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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렉스를 위하여
이 홍사
-그럴 리가 없어요. 다시 한번 더 찬찬히 감정을 해보시지요.
유랑은 사지에 힘이 쭉 빠지는 걸 느끼며 사정하는 투로 말했다. 그러나 시계가 가득한 유리로 된 진열장을 사이에 두고 시계점 주인은 고개를 흔들었다. 사십 년간 이 자리에서 시계를 감정하고 수리했다면서 시계점 주인은 유랑을 달래는 투로 고개를 내저으며 나지막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르신! 어디서 사셨는지 몰라도 시계를 산 곳으로 가져가 보시지요.
시계감정사는 곤란하다는 투로 시계를 산 곳을 들먹였다.
산 곳?
그곳이 어디인지 유랑은 알지 못한다.
유랑은 유리로 된 진열장 위에 얹힌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사지에 힘이 풀리며 이마에 식은땀까지 흘러내릴 지경이었다.
이게 진품이 아니라니?
유랑은 한 손으로 이마의 땀을 훔쳤다.
잠깐! 유랑의 호칭에 대해서 잠시 짚고 가자.
유랄柳浪이라는 이름은 늙은이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유랑의 나이 일흔넷!
회갑을 지난 지가 얼추 십오 년인데 엊그제 같기만 하다. 이 나이에 유옹柳翁이라면 모를까 유랑이라는 소리를 듣는 게 부담스럽지 않느냐고 누가 물으면 유랑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런 문제로 시비를 걸면 괜히 부아가 인다. 젊어서부터 주변에서 들은 호칭이라 귀에는 유순하게 들린다. 본디 랑朗이란 젊은이 이름 뒤에 붙는 접미사다. 신랑, 화랑, 낭군, 등 젊은이 전유물인데 유랑은 일흔이 넘도록 랑郞이 붙어있다. 젊은 시절, 월남에서 철모를 쓰고, 엎드려 쏴! 외치고 있을 때 얻어걸린 호인데, 여태 유랑을 따라 다니고 귀에 익숙하게 들린다.
그래! 마음만은 젊어야지.
사실이지, 그 호칭이 싫지는 않다. 누가 이중사라고 계급을 부르거나 이름을 부르면 오히려 귀에 거슬린다. 외손자들에게는 할아버지라는 소리를 들어도 부담이 없다. 한데, 지하철이나 길에서 모르는, 젊은 새댁들이 할아버지라는 호칭을 쓰면 기분이 오히려 고약해진다. 늙어가는 걸 인정해야겠지만, 그렇질 못하고 마음은 오히려 젊어지고, 노인은 그저 뒷전에 있으라는 말을 들으면 서운하다 못해 분하기까지 하다.
유랑은 자신이 이제 한창이라고 생각한다. 잘 익은 인생의 연배라는 인식을 지울 수가 없다. 큰사위가 벌써 오십 줄에 들어섰고 큰 외손자가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마음만은 청춘이고 아직도 아픈 곳이 없이 노익장을 과시하는 유랑이다. 기회가 된다면 젊은 사람들과 계단 오르기 시합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어쨌거나, 그건 유랑의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고, 당장 시급한 문제는 유랑이 시계를 산 곳을 모른다.
시계를 팔아야 했다.
한데, 벌써 두 곳에서 퇴짜를 맞았다.
엊그제는 중앙로에 있는 로렉스 전문점에 갔었다. 그곳에서 얼마나 주려나 물어보니 구매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이렇게 큰 매장에서 로렉스 중고 하나 구매할 여력이 없나 의아했지만, 진품이 아니라고 해서 귀를 의심했다. 그럴 리가 없다. 호언장담하는데, 전혀 그럴 리가 없다.
이게 어떤 시계인가?
회갑 선물로 아이들이 얼마씩 거두어서 사준 시계다. 지금은 큰사위가 오십 줄에 들어섰지만, 회갑 당시에는 아들 녀석만 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딸 셋은 결혼을 한 상태였다. 사위 셋, 딸년들과 작당을 해서 저희끼리 십시일반 모아서 장만한 물건인데 진품이 아니라니 어이가 없다. 처음에는 그 매장의 젊은 감정사가 보는 안목이 없어서 그러려니 생각했다.
벌써 십오 년이 다 된 일이지만 회갑이 다가오자 딸년들보다 사위들이 더 난리였다. 회갑 잔치를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문의가 쇄도했다. 하루는 큰사위가 전화가 오고, 며칠 있으니 작은사위, 또 며칠 지나니 막내 사위까지 전화질을 해대는 것이었다.
