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를 흥얼거리며 쌀강정을 만든다. 섣달그믐 오후다.
그저께 화원장에서 쌀, 강냉이와 잘게 설은 가래떡을 튀겼다. 장날이 아니라 장터는 조용했지만 튀기러 온 사람은 여럿 있었다. 세월이 흘렀건만 뻥튀기 기계 앞에 늘어놓은 깡통 됫박 줄은 여전하고 무쇠 몸통을 달궈 내는 모습도 그대로다. 몸통을 빙빙 돌리다가 적당한 온도로 달궈지면 호루라기를 길게 분 다음 쇠꼬챙이를 주둥이에 걸어 비트는 순간 “뻥”하는 소리와 함께 뽀얀 김이 모락모락 솟아오르고 하얀 뻥튀기들이 그물 속으로 솨르르 빨려 들어간다.
그물 통발 속에서 풍겨 나오는 구수한 냄새를 이기지 못하고 코를 벌름거리며 광주리에 담긴 뜨끈뜨끈한 쌀 뻥튀기를 한 움큼 입에 털어 넣으면 사르르 녹는다.
어린 시절과 다른 점이 있다면 뻥튀기 기계를 가열하는 연료가 장작이 아니라 가스이고 손으로 돌리던 것을 모터가 돌리며 “뻥이요”라는 외침이 아니라 호루라기로 대신하는 것이다. 그리고 튀어나온 뻥튀기를 주워 먹기 위해 귀를 막고 둘러써 있는 아이들이 없다. 뻥튀기는 먹거리가 흔치 않은 시절의 아이들에겐 보기 드문 한 톨의 밥알이고 사탕이었다.
한 방이 튀겨지는 동안 싸락눈 같은 뻥튀기를 뒤집어쓴 아저씨와 동내 아줌마의 구수한 농담은 변함이 없다.
본격적으로 쌀강정을 만든다.
준비한 쌀 튀밥, 땅콩, 조청과 나무 쟁반 등을 점검하고 주방장인 아내를 보조한다. 후라이팬에 조청을 넣고 약한 불에 천천히 녹인다. 조청이 보글보글 끓으면 불을 끄고 쌀 튀밥과 땅콩을 넣어 골고루 섞는다. 조청의 양에 따라 튀밥의 양도 조절해야 한다. 튀밥이 너무 많으면 잘 달라붙지 않고 너무 적으며 먹을 때 이에 쩍쩍 달라붙어 바싹바싹한 식감이 없다.
잘 버무려진 튀밥을 쟁반에 붓고 손으로 꼭꼭 눌러준 다음 둥근 병을 굴려 단단하게 다진다. 완전히 식기 전에 설 차례상에 올릴 크기로 자른다. 네 판 중 마지막 판은 조청의 양이 적어 부스러졌으나 작년에 비해 나름대로 성공이다.
며느리는 손자 출산으로 인해 오지 못하고 아들이 손녀와 함께 왔다. 아이는 집안의 활기를 불어넣고 어른들의 생각도 젊게 만드는 것 같다. 손녀가 잠든 후 오래간만에 아들과 고스톱을 쳤다. 섣달그믐에는 열두 시 전에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는 말을 핑계 삼아 고스톱을 치면서 자정을 넘기기로 했다. 규칙은 오만 원 한도에 딴 것은 돌려주기 없기로 했다. 부모 자식 사이라도 승부의 세계는 치열하고 냉정하다. 결국 이천 원을 땄다. 외출에서 돌아온 딸을 보고 설날을 위해 잠자리에 들었다.
설날 새벽 네 시 반에 일어나 아내는 차례 음식을 준비하고 나는 동생과 조카들이 좋아하는 도토리묵을 만들었다. 해마다 도토리를 갈아 전분과 액체를 비닐봉지에 담고 밀키트를 만들어 냉동 보관한다. 이 방법은 아내만의 특별한 비법이다.
도토리 밀키트를 냄비에 넣고 중불에 올려놓는다. 나무 주걱을 이용해 한 방향으로 원을 그리듯 천천히 젓는다. 뻑뻑한 느낌과 함께 뽀글뽀글 끓어오르면 불을 끄고 오 분간 뜸을 들인다. 만든 묵을 넓은 통에 붓고 위를 평평하게 만든다. 겉이 마르지 않도록 물을 묵보다 살짝 높게 부은 다음 실온에서 굳히면 된다.
먹기 좋게 썰어 양념장에 찍어 먹거나 채소와 함께 무쳐 먹으면 좋다. 묵을 만들 때 다른 사람들이 사용하는 참기름, 들기름, 소금, 밀가루 등은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오직 도토리 밀키트만 있으면 된다.
동생들과 제수씨, 아내와 함께 둥글게 모여 서로에게 세배한다. 그리고 서로의 아들딸과 조카들에게 세배를 받는다. 가족의 정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차례상은 울산 동생이 준비한 과일, 경주 동생이 가져온 고기와 산적, 아내의 정성이 들어있는 전과 튀김, 나물과 떡국으로 차렸다. 차례를 모시는 조상 중에 부모님을 제외하고는 아는 것이 별로 없다. 그래도 부모님께 전해 들은 이야기를 생각하며 조상의 음덕을 기원해 본다.
음복을 마치고 아침을 먹을 때 묵과 쌀강정이 유독 인기가 많았다. 음식은 맛으로 먹지만 추억과 정성이 들어가면 더 맛있는가 보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윷판이 벌어졌다. 다섯 명씩 편을 나누어 한판에 일 인당 오천 원을 걸고 일곱 판을 했다. 형제간이든 부모 자식 사이든 승부에는 한 치의 양보가 없다. 웃고 떠들며 놀다 보니 해가 저물어 간다. 남은 차례 음식을 나누어 들고 동생들은 떠났다.
내가 생각하는 설 차례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가족과 친지들이 모여 세배하고 안부를 주고받는 일이 목적이다. 아내의 생각은 다르기에 내년 설 차례를 위한 협상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2025.2.2.(43)
첫댓글 회장님이 선도적으로
뻥이요! 시골장에서 쌀튀김하던 모습. 옛시절 세시풍속이 물씬 풍깁니다.
조상님께 다례드린 후 세배와 덕담. 명절음식 나누어 먹는 정감이 가물거립니다.
잘 읽었습니다.
전형적인 설 풍경입니다. 회장님 가족간에 화목한거 퇴고입니다.
설풍경이 물씬 풍깁니다
좋은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형제들과 화합을 위해 맏이로서 책임을 다하려는 부부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수고가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