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교리문답 십계명 17
제9계명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제10계명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이 두 계명은 부분적으로 적용되는 계명으로 본디 유대인에게만 주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계명을 도둑질이나 순결을 지키지 않는 죄에 관한 것으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앞선 계명에서 충분히 언급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외형적으로 수행하기만 하면 완벽히 지킨 것으로 여겼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하나님은 이 두 계명을 재차 덧붙이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드러난 범죄 행위뿐만 아니라 이웃의 아내나 재산을 탐내는 것 그리고 이런 일을 도모하려는 마음조차 금지하면서 이것도 죄라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계명을 유대인들에게 주셨던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 유대 사회의 하인들은 지금처럼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일한 만큼 노임을 받을 권리도 없었고, 자기 소유와 육체도 집 안에 있는 가축이나 다른 재화와 동일하게 주인의 재산에 속했습니다. 한 발 더 나아가 집주인은 아내에 대한 전권을 쥐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이혼증서 한 장이면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를 취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자기 아내뿐만 아니라 자기 마음에 드는 다른 남자의 아내도 이혼시켜 취할 수 있는 합법적 핑계거리가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런 것을 수치스럽다거나 죄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이는 우리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집주인이 남종과 여종을 해고하거나 이웃을 이간질해서 사람 빼오는 일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습니다.
이웃의 재산을 불법으로 점유하거나 탈취하는 것을 금하는 제7계명과 달리 이 계명은 합법적 핑계로 이웃의 재산을 빼앗는 행위를 금한다.
비록 합법을 가장한 좋은 핑계거리가 있을지라도, 이웃에게 해를 입히는 일이라면 누구도 이웃의 아내와 종, 집, 뜰 목장, 초원, 가축을 약탈하려는 생각이나 계획을 세우면 안 됩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이 계명을 통해 그런 행위를 금지한다는 사실입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누구도 자기 자신에게 하듯 남에게 베풀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타고난 본성입니다. 그래서 각자 자기 능력만큼 베풉니다. 역으로 상대방은 해주는 대로 기다리게 됩니다. 바로 이때, 우리는 본성보다 더 경건한 모습으로 치장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대단히 정교한 화장술로 악한 얼굴을 가립니다. 교묘한 술책과 약삭빠른 속임수를 고안하고 시도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좋은 방법이 무엇인지 법전을 놓고 고민하며 고안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당돌한 짓을 ‘악독’이라 부르는 대신 ‘열리하고 매사에 면밀하다’고 표현하려 합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법률가나 변호사들은 법을 왜곡하고 확대해서라도 이런 자들을 돕습니다. 법률가와 변호사들은 이웃의 곤경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직 구실을 만들기 위해 법전을 끄집어내는 일에만 몰두합니다. 따라서 이 마지막 계명은 세상에 악당으로 선고된 자들에게 주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일종의 ‘경건한 자’를 위한 것입니다. 이들은 사랑받을 만하고, 정직하며, 흠잡을 게 없다고 칭송받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앞서 나온 계명들을 범하지 않았기 때문에 죄와 전혀 상관없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서 교묘한 수법으로 이웃의 것을 합법적으로 탈취할 수 있는 유대인과 귀족은 이 계명 앞에 반드시 세워집니다.
이웃의 아내를 빼앗는 일과 피고용인을 비인격적으로 대하는 것은 죄다.
만일 어떤 여자가 마음에 들면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여 남편이 그 여자를 싫어하게 만들거나 반대로 그 여자가 남편에게 대들게 만들거나 동거가 불가능하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죄입니다. 마가복음 6장에 등장하는 헤롯왕을 보십시오. 그는 자기 동생이 살아 있는데도 동생의 아내를 취합니다. 그럼에도 존경받을 만하고 경건한 사람인 척 행세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합법(이혼증서)을 가장한 죄입니다.
소유욕에 사로잡힌 ‘합법적인 도둑’은 하나님이 반드시 벌하신다.
또한 이웃집에 고용된 사람을 유인하고 빼내오거나 달콤한 말로 탈선하게 하는 것도 하나님이 벌하십니다. 명심하십시오. 비록 세상눈에 정직하게 비춰질지라도 이웃의 소유를 탐내거나 탈취하는 마음을 하나님은 싫어하십니다.
이 두 계명은 ‘질투’와 ‘소유욕’으로 붙여진 모든 악을 근절한다.
첫째 이웃에게 손해 입히려고 작정하지도 그런 일을 방조하지도 그런 꼬투리를 주지도 말고 오히려 내가 받고 싶어 하는 바를 먼저 베풀고 이웃의 소유를 지켜주며 유익이 더 많아지도록 도와주라는 뜻입니다.
둘째 이 계명을 주신 이유는 ‘질투’와 ‘소유욕’을 물리치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계명으로 이웃에게 해를 끼치는 모든 뿌리와 근원을 제거하고자 하십니다. 그래서 아주 분명하게 이 말씀을 하십니다. ‘탐내지 말라’
무엇보다도 하나님은 정결한 마음을 원하십니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이 수준까지 도달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계명은 다른 계명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죄인이지 고발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