전화를 받으면서 파악을 해보니 회갑 잔치의 총대는 아무래도 큰사위가 맨 모양이다. 큰사위 주도하에서 거사를 진행할 모양이었다.
요즘은 시대가 고령화되어 회갑 잔치를 하면 오히려 욕을 먹는다고 조용하게 식구들끼리 저녁이나 한 끼 먹자고 했는데 큰사위는 절대 안 된다면서 잔치가 곤란하면 여행이라도 가라면서 해외여행을 들먹였다.
해외여행?
유랑은 내키지 않았다. 젊은 시절 월남전에 참전하면서부터 해외에 발을 들여놓아 해외사업을 해보았고 웬만한 곳은 다 가보았다. 그렇다고 했더니 유럽으로 가라는 것이었다.
유럽?
며칠 생각해보겠다고 하고선 전화를 끊었다.
유랑은 유럽여행에 대해 며칠 동안 생각했었다. 유럽은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 너무 바쁘게 사느라 갈 기회가 없었다. 유럽에 가려면 아무래도 패키지를 이용해야 할 것이다. 자유여행은 힘이 들 것이다. 패키지를 따라가면 의무적으로 쇼핑센터에 들러야만 할 것이다. 그게 마음에 걸렸다.
간다면 분명히 따라붙을, 유독 귀가 얇은 아내가 그곳에서 물건을 사지 않을 리가 만무다. 그런 충동구매 때문에 아내와 다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아내와는 여행을 잘 다니지 않는 편이다. 또 유럽은 흡연자의 지옥이다. 언제부터 그렇게 되었는지 모른다. 유럽여행은 삼박사일 만에 되는 게 아니다. 최소한 열흘은 걸릴 것이다. 그동안 담배 때문에 아내의 지청구를 듣는다고 생각하니 지옥이 따로 없다.
며칠 고심한 결론은 안 간다는 것이었다.
모든 게 거추장스러웠다.
그냥 식구들끼리 괜찮은 중국집에서 코스요리를 먹으면서 케이크 하나에 촛불을 밝히고 박수를 받으며 사진을 찍으면 요란스럽지 않고 좋으련만 큰사위는 허구한 날 전화질을 해대는 것이었다.
유럽여행을 안 가겠다고 했더니 차를 들먹였다. 회갑 기념으로 승용차를 바꾸어 주겠다는 것이다. 당시에 유랑의 차는 멀쩡했다. 차를 바꾸는 건 어느 면으로 보나 낭비였다. 딸년들이 셋째를 빼고는 맞벌이를 하는 것도 아니고 사위들 등골을 빼먹는 행위나 진배없다는 생각이 압도했다.
그럼 선물로 뭐를 해드릴까 추궁이 들어왔다.
정작 유랑을 생각한다면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게 제일 좋은 선물이라고 했지만, 사위들은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선물로 뭘 해드릴까?
그 말에 유랑은 웃으면서 현금으로 달라고 했다. 농으로 그런 말을 했는데 큰사위는 정색하며 절대로 현금은 안 된다면서 기념이 될만한 선물을 하나 고르라고 했다
서너 번 큰사위의 전화를 받고 로렉스 시계라고 대답을 했다.
마음에도 없던 소리였다. 정말이지 마음을 먹은 게 아니고 얼떨결에 문득 나온 말이었다. 아직도 두 달에 한 번씩 모이며 계모임에 모여서 술추렴을 하고 정치판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는, 소학교 동기 하창수가 로렉스를 차고 다니면서 이게 땅, 서 마지기 값이라며 거들먹거리는 꼴이 눈에 시어 그런 말을 했다.
정말 얼떨결이었다.
하창수는 고향 소학교 동기지만 실제 나이는 유랑보다 두 살이나 많다. 하창수는 회갑 기념으로 아들과 사위에게 로렉스를 선물로 받았다는 것이다. 로렉스를 차고 금딱지라면서 거들먹거리는 꼴이 어지간히 눈에 거슬렸던 참이다. 실제는 금딱지가 아니었다. 유랑이 보기에는 일반 로렉스 시계인데 금딱지라는 이름은 하창수가 붙인 것이다. 굳이 따지자면 시계 줄 중간에 금이 조금 붙어있는지는 몰라도 그걸 가지고 금딱지 로렉스라고는 하지 않는다. 진짜 금딱지라고 불리는 시계는 줄과 시계 몸통이 전부가 금으로 된 것을 말하는데 그건 가격이 하창수가 차고 있는 시계의 곱절이 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무튼, 유랑의 회갑 잔치는 회갑이 되는 날 닷새 전에 했다. 유랑의 생일은 설 대목이고 그날은 평일이라 며칠 당겨서 한 것이다. 잔치라고 거창하게 말할 것은 없고 집에서 가까운 중화요리 집에서 딸들은 물론이고, 사위들, 외손자까지 빠짐없이 모여서 코스요리를 먹었다. 케이크 절단도 하고 선물 전달식도 했다. 선물은 시계 하나 포장하는데 왜 그렇게 큰 종이상자가 동원되는지, 여러 겹에 쌓여있었다. 포장을 벗기니 금장으로 된 로렉스 마크가 찍힌 고급스러운 종이상자가 나오고 종이상자를 여니 번쩍거리는 시계가 고급 융단에 쌓여있었다.
