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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사랑어린배움터 원문보기 글쓴이: 바람개비
사회
방금 피리를 연주하신 분은 평생 플롯이라는 악기를 연주하시다가 어느 날 당신의 남편이 피리를 손에 쥐어 주셨답니다. 그래서 피리를 불기 시작하셨다는데요, 오늘 이야기 곳곳에 피리의 향기와 소리가 함께 하겠습니다. 오늘 하늘에 눈이 오시는데 보셨어요? 오늘 가만히 보니 오신 분들이 순천 분들보다 훨씬 더 멀리서 오신 분들이 많으신 거 같아요. 제가 출석을 불러 보겠습니다. (서울, 지리산, 부산, 강원도 등 지역을 소개하고 인사 나눔) 눈이 내리는 이 곳에 모여서 참 좋습니다. 오신 분들 환영의 박수를 크게 쳐 드릴게요.
오늘 이야기 손님을 저는 이렇게 소개하고 싶네요. 이분은 지구별에서 7학년 3반을 공부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평생을 학생으로 살고 싶어 하셨고 지금도 학생으로 사시고 싶어 하는, 평소에는 선생님. 이렇게 불렀는데, 지금은 이렇게 소개 해드리고 싶습니다. “군” 이렇게 감히 소개 해 드리고 싶습니다. 7학년 3반 지구별에서 학생으로 살고 계신 이현주 군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박수) 그리고 저희에게 피리소리를 곳곳에 들려주신 용서해 학생을 소개하겠습니다. (박수) 그러면, 이현주 학생... 제가 시작은 했는데 마무리가 안 되네요. 이현주 학생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중간 중간에 궁금하신 게 있으시면 질문지를 드리겠습니다. 거기에 적어주셔도 좋구요, 손을 들어 질문해 주셔도 좋습니다. 이 자리는 이야기와 노래와 우리의 흥이 있었으면 좋겠다, 라는 마음이 듭니다. 그러면 이현주 학생님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관옥 선생님
고맙습니다. 오라고 해서 왔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아까부터 거슬린 게 있어서, 저것 좀 치워줘요. 아주 보기 싫어... 순천에 계신 분들 정말 축하드립니다. 어쩌면 그렇게 좋은데 사십니까? 하늘을 따라서 사는, 하늘에 순종하는 마을, 하~ 참~ 제가 ‘너 어디가 살래?’ 그러면 옛날에 순천에서 한번 살아보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지명이 좋아서. 그 이상 좋을 수 없습니다. 사실, 오라 그래서 왔습니다만, 무위당 선생의 자취, 여기에는 선생님을 생전에 한 번도 뵈지 못한 분들도 계실 거다 생각하지만 그건 아무것도 아니죠. 사실 몸으로 만나는 것 때문에 마음으로 못 만난 사람 많거든요, 몸에 가려서. 어쩌면 여기 오셨다는 것은 무위당하고 연결이 됐다는 거죠. 그것도 축하드립니다. 살면서 60억이 넘는 인구가 지구에 사는데 한평생 7-80년 살더라도 만나는 사람은 몇 사람 못 만난다. 그중에 무위당 선생을 만난다는 것은 이런 식으로도 참 얼마나 좋은 건지. 아~ 무위당 선생님 이야기 한마디 들려 드릴게요. 혹시 시간이 남으면 저한테 궁금한 것 물어봐주시면 대답하겠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려도 뒤에서 다 들립니까? (네) 요즘 제 귀가 망가져서 다른 분들 말을 잘 못 들어요. 다른 사람도 잘 못 듣지 않나 걱정돼서 하여튼 이렇게 말씀 드릴게요. 잘 들리면 잘 들린다는 신호를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박수) 고개를 까딱까딱 해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특히 나한테!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는 여기 앞에서 나와 얘기하면 다 알아요. 들으시는 분들이 될 수 있으면 저하고 눈 좀 맞춰주시고. 사람이 사실은 입하고 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말하는 것이 훨씬 많아요. 오늘 어떤 집에 가서 점심을 얻어 먹었는데, 그 점심 먹은 집 벽에 영어로 써 있지만, 그렇게 써 있더라구요. 당신 눈이 당신 사랑한다고 나에게 말을 할 때 입이 말하는 게 아니라 이 세상에서 더 이상 달콤한 음성은 없다! 눈이 말하는 거예요! 눈과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저는 하나고 여러분은 여럿이니까 제가 일일이 다 눈을 못 마주치지만, 여러분은 저를 보실 수 있잖아요. 눈을 좀 잘 봐주시면 좋겠다. 나도 보기 싫은 눈도 아니잖아요. (웃음) 잠깐 스쳐지나가듯이 만났다가 또 언젠가는 마주치다가 만날 수도 있잖아요. 짧은 시간이지만 어쩌면 무위당 선생님에 대해 한번 한마디를 하더라도 진심으로 얘기를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생각나는 무위당 선생님의 에피소드를 말씀드리고, 질문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선생님에 대해서 궁금한 것을 물어도 좋고, 저한테 궁금하신 것을 물어도 좋습니다. 어쨌든 그런 시간으로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네) 좋다고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웃음)
제가 80년도에 음성에 있는 작은 교회로 갔습니다. 목사 되고 얼마 안 돼서 나 나름대로 열심히 시골 농촌목회를 제대로 해봐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작은 시골교회로 갔어요. 얼마나 저를 환영하는지 몰라요. 우리 교회가 어쩌다 저런 목사님을 모셨다고. 나도 그런 줄 알았어요. 멋있게 시골목회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 모델을 보여주고 싶더라고요. 한참은 같잖은 생각을 했었어요. 어느 날 후배 하나가 소포를 보냈는데, 모과를 자기네 마당에서 딴 거라고 소포로 보내왔다. 모과가 좀 처치 곤란한 과일이잖아요. 쓰고... 이 모과를 두면 썩을 텐데. 가만히 생각했다가 술을 담갔어요. 모과주 있잖아요. 저는 아버지를 닮아서 술을 못하지만 친구들 중에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대접하면 좋아하겠다, 생각해서 바로 앞에 구멍가게 가서 소주 대병을 사서 모과를 담아 술을 담갔어요. 그늘진 곳에 잘 보관했는데 교인 중에 한 사람이 그걸 봤어요.
