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매일 한송주칼럼
낙화유수
'낙화유수(落花流水)'란 꽃이 지고 물이 흐르는 자연의 풍광을 이르는 모듬말이다. 또한 이 말은 꽃은 떨어져서 흐르는 물에 안기고 싶고 물은 떨어진 꽃을 싣고 마냥 흐르고 싶은, 남녀 간의 애틋한 사랑을 나타내기도 한다.
낙화유수는 연로한 세대들에게는 추억이 깃든 유행가 제목이기도 하다. 어릴 적 읍내 한량이던 삼촌께서 술이 거나해지시면 으레 이 노래를 흥얼거리셨던 기억이 난다. 1929년 김영환이 작곡 작사하고 이정숙이 노래를 한 최초의 국산 대중가요로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으며 그 후로도 오랫동안 애창되었다.
낙화유수는 가사가 섬려하고 곡조가 애절해 청춘남녀들의 가슴을 꽤나 꽁당거리게 했는데 가사는 첫 대목부터 '강남달이 밝아서 님이 놀던 곳/ 구름 속에 그대 얼굴 가리워졌네/ 물망초 언덕에 외로이 서서/ 물에 뜬 이 한밤을 홀로 새울까...' 하면서 아리아리하게 풀어지고 있다.
낙화유수 하면 또 하나 떠오르는 게 있는데 50년대 서울 동대문 일대를 주름잡았던 주먹 '낙화유수 김'이다. 동대문사단은 정치깡패 유지광이 관리하던 살벌한 동네였거니와 어떻게 낙화유수 같은 낭만적인 닉네임을 단 주먹이 그 골목에서 노나들었는지 얼른 연결이 안 된다.
'협객'들 별호라고 해야 고작 시라소니, 신마적, 쌍칼, 신상사, 불곰 등등으로 썩 고상하지 못한 시절에 낙화유수 같은 은은한 아호가 있었으니 그야말로 군계일학(群鷄一鶴)이다.
한데 팔순을 바라보는 그 낙화유수김이 오랜만에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왕년의 주먹들이 단체를 만들어 요즘 철없이 날뛰는 '조폭'아이들을 선도하겠다는 결의대회에 고문 자격으로 참석한 것이다. 또 한 사람의 걸출한 주먹인 명동 '번개'(박모씨)가 이사장으로 앉은 그 단체의 이름은 '민주시민연합 정의사회실천모임'
주먹출신들의 모임치고는 참으로 낙화유수 같은 명칭이다. 역시 우리나라 '건달'들은 멋있다. 마피아니 야쿠자니 삼합회니 한가락 한다고 큰 소리 빵빵치는 폭력단 출신들 이런 멋진 동아리 하나라도 꾸려봤남.
지난 26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결성식에서 '민연정사모' 회원들은 폭력세계 정화, 공동체 정의실현 등을 위해 앞장서기로 다짐했다. 주먹이 조폭을 다스릴 때는 무얼 사용할까가 궁금하지만, 어쨌건 살살들 하시라고 부탁을 해야 할 것 같다. (2002.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