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남자 이란의 "아모하지 "(1928~2022)
이란 남부 작은 마을 파르스에 살았던 "아모하지"는 수십 년간 씻지 않아서 세상에서 제일 더러운 남자로 불렸다. 어느 날 갑자기 몸에 물을 대면 죽는다는 신념을 가지게 된 후 씻기를 거부했다. 벽돌 움막에 살았고 얼굴에서 발 끝까지 그을린 개처럼 재와 먼지로 덮여있었다. 난 평생 그처럼 친 환경적인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비누와 물을 거부했다. 67년이라는 긴 세월을 씻지 않았다. 남에게 피해 안 주고 본인의 삶을 온전히 즐겼다.
노숙생활을 하며 그 무엇도 소유하지 않았던 진정한 자연인이다. 명품 에르메스 악어가죽가방보다 더 튼튼한 피부를 가졌다. 그가 좋아했던 식사는 썩은 고슴도치 고기였다. 녹슨 기름통의 물을 마셨고 로드킬을 당한 짐승의 사체를 먹었다. 자신이하고 싶은 일만 하며 충실하게 자신의 삶을 살았다. 그럼에도 그는 장수했고 면역 체계도 완벽했다.
짐승의 배설물로 만든 담배를 피우기도 했다. 그 어느 누구에게도 잘 보이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그의 초연한 삶의 자세는 대나무보다 곧고 단단했다. 신념의 남자였다. 나이가 들면서 불청객 손님이 찾아왔다. 외로움이다. 몸이 청결해야 친구가 생긴다는 말을 듣고 이웃들의 압박에 못 이겨 수십 년 만에 목욕 후, 시름시름 앓다 세상을 떠났다. 우리도 때로는 어쩌다 머리 잘못 감으면 한기가 몰려오고 감기 기운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의 신념은 옳았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몸은 스스로가 가장 잘 안다.
뇌가 사람을 속인 것이다. 작동되지 않은 냉동고에서 꽁꽁 얼어 죽은 남자처럼 청결함을 극도로 혐오했던 그를 죽인 것은 무엇일까? 남이 싫다는 것을 강요하는 것은 배려가 아니다. 자신만의 세계가 있는 것이다. 편견과 압박과 쓸모없는 배려의 결과는 비참했다. 지나친 청결이 면역체계를 망가뜨렸을 수도 있다. 본인 스스로가 터득한 신념과 내성이 파괴되는 순간이었다.
그는 슈퍼 울트라급 면역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썩은 생고기를 먹었다. 비위생적인 삶이 건강을 준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의 비웃음거리와 외지인들의 참견이 그에게 상처를 주었다. 사막의 외로운 별을 보며 행복하게 살았을 그의 모든 평화를 마을 사람들이 파괴해 버렸다. 삶에 외로움을 느끼고 이웃주민들의 압박에 견디다 못해 첫 목욕을 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다. 삶에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다.
몸을 씻으면 친구가 생긴다는 말을 믿고 정갈하게 씻었다. 그를 죽인 건 외로움이었다. 외로움이 얼마나 큰 질병인지! 사람은 자신을 지키는 나름의 방식을 가지고 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본인만이 알고 있다. 남의 인생에 쓸데없이 참견하기 좋아하는 버릇 고쳐야 한다. 다름을 견디지 못하는 우리의 본성을 버려야 좋은 사람이다.
<혼돈의 죽음 >
이 세상이 존재하기 전 신들만의 세계가 있었다. 장자의 창조 신화 속엔 숙과 홀 혼돈 이렇게 세명의 친구가 살았다. 숙은 남해 홀은 북해 혼돈을 중앙을 다스렸다. 숙과 홀은 나라를 다스리다 힘들면 혼돈의 나라로 놀러를 갔다. 혼돈은 어느 누구나 환대했다. 숙과 홀은 혼돈의 땅에서 쉬다가 우연히 만났다. 혼돈은 주인 노릇을 하지 않았다. 이것이야 말로 손님을 향한 최고의 배려였다. 그들을 극진히 대접해 주었다.
숙과 홀은 자신들이 놀러 갈 때마다 극진히 대접해 주는 혼돈에게 감사의 뜻으로 깜짝 선물을 준비했다. 혼돈이 깊이 잠든 날 숙과 홀은 힘을 합쳐 눈, 코, 입, 항문등의 구멍을 뚫어 일곱 개의 구멍을 만들어 주었다. 구멍이 없어서 답답할 것 같은 혼돈을 위해 하루에 한 구멍씩 뚫어 주었더니 칠일만에 혼돈이 죽어 버렸다.
무질서 속에 질서가 있었다는 것을 숙과 홀은 몰랐다. 혼돈의 썩은 몸에서 이 세상이 탄생했다. 우리의 삶이 혼동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모든 것에는 자신만의 삶의 방식이 있다. 우리가 배려라고 생각하는 오지랖이 다른 이의 삶을 망치기도 한다. 아침마다 깨어나면 내 삶도 혼돈이다. 나 좀 그만 귀찮게 하시라!
장자의 인생철학은 한마디로 잘 놀다 가는 것이다. 나 자신의 잘못된 판단으로 생긴 신념도 좋다. 하지만 그것이 옳다는 생각에 남에게 강요하는 것이 문제이다.
진정한 학문이란 삶에 대한 바른 이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