견물생심인가?
유랑을 그걸 보자 자신도 모르게 침이 꿀꺽 넘어갔다.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그걸 손목에 차자 시계 줄이 손목에 꼭 맞았다. 아이들 모두가 잘 어울린다면서 박수를 모았다. 큰사위는 로렉스 사용법과 주의할 점을 일러주었다. 유랑은 얼마짜리냐며 누가 얼마를 보태고 누가 얼마를 보탰는지 물으니 큰사위와 딸들이 그런 건 알 필요가 없다면서 그냥 차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
선물을 준 사람에게 그게 얼마짜리냐고 묻는 건 도리가 아니지. 유랑은 하창수에게 들은 게 있어서 얼추 도시의 변두리가 되어버린 고향 마을의 논, 서 마지기 값에 호가하리라고 짐작만 했다.
로렉스가 유명해고 세계적인 명품이 된 까닭을 유랑은 알고 있다.
그 옛날 시계가 처음 나올 적에 스위스의 로렉스는 이름이 없는 시계였다. 우리나라의 오리엔트 정도로 이름이 없는 저가 메이커 시계였다. 한데 유럽 어디에선가 근해에서 유람선이 침몰했다. 당시 기술로는 그 유람선을 인양할 기술이 없었다. 그래서 방치되고 있다가 오륙십 년이 지난 후에 대형 크레인이 개발되고 그 유람선이 세간 사람들의 관심거리가 되어 도마 위에 오르자 그 유람선을 인양하기로 했다.
인양을 해보니 시신은 전부 부패가 되어 물고기 밥이나 사라지고 없었고 거기에서 시계가 하나 발견되었는데 로렉스였다. 놀랍게도 오십 년이 넘었는데 물 한 방울 들어가지 않고 정확한 시간을 가리키며 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전자 배터리로 가는 시계는 존재하지 않았고 모두가 태엽을 감는 시계였는데 유독 로렉스는 흔들면 저절로 태엽이 감기는 자동이었다. 조수의 차에 물결에 흔들려 저절로 태엽이 감기면서 바닷속에서 그 시간을 정확히 헤어가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게 뉴스에 대서특필로 보도가 되고 세간 사람들의 관심거리가 되어 로렉스가 갑자기 세계적인 명품으로 등극을 하게 된 것이다. 당시에는 로렉스를 수작업으로 만들었는데 세계적인 명품이 되었지만, 시계의 가격을 올리지 않고 그 가격에 팔았는데 사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고, 급기야는 중고가 새것보다 비싼 가격에 거래가 되는 품귀현상을 빚으면서 가격이 점점 오른 것이고 품질은 더 귀한 재료로 만들게 된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귀하게 받은 로렉스를 유랑은 아끼며 귀하게 찼다. 근 십오 년을 찼는데 땅, 서 마지기 값이 이제는 한 마지기 값으로 변했다. 도회의 변두리가 되어버린 유랑의 고향 마을은 지가가 올랐고 시계의 가격은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유랑은 땅 한 마지기 값이 어디야? 하는 심정으로 자부심을 느끼며 애지중지 시계를 차고 다니면서 친구들 앞에서 자랑도 했다.
한데, 이게 진품이 아니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처음에 간 로렉스 전문매장에서는 젊은 감정사가 잘못 본 것이라고 단정을 하고 무덤덤했다. 오늘은 신문을 광고를 보고 수리점의 감정사를 찾은 것이다. 순전히 시계를 팔기 위해서 구미에서 대구까지 내려왔던 것이었다.
유랑이 보는 조간신문 귀퉁이에는 항상 조그만 광고가 실린다. 로렉스 중고매입이라는 광고다. 평소에는 예사로 보아 넘겼는데 유랑은 그런 광고가 어느 면에 실린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 신문에 난 광고를 보고 전화를 해서 물어서 기차를 타고, 또 지하철을 타고 찾아온 곳이다. 중앙로역 지하상가에 있는 보잘 것도 없이 작은 가계였고 시계를 팔면서 수리하는 곳이었다.