아시다시피 한국 교회는 술, 담배를 먹으면 안 된다는 법이 있어요. 맞습니까? 있어요! 법이 있어요. 목사님 그거 하면 안 됩니다. 형식적으로 하는지 안 하는지는 관두고 웃기는 법이죠. 하여튼 그 신자분이 제일 저를 환영하고 엄청난 목사님이 오셨다고 자랑하던 바로 그분이에요. 하필 그 분이 봤어요. 얼굴이 굳어져서 "목사님, 제가 봤습니다. 그거 술병이지요? 그거 술이에요. 목사님 방에 어떻게 술병이 있습니까?" 그래서 설명을 했죠. "글쎄 그런데요, 어떻게 목사님 방에 술병이 있습니까?" "금방 내가 설명을 했잖아요!" (웃음) "그건 알겠는데요, 어떻게 목사님 방에 술병이 있습니까?" 아, 내가 잘못했구나. 내가 큰 실수를 했구나. 제가 그래서 한 달만 여유를 주시면 제가 교회를 떠나겠습니다. 그래서 문제가 해결 되었어요. 결국은 그 교회간지 3달 만에 농촌목회 모범을 중단하고, 그게 성공회랑 내가 인연을 맺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그 무렵에 원주 선생님 뵈러 갔습니다. 말씀드렸죠. 선생님, 저 목사 쫓겨났습니다. 교회에 사임하고 못하겠습니다. 나는 선생님이 으레 왜 무슨 일 있었어? 물어보실지 알았죠. 자세하게 설명하듯이... 내 생각에는 선생님이 요즘 시대에 아직도 그런 꼴통들이 있다니 하시며 내 편을 들어 줄 거라고 생각을 굴린 거예요. 통박을 굴린 거죠. 그래서 그 말을 운을 뗀 거예요. 제가 목사직을 사임하게 됐습니다. 왜 그랬어? 물어봐야 대답할 텐데... (웃음) 첫마디 말씀이, “그랬어? 이제 자네 목사질 좀 제대로 한번 해보겠구먼”이라고. 잘 들으셨어요? “인제 자네가 목.사.질. 좀 해 보겠구먼.” 그리 답하셨죠. 내가 설명할 방법이 없어요. 어떻게 쫓겨났는지가 문제가 아니다. 쫓겨났어? 됐어! 그러면 이제부터 목사는 시작이다. 이제까지는 준비. 이제부터 제대로 한 번 해봐야겠다. 제가 경험한 무위당의 예를 잘 말씀 드린 거 같아요. 발상의 전환이 아니라 발상의 혁명 같은 거지요. 그게 사람 살리는 거지요. 나는 이제 목사 일이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시작이라는 거지. 제대로 할 수 있게 말이지.
제가 그렇게 배웠기에, 제 스승인 변선환 교수님이 교회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말을 해서 쫓겨났거든, (웃음) 목사직도 박탈당하고, 교수직도 뺏기고, 학장직도. 철원 있을 땐데 내가 뉴스를 보고 일부러 학교를 찾아갔어요. 이삿짐 싸기 이틀 전이었어요. “선생님. 쫓겨나셨다고요? (웃음) 축하드립니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제가 그랬어요. “뭔 소리야!” “선생님 생각해보십시오. 우리는 감리교입니다. 감리교의 대장은 요한 웨슬레(John Wesley)인데 쫓겨난 사람입니다.” 그렇거든요! 영국교에서 쫓겨난 사람입니다. “우린 개신교입니다. 개신교의 대장은 루터(Martin Luther)인데 루터도 천주교에서 쫓겨났습니다. 왕대장 보스 예수는 쫓겨난 정도가 아니라 작살을 당한 사람입니다. 죽임을 당합니다. 결국, 예수, 루터, 웨슬레, 예수부터 변선환 이 라인을 탔는데 얼마나 영광입니까? (웃음) 난 선생님의 제자라는 것이 영광스럽습니다.” 농담 아니라 진담이었습니다. 그거 무위당 선생님에게 배운 거예요. 그렇게 배운 것, 이 세상을 전혀 다르게 보는 것! 선생님 말씀이 노자, 노자 별거 아니야. 소중하다고 여기는 것을 개똥으로 알고, 당시 사람들이 우습게 본 것을 귀하게 본 것이 그게 노자야. 부국강병을 이야기 하는 시대에 소국과민을 이야기하는 것이 노자야, 남성적 파워를 이야기 한 시대에 아이와 여자를 이야기하는 것이 노자야, 거꾸로 봐라, 거꾸로... 돌이켜 보면 이런 것을 무위당 선생님한테 틈틈이 배우지 않았나, 그리 생각이 들어요.
변선환 선생님 돌아가시고 10년 되었을 때, 10주기 모임에 갔었어요. 그때 화제가 10년 되었으니, 우리 선생님 복권을 해드리자. 쫓겨난 목사직을 회복하는 것, 명예를 회복하자. 그런 운동이 일어나는데, 다들 그런 얘기를 하셨어요. 저보고 제자 대표로 한마디 하라고 하는데 맨 끝에 제가 약간 고민했어요. 내 속에 있는 생각을 말할까 말까? 그러다가 하자. 뭐 하러 거짓말을 하냐? 내 속 생각을 이야기 하면 되지. 그런 얘기를 한 기억이 납니다. 복권운동이라고 하는데 하시려면 하십시오. 그런데 저는 거기에 찬성할 수 없습니다. 나는 거기에 참여하지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우리 선생님이 명예를 뺏겼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 루터, 요한 이야기를 잠깐 했어요. 우리 선생님이 그런 분이시다. 이런 명예가 어디 있나? 그런데 그분을 감리교 목사를 만들겠다고요? 알에서 깬 새를 다시 알 속에 집어넣는 것과 다르지 않다. 말이 안 되잖아요. 요한 웨슬레(John Wesley)를 다시 성공회 사제로 만들겠다? 마틴 루터(Martin Luther)를 다시 천주교 신자로 만드는 것, 예수를 유대교 신자로 만든다? 그건 말이 안 되죠. 그렇기 때문에 나는 찬성할 수 없습니다. 이런 모든 것들을 가만히 보니 그 뿌리가 어디서 왔나 했더니 무위당이다!
