에
소소영영(昭昭靈靈) 지각(知覺)하는
이것이 무엇인고
몸뚱이는 송장이요
망상 번뇌 본공(本空)하고
천진면목(天眞面目) 나의 부처
보고 듣고 앉고 서고 잠도 자고 일도 하며
눈 한번 깜짝할 제 천리만리 다녀오고
허다한 신통묘용(神通妙用) 분명한 이내 마음
어떻게 생겼는지 의심하고 의심하되
고양이가 쥐 잡듯이 주린 사람 밥 찾듯이
목마를 때 물 찾듯이
육칠십 늙은 과부
외 자식을 잃은 후에 자식 생각 간절하듯
생각 생각 잊지 말고 깊이 궁구하여 가되
일념만년(一念萬年) 되게 하여
폐침망찬(廢寢忘饌)할 지경에
대오(大悟)하기 가깝도다
홀연히 깨달으면
본래 생긴 나의 부처 천진면목 절묘하다.
아미타불이 아니며 석가여래가 아닌가?
젊지도 않고 늙지도 않고
크지도 않고 작도 안 하고
본래 생긴 자기 영광(自己靈光)
개천개지(盖天蓋地) 이러하고
열반진락(涅槃眞樂) 가이없다.
지옥 천당 본공(本空)하고 생사윤회 본래 없다.
선지식을 찾아가서
요연(了然)이 인가(印可) 맡아
다시 의심 없앤 후에 세상만사 망각하고
수연방광(隨緣放光) 지내 가되
빈 배같이 떠돌면서
유연중생(有緣衆生) 제도하면
보불은덕(報佛恩德)이 아닌가
일체계행(一切戒行) 지켜가면
천상 인간 복수(福壽)하고
대 원력을 발하여서 항수불학(恒隨佛學) 생각하고
동체대비(同體大悲) 마음먹어
빈병걸인(貧病乞人) 괄시 말고
오온색신(五溫色身) 생각하되
거품같이 관(觀)을 하고
바깥으로 역순 경계(逆順境界)
몽중(夢中)으로 관찰하여
해태심(懈怠心)을 내지 말고
허령(虛靈)한 이내 마음
허공과 같은 줄로 진실히 생각하여
팔풍오욕(八風五辱) 일체경계(一切境界)
부동(不動)한 이 마음을 태산같이 써나가세.
허튼소리 우스개로 이날 저 날 헛보내고
늙는 줄을 망각하니 무슨 공부 하여볼까.
죽을 제 고통 중에 후회한들 무엇하리.
사지백절(四肢百節) 오려내고 머릿골을 쪼개낸 듯
오장육부 타는 중에 앞길이 캄캄하니
한심참혹(寒心慘酷) 내 노릇이 이럴 줄을 누가 알꼬,
저 지옥과 저 축생(畜生)의 나의 신세 참혹하다.
백천만겁 차다(蹉跎) 하여
다시 인신(人身) 망연(茫然)하다
참선 잘한 저 도인은 서서 죽고 앉아 죽고
앓지도 않고 선세(蟬蜕) 하며
오래 살고 곧 죽기를 마음대로 자재하며
항하사수(恒河沙數) 신통묘용(神通妙用)
임의쾌락(任意快樂) 소요(消遙)하니
아무쪼록 이 세상에 눈코를 쥐어뜯고
부지런히 하여보세.
오늘내일 가는 것이 죽을 날에 당도하니
푸주(庖廚) 간에 가는 소가 자욱자욱 사지(死地)로세.
예전 사람 참선할 마디 그늘 아꼈거늘
나는 어이 방일(放逸)하며,
예전 사람 참선할 제 잠 오는 것 성화하여
송곳으로 찔렀거늘 나는 어이 방일하며,
예전 사람 참선할 제 하루해가 가게 되면
다리 뻗고 울었거늘 나는 어이 방일한고
무명업식(無明業識) 독한 술에
혼혼불각(昏昏不覺) 지내다니
오호라 슬프도다. 타일러도 아니 듣고
꾸짖어도 조심 않고 심상(尋常)히 지나가니
혼미한 이 마음을 어이하여 인도할꼬
쓸데없는 탐심진심(貪心瞋心) 공연히 일으키고
쓸데없는 허다분별(許多分別)
날마다 분요(紛擾)하니 우습도다.
나의 지혜 누구를 한탄할꼬.
지각없는 저 나비가 불빛을 탐하여서
제 죽을 줄 모르도다.
내 마음을 못 닦으면 여간계행(如干戒行)
소분복덕(小分福德) 도무지 허사로세.
오호라 한심하다.
이 글을 자세 보아
하루도 열두 때며 밤으로도 조금 자고
부지런히 공부하소.
이 노래를 깊이 믿어
책상 위에 펴놓고 시시때때로 경책(驚策)하소
할 말을 다 하려면
해묵서이(海墨書而) 부진(不盡)이라
이만 적고 끝내오니 부디부디 깊이 아소.
다시 한 말 있사오니
돌장승이 아기 나면 그때 말할 테요.
경허(鏡虛) 스님은 한국 근현대 불교를 개창한 대선사이다. 1849년 전주 자동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여산(礪山)으로, 속명은 동욱(東旭)이다. 법호는 경허(鏡虛), 법명은 성우(惺牛)이다. 함경도 갑산(甲山)에서 1912년 4월 25일 열반하였다. 제자로는 수월, 혜월, 만공 선사 등이 있고 저서로는 『경허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