한 번 더 찬찬히 감정하라는 말에 시계점 주인은 자신이 시계 감정과 수리만 사십 년을 넘도록 했다면서 진품이 아니라면서 산 곳을 들먹였다.
유랑은 사지에 힘이 빠져 그 허름한 시계점을 나왔다. 그리고는 점심나절이 지났건만 점심을 먹을 생각도 없이 대구역을 향해 걸었다.
정신이 혼미스럽다.
이게 진품이 아니라니, 근 십오 년간 애지중지 차고 다니며, 이게 논, 서 마지기 값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진품이 아니라니 믿을 수가 없다. 십오 년을 찼지만, 중간에 고장이 나거나 칠이 벗겨진 곳도 없다. 사십 년을 했다는 시계감정사의 말도 믿을 수가 없다.
유랑은 대구역에 당도하여 노약자 할인으로 표를 끊으면서 내일이나 모레쯤 짬을 내서 서울로 가져가 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서울에 가면 아무래도 로렉스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곳이 많으니 정확한 진단이 나올 것이다. 그곳을 찾아가려면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보고 한 두어 곳을 다녀봐야 할 일이다.
유랑은 서울에 가는 데 경비가 많이 들지 않는다. 기차를 타면 육십오 세 이상 노약자 할인이 적용되니 반값에 다녀올 수가 있을 것이다. 한데 서울에 가서도 진품이 아니라면 어쩌지? 사지에 힘이 빠져 제대로 길을 찾아서 내려올 수가 있을까?
기차를 타고 구미로 오는 내내 늙은 유랑은 갈등했다.
진품이 아닐 리가 없어? 아니야! 아이들이 속아서 샀을 수도 있는 문제야. 아이들이라고 진품을 확인할 안목이 있겠는가? 아이들이 속아서 샀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나? 어딘지 모르지만, 시계를 샀다는 그 시계점이 아직도 어디로 이전하거나 망하지 않고 장사를 하는 걸일까? 선물로 받을 당시에는 품질보증서를 받은 것 같은데 그게 어느 구석에 처박혔는지 찾을 수가 있을까?
유랑은 돈이 필요했다.
하여, 아내 몰래 시계를 팔고 싶었다.
송하사가 아프다. 병원비가 없는 것이다. 유랑은 송하사 몰래 원무과에 병원비를 계산하고 싶은데 아내 몰래 마련할 여윳돈이 없어 시계를 팔려고 마음을 먹었다. 요긴할 때 팔아서 써야지.
유랑은 월남전에서 중사로 근무했고 송하사는 직속 부하로서 분대장을 맡고 있었던 자다. 병들과는 달리 부사관은 책무가 다르다. 사병들과는 하지 못할 이야기를 서로 등을 기대고 참 많이 나누었던 송하사다. 동향이라 그렇게 친했던 것은 아니고 송하사와는 마음이 잘 맞았다. 송하사는 항상 유랑의 마음을 먼저 읽고 대비하는 작자였다. 월남에 있을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런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송하사와 죽을 고비를 넘긴 걸 얘기하자면 끝이 없다.
그렇게 생사와 고락을 함께 나누었기에 오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연락이 끊이지 않고 친구로 지내며 살고 있다. 송하사는 한때 정말 잘나가던 인간이었다.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지만, 월남전에서 벌어온 것을 종잣돈으로 건축업을 시작해서 사업체를 키워가며 평생 했는데 궁한 줄 모르고 인생을 살았다. 주택 보급률과 핵가족화되어, 보급률이 턱없이 낮은 주택과 뛰어든 업종이, 시기적절하게 맞아 떨어진 것이었다. 지금은 집이 포화상태지만 당시에는 그렇지가 않았다.
송하사와 저녁을 먹거나 술을 마시면 송하사는 남들이 계산하는 꼴을 못 보는 위인이다. 꼭 제 주머니를 풀어야 직성이 풀리는 인간이다. 한데, 말년에 와서 예전에 보증을 서 준 일이 살짝 꼬이고, 설상가상 아들이 인쇄업을 하며 송하사가 건축으로 벌어놓은 재산을 거덜을 내고 어디론가 잠적을 했다. 송하사는 아들이 서울에서 인쇄업을 한다고 했지만, 유랑의 눈은 속이지 못한다. 잠적한 게 분명하다. 명절이 되어도 내려왔다는 소리를 못 들었고 아들에 관한 얘기가 나오면 송하사가 슬그머니 말꼬리를 돌리는 것으로 미루어 연락 두절이 분명하다.
그런 송하사에게 병마가 찾아온 것이다.