저에게 처음으로 글씨를 써주셨어요. 선생님 만나 뵙고 1년 지난 어느 날, 저한테 한문으로 이름을 어떻게 쓰냐고 물어서, 제가 이렇게 씁니다. 제 앞에 있던 제 후배 안희성 목사가 형님도 이제 글자 한 자 받겠다. 이름을 물어봤으니... 그 다음에 갔더니 정말 한 장 써주셨다. 불경에 나오는 말인데 유수식견(唯須息見)이라는 걸 써주셨어요. 풀면은, 내 견해를 그만 둬라. 죽여 버려라. 목사 된지 얼마 안 된 시절, 성경구절도 아니고, 불경인지도 몰랐지만 나중에 알아보니 불경이에요. 그것도 그럴 것이 깜짝 놀란 것은 이건 몇 월 며칠이라고 쓰는 거 있잖아요. 거기에 이현주 도인시상(道人是賞)이라고 쓰셨어요. 그때는 청강(靑江)이라는 호를 쓸 때인데 이현주 목사라고 하지, 이현주 선생이라고 하든지 만난지 1년밖에 안 되었으니까. 왜 도인이야? 난 도(道)하고 아무 관계가 없는데 난 도사는 금강산이나 이런 데서 머리 기른 사람만 생각했는데. 이게 이해가 안 간 거예요. 목사인지 뻔히 알면서. “선생님 절 왜 도인이라고 호칭하셨나요?” 여쭤봤죠. 빙그레 웃더니, “자네는 길가는 사람 아니여?” (웃음) 길 道, 사람 人 길가는 놈, 그것이 어쨌단 말이야! 그런 뜻입니까? 그럼, 그렇게 읽으면 되지 뭐. 도인 아닌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다. 지가 도인인지 몰라서 그렇지, 이 세상에 도인 아닌 사람 없다. 너도 그중에 하나다. 이것은 전혀 내 머리에서 나올 수 없는 생각입니다. 거두절미하고 던지는 분으로 기억납니다. 그 뒤로 도(道)라는 말하고 제가 아주 급격하게 가까워졌습니다. (웃음)
사회
선생님 말씀 듣고 전시 작품을 보니 달리 보이는 거 같아요. 무위당이라는 분이 지금 우리 속에서 호흡하고 있구나, 느껴지는데 아마도 그런 게 당신 안에 계신 당신의 스승을 이야기하는 학생의 기운이 전달되어서 이지 않을까? 음악을 들어볼까요? 음악담당은 따로 계십니다. 제가 소개해 드렸던 피리를 담당하시 분이 음악에 대한 설명과 음악 속에서 들어야 할 것을 설명해 주실 건데요, 다시 한 번 용서해님을 박수로 맞이해 주시기 바랍니다.
용서해
저도 음악회에 불러 주셔서 여기 왔습니다. 목사님 말씀하시면서 음악을 어떻게 할까? 생각해봤는데 방금 전에 생각이 났어요. 저에게 음악은 굳이 해석을 하자면, 많은 사람들과 우정을 나누는 일이다. 저 역시도 무위당 선생님을 뵌 적은 없지만, 목사님을 통해서 무위당 선생님 말씀을 자주 들었어요. 저도 사실은 돌아가신 음악가들을 많이 만나고 있는데요, 베토벤, 모짜르트 등 과거에 돌아가신 분들이죠. 무위당 선생님을 생각하며 어떤 음악을 들려 드릴까? 생각하는데 그 뒤를 따라가시는 관옥 선생님의 모습을 뵈면서... 영화 미션(The Mission)의 주제곡인 가브리엘의 오보에(Gabriel's Oboe)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영화 미션(The Mission) 중 Gabriel`s Oboe
Q 여러분들이 질문을 해주셨는데 지금부터는 질문으로 이현주 목사님을 만나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무위당 선생님께서 관옥 선생님에게 “괜찮아, 괜찮아. 좋아, 잘했어!” 이런 말씀을 자주 하셨다고 하는데요, 어떤 상황에서 이런 말씀을 들으셨는지 그리고 이런 말씀을 들으셨을 때 마음이 어떠하셨나요?
A 아까 말씀 드린 것처럼 교회에서 쫓겨났을 때 괜찮아라는 단어는 안 썼지만 그게 저한테 이제부터 시작이야, 그 얘기죠. 끝난 게 아니라 내 목사일은 지금부터야 제대로 된 목사면 교회에서 안 쫓겨나보면 좀 이상하다 이거야.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그렇다고 일부러 쫓겨날 필요는 없고... 제 기억은 그래요. 제가 무슨 일을 저지르고 가도 “왜?” 이런 소리를 한 번도 들어본 기억이 없어요. 얘길 들어보면 다른 사람들한테는 가끔 그러셨다고 그래요. 그런데 저한테만은 왜 그러셨는지 모르지만... “잘 했다!”
제가 마흔 살 때 제 아내 아닌 다른 여자와 연애를 했어요. 불륜을 저질렀어요. 많은 사람들한테 욕도 얻어먹고... 나도 일은 저질러 놓고 어떻게 수습할지 알 수도 없고 여기서 빨리 벗어나긴 해야 할 텐데... 그때 한 번 찾아갔어요. 대충 얘길 했죠. 이런 얘긴 자세하게 하는 게 아니에요. (웃음) “잘 했어. 수습 잘 해. 저지른 거보다 수습을 더 잘하면 저지른 거보 훨씬 나아!” 더 얘기해야 돼? (웃음)
Q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이 학생 이현주에게는 스스로가 살아계신 마지막 선생님이라고 하셨다는데요, 그러면 이현주 학생에게 스승은 어떤 의미인지 말씀을 해주세요.
A 저는 젊어서부터 예수라는 존재가 저한테 하나의 화두였습니다. 어머니 덕분에 교회를 다니게 됐지만 예수가 누군지도 모르고 예수, 예수 하면서 살았는데 어느 날 철이 들면서부터 이 사람하고 내가 관계를 제대로 한번 해봐야겠다, 안 그런다면 이건 백날 헛것이다, 그 방법은 내가 직접 겪어보는 수밖에 없다. 사람을 안다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정보를 아는 것하고 그 사람을 아는 것하고는 다르잖아요. 예수에 대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설명을 했지만 그건 그냥 정보예요. 난 그것 가지고 예수를 만날 수 없단 말이에요. 어거스틴(Sanctus Aurelius Augustinus)이 예수를 만났다면 그건 어거스틴의 예수예요. 그건 내 꺼가 될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고...
