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지 않는 꿈
아빠가 많이 아프다. 아빠는 힘겹게 숨을 몰아쉬었고, 그 숨소리는 곧 멈출 것만 같았다.
‘이러다가 아빠가 돌아가실지도 몰라. 어떻게든 아빠를 살려야 해’
아빠의 죽음을 막기 위해 나는 약을 찾아 이 동네 저 동네를 헤매고 다닌다. 어떻게든 아빠를 살리고 싶어 길을 나섰지만, 사실 아빠를 낫게 할 약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그저 아픈 아빠를 이대로 떠나보낼 순 없어서 발길 닿는 대로 약을 찾아 뛰어 다닐 뿐이다.
그러다가 문득 불안한 마음이 밀려온다. ‘그 사이에 아빠가 돌아가신 건 아니겠지?’ 약을 찾다말고, 다시 아빠에게로 달려가 가만히 아빠를 바라본다. 아빠는 다행히도 옅은 숨을 계속 내쉬고 계셨다. 아직 살아계셔서 다행이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도 잠시, 나는 다시 서둘러 약을 찾아 나선다. 하지만 아빠의 생명이 언제 꺼질지 모른다는 불안함 속에 또 다시 아빠에게 돌아간다. 그렇게 약을 찾고, 아빠에게 돌아가고를 반복하다 문득 뼈아픈 사실을 깨닫는다.
‘아빠는 이미 돌아가셨잖아. 이건 꿈이야’
아빠가 긴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후, 몇 번씩이나 반복된 꿈을 꾼다. 꿈에서 아픈 아빠가 등장하면 난 늘 아빠를 살리기 위해 노력한다. 어떤 날에는 약을 찾아 헤매고, 어떤 날엔 의사를 찾아 헤매지만 단 한 번도 아빠를 살릴 약도, 의사도 찾지 못했다. 그렇게 꿈속에서 아빠를 살리기 위해 애쓰다가, 이미 현실에서는 아빠가 돌아가셨음을 자각하며 잠에서 깨어날 뿐이었다. 이미 바꿀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무력감과 허무함이 밀려든다.
꿈속에서 본 아빠의 모습은 어린 시절부터 봐왔던 아빠의 모습과 비슷했다. 아빠는 만성적인 기관지염과 폐 질환을 앓고 있었고, 결혼 후부터 상태가 더 나빠지기 시작했다. 한번 나빠진 폐는 다시 회복되기 어려웠다. 효과적인 치료법도, 수술법도 없었다. 그저 덜 나빠지기를 바라며 관리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환절기가 되면, 아빠는 이전보다 더 거친 숨을 내쉬다가 병원에 입원하시곤 했다.
어린 시절부터 아빠가 1년에 한두 번씩 병원에 입원하는 건 예삿일이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엄마가 없고 이모나 고모가 와계시면 직감으로 알아차린다. ‘아빠가 병원에 입원하셨구나’ 그러고 나면 곧 엄마에게서 전화가 걸려 온다. 수화기 너머로 아빠의 입원소식을 전하는 엄마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담담하다. 혹시나 어린 내가 걱정할까 봐 엄마는 걱정을 감추고, 어린 나는 엄마가 걱정할까 봐 애써 태연한 척 “응! 알았어!”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는다.
그 후로도 엄마는 어린 내게 아빠의 병세에 대해 상세히 말해주지 않았고, 나또한 아빠가 얼마나 많이 아픈지, 얼마나 더 입원해야 하는지, 엄마가 병원비는 어떻게 해결하는지 묻지 않았다. 그것은 서로를 걱정시키지 않기 위한 배려이기도 했지만, 아빠의 병세가 어떻게 변할지 예측할 수 없고, 그 누구도 아빠를 낫게 할 수도 없다는 무력감 때문이었다, 아빠가 얼른 나아서 집에 오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 뭐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지만, 어린 나는 엄마처럼 병간호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기도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렇게 한 해, 두 해 아픈 아빠를 위해 두 손을 모으던 아이는 어느새 19살이 되었다. 이제 수능도 끝나고, 성인이 되었으니 기도만 하던 두 손으로 아빠의 병간호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리라 생각했다. 병간호든, 경제적으로든 말이다. 그렇지만 아빠는 내가 손을 쓸 새도 없이 돌아가셨다. 스무 살을 일주일도 남기지 않은 시린 겨울이었다.
10년 하고도 몇 년이 더 지난 지금도 여전히 같은 꿈을 꾸곤 한다. 일찍 내 곁을 떠난 아빠를 향한 안타까움 때문이었을까? 아빠에게 아무 것도 해 주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떠나 보냈다는 후회 때문이었을까? 아빠와 함께 지나왔던 긴 시간과 미련과 후회들을 이렇게 하나씩 어렴풋이 더듬어 갈 뿐이다. 한 가지 분명한 건 꿈에서와 달리 아빠는 내 곁에 없다는 것이다. 사라진 아빠의 자리에 사라지지 않는 꿈만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