궁하면 병이 찾아든다는 말이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방광에 이상이 있는가 했더니만 전립선비대증으로 오줌을 찔끔거리며 통증을 느끼다가, 견디다 못해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그런 송하사가 병원비가 없을 것은 당연하다. 유랑은 시계를 팔아서라도 병원비를 치르고 싶었다. 한데, 진품이 아니란다. 두 군데서 그 소리를 들었다.
유랑은 구미역에 도착했다.
점심나절은 훌쩍 지났지만 뭘 먹겠다는 생각이 없다. 구미역에서 내려 집으로 들어오는 길에 혹시나, 싶어 역전의 귀금속백화점으로 헛걸음하는 셈으로 들렀다. 이 작은 도시에는 로렉스를 제대로 감정하는 사람이 없을 거다. 귀금속백화점에 가서 보여주었더니 잘 모르겠다고 했다. 금을 전문으로 취급하지 시계는 전문으로 취급을 하지 않는다며 바로 길 건너의 시계수리점에 가져가서 보여주라고 했다. 평소에 자주 다니던 길인데 그곳에 그런 시계수리점이 있다는 걸 몰랐다.
유랑은 길을 건너서 혹시나 하고 시계수리점에 갔다. 하나 문이 닫혀 있었다. 문에 작은 종이로 된 푯말이 걸려있었는데, 점심시간 한 시부터 두 시까지, 그렇게 적혀 있었다. 그때 시간은 두 시 십 분 전이었다. 십 분만 기다리면 되겠다 싶어 길가에 서서 담배를 피우기가 곤란해서 바로 옆 골목으로 들어가 한 대 피우면서 기다렸다.
이곳에서 제대로 감정이나 하려나?
그게 궁금했다. 골목에서 담배를 한 대 피우고 나오니 언제 열었는지 시계점 문이 열려 있었다. 단순히 시계를 수리하는 곳이 아니라 진열장에는 갖가지 시계가 진열되어 있었다. 단순히 시계를 수리하는 곳이 아니라 팔기도 하는 모양이다.
유랑은 시계점 주인의 인상부터 먼저 살폈다. 나이가 지긋하고 경륜이 있어 보이는 인상으로 신뢰가 가는 얼굴이었다.
-여기서 로렉스도 매입을 합니까?
유랑은 넘겨짚으며 말을 걸었다.
-가격이 맞으면 사기도 하지요.
주인의 대답이었다. 사기도 한다면 감정은 할 줄 아는 것이다.
유랑은 우선 시계를 벗겨서 보여주었다.
그리고는 얼마를 줄 거냐고 물었다. 시계점 주인은 유랑의 시계를 받아서 수리하는 테이블의 스텐드를 켜고 눈에 작은 망원경처럼 생긴 돋보기를 한쪽 눈에 끼고는 시계를 살폈다.
잠시 살피더니 주인은 살 수가 없다며, 진품이 아니라고 했다. 그 진단이 떨어지기까지 유랑은 간이 오그라드는 기분이었다.
-내일 서울로 한 번 가져가 보아야겠네요.
-서울을 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산 곳으로 가져가는 게 도리지요. 제가 시계 수리와 감정만 하며 이 나이가 되도록 늙었습니다. 분명히 진품이 아닙니다. 요즘 짝퉁이 얼마나 정교하게 나오는데요. 로렉스 차고 다니는 사람들 구십 프로가 짝퉁입니다.
-그럼 이런 짝퉁은 얼마나 하나요.
유랑의 물음에 주인의 말로는 담배 서너 보루 가격이 된다는 것이다.
기가 막혔다.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시계를 받아서 시계점을 나왔다.
벌써 세 군데서 진품이 아니라는 진단을 받았다. 짝퉁이 얼마나 정교하게 나왔는지, 진품과 짝퉁을 겉으로는 전문가들도 구분하기 힘 들다니, 아이들이 속는 건 아이들도 사면서 당연히 구분을 못 하고 시계점에서 속이려고 마음을 먹는다면 속는 건 당연한 일이다.
생각하니 서울은 갈 필요도 없다. 시계점 주인 말마따나 서울에 가더라도 마찬가지의 대답이 나올 거다.
그럼 어쩌지?
유랑은 버스 정류장을 향했다. 정류장으로 향하는데 상점의 유리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오늘따라 유독 늙어 보인다고 생각을 했다.
유랑은 집으로 가는 버스가 몇 번인지 금세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정신이 혼미하다. 이거 아이들에게 말을 해야 하나? 그러면 아이들이 놀랄 것인데?
집에 가서 찾아보면 그 당시에 받은 품질보증서가 있을 것이다. 그곳에는 산 곳의 전화번호가 적혀 있을 거다. 일단 그것부터 찾아보아야 할 일이다.
