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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하시며 인자하신 하나님(시편 103:8~14)
2023년 10월 29일 주일연합예배(설교 : 김성현 감독)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항상 경책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우리의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갚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시편 103:8~14)
<기도>
하나님 아버지, 종이 여기 섰사오니 종에게 힘을 주시고 또 하나님의 영감을 충만히 주시사 사람의 뜻을 밝히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밝히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하고 또 하나님이 가시는 길을 또 선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모두가 이와 같이하여 이 시간에 정말 모든 영혼들에게 유익하며 저들의 영혼을 고치고 또 힘차게 달려갈 수 있는 영원하신 우리 하나님의 활기를 주시는 힘이 있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자비하시고 또 인자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표현하는 단 한마디 문장이 있다면, ‘하나님은 선하시고 인자하시다’는 것입니다. 이 한 마디로 하나님의 다른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거듭 하나님을 증거하는 말로, 하나님의 성격을 또 하나님의 참 모습을 드러내는 것으로 ‘선하시다’, ‘인자하시다’, 이 두 단어가 가장 많이 쓰입니다. 또 이와 함께 유사하게는 ‘하나님은 인내가 많으시다’는 단어가 많이 나옵니다.
이스라엘은 이런 묘사를 가지고 신앙을 노래하고 기도하고 또 의지하며 신앙을 지켜 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또 그런 하나님의 모습에 대한 되새김이 굉장히 역사가 긴 것입니다. 수 천년 동안 하나님을 그렇게 의지하고 왔습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그러하십니다. 그런 하나님이 아니었다면 오늘날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그의 은혜와 용서, 또 소망에 대한 약속들을 의지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런 모든 것을 통합하여서 그가 마땅히 그럴 수밖에 없다는, 정당화하는 단 하나의 조건이 그는 선하시고 인자하시다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신앙생활에 박차를 가하다 보면 우리도 모르게 하나님을 굉장히 무서우신 분으로 묘사하기가 쉽습니다. 또 그런 생각이 스며들기 쉽습니다. 성경에서 우리 주님은 지구의 생명의 끝자락에 오셔서 그야말로 최후의 날을 너무 가깝게 두고 있었기에 경고를 많이 하셨습니다. 옐로우 카드를 많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좀 무서운가 싶기도 하지만, 사실 우리 하나님은 너무 선하십니다.
우리가 흔히 의로움에 대해 자주 말합니다. 물론 부흥 시대에 우리는 의롭다는 것을 다른 식으로 변형시켜서 표현하려는 노력을 많이 했었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하나님을 좇는 어떤 신앙의 양식, 신앙의 방법들에 대해 의롭게 보기도 했습니다. 또 세상적인 것은 무조건 버리고, 무조건 영적인 것을 찾는 것을 의로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근본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의는 그분 자체입니다. 그분이 어떤 분이십니까? 선하십니다.
‘선하다’는 말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묘사하기에는 단어가 좀 부끄럽고 많이 부족하긴 하지만, 착하시다는 것입니다. 인간들 가운데 제일 착한 사람보다 몇 천 배 더 착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착해도 하나님에 비하면 너무나 악합니다.
하나님은 빛이라 그랬습니다. 그분을 그대로 드러내신 분이 예수신데, 그분은 세상의 빛이라 그랬습니다. ‘내가 비춰야 비로서 너희가 하나님을 발견할 것이다. 너희가 얼마나 오염되었는지를 알 것이다. 너희가 스스로 깨끗하게 할 수 없으니 이제는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기 위하여 항복해야 할 것이다. 너희는 내 은혜로만이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것이다. 너희는 너무나 더럽혀졌다.’ 그래서 그런 자신의 더러움이 드러날까 봐 아예 빛을 피하는 시도들이 기독교에도 계속 있어온 것입니다.
