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은 좀 추시나요? / 송덕희
2021년 여름에 ‘스트릿 우먼 파이터’라는 티브이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었다. 여성 댄서들을 위한 최초의 춤 경연 프로그램이다. 케이팝(k-pop) 열풍에 힘입어 세계 무대로 나갈 춤꾼을 키우는 데 한몫을 했다. 가수의 노래를 춤으로 돋보이게 하는 백댄서, 아직 실력을 인정받지 못했으나 춤추는 매력에 빠져 사는 사람, 학원에서 댄서 지망생을 가르치며 자신의 꿈을 접고 있던 강사 등 1,100여 명이 예선에 참가했다. 심사를 거쳐 본선에서 겨룰 팀을 뽑고 최종 우승자를 가린다. 결승까지 올라온 팀들은 승부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솜씨가 뛰어났다. 섬세하게 표현하는 동작들은 음악과 잘 어울리고 박진감이 넘쳤다. 곡을 해석하고 경험을 덧입혀 기쁨, 슬픔, 탄식, 노여움 등의 감정을 한편의 작품에 담아냈다. 팔, 다리, 허리, 머리를 따로 또 같이 저렇게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고? 입이 딱 벌어졌다. 화려한 춤에 가려진 그들의 말 못할 서러움과 남몰래 흘린 땀방울은 눈물샘을 자극했다. 즐기고 좋아하는 춤을 마음껏 추고 싶은 마음이 전해졌다. 공부 못하고 노는 사람이나 춤춘다는 편견을 바꾸기에 충분했다. 옆에서 같이 보고 있던 딸이 “엄마는 춤 좀 추시나요?”라며 옆구리를 간지럽힌다.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시골 학교의 가을 운동회는 마을 잔치였다. 온 동네 주민들이 학교로 모인다. 하늘에는 만국기가 펄럭이고 운동장 한쪽에 즐비한 사람들을 보면 가슴이 떨리고 부담스럽다. 이런 마음과 달리 어른들은 어린 학생들이 선보인 공연을 보며 떠들썩거리고 즐거워한다. 청백 계주에 버금가는 인기 종목은 단연코 전통춤이다. 여러 명이 한데 모여 선보이는 부채춤과 소고춤은 어른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부채춤은 화려한 빛깔의 한복과 부채로, 소고춤은 흰색 옷에 청홍색 띠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음악에 맞춰 등장하는 순간 박수와 환호가 쏟아진다. 그러니 운동회 날이 다가오면 수업은 뒷전으로 밀린다. 운동장에 모여 시도 때도 없이 기본 동작들과 대형들을 익혀야 한다. 많은 학생을 지도하는 선생님 입에서 좋은 말이 나올 리 없다. 흙먼지를 뿌옇게 뒤집어써도 학생들은 싫은 티를 못 낸다. 기본이 되는 동작을 익히고 부채나 소고를 폈다 접고 두드리는 건 매우 어려웠다. ‘앞으로 네 발 갔다, 뒤로 두 발, 왼쪽으로 돌아서 제자리’. 선생님이 박자를 세면서 시범을 보여도 한 박자가 늦거나 방향이 어긋나기 일쑤다. 오른쪽 손을 위로 올려 흔들어야 하는데, 내리고 있으면 금방 불호령이 떨어진다. 한 학년만이 아니라 4~6학년 여학생 전체가 하는 터라 수준도 안 맞고 어릴수록 높은 학년에 치인다. 모든 동작과 순서를 외워야 한다. 마지막으로 음악에 맞추기까지 얼마나 많은 연습을 해야 했는가.
5학년 운동회가 열리던 날도 소고춤을 췄다. 소고를 두드리며 투 스텝(two-step)으로 가는데 앞사람과 간격이 쭉 벌어지고 말았다. 순간 뒤에 있던 동네 언니가 빨리 가라며 등을 세게 밀었다. 나는 힘 없이 앞으로 넘어졌다. 들고 있던 소고는 바닥으로 떨어져 나갔다. 손바닥은 모래흙 바닥에 쓸려서 피가 나고 얼얼했다. 사람들이 나만 보고 있다는 생각에 아픔을 느낄 겨를도 없었다. 그것을 주워 들고 잽싸게 따라붙었다. 이후에 어떻게 춤을 췄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해가 뉘엿뉘엿 할 때 집으로 오는 길은 멀고 바람이 찼다.
큰딸이 세 살 무렵, 둘째가 태어나자 손을 덜어 주겠다며 시댁으로 데려갔다. ‘얘가 누굴 닮았는지 춤을 아주 잘 추더라’ 며칠 후에 어머니가 전한 말이다. 타고 난 몸치라 노래방을 가도 춤을 춘 적이 없는 남편은 안 닮았다. 나는 낫기는 하지만, 리듬에 맞춰 발만 움직거리는 정도다. 그런데 아이가 엉덩이를 씰룩씰룩 흔들고 허리를 돌리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란다. 어느 날은 친구 집에 데리고 갔는데, 낯가림도 없이 즉석 공연을 해서 돈을 받는다고 좋아했다. 이웃집 언니들도 꼬마 인형처럼 고개를 까딱거리며 박자를 맞추는 아이가 귀엽다며 반나절씩 봐주곤 해서 수월하단다. 엄마 품을 떠나 잘 지낼까? 걱정했는데 춤으로 예쁨 받고 돌아왔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 신기하리 만치 곧잘 췄다. 어릴 때는 동요 가사에 맞추더니, 커 갈수록 걸그룹 노래에 몸을 흔들며 리듬을 탔다. 음악 테이프가 늘어지면 새것으로 사 주곤 했다.
딸이 초등학교 1학년 때, 운동회가 있기 전날 노란색 팬티스타킹을 무용복으로 입는다는 걸 알았다. 왜 치마도 아니고 민망스럽게. 지금도 이해가 안 된다. 시장에서 어렵게 구해 보냈다. 나는 직장에서 일하다 말고 학교로 달려갔다. 아이들이 안쪽에 동그랗게 서고 엄마가 바깥에서 짝을 지어 춤을 춰야 한다. 딸을 찾아 마주 섰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스타킹 안에 입은 속옷이 그대로 비쳤다. 하필 진한 녹색이라니. 집에서 볼 때는 몰랐는데 밝은 햇빛에서 홀로 두드러져 보였다. 다른 아이들은 색을 맞춰 입었는지 티가 안 났다. 딸은 부끄러운지 얼굴이 벌게진 채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나는 놀라고 미안했다. 딸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준비, 신나게!” 흥을 돋우며 손을 맞잡았다. 음악이 흘렀지만 춤이 제대로 춰질 리가 없었다. 마음껏 재주를 뽐내고 싶었던 아이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왜 그걸 입혔냐며 나를 원망했다. 딸은 한동안 춤을 추지 않았다.
딸과 춤에 얽힌 경험을 얘기하다 말고, “그런 일이 없었더라면 저 댄서들처럼 멋지게 춤을 추고 즐겼을까?” 물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운동회였지만 이제 희미해졌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어릴 때는 진짜 춤 잘 추던 딸이었다며 말끝을 흐리니, 고등학교 축제에서 반 대표로 무대에 선 춤꾼이라며 자랑한다. 처음 들은 말인데, 즐기고 있었구나 싶어 마음이 놓였다. 나도 운동회 때 억지로 배웠던 춤사위들이 어렴풋하게 생각난다. 딸은 라인댄스를 같이 춰 보자며 손을 내민다. 그래, 꼭짓점 댄스는 잘 추지. 한때 유행했던 춤이라 몸이 기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