무슨 생각을 하면서 집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집에 도착하니 늙은 아내는 문을 다 열어놓고 어디를 나가고 없었고 강아지만 집을 지키고 있었다. 집에 들어오니 비로소 시장기가 느껴졌다. 유랑은 주방으로 가서 전기밥솥을 열어보았다. 아침에 해둔 밥은 있었다.
그릇을 꺼내 밥부터 펐다. 그리고 냉장고의 고추장과 찬물을 꺼냈다. 밥에, 물을 말았는지, 물에 밥을 말았는지 모르겠다. 하여튼 맨밥은 목구멍에 넘어가지 않을 듯해서 말아서 고추장을 찍어서 먹었다.
서둘러 밥을 먹고 그릇을 개수대에 처넣고 안방의 장롱 서랍과 서랍장의 서랍을 뒤지기 시작했다. 품질보증서가 어디엔가 있을 터인데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온통 잡다한 서류들과 영수증 사진들이고 다 뒤졌지만, 품질보증서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다음은 거실이었다. 거실의 장식장 서랍도 찬찬히 뒤졌다. 뒤져보니 무슨 쓸데없는 영수증이 그리 많은지, 그렇게 어질러 놓고 있는데 마실을 갔었는지 아내가 들어왔다.
-아이고 이 양반이 뭘 찾는데 이렇게 엉망을 만들어 놓고 있어요?
그 말을 듣고 보니 꺼내기만 했지 미처 제자리에 챙겨 넣지는 않은 것이다.
-어디 갔다 왔어? 뭘 좀 찾느라고.......
-점심은 자셨어요? 어디 갔다가 왔는데?
아내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뭘 찾고 있어요?
아내가 물었지만, 대답할 수가 없었다. 사실을 말하면 아내도 놀랄 것이다. 까딱하다간 시계값보다 병원비가 더 들 수도 있는 문제다. 아무리 찾아도 없다. 그게 당시에 받아서 아내에게 주었지 싶은데 물을 수도 없고 있을 만한 곳은 다 뒤졌다,
없다!
유랑은 사지에 힘이 빠지며 또 정신이 혼미해졌다.
이 일을 어쩌면 좋은가?
좀 쉬고 생각하자.
유랑은 안방으로 들어가 요를 깔고 누웠다.
이 시계를 차고 그렇게 거들먹거리며 다녔는데 진품이 아니라니, 갑자기 사람이 싫어졌다. 누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 꽃이 아니라 바로 사람이라고 했는데 사람이 싫어진 것이다. 이렇게 비싼 명품을 속이다니? 그것도 품질 보증서까지 발부해주고?
세상에 믿을 건 없다.
분명히 아이들이 짝퉁이라는 걸 알고는 사지는 않았을 것이 자명하다. 생전 처음 사는 물건이니 장사치가 속이려고 마음을 먹으면 간단하게 속을 일이다. 전문가들도 눈으로는 식별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했으니....... 상거래 질서가 이렇게 험한 세상이 되었군. 세상이 얼마나 더 험해지려나?
요를 깔고 누웠지만, 유랑은 괘씸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 시계를 판 시계점은 분명히 망했을 거야. 이렇게 속이면서 장사를 하면 망하지 않았더라도 하늘이 가만히 두지 않았을 거야. 주인은 이미 죽고 없겠지? 분명히 그럴 거야! 천벌을 벌써 받았겠지.
그런 그렇고 송하사 병원비를 어떻게 하나?
시계를 속아서 산 건, 예기치 못하지 않게 교통사고가 나서 차를 폐차시킨 셈 치면 간단한 일이다. 그렇게 마음을 달래야지. 방법이 없다. 그래 그렇게 마음을 먹자.
아니다!
내일 서울로 가서 다시, 한 번 더 감정을 받아볼까?
아니야!
이미 결론은 났어. 거기까지 가서 진품이 아니라는 감정을 받으면 사지에 힘이 빠져서 길을 제대로 찾아서 내려오지도 못할 거야.
유랑은 누워서 뒤척였다. 자주 가던 기원에도 나갈 기분이 아니다.
유랑이 늘어져 누워 있는데 남의 속을 모르는, 아내가 방문을 열고 들여보며 어디가 편찮으냐고 물었다. 유랑은 아니라며 좀 기운이 없고 나른하다고 했다.
그때 전화가 왔다.
