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영
趙 順 姬
새벽마다 남편의 간절한 기도소리에 눈을 뜬다. 젊었을 때는 세심하고 자상한 배려로 나의마음을 사로잡았으나 종교는 멀리하였다. 그러던 그가 이제는 시간만 주어지면 성경책을 벗삼아 몇 번씩 통독하는 모습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변화시켜준 것일까. 아마도 크고 넓고 깊은 하나님 능력의 말씀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으리라.
나이가 들면서 아내를 돕느라 세탁해 놓은 빨래를 널어주기도 하고 진공청소기로 집안을 말끔하게 치워주기도 하며 가끔은 커피도 한 잔씩 끓여서 가져다주는 웃음 띤 그의 얼굴에서 나는 작은 행복을 느낀다.
운동이라고는 등산밖에 모르던 내가 수영을 통해 건강하게 된 것도 남편의 보살핌이 있었기 때문이다. 중년을 넘으면서 허리에 군살이 붙고 아랫배까지 나온 아내가 보기에도 민망했는지 남편은 나에게 수없이 수영을 권유하였다. 앨범에서 사진을 찾아 회원증까지 만들어서 억지로 수영을 시작하게 하였다. 아내가 아침시간을 놓치면 하루 종일 운동할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알고 요즈음은 손수 밥을 짓는 법까지 배웠으니 어찌 그 마음이 고맙지 않으랴.
오늘도 남편의 포근한 사랑에 빠져 아침마다 수영장으로 향한다. 오월의 산들바람이 피부를 간질이는 듯 부드러운 물살이 내 온몸을 스칠 때 그 짜릿한 쾌감을 어디에 견줄까. 물 속에서 한동안 자맥질을 하다 숨이 가빠 물 위로 솟아오르면 목과 가슴에 물방울도 함께 따라 올라온다. 이 순간만은 아침 이슬을 머금고 피어 있는 한 송이의 빨간 장미꽃이 되어 있는 기분이다. 참았던 긴 호흡을 들이마시고 나면 온 세상이 내 것인 양 힘이 솟는다.
몇 년 전만 해도 수영을 할 줄 몰라 깊은 물가에만 가도 빠져 죽을 것만 같은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강이나 바다로 피서를 갈 때면 걱정이 앞을 가렸었다. 내가 물에 대하여 공포감을 갖게 된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다. 학창시절에 저수지에서 배를 타고 놀다가 물에 빠지는 바람에 호되게 놀란 적이 있어서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정신이 아찔해진다. 그 이후로는 물만 바라보아도 공포에 사로잡힌다. 그러던 내가 이제는 저절로 물살에 몸을 맡기면 앞으로 쭉쭉 나가는 자신을 돌아볼 때 신기하기만 하다. 꾸준히 노력했기에 힘들던 호흡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되었고 이제는 수영도 제법 한다. 처음에는 물위에 뜨는 일도 어려웠지만 지금은 천 미터는 수영을 해야 한 것 같다. 수영에는 배영背泳, 접영蝶泳, 평영平泳, 자유영自由泳이 있는데 그 중에서 나는 배영을 좋아한다. 몸을 물 위에 뉘이고 천천히 유영을 하면 세상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온갖 욕심을 부리고 사는가 싶다. 누워만 있어도 물살의 힘에 이리저리 떠 밀려가는 것처럼 세월은 그렇게 흘러만 가지 않는가. 그러나 그렇게 유유자적한 자세로 산다면 그 누가 인생살이를 힘겹다 하겠는가.
배영에서 평영을 하기 위해 몸을 돌려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두 발로 물을 차내며 물 속에 들어갔다 솟아오르면 알 듯 말 듯한 인생사가 눈앞에 펼쳐진다. 저 앞에 와 있는 행복, 그래서 인생은 살아볼 가치가 있는 것인가 보다. 뿐만 아니라 누구나 한번은 겪게 되는 어려움을 피해 갈 수는 없는 것 또한 인생이 아닌가.
금년 여름 아들과 두 딸 내외와 외손자, 손녀를 거느리고 설악산 워터피아를 구경하게 되었다. 온천수로 만든 옥외 옥내 온천탕과 수영장이 여남은 개는 되는 것 같다. 시설과 규모가 어찌나 크고 잘돼있는지 마치 외국에 온 별천지 세상처럼 보인다. 오고가는 여행객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수영장에서 사위, 아들, 장모가 나란히 수영을 자연스럽게 하고 있을 때였다.
“장모님! 무리하시는 건 아니 신지요?”