다시 정리하면,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그래서 불의한 것을 원래 하시지 않습니다. 불의한 인간들에 대해서 그가 벌하시자면, 우리 모두가 벌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도저히 구원받을 수 없는 자들입니다. 그럼 우리가 구원받고 안 받고, 의가 있고 없고의 기준이 어디 있을까요? 하나님이 기준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에서는 우리가 아무리 무슨 율법을 잘 지키고 한다 할지라도 이미 더러운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가만히 생각해보십시오. 머리속에 교회를 위하고 성도를 위한다 해도, 너무 피곤할 때는 짜증도 납니다. ‘진짜 100% 이 성도를 위해서 나 오늘 죽을래.’ 하기가 아마 쉽지 않을 것입니다. 착한 데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또 어떤 때에는 욕심도 납니다.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가족들과 함께 밥을 먹고 있는데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반찬이 다 먹고 하나만 남아 있다고 합시다. 어떨 것 같습니까? 젓가락을 ‘부르르르’ 떠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이 어떤 때는 되게 치사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잘 다루어야 합니다. 우리가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조심조심 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이 부질없는, 이 부실한 인간의 성품에서 벗어나려 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인자하십니다. 인자하다는 것은 불쌍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에는 보통 ‘loving kindness’라고 합니다. 친절하십니다. 그 친절함은 말로만 하고 속은 칼만 안 들었지 사나운 그런 것이 아닙니다. 불쌍히 여기는 것, 불쌍해서 도와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불쌍히 여김을 받는다는 것은 인간의 마음의 바탕에서 제일 원하는 것일 것입니다. 가끔 힘들면 집안에서 남편이 아내에게 짜증을 부릴 수 있고, 또 아내들도 남편에게 짜증 부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남편아, 세상을 바꿔줘!” “아내야, 이 세상을 때려줘!”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알아 달라는 것입니다. 자기를 진짜 알아주는 자는 이 세상 한 분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법으로는 굉장히 자세하게 다루시면서 ‘전갈로 다스리겠다. 채찍으로 다스리겠다.’ 해서 굉장히 엄격하고 무서운 분으로 볼 수도 있는데, 사실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사실 그는 인내와 자비가 풍성하셔서 우리를 기다려주십니다.
그런데 원수가 이 세상에 불의를 뿌려놓았습니다. 불의가 하나님께는 적입니다. 하나님의 적은 우리에게 죽음을 가져옵니다. 불의는, 하나님 떠나는 것은, 하나님과 원수되는 것은 죽음입니다. 그 자체로 멸망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살인을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 아닌 것, 사랑을 저버리는 것, 사랑 안에 거하지 않는 것, 생명 안에 거하지 않는 것, 평안 안에 거하지 않는 것, 불행 속에 있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 없는 것은 불행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우리에게 두셔서 당신의 것으로 우리를 커버해 주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망가진 부분들을 그의 것으로, 그의 살을 찢고 그의 피를 터트려서라도 씻고 자기 살로 붙여서 우리를 메꿔 가려 하십니다.
인간이 워낙 많이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류를 구원할 방법으로 자기 백성들을 택하시고 부르시고 훈련하여서 오늘 여기까지 와 있게 하셨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이 땅에 기어코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이 과연 세상을 구원하실까, 구원하지 않을까?’ 하는 질문은 이미 2천년 전에 끝났습니다. ‘구원하신다. 그가 십자가에 오르시는 것을 보지 않았느냐?’ 십자가에 오르셔서 돌아가신 그분이 누구였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영원하신 분입니다. 사실상 이 세상을 지으신 분입니다. 영원히 하나님 속에 계신 분입니다. 그래서 이미 구원하신 것은 확정이 됐습니다. 그런 분이 우리를 왜 구원하셨을까요? 그가 너무 선하시고 인자하시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 할 때에,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여러분이 아침에 일어나면 ‘우와! 나 오늘 죽지 않고 이렇게 일어났네? 기어코는 정신이 들었네.’ 하면서 이제 삶을 살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하루도 조심해서 보내자.’ 하지만, 몇 가지 사건을 겪기도 하고,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파란만장한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나서 ‘어유…이제 마무리됐네. 조금 멍하니 쉬자.’ 하고 잠이 들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루를 어떻게 보내십니까? ‘이야… 무사히 오늘도 잘 지냈네.’ 하고 그냥 ‘우와… 다행이다.’ 하고 끝입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습니까? 지켜주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하루 종일 여러분을 지켜주고 계십니까? 만일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아침부터 잠들 때까지 함께 계셔서 보호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하나님이 가끔씩은 오시는 것 같아요. . 크리스마스 때에는 오시고. 나머지는 그냥 바쁘신가 봐요. 개인 일 하시는 가 봐요.’ 하는 식으로 본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는 오늘 나의 이 시간에 우리의 생명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미래를 지켜주시는 분이고,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의 결과를 지켜주시는 분입니다. 그분도 애쓰신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자고 일어날 때에도, 하나님은 주무시지 않고 계속 나를 지켜주십니다. 우리 영혼이 잘되길 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디 한번 얼마나 잘하나 보자.’ 하고 우리의 하루를 동그라미, X, 세모로 점수를매기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힘내라! 