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문이 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는 말이 있다. 내 눈으로 보는 것만큼 분명한 '진실'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의심의 대가였던 데카르트는 '시각적 진실'의 허구성을 간단히 폭로한다. 어린 시절부터 평생 창문에서 바라보던 먼 동네 집의 동그란 지붕이 실제 그 동네로 여행을 가 보았더니 삼각형 모양이더라는 것이다. '방법적 의심'이라 불린 데카르트의 철학적 방법론에 영감을 주었던 사물은 그와 동시대 사람이던 갈릴레이가 발명한 '망원렌즈'였다. 육안으로 보는 별과 망원렌즈로 확인한 별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데카르트적 의심의 역설은 가장 믿을 만한 감각인 시각을 의심했지만, 멀리 있는 사물을 망원렌즈로 눈앞에 바싹 끌어당기는 더 강력한 시각화 방식을 통해 '완벽한 확실성'(진리)을 발견해냈다는 데에 있다. '대상의 본질에 관한 관념' 정도로 '표상(表象)'이라고 부르는 철학 용어를 독일어로 '눈앞에 불러세움(Vorstellung)'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현대인에게 망원렌즈는 과학자의 망원경보다는 카메라의 필수 구성물로 더 친숙한 사물이다. 휴대폰에도 카메라가 장착됨으로써 이 사물은 뜻밖에도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채 일상을 구성하는 가장 일반적인 소도구가 되어 있다.
최근 일상에서 이 사물을 가지고 갈릴레이의 '과학적 확실성'을 가장 비슷한 방식으로 재연하는 이들은 다름 아닌 '파파라치'다. 그들은 포착된 대상도 모르는 사이에 망원렌즈를 통해 먼 거리의 대상을 사람들의 눈앞으로 불러 세운다. 갈릴레이의 망원렌즈가 육안의 별과 망원렌즈를 통해 본 별의 간극을 증명해냈듯이, 그들은 멀리 있는 '스타(별)'의 사생활을 대중의 눈앞에 바싹 들이대면서 가려져 있던 스타의 사적 영역을 드러낸다.
'스캔들'이라는 말은 볼 수 없었던 은밀한 영역이 일반의 '눈앞'으로 드러남으로 인해 발생하는 심리적 당혹감의 다른 표현이다. 여기에는 밀실이 광장으로 벌거벗겨지는 우리 시대 삶의 폭력성도 깔려 있는 동시에 눈으로 확인한 사실은 반박 불가능하다는 시각적 객관성에 대한 강한 믿음이 깔려 있다.
하지만 소위 '시각적 객관성'에는 지극히 당연한 대전제가 있다. 내가 보고 있는 A라는 대상이 (B가 아니라) 진짜 A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대상을 분석하기 전에 대상의 진위 여부(판본)를 치밀하게 먼저 확인하는 일은 모든 사실 규명 작업의 기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