늘 동네 이발소에서 장기를 두던 김천수영감이다. 유랑보다는 두 살이 더한데 장기는 하수다. 뭐하느냐고 이발소에 막걸리 내기 장기를 두러 오라는 전화다. 유랑은 귀찮았다. 지금 대구에 볼일이 있어서 좀 내려왔다는 핑계를 대고 전화를 끊었다. 지금 나가서 장기를 두면 정신을 집중하지 못해 십중팔구는 진다. 그럼 막걸리를 사야 하는 일이다. 막걸리를 사는 것까지는 좋은데 기분 좋은 얼굴로 마실 수가 없는 건 당연한 이치다. 가만히 생각하니 분명히 사람이 싫어진 것이다.
아! 이 일로 상처받지 말아야 할 텐데.
걱정이다. 시계를 버리지도 못하고 볼 적마다 이 일이 생각나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다가 유랑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렇더라도 시계를 산 곳이 어딘지는 알아보아야 할 일이다.
큰딸에게 물어보는 게 제일 빠르지 싶다. 큰사위는 근무하는 시간이라 전화를 받을 짬이 없을 것이다. 큰딸의 전화번호를 유랑은 외우지 못한다. 스마트폰에 단축으로 저장되어 있다. 큰딸뿐만 아니라 온 식구들, 외손자 전화번호까지도 스마트폰에 단축으로 저장이 되어 있고 하나도 외우질 못한다. 심지어 아내의 전화번호조차도 모른다.
큰딸에게 전화하는데 통화내용을 아내가 밖에서 들으면 곤란하다. 상황이 잘못 전개되면 심장이 약한 아내가 입원하는 수가 생길 일이다. 그러면 배보다 배꼽이 문제다.
유랑은 스마트폰을 챙겨 들고 밖으로 나왔다. 집 앞의 작은 공원으로 갔다. 그곳에는 간단한 체육시설과 놀이시설이 설치된 소공원이다.
거기에 그늘막이 설치된 평상에 앉아 단축키를 눌러 큰딸에게 전화했다. 신호가 한참 갔는데 받지를 않는 것이었다. 집에 빈둥거리며 뭐가 바쁜지 전화를 받을 짬도 없나? 공원에는 도로 건너 아파트단지의 할머니들도 나와 있었다.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손자들을 보는 모양이다. 할머니들이 있어서 그런지 앉아 있기가 좀 머쓱했다.
일어서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보니 큰딸이었다.
-아버지께서 전화를 다 하시고 무슨 일이예요?
큰딸은 잔정이라곤 서푼 어치도 없다. 누굴 닮았는지 애살도 없고, 어쩌다 전화를 하면 할 말만 하고 끊어버리는 년이다.
-궁금한 게 있어서 뭘 좀 물어보려고 전화를 했다. 너 혹시 회갑 때 너희들이 사준 시계를 어디서 샀는지 아니?
-아버지 그건 왜요? 시계가 고장이 났나요?
-고장이 난 게 아니고 지금 팔면 시계 가격이 얼마나 나가려나, 아무래도 산 곳에서 팔면 좀 더 받지 않겠냐?
-엄마 몰래 돈이 필요한 거죠? 아버지가 돈이 왜 필요해요?
-이년아! 이 나이에 요긴하게 필요한 걸 너에게 보고를 하고 써야 하는 법이 있나?
유랑은 속을 모르는 큰딸에게 은근히 짜증이 일었다.
-정말 시계를 파실 정도로 절실하게 필요하신 건가요?
-아무튼, 시계를 산 곳을 알고 싶으니 그거나 알려 줘!
미주알고주알 긴 말 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전 어딘지 몰라요. 박서방이 샀으니 박서방한테 물어보고 저녁에 전화 드릴게요. 지금 박서방이 바빠서 전화 받을 짬이 없을 거예요. 요즘 국정감사 기간이거든요.
남은 속이 타서 죽을 지경인데 딸년은 느긋하다.
큰사위는 공정거래 위원회에 근무한다. 직급은 잘은 모르지만, 과장이지 싶다. 시계를 판 놈이 잘못 걸린 거다. 박서방이 짝퉁이라는 걸 알면 난리 정도가 아니고 그 가게는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 시계점 입장으로 본다면 호랑이 수염을 당긴 꼴이다.
그렇게 전화를 끊은 년은 저녁이 되어도 소식이 없다. 남은 속이 타서 죽을 지경인데 무소식이다.
저녁을 먹는데 아내는 유랑의 안색이 안 좋다면서 어디가 불편하냐고 물었다.
안색이 안 좋기는.......
시큰둥하게 얼버무렸지만, 속이 타는 기분이었다.
감사 기간이라고 했으니 박서방 퇴근이 늦은 건가?