힘내라!’ 하고 우리를 지키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어려운 일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일이 우리의 영원한 생명을 앗아가지는 않습니다. 어디 부딪혀서 피가 나더라도 우리의 생명이 상실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 없이 혼자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생명을 하나님께서 지켜주십니다. 오늘 하나님의 성령이 나를 지켜주십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분으로서, 과거 그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있었던 것처럼 오늘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의 삶 가운데 역사하고 지켜주고 보호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따로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돕는 하나님을 아침부터 만나시기 바랍니다. 그를 의지하고 그의 도움을 하루 종일 받으시기 바랍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나를 돕는 하나님의 영광이 시작되었구나! 주여, 감사합니다!’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기 있게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원수가 ‘빵’ 하고 우리를 치더라도 사실 우리에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이제부터 우리 성도 여러분은 홀로 사시지 않는 분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분은 우리를 구원하신 그날부터 영원한 날까지 우리를 견인해 가시고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시고 축복해주시고 용기 주시는 분임을 아시는 여러분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를 회개케 하신 것도 그가 인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이렇게 받아주시고 사랑해 주신 것이 다 그는 선하시기 때문입니다.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로마서 2:4~5)
우리 주님의 목적은 우리를 하늘에 데려가는 데 있습니다. 그가 우리를 구원하심의 최후 목적이 하늘에 데려가시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하시고 사랑해 주신 모든 것에 대해 증거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도 증거가 필요합니다. 회개가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제 저는 다 망가졌습니다. 하나님만이 제 유일한 소망입니다.” 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와 그를 의지하는 사람들을 지옥에서 꺼내시고 부활하게 하사 하늘에 올리시는 것이 그분의 목적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어 드려야 합니다. 그가 가지신 목적과 우리의 목적은 같습니다. 우리는 평생동안 바로 이런 그림을 절대로 잊지 말고 그의 일을 위하여 그의 의로우심을 찬양하고 우리 속에서 그가 그 의로우심을 계속 독려하시면서 우리를 통하여 주의 은혜로 인하여 하나님께 의를 나타내며 하나님의 의에 영광돌리며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우리가 되는 것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하신 것들을 악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참으시는 것은 그가 선하시고 인자하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는 잘못이 드러나면 당장 잡으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참으시고 기다리시고 기회를 주십니다. 그는 우리가 원래 좀 잘못된 존재였다는 것을 상기하면서, 우리의 기준에서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 같은 죄인도 의지할 수 있는 분입니다. 안심해도 되는 분입니다.. 우리 하나님 나를 사랑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나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나를 기다리고 참으시는 분입니다. 선하시고 인자하신 우리 하나님으로 인하여 정말 영원한 미래, 성공하는 미래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우리 다같이 기도합시다. 우리 하나님을 실망시키지 않는 나의 신앙의 삶, 선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을 드러낼 수 있는 내 삶, 그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는 내 삶, 그런 하나님을 또 자랑할 수 있는, 널리 전파할 수 있는 나의 삶이 영광된 삶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증거해야 될 이유는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 하나님을 잔인한 하나님, 사나운 하나님 또 무서운 하나님 또 이기적인 하나님으로 보지 마시고 오늘 우리를 도와주시는 하나님, 정말로 기쁘시게 우리 삶속에서 감사하시고 또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영광 돌리고 영광 돌리되 정말 의지할 수 있는, 의지함이 충만하고 그를 기쁘게 할 수 있는 마음이 충만한 우리가 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도움을 구합시다. 하나님, 우리에게 더 임하여 주옵소서. 당신께서 우리에게 더 임하여 주옵시고, 당신의 영향력으로 나를 도와주시고, 우리에게 역사하시고, 정말 우리에게 전폭적으로 하나님의 거하심과 또 인자하심이 있기 원합니다. 주여, 우리를 받아 주시옵소서. 다같이 합심하여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 들은 우리 교회, 우리 성도들 다 도와주시고, 우리는 참으로 선하시고 인자하신 우리 하나님의 성품을 제대로 알고, 그의 진정 원하시는 뜻은 우리 모두를 하나님의 그 선하심 안에 보호하시고 또 그리하여 그의 영광 속으로 인도하시려는, 그의 나라로 끌어 올리시려는 그러한 위대하고 은혜 풍성한 뜻이 있는 것을 압니다. 우리를 받아 주시고, 그런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우리 매일의 삶을 소중하여 엮어가고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오늘은 나를 돕는 하나님이 없었다고 말하는 자, 단 하나도 없게 하여 주시옵시고, 눈 뜰때부터 잠들 때까지 주님을 의지하는 우리 모두 되게, 주님을 신뢰하고 또한 주님을 기쁘게 하는 우리 모두가 되도록 역사해 주시옵소서. 주님의 도우심을 힘입지 않은 자 하나도 없게 하시되 모두가 넉넉하게 하나님의 도움을 힘입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출처] 20231029 선하시며 인자하신 하나님(시편 103:8~14) 성락교회 주일연합예배 김성현 감독|작성자 이기택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