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교회 동선교구 1구역원들은 8월 도마상을 답사하였습니다.
우리나라 기독교 전래를
신라시대로 보는 설이 있다.
그 증거를 학가산 줄기의 산기슭에 자리한 커다란 바위에 새겨진 조각상을 예수님 제자 도마상으로 보고 있다.
우리의 민요 아리랑도
알이랑 즉 알과 함께, 알은 히브리말의 하나님이며 여호와와 같이라는 말이다.
아리랑은 달리 어원을 밝힐 수 없는 말이다.
민간 신앙에서 하늘에 빌면서 한울님을 되뇌이며 소원을 비는 신앙은 기독교가 민간 신앙에 함께 한 것으로 보며 범신론적인 생각이 민간 신앙에 깊숙히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몇 년 전에 가 보고
오늘 다시 본 도마상은 그 생각에 더욱 확신을 갖게 하였다.
히브리 고어로
도마는 기도하는 사람이라고
새겨진 바위
(자료 : 부석교회 오유택 장로님)
도마상과 함께 붙은 바위에 새겨진 히브리어
도마는 기도하는 사람이다라고 새계져 있다.(전문가의 해석)
아쉽게도 머리는 없어졌지만
여러 불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손의 모습이 여늬 불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자연스럽고 기도할 때 손을 모으는 모습이다.
가슴에는 십자가를 새겼으며
옷주름도 불상에서는 볼 수 없는 자연스런 모습이다.
불교가 372년에 고구려에 들어왔으니 그 이전의 작품이 분명하다.
도마가 인도와 중국에서 바위에 새겨진 상을 보았으리라.
열개의 발가락을 선명히 새겨넣어
땅 끝까지 다닌 도마의 행적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었다.
후세 누군가 새겨 넣은 것으로 보이는 (지전행)땅 전부를 다닌 사람을 나타낸다.
예수의 열두 제자 중 모두 순교했지만 도마는 주님의 부탁대로 동쪽으로 향하여 땅끝까지 전파하고자 인도와 중국을 지나 한반도 신라 땅까지 이르렀다고 본다.
열두 제자는 로마 황제의 기독교 박해에 따라 잡혀서 불에 타 죽고,
사자밥이 되고 십자가에 꺼꾸로 달려 죽기도 했지만 부활하신 예수님 옆구리 창자국을 만저 본
실증적인 믿음을 가진 도마는 인도로 가서 돌에 앚아 죽었다는 전설도 있지만
땅끝까지 내 증인이 되라는 말씀을 따라 동쪽으로 걸음을 옮긴 그는 신라 땅에까지 도달했다고 본다.
이 글씨는 상이 조성된 후
오랜 세월이 지나
도마 이야기를 알고 새겨넣은 글씨로 보인다.
그러면 도마를 통하여 전해진 초대 기독교는 우리 민족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앞에서 말한대로 아리랑이 알이랑 하나님과 함께 라는 뜻이 며 점화수 물사발을 떠놓고 비는 아낙들의 기도에 하눌님으로 자리하고 있다.
***구세주 예수를 전했으나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기원전 57년에 건국된 신라는 왕권을 강화할 수밖에 없었다. 동으로는 왜구와 남으로 가야와
서쪽의 백제와 북으로는 고구려를 경계하며
이방신과 외부인을 극도로 배척했으리라고 본다.
왕권을 강화하며 지방 지배자들에게 권한도 주었을 것이다.
울진 신라비로 짐작할 수 있다.
길도 없던 그 시절 낙동강과 내성천을 따라 사람을 찾아 다니며 구세주를 증거하다가 박대를 당하며 아리랑을 흥얼거리며 마을을 찾아다니며 구세주를 전하는 도마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아리랑의 작사 작곡은 도마라고도 생각된다.
학가산 줄기를 휘감아도는 내성천을 따라 전하다가 강 동쪽 이곳에 숨어 바위 아래 우거하면서 울부짖으며 기도하는 도마.
그러다가 자기를 바위에 새기고자 했을 것이다.
당시 한반도는 철기시대로 들어가 칼 창을 철로 만들던 시대로 접어들었으니 도구를 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도마를 통하여 구주를 영접한 믿음의 형제가 함께 했다는 일도 추론할 수 있다.
(수정 중)
2026년도에 국보로 지정된 예천 시가지 앞 송포들에 위치한 개심사지5층석탑에 그 모습을 찾을 수 있다.
고려 초 헌강뫙 2년 1010년에 조성된 개심사지석탑에는 만인이 기도하는 모습이 조성되었다.
소띠 사람들의 기도
(개심사지5층석탑 1층기단의 12지 모형을 만들어 예천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닭띠 사람들의 기도
십이지상은 인도의 잡신 야차신이었는데 부처를 만나 호위병이 되었다고 한다.
불국의 수호신으로 불리다가
신라시대에 와서 사람에게 붙여졌다. 중국에서는 한나라 때이며 모든 사람을 뜻한다.
신라시대에도 칼 창 몽둥이 삼지창 등의 무기를 들고 있으나
개심사지오층석탑 1층기단의 지대석의 십이지는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모습이다.
만민이 기도하는 모습!
이것은 기독교의 염향으로 본다.
후삼국의 어지러운 세상을 지나고
고려초기 태평성대를 바라고 기도하는 온 백성들의 모습이다.
석탑 조성은 예천의 호족으로 보이는 임장부라는 이름이 보인다.
그가 기독교인자는 알 수 없으나 강동리 마애 도마상과 혼을 같이하는 조형으로 볼 수 밖에 없다.
만민이 기도하는 모습이다.
**그 시대의 기록이 어디에 있을 법한데
신라의 향가가 수록된 삼대목이 한권도 나타나지 않으며
이두문에도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보다 신교육이 100년 앞선
일본인들이 가져간 문헌 속 어디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기록을 남기는 일이 중요합니다.
참석회원.
전상림권사(전국100대 효가정 최병동님 부인)
권순진집사(한재영 시인 부인)
권상헌, 김경자 부부
기록을 많이 남겨주시길 바랍니다.
이두문이 없었다면 한글은 더 빨리 나타났으리라고 생각됩니디
컴퓨터 인터넷 Ai시대 한글시대입니다.
기독교문화시대입니다.
기독교와 한글의 힘으로 우리는 5대 강국으로 진입합니다.
하나님미 보우하사
우리 나라 만세
이 글은 자료를 참고한 저의 생각일 뿐입니다.
학설 정설이 아닙니다.
더 깊은 연구를 기다립니다..(한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