그래서 나는 나의 예수를 만나지 않으면 내 인생은 별것 아니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래, 만납시다! 그랬던 기억이 나요. 난 당신이 어디 있는지 몰라. 모르잖아요? 역사적 예수에 대한 책을 많이 읽어봤는데 읽을수록 모르겠더라고 그리고 결론을 보니까 없다는 거예요. 슈바이처 같은 석학이, 내가 역사적 예수를 탐구해보니까 없더라 그랬는데 그러면 역사적인 예수는 관두자! 성경에 보면 예수는 살아있다는데 그러면 내가 만나야 될 거 아니냐? 그런데 내가 당신을 만날 수 없고 찾아갈 수 없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찾아가지, 그러니 당신이 와라 나한테! 그 수밖에 없지 않느냐? 교도소에 있는 친구를 만나려면 내가 거기로 가야 해. 그 친구가 나한테 올 수 없잖아요. 나는 지금 감옥에 갇힌 죄수인데 내가 당신한테 어떻게 가냐, 당신이 나한테 와라. 한번 만나자. 내가 당신을 만나는 게 아니라 당신이 나를 좀 만나라. 그렇지 않다면 우리 관계가 아무것도 아니다. 뭐 이런 건방진 생각을 했어요. 그랬던 거 같아요, 돌이켜보니. 아마 그 분이, “그래, 만나주지. 그런데 내가 최고 높은 위치에 있는 존재니까 나보다 조금 급수가 낮은 친구부터 만나고 와라.” 여러분 지리산 천왕봉 올라가려면 작은 봉우리가 많이 나오잖아요. 그래서 그걸 중간 선생이라고 해요. 최고봉의 선생을 만나려면 단계가 낮은 선생들을 만나는 거지. 하나하나 만나고 때가 되면 안녕, 하고 또 올라가고...
그렇게 해서 저를 이끌어주신 선생님이 몇 분 계셨던 거 같아요. 살아계신 분도 있고, 돌아가신 분도 있고, 한 번도 만나지 못한 분도 있고 그 중에 노자도 있고 아브라함 헤셀(Abraham Joshua Heschel) 같은 분은 잊을 수 없는 선생이에요. 제가 40대 때 만났어요. 이런 분들이 나를 조금씩 조금씩 인도해서... 그렇게 보면 무위당 선생님이 제일 마지막이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아마 그런 얘길 했을 거예요. 제가 선생님하고 노자이야기를 읽다가 어느 날, 아마 그 무렵일 거예요. “선생님 궁금한 게 있습니다. 노자도 그렇고 예수도 그렇고 사람인데, 사람이면 어디 가서 배웠을 거 아닙니까? 공부를 했을 텐데... 노자(老子)도 그렇고 예수도 그렇고 당최 누구 밑에서 공부했다는 게 없습니다, 기록에. 어디 가서 배우긴 배웠을 텐데. 이 분들은 어디서 누구한테 뭘 배웠을까요? 이분들 스승은 도대체 누굴까요?” 그걸 여쭤봤죠. 선생님이 잠깐 생각하시더니, “자연 아닐까? 자연...” 그러고 보니까 그렇다! 예수의 가르침을 보면 자연에서 많은 소재를 끌어오거든요. 새를 봐라. 소금, 빛... 자연에서 늘 만날 수 있는 것들 거기서 교훈을 가져와서, 너는 세상의 빛이다, 너는 소금이다, 뭐 이런 얘기를 하거든요.
리처드 로어(Richard Rohr)라는 신부인데 “예수가 우리를 소금이라고 한 게 참 고맙다. 소금을 적당하게 넣어야 국이 맛있다. 너무 많이 넣으면 국을 못 먹는다. 기독교 신자가 너무 많으면 이 세상이 망한다.” (웃음) 여하튼 자연에서 끌어다가 가르쳐요. 노자(老子)도 마찬가지로 잘 아시다시피 인법지(人法地)하고 지법천(地法天)하고 천법도(天法道)하고 도법자연(道法自然)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최고 선생이 자연이다. 자연을 보아라. 그러고 또 여쭤봤어요. “그럼 왜 자연이 최고의 선생입니까?” 예수가 자연한테 배웠다면 자연이 가장 높잖아요, 최고. 왜 그럴까요? 아, 별로 생각하지도 않고 탁 던지시는 말씀이, “자연은 가르치지 않잖아!”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더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자연으로 살아라, 너는 자연이니까... 그걸 일러주시는 선생님인데 제가 더 이상 다른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 그렇게 하고 선생님 돌아가시고 어느 날 내게 처음부터 그 스승이 내 안에 있었구나. 이제 안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무위당 선생님은 나에게 마지막, 이 땅에서 마지막 스승이었다고 생각합니다.
Q 무위당 선생님은 남녀노소 빈부귀천에 상관없이 누구나 하고 어울리고, 누구나 찾아가고 격없이 대했다고 하시고 그리고 선생님께서는 사모님을 지극정성으로 대했다고 좁쌀 한 알이라는 책에 나와있더라구요. 한 예로 여름에 사모님이 더워서 잠을 못 이루시면 주무실 때까지 무위당 선생님께서 부채질을 해주셨다는 일화가 나옵니다. 이 부분과 관련해서 관옥 선생님이 무위당 선생님에게 학생으로서 잘 배우셨는지 관옥 선생님 사모님에게 여쭤보겠습니다.
A 2년 전에 이현주 목사님이 결혼을 당하셨습니다. 당한 사람하고 제가 살고 있습니다. 목사님과 결혼한 덕분에 무위당 선생님에 대한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사모님은 어떻게 하셨을까, 선생님께서 많은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그 시간에 사모님은 무엇을 어떻게 하셨을까, 아니면 무위당 선생님이 사모님께 어떻게 하셨을까 하는 게 궁금했어 요. 가끔 이렇게 무위당 선생님의 사모님의 근황이 궁금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책을 읽다보니 참으로 멋진 분이시구나 하는 걸 알게 됐어요. 소개를 해드리자면요, 정말 눈물이 날정도의 글을 쓰셨더라고요.
여보세요. 평생을 피곤하게 가시는 당신에게 드리고 싶은 것이 마음에 있는데 표시가 잘 안되네요. 오늘 보니까 피나무로 만든 목기가 있어 들고 왔어요. 마음에 드실지... 이 목기가 겉에 수없이 파인 비늘을 통해 목기가 되었듯이 당신 또한 수많은 고통을 넘기며 한 그릇을 이루어가는 것 같아요.