사위가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물가에만 가도 겁에 질리던 지난날이 떠오르며 그 동안 남편의 따뜻한 사랑이 한없이 고맙게만 느껴졌다. 이렇게 젊은이들과 어깨를 겨루며 지칠 줄 모르고 물살을 가르며 달려갈 수 있는 오늘의 내 모습이 자랑스럽게 여겨졌다. 나를 지켜보던 웬 아가씨는 “할머니! 수영하는 모습이 너무 예뻐요.” 라고 칭찬까지 하는가 하면 딸들은 “엄마! 사위들이 장모님이 물개처럼 수영을 잘 하신대.” 라며 조잘거린다.
오늘 그만둘까 내일 그만둘까 얼마나 망설였던가. 힘들다, 피곤하다,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투정을 부리며 그만두려고 하면 그때마다 남편은 내가 할 수 있는 운동은 이것뿐이라고 일러주었다.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주저앉았지만 남편은 수없이 나를 일으켜 세워 놓았다.
거센 물살이 소용돌이치는 계곡을 넘으며 젊은이들의 틈에 끼여 뒤쳐져 있을 때 물살을 거슬러 역류하는 물을 바로 흐를 수 있도록 길잡이가 되어 주었던 남편. 그러한 훈련이 있었기에 유유자적 춤을 추듯 이번 필리핀 여행 때도 보라카이섬에서 바다를 헤엄쳐 다닐 수가 있었다.
이십여 명의 일행은 구명조끼를 입고도 아무도 바다에 뛰어들지 못하였지만 나는 수영복 하나만 입고 겁 없이 바다 한가운데서 수영을 할 수 있었음은 자신과의 싸움의 승리임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가장 힘들고 어려운 접영蝶泳은 인생의 고갯길이 아닌가 싶다. 몸에 힘을 빼고 유연하게 움직여야 하는 것은 알지만 아직도 몸 따로 마음 따로 이다. 수영장에서 물살을 가르며 호흡을 맞추다 보면 인생살이도 이렇게 물처럼 흐름을 타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무슨 일이든 억지로 하려 들면 부작용이 생기고 더 힘든 경우를 볼 수 있다. 물의 흐름대로 순리를 찾다 보면 어느새 물살에 몸을 싣고 자연스레 앞으로 나가지는 것처럼 욕심을 버려야 편안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어느새 수영은 내 생활의 즐거움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내게 주어지는 현실 앞에 누가 먼저 순종하고 마음을 비워야하는지 빨리 터득할수록 편안해짐을 지천명의 나이가 넘은 이제야 깨닫는다.
그렇게 조금은 해탈한 마음으로 자유형으로 마무리를 한다. 두 손을 앞뒤로 저으며 두발로 물을 편안하게 차내면 나의 몸은 아무런 저항 없이 앞으로 나아간다. 일등을 하려는 욕심도 버리고 몇 천 미터를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도 없이 그저 발을 저으면 물살은 나의 몸을 부드럽게 스치며 지나간다. 이 편안함. 그래 이렇게 수영을 하듯이 여생을 살아가리라. 물처럼 부드럽고 조용히.
오늘도 물속에서 물살을 가르는 나의 모습은 내일의 희망을 향한 또 하나의 몸짓이다.
첫댓글 조순희 선생님의 귀한 글 대하니 감사 합니다 교수님.
좋은 글 잘 읽엇습니다, 감사합니다
수영으로 자신감과 행복을 느끼시는 조선생님을 다시 보여집니다 훌륭하신 양주분 건강하게 행복을 누리세요 감사합니다 또한 글을 올려주신 교수님 고맙습니다
"내게 주어진 현실 앞에 누가 먼저 순종 하고 마음을 비워야 하는지 빨리 터득 할수록 편안해짐을 지천명의 나이가 넘은 이제야 깨닫는다.." 잘 읽었습니다.
물의 흐름 처럼 순리대로 살아간다는 알면서도 그렇게 살고 있지를 못한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수영장에서 물살을 가르며 호흡을 맞추다 보면 인생살이도 이렇게 물처럼 흐름을 타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무슨 일이든 억지로 하려 들면 부작용이 생기고 더 힘든 경우를 볼 수 있다. 물의 흐름대로 순리를 찾다 보면 어느새 물살에 몸을 싣고 자연스레 앞으로 나가지는 것처럼 욕심을 버려야 편안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감사합니다.^^
"어려운 접영蝶泳은 인생의 고갯길이 아닌가 싶다. 몸에 힘을 빼고 유연하게 움직여야 하는 것은 알지만 아직도 몸 따로 마음 따로 이다. 수영장에서 물살을 가르며 호흡을 맞추다 보면 인생살이도 이렇게 물처럼 흐름을 타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감사합니다. 교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