추근대는 아이처럼, 그 일로 전화질을 해 댈 수가 없고 아내의 눈치는 보이고, 유랑은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애꿎은 담배만 축내며 큰사위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은 흘러 늦은 저녁이다. 감사를 마치고 회식이라도 하는 건가? 유랑은 또 벽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 아홉 시가 넘어서고 있었다. 아내는 거실에서 뉴스를 보고 있지만, 유랑은 관심이 없고 오로지 시계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얘가 잊고 있나?
전화가 올 때가 넘었지 싶은데 전화를 해 볼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거실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아이고! 박서방이 웬일이야? 하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큰사위가 온 모양이다. 유랑은 벌컥 문을 열어보았다. 박서방이 들어오고 뒤에 큰딸이 따라 들어왔다.
-이 늦은 시간에, 웬일이냐?
-장인어른께서 시계를 파신다고 해서 왔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야?
유랑은 얼른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박서방은 퇴근을 하고 바로 오는 길인지 평상복이 아닌 양복을 입고 있었다. 이 시계를 팔지 말라는 소리를 하러 온 모양이다. 회갑 기념으로 해 준 건데 필요한 돈을 얘기하지. 시계는 팔지 말라고 하는 모양새다. 그냥 전화로 하면 되지? 시계를 팔지 말라는 소리를 하러 대구에서 밤중에 여기까지 온 건 뭐야? 감사를 받느라고 피곤할 터인데.
거실에서 장모인 아내에게 간단히 인사를 했다. 유랑이 방에서 들으니 장모인 아내가 저녁은 먹었느냐고 물었고 아직 먹지 못했다는 말을 했다. 장모인 아내는 딸과 저녁을 차리는 모양이고 박서방이 방으로 들어왔다.
다짜고짜 유랑에게 시계를 보자고 했다.
유랑은 머리맡에 벗어둔 시계를 보여주었다.
-장인어른! 이거 지금 팔아도 얼마 받지 못합니다. 제가 사겠습니다.
사위가 시계를 사다니? 박서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유랑은 시계를 사겠다는 작자에게 진품이 아니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냥 어디서 샀는지 그것만 일러주면 돼. 박서방이 왜 이 시계를 사?
-그럴 이유가 있습니다. 무조건 제가 사겠습니다.
그 말을 하면서 사위는 속 주머니를 뒤져 통장 하나와 도장을 꺼내 유랑 앞으로 밀며, 시계값이라고 했다. 유랑은 무슨 말인지 모르고 통장을 받아서 펼쳐보았다. 유랑의 이름으로 된 통장인데 거액의 금액이 들어 있었고 오늘 통장정리를 이자가 들어온 날이 꼬리를 물고 찍혀 있었다.
이게 무슨 통장이야?
통장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큰딸이 방으로 들어왔다.
-아부지, 로렉스 실컷 차신 모양이네요? 이젠 싫증이 나죠? 그거 짝퉁이에요.
큰딸의 짝퉁이라는 말에 유랑은 화들짝 놀랐다.
-뭐라구? 알고 있었냐?
그다음 설명은 사위가 했다. 로렉스를 사자고 합의를 하고 돈을 모았는데 로렉스는 하루만 차도 반값으로 떨어질 정도로 감가삼각이 너무 심하기에 짝퉁을 하나 구매하고 나머지는 통장에 넣어두었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줄 알고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큰사위 혼자의 생각이 아니고 사위 셋이서 그 작당을 한 것이라고 했다. 그것도 유랑의 이름으로 통장을 만들어서 이자가 높다는 정기예금을 시킨 것인데 오늘 급하게 해약해서 가지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유랑은 통장의 잔액이 얼마인가 재차 확인했다. 지금 사도 로렉스 금딱지는 하나 살 정도의 거액이었다. 송하사 병원비를 지급하더라도 거액이 남는 통장이다.
-장인어른 얼마가 필요하신지 몰라도 쓰실 것 쓰시고 남는 돈으로 로렉스 금딱지 진품으로 하나 사세요.
이제야 유랑은 돌아가는 사태가 파악되었다. 이젠 로렉스가 필요 없다. 실컷 찬 것이다. 진품으로 알고 소유욕을 만끽한 다음이다.
-이것들이 작당해서 사람 가슴을 이렇게 졸여 놓았군. 이 통장 비밀번호가 몇 번이야?
사위에게 물었다. 큰사위는 유랑의 회갑 날짜인 생일이 비밀번호라고 일러주었다. 그때 아내가 밖에서 밥을 먹으라고 소리쳤다. 박서방은 밖을 보고 대답을 하고 일어서면서 유랑의 시계를 보고 말했다.
-이제 이 시계는 제가 가져가도 되죠?
-안돼! 내가 찰 거야.
유랑은 달려들어 이미 사위의 손아귀에 들어간 시계를 억척스레 빼앗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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