이러면서 부채질로 아내를 재우셨다는 말씀을 듣고 이렇게 멋진 분이 계시는 구나. 저는 낮잠을 잘 자지는 않지만 아직 이현주 목사님께서 저에게 부채질을 하면서 재워주지는 않았어요. 그건 안 배우신 거 같아요. (웃음) 오늘 여러분께 아름다운 시와 노래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 가곡집 ‘연꽃잎’ 중 ‘그대의 검은 머리카락을 내 머리에(Breit uber mein Haupt dein schwarzes Haar)’, Op.19 No.2
당신 검은 머리를 내 어깨에 드리우고
당신 얼굴을 가까이 대어주세요
당신 눈빛이 너무나도 맑고 밝게
내 영혼으로 스며듭니다.
머리 위에서 누부시게 빛나는 태양도
별들의 환한 꽃다발도 나는 원치 않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오직 당신의 검은 머리와
나를 바라보는 당신의 다정한 눈길뿐.
Q 지금 여기를 살라고 하는데 이 말이 참 편하고 좋긴 한데 한 편으로는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다보면 돈이라는 것에 부딪힐 때가 많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다보면 돈과도 적당히 협상해야 될 것도 같고 지금 여기에 집중하되 돈하고도 자유로워지는 인생을 어떻게 하면 살 수 있을까요?
A 질문하신 분이 누구신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정답을 드릴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하지는 않으시겠지요. 그런 종류의 질문은 직접 자기가 해보지 않고는 답을 알 수 없어요. 아무리 훌륭한 철학자나 사상가가 설명해도 답이 안 돼요. 그런 종류의 질문은 자기가 해봐야 돼요. 다만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이 누군지를 잘 봐서 그분이 믿을만하다고 생각되면 한번 그 말을 믿고 그가 하라는 대로 해보십시오. 그러면 그 말이 진짠지 가짠지 알 수 있어요. 나는 예수를 머리로 알기는 진즉 포기했고 그가 정말 실제로 존재하는지 안 하는지는 아까 얘기한 대로 경험해보시기를 바랍니다. 그걸 경험해보는 방법은 그가 한 말 중에 내가 실험해볼만한 만만한 말을 골라보세요. 뭐 왼뺨 오른뺨 이런 거 말고... 그거 은근히 쉽지 않아요. (웃음)
해볼 만한 말을 딱 하나 골라가지고 그대로 해보는 거예요. 저는 그랬어요. 그래서 제가 선택한 말은 뭘 먹을까 뭘 입을까 걱정하지 말고 하느님 나라를 구하라 그러면 먹을 것 저절로 해결된다. 그게 지금 여기를 살라는 거예요. 제 해석은 하나님 나라를 추구한다는 것은 지금 여기를 살라고 애쓰는 거예요. 난 그렇게 해석해요. 그러면 먹을 거, 입을 거 다 생긴다. 돈? 온다! 내가 내 일을 하면 돈은 온다. 그게 예수의 얘긴데 그러면 한번 해보자. 그렇게 해봤죠. 결론은 해보니까 그 말이 거짓말이 아니더라... 뭐, 그런 얘깁니다. 그러니 궁금하시면 머리를 굴려서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한번 용기를 내서 우리보다 먼저 간 선배 말에 내가 그대로 해서 내 인생 망쳐도 좋다! 내가 그 양반 가르쳐준 대로 했다가 쫄딱 망해도 좋다! 각오하고 그 양반이 해라는 대로 해보는 걸 권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답을 알 수 있을 거예요.
Q 무위당 선생님도 돌아가시기 전에는 어린 아이 같았나요? 어린 아이 같아지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A 그건 잘 늙으면 돼요. 요즘 제가 번역하는 책 중 하나가 <How to be sick?>라는 글을 번역하고 있어요. 영어로 How to be sick? 어떻게 앓을 것인가? 병과 환자의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이 만성질환을 앓고 있어요. 만성질환이라고 있잖아요. 죽을 때가지 앓아야 되는 병, 현대의학으로 치료가 불가능한 병, 그런 병을 앓아요. 좋다, 내가 죽을 때까지 이 병을 앓아야 한다면 이제 문제는 어떻게 앓을 것인가? 그걸 고민하는 거예요. 폼나게 앓자, 이왕에 앓을 거. 아! 그 착안이 멋있잖아요. 대체적으로 병을 앓지 않고 떨쳐버리려고 애를 쓰는 게 보통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이 병을 어쨌든 앓는 거라면 근사하게 앓아보자! 달라지는 거예요, 생각이. 그 책을 읽어보면 아주 재미있고 많은 걸 공부하게 되는데 어차피 늙지 않습니까, 사람이? 누구나 다, 그렇죠? 어차피 늙는 거 어떻게 늙을 것인가? 고민 좀 해야 될 거 아니에요? 그냥 무턱대고 늙기만 할 것인가?
제가 <How to be sick?>를 번역하면서 제목을 <앓기만 할 것인가?>로 생각하고 있어요. 어차피 늙는 거 늙기만 할 것인가? 몸뚱이 늙는 거 누가 못 해요, 다 해! 마음이 늙을 줄 몰라. 그게 문제예요. 몸은 늙는데 왜 마음은 안 늙으려고 그래? 왜 아령 같은 걸 막 하고 그러느냔 말이야. 언제까지 그걸 할 거야? 잘 늙자, 이왕 늙는 거! 궁리를 그렇게 해보고 그런 마음을 가지면, 그 마음이 그런 걸 가르칠 수 있는 선생들을 만나게 하면 돼요. 내 마음 속에 뭘 염원하면 거기에 맞는 선생이 오게 돼 있어요. 이건 제 얘기가 아니라 우리 선배들이 한결같이 하는 얘기예요. 학생이 준비되어 있으면 선생이 나타난다! 맞는 얘기예요. 학생이 준비돼 있지 않다면 옆집에 공자님이 살아도 그냥 이웃집 아저씨지! 학생이 준비돼 있으면 다 선생이에요. 그러니까 이왕 늙는 거 제대로 한번 늙어보자는 마음을 가졌으면 거기에 관계된 사람을 만나거나, 경험을 하거나 해서 잘 늙어가는 법을 배울 겁니다.
사랑어린배움터 사람들하고 얘기도 했지만 늙은이 학교 좀 있으면 좋겠다. 잘 늙자. 그런 마음 가지고 있으면 저절로 어린 아이처럼 되는 거지. 어린 아이가 되지 못하는 이유는, 몸뚱이는 다 어린애가 돼요, 늙으면. 잘 걷지도 못 하고 나중에 똥오줌도 자기가 치우지 못 해요, 젖먹이처럼. 그건 다 됩니다. 안 배워도 돼요. 공부 안 해도 돼요. 마음으로 그러지 못 하는 거예요. 마음으로 젖먹이가 되어야 하거든요. 이게 노자의 가르침이에요. 내가 열심히 공부해서 갓난쟁이가 될 수 있느냐? 예수도 어린 아이가 되지 않으면 하늘문에 못 들어간다! 잘 늙어가는 것하고 유치해지는 것하고는 같은 겁니다. 그러니까 그러한 마음공부를 열심히 하면 돼요.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까 공부하시면 어린아이처럼 저절로 행복해질 거라고 봅니다.
Q 무위당 선생님을 생각하시면 떠오르는 노래가 있으신가요? 저희가 좀 청해들어도 될까요? 아니면 흑기사를 쓰셔도 되고요.
A 선생님과 저하고 가끔 부르던 노래가 2개 있었는데 하나는 너무 곡이 어려워서 나는 못하고 선생님은 잘 하시는데... 또 하나는 저도 좀 할 수 있는 노래인데 헤어지기 섭섭하여... 그런 노래 있어요, 옛날 노래. 검은 장갑이라고... 선생님께서 가끔 부르셨어요. 헤어지기 섭섭하여 망설이는 나에게 굿바이하며 내미는 손 검은 장갑 낀 손 할 말은 많아도 아무 말 못하고 돌아서는 내 모양을 저 달은 웃으리... 이 노래는 저기 일부가 해야 맞습니다. (박수)
두더지
노래와 관련해서 말씀하셨는데 사실 저는 무위당 선생님에게로부터 들은 건 없구요. 1990년대에 민주화운동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을 때, 동유럽이 무너지고 있을 때 제가 민중교회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 다시는 교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어요. 그때 이런 답답한 상황에서 길을 누군가가 이야기해주면 좋겠다, 마치 기도처럼 갖고 있었는데 마침 한번도 인연이 안 됐는데 관옥목사님 생각이 났어요. 만날 수 있는 기회도, 인연도 없었는데 어찌해서 인연이 돼서 뵙게 됐습니다. 그때 당시 이른바 민주진영에 있는 사람들이 만나는 데가 유성 어느 여관 언저리에서 만나서 밤새 이야기 하고 헤어지고 또 만나고 그랬던 장소 중의 하나였어요. 거기에서 사람들이 모였는데 저도 끼게 되었어요. 그때 이야기하고 나서 뒤풀이에서 술도 한 잔씩 하면서 노래도 부르고 그러면서 서로의 한풀이라고 할까 그런 과정이었요.
제 기억에 처음이었는데 (선생님께서)무슨 노래를 부르시면서 눈시울을 적시는 거예요. 노래도 별다른 노래도 아닌 거 같은데 제일 어르신이 눈물을 훔치시는 거예요. 그리고 한참 뒤에 뵀는데 또 똑같은 노랜데 역시 비슷한 모습을 보이시는 거예요. 그런 모습이 술자리에서 한두 번 그리고 공부하는 자리에서도 문득 무위당 이야기를 하시는 중에 눈물을 훔치시면서 한참을 말씀을 잇지 못하고 계시는 거예요. 그래서 제 속에서 이런 마음이 생겼어요. 도대체 한 사람이 어느 한 사람을 그리워하면서 눈물을 훔칠 수 있다니? 저는 무위당 선생님을 알지도 못했었고... 자꾸 이런 마음이 들었어요. 한 사람이 어느 한 사람을 그리워하면서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것, 야! 참 멋있다. 다르게 이야기 하면 내 인생을 이 사람에게 완전히 던져도 아깝지 않겠다는 마음이 세월이 가면서 들었던 거 같아요. 이 노래는 그 어느 날 반주 한잔씩 하실 때가 있었는데 그때 “앞으로 이 노래는 안 부를란다.” 하시면서 노래를 던지셨어요. 그거 기억나세요? “나 이 노래 앞으로 안 부를란다!” 하신 거요. (기억 안 나는데...) 선생님께서 던진 노래를 제가 주웠습니다. 이 노래를 앞으로 내가 부르리라, 그랬습니다.
Q 선생님 저는 일머리가 없습니다. 어떤 일을 마무리할 때면 후회가 밀려옵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힘들어 하는 거 같고요. 일의 본말을 따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이 분이 말하는 일이란 게 뭔지 잘 모르니 대답하기 어렵습니다만... 일머리란 게 뭔가요? (일의 순서 같은 거요) 아, 일의 순서! 그런 걸 잘 아는 사람한테 물어보면 되지.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보면 되지. 왜 내가 다 알아야 해. 왜 내가 일머리를 잘 알아야 되죠? 이 땅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는데 잘 아는 사람한테 물어보면 될 거 아녜요. 이번에 내가 이러이러한 일을 해야 되는데 어떤 거부터 해야 되고 어떻게 어떻게 해야 됩니까? 아마 둘러보면 분명히 가르쳐줄 사람이 있을 거라구요, 그 방면에. 그럼 그 선생한테 가서 물어보면 되잖아요. 그래서 그 양반이 하라는 대로 하면 되는 거잖아요. 얼마나 좋아요. 그 양반이 하라는 대로 한 거예요. 잘 안 됐어, 그럼 핑계가 되잖아요. 그럼, 나 저 사람이 시키는 대로 해서 이렇게 됐다. 나 잘못 없다. 얼마나 좋아요. 자기가 다 알아서 하려고 그러니까 나중에 책임도 져야 되고... 지혜롭게 살아요. 모르는 건 아무 잘못이 아닙니다.
저는 질문을 겁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오만가지 질문이 있지만 나한테는 두 가지 밖에 없어요. 하나는 내가 답을 잘 아는 질문, 하나는 모르는 질문. 내가 잘 아는 질문을 하는데 고민할 이유가 없잖아요. 목사님은 어디 이씨입니까? 전주 이씨요! (웃음) 그런데 어쩌다가 내가 모르는 것을 물을 수도 있어요. 목사님 왜 그랬어요? 나도 모르겠어요.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웃음) 모르는 질문을 물으면 대답이 더 간단해요. 모른다 하면 되니까. 아는 건 쉽죠. 인생살이도 그렇다! 일도 마찬가지요. 왜 내가 다 알아야 돼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면 되는 거고 내가 잘 모르는 거는 물어보면 되는 거고... 우리 그렇게 혼자 살려고 하지 말고, 뭐 별로 잘나지도 못 했으면서... 다른 사람 덕 좀 보면서 도움도 받으면서 살면 그런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박수)
Q 저는 제 마음을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진정 원하는 게 뭔지 잘 모르겠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거, 질문을 아무한테나 하는 게 아니요. 내가 도자기를 굽고 싶은데 한원식 선생같이 평생 농사지은 사람한테 가서 내가 도자기를 굽고 싶은데 라고 물어보면 되겠어요? 말이 안 되죠. 나도 내 마음 모른단 말야! 나도 정말 내 마음을 모르겠더라고 보면. 난 이렇게 하고 싶은데 안 되잖아. 난 저 사람을 미워하고 싶지 않은데 자꾸 미운 걸 어떡하란 말이에요? 내가 내 마음이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이게 내 말을 안 들어요. 그런 사람한테 어떻게 하면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있냐고 물어보면 모른다고 할 수 밖에! 그런데 질문을 하셨으니 제가 정성을 기울이는 척이라도 해야 될 거 아니에요? 그래서 생각나는 대로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우리 몸이 우리 몸이지만 내 꺼가 아니에요. 내 꺼 같으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요. 내 꺼니까. 내 몸이지만 내 마음대로 안 되잖아요, 그렇죠? 내가 숨을 쉬지만 내가 숨의 주인이 아니라, 내가 숨을 쉬는 게 아니라 숨이 내 안으로 들락날락하는 거예요. 내가 숨의 주인이면 왜 죽어? 계속 숨을 쉬지. 내가 내 몸의 주인이면 뭐하러 병들어? 건강하게 살지. 이건 내 몸이라고 하는 것의 착각이고 임자가 따로 있다. 진짜 임자가... 마음도 마찬가지. 내 마음이지만 내 마음대로 안 돼! 왜? 내 꺼가 아니니까! 그래서 몸이 병들면 의사를 찾아가는 것처럼 마음도 그런 분을 찾아가야 되는 거지! 내 마음, 내 몸,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할 수 있다는 착각에서만 벗어나면 그 질문에 대한 힌트가 나올 거 같습니다. (박수)
사회
우리 마음과 몸에 대한 말씀을 들었는데요. 학생이라고 말씀을 하셨잖아요. 당신도 학생이고 무위당이라는 분도 학생이고 그래서 평생을 배우고 함께 나누며 살아오셨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한 번 무위당 학생과 이현주 학생의 말씀을 사유하는 시간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잠시 그런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Q 안녕하세요? 선생님 제가 나이도 어리고 무식해서 잘 모르는데요. 주변 어른들의 말씀을 들으니 우리나라에 문제가 많다고들 하십니다. 그런 상황에서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요?
A 이 사람이 누군지 모르고 그 사람이 어떤 상황인지 모르니 답을 할 수 없어요. 일반화 해서 답을 할 수 없는데 다만 우리나라가 문제가 많다는데, 나는 이런 나라에서 태어나서 어떻게 살 것인가, 내가 당장 무엇을 할 것인가. 지금 나한테 한 질문을 잊지 말고 가슴에 꼭 간직했으면 좋겠어요. 계속 무러었으면 좋겠어요. 답을 찾으려고 하지 말고. 내가 질문 해놓고 내가 대답을 찾으려고 하니까 딴 데로 가는 거예요. 질문은 내가 하지만 대답은 저쪽에서 오는 거예요. 말은 내가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어요. 입을 다물고 안하면 돼. 말 하고 싶으면 입을 열면 되고.. 질문은 그래요. 내가 하고 싶으면 하고 안 하고 싶으면 안 하고... 그게 질문이에요. 그런데 답은 귀가 듣는 거예요. 귀에는 마개가 없어요. 귀는 막을 수가 없어요. 평생 열려있어야돼요. 답이 어디에서 언제 올지 모르니까 항상 열어둬야 돼요. 질문하는 게 중요해요. 답은 내가 걱정할 게 아네요. 다른 사람의 대답은 그 사람 대답이에요. 내 대답은 아니예요. 귀로 답이 들릴 때까지 계속 뭘 할 것인가 난 어떻게 살 것인가. 내가 이런 나라에서 태어났는데 어떻게 사는 게 정말 제대로 사람답게 사는 것인가 이 질문이 그 질문을 끌고 갈 거예요. 한 인간을 결정하는 것은 그가 뭘 발견했는가가 아니라 뭘 찾고자 했는가 그게 그 사람을 결정하는 거예요. 질문이 아주 소중해요. 질문을 어디다 팔아먹지 말고 내 것으로 간직해요. 그러다보면 질문한다는 건 학생의 특권이에요. 학생은 질문하는 사람, 그럼 선생은 나타나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돼요.
Q 선생님께서 무위당 선생님과 도덕경 81장을 읽으셨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그 중에서 1장에서 57장까는 함께 읽으시고 58장을 읽으실 무렵에 무위당 선생님께서 돌아가셔서 끝까지 읽지 못했다고 들었어요. 함께 못 읽으셨는데도 58장부터 81장까지 대담 형식으로 나왔는데 그때 마음이 어떠셨고 어떻게 그게 가능했는지 말씀해주세요.
A 처음 1, 2권으로 나왔어요. 1권 나오고 선생님께서 보시고 좋아하셨어요. 그때 마침 내가 원주 기독병원에 문병을 갔어요. 거기에 한겨레신문 기자가 왔어요. 그 기자가 노자 도덕경 출판을 기사화하려고 온 거예요. 선생님께서 저를 가리키면서 “저 물건이 있어갖고 이 노자 책이 나왔잖아!” 그게 기억나요. “내가 썼어.” 그런 얘기 안 하셔요. 저 물건, 나보고 물건이래! “저 물건이 있어서 나왔어.” 그 얘긴 뭡니까? 당신 자신이 아니라 세상이 있어서 이게 나왔다. 내가 만든 거 아니다! 그 분은 말만 그랬던 게 아니라 정말 그렇게 생각하셨어요. 사람들이 자신을 앞세우는 건 몰라서, 무식해서 그래서 자신이 했다고 착각하는 거지. 모를 리가... 그런 얘길 자주 하셨지... 아까 질문이 뭐였죠? 아, 노자책!
왜 노자를 읽게 됐냐 하면, 제가 소식을 들으니까 선생님께서 병에 걸리셨는데 치료가 안 된다는 거예요. 그 얘길 듣고 제가 욕심이 좀 났어요. 평소에 찾아가서 말씀 나눌 때 노자 이야기를 참 많이 하셨어요, 평소에. 그래서 오죽하면 1978년도에 처음 선생님을 찾아갈 때 제 후배 목사, 원주에 사는 안익선 목사가 “형, 원주 노자 만나러 가자!” 그랬어요. 원주 노자 만나러 간 것이 장일순 선생님과의 첫 만남이었어요. 노자 이야기를 자주 하셨어요. 그래서 선생님하고 노자를 한번 같이 읽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시작해서 단 둘이 앉아서, 제가 두 가지 조건을 댔습니다. 단둘이 합시다. 아무도 끼지 말고 단둘이 읽읍시다. 오케이. 또 하나 선생님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예습해오지 않기, 미리 읽어오지 않기, 즉석에서 읽고 생각나는 걸 얘기 하자! 미리 공부하지 않기, 선생님도 오케이. 텍스트도 달랐어요. 선생님과 제 책하고 한자(漢字)가 다르기도 했어요. “어? 니 책에 그렇게 나왔냐?” 이렇게 하면서 읽었는데요.
1권은 선생님 생시에 나왔고 2권을 막 준비하고 있을 때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2권 나온 걸 못 보셨어요. 2권까지는 그렇게 나왔는데. 3권은 한 1년 동안 못 썼어요. 왜냐면 57장까지만 녹음이 돼있고 그 다음에 돌아가셨으니까요. 어떻게 하나... 출판사에서도 자꾸만 재촉을 하고, 어떻게든 완결을 짓자고. 난 자신이 없었고... 한 1년쯤 지났는데 한번 해보자. 3권은 52장부터인가 그래요. 그래, 57장까지 녹음을 풀었어요. 녹음한 게 다 끝나서 어떻게 할까 하다가 그냥 쓰자! 방법은 문답식으로 했지만 사실은 저 혼자 여쭙고 대답하면서 썼습니다. 유념해서 보지 않으면 다 속아요. 제가 봐도 선생님 안 돌아가셨구나. 사람이 죽지 않는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 하는 걸 경험했습니다. 대체적으로 제가 질문하면 선생님이 대답하는 식이구요.
80장인가 81장인가 거기에 그런 말이 나와요. 하늘의 도는 해를 끼치지 않는다. 그럼 제가 질문을 하는 거예요. 선생님, 예를 들어서 “어떤 성실한 농부가 들판을 걸어가다 벼락을 맞아 죽었습니다. 이런 경우도 자연이 해지지 않은 겁니까?” 질문을 하면서도 내 머리는 대답이 어떻게 나오나? 대답이 정 생각 안 나면 질문을 지워야 되니까 마지막, 바로 그러니까 “니 생각은 사는 건 좋고 죽는 건 나쁘다는 얘기냐?” 간단해요. 그런 식으로 내가 생각하지 못한 답변이 떠오를 때 선생님이 계시는 구나! 그 뒤로 답답한 일이나 힘든 일이 있으면 저 나름대로 지금도 선생님하고 소통을 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사느냐 죽느냐, 몸이 있느냐 없느냐는 전혀 관계없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예수와 나는 감히 있을 수 없는 거예요. 안 그렇습니까? 예수가 나하고 통할 수 있으면 무위당하고도 통해야 되는 거지. 그런 걸 마지막 3권 준비하면서 경험했어요. 재밌었어요. 지금 읽어봐도 어떻게 이런 게 나왔나... (웃음)
Q 지금 이 자리에서 무위당 선생님을 만났다면 어떤 말씀을 하고 싶으신가요?
A 그건요, 저는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질문 자체가 만약에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겁니까? 이런 질문이잖아요. 그건 내가 뭐라고 대답해도 뻥이에요. 미리 생각해가지고 하는 것인데 막상 선생님하고 만나면 뭔 말을 할지 어떻게 반응할지 내가 어떻게 압니까? (침묵) 답이 없지요.
Q 혹시 마무리 말씀을 해주시고 싶으신 게 있으시다면 해주세요.
A 고맙습니다.
사회
학생 이현주를 통해서 장일순이라는 사람을 잘 만나보셨습니까? 하늘에 순응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혹은 그렇게 살고 싶은 곳 여기 순천에 무위당이라는 분이 찾아온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바다가 넓은지 무위당 선생님이 넓은지 모르겠으나 누군가가 그런 기운을 가지고 서로 만나고자 했기에 가능한 일인 거 같아요. 그것도 1주일씩이나 말입니다. 보통일은 아닌 거 같아요. 그 와중에 무위당을 선생님으로 모신 많은 분들이 순천에 다녀가시면서 제자된 학생된 공부하는 사람 이런 이야기를 저희에게 들려주고 있는데요. 오늘 여기 이 자리를 나서시면서 내 가슴에 어떤 무위당이 떠오르는지 그 울림이 무엇인지를 잘 담아가시면 좋겠습니다. 가시는 길에 조동은님의 노래와 용서해님의 플릇 연주로 1월의 어느 멋진 날을 함께하시겠습니다.
1월의 어느 멋진 날에
노래를 듣고, 관옥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까 감사합니다, 라고 말씀 드린 건 제 소감을 말씀 드린 거구요. 지금 앉아 있는데 아, 이 말씀 한 마디는 전해드려야 되겠다, 제 얘기보다는 누가 한 말인지 저도 모르겠습니다만, 꼭 전해드려야 할 것 같아서 말씀을 드립니다. 믿거나 말거나입니다. (웃음) 제가 전해드릴 말씀을 여러분들이 수긍하시든지 아니면 거절하시든지 그건 각자 알아서 하시면 되고 제가 전해드릴 수 있는 말씀은 이겁니다. “당신, 지금까지 잘 살았습니다. 지금도 당신, 잘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잘 살 겁니다.”
녹취 후 기록, 소리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