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 에세이
나리꽃 만나러 가요
서울고 총동창회 뉴스레터 28호(2019. 07. 09)
글_ 신종철(10회, 82세) 감리교 원로목사
오래 전 한 유명연예인이 졸업하지도 않은 명문여대를 졸업했다고 해서 구설수에 올라 얼마 동안 활동을 하지 못했던 것을 기억한다. 본인은 그 대학을 졸업했다고 말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해명했다. 누군가가 그 명문여대를 졸업했다고 확인되지 않은 채로 말했고 본인은 이를 부인하지 않은 것이 그리 되었던 것이다.
나의 경우도 그런 것 같다. 나는 한 번도 그리 말한 적이 없는데, 꽃 사진 작가라고 소개를 받는 경우가 있다.
우리 들꽃을 30여년간 사진에 담아왔고,
회원전은 물론 개인전도 몇 차례 했으니 그리 소개 할만도 할 것이다. 좀더 정확히 소개한다면 꽃 사진이 아니라,
들꽃 사진작가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화려한 외래종은 보아도 못 본 척,
우리 들꽃만 사진에 담아왔으니까...
내가 우리 들꽃을 사진에 담게 된 것은 타고난 꽃 사랑 때문일 것이다.
기억하기는 어릴 적 초등학교 1학년쯤이었을 때 여름에 비가 오면 동네 울타리에 절로 씨가 떨어져 난 봉선화,
과꽃, 코스모스, 백일홍 등 모종을 캐어다가 우리뜰은 물론 동네 길가에도 심었었다.
6.25동란 중, 처음엔 서울에서 겪었고 소위 1.4후퇴 때 충청도 산골 황간이란 곳으로 피난을 갔었다.
고맙게도 농업고등학교에서 세대당 기숙사의 방 한 칸씩을 내어주어서 기거하게 되었는데, 그 피난시절에도 여름이 오자 주변에서 꽃모종을 구해와 기숙사 마당에 꽃밭을 일구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어느 날 아침 일찍 나무를 하러 산에 갔다가 저녁나절에 돌아오니 꽃나무들이 깨끗이 잘려 나가 있었다. 이유인즉 어른들이 모기가 들끓는다고 베어버렸다는 것이다.
피난살이에 꽃에서 위로를 받았는데 어른들이 잘라버리다니 어찌 이럴 수가 있느냐고 울면서 대들었던 일이 기억된다. 이만큼 꽃을 좋아했기에 들꽃을 사진에 담게 되었고,
그런 연유로 5살 손자에게 ‘꽃 맨’이란 닉네임도 얻었다.
지금까지 이야기로는 나의 본업이 들꽃사진작가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나는 40세에 목회를 시작한 늦깎이목사였다. 지금은 은퇴한지
10여년이 되었지만, 목회를 하면서 나의 신앙중심에 3대사랑이 있었다. 하나님 사랑, 이웃(사람) 사랑, 그리고 자연
사랑이었다. 자연사랑이 나의 신앙고백이었으니 들꽃을 사랑함은 당연하다 하겠다.
나의 소개가 너무 길어진 것 같다. 오늘은 6~7월의 산에서 아름다움을 뽐내는 나리꽃들을 만나보려고 한다. 나리는 백합과에 속하는 들꽃이다. 백합이라고 하면 교회에서 부활절에 꽃꽂이 소재로 많이 사용하는 흰색의 백합을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화원에 가면 이 밖에도 크고 화려한 갖가지 색상의 백합을 볼 수 있다. 이들 모두는 자생나리를 관상용으로 개발한 원예종들이다. 흔히 이들 원예종들을 백합, 산에 피는 들꽃을 나리라고 구별하여 부른다. 6~7월의 산지 풀밭에서 볼 수 있는 나리류는 대부분 황적색이고 드물게 솔나리는 핑크색, 섬말나리는 노란색이다. 들꽃이름에 ‘섬’자가 붙은 아이들은 육지와 단절된 섬에서만 자생하는 데서 유래했는데 대부분의 경우 울릉도 특산 식물이다. 섬말나리를 비롯하여 섬초롱, 섬시호, 섬백리향, 섬노루귀, 섬바디 등이 울릉도 특산식물들이다.
나리류 중 원예종은 그 색이 더욱 화려하고 다양하다. 그런데 왜 백합일까? 백합을 한자로 쓰면 ‘흰’白이 아닌 ‘일백’百자를 써서 百合이라고 한다. 꽃의 색이 희어서가 아니라, 뿌리인 인경이 백 개의 겹으로 되어 있다 하여 백합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나리 종류가 참 많다. 그 이름을 붙이는데 나리의 잎이 어긋나느냐 한 층 돌려 나느냐 에 따라 돌려나는 나리들은 이름 끝에 말나리를 붙인다. 또 꽃이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하늘을 향해 피면 하늘나리, 땅을 보고 피면 땅나리라고 한다. 털중나리는 줄기에 털이 있고 꽃이 옆을 보아 털+중나리다. 말나리도 꽃이 옆을 본다. 말나리 처럼 잎이 한층 돌려나면서 꽃이 하늘을 보고 피면 하늘말나리, 말나리이면서 울릉도에서 자생하는 것은 섬말나리라고 한다. 중나리는 나리류 중 키가 중간 정도여서 라든가? 털중나리는 중나리와 거의 비슷하면서 줄기에 보송한 털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고, 솔나리는 그 잎이 가느다란 솔잎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밖에 관상용으로 집 뜰에 즐겨 심기도 하는 참나리가 있다.
나리는 옛날에 높은 벼슬아치를 부르는 말로 나리꽃을 벼슬길에 오르기를 기원하는 문양으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나리는 관상용과 꽃꽂이용으로 전세계에서 수많은 원예종들이 개발되고 있다, 이들 새로운 개발품종의 시조가 섬말나리라고 한다. 우리가 우리 땅의 들꽃에 대해 무지하고 있을 때, 일본인들이 섬말나리를 자기네 나라로 가져가서 키우기 시작하면서 일본이 원산지라고 우기는 가하면, 유럽의 식물학자가 우리 섬말나리를 가져가서 지금 화원에서 보는 것과 같은 수많은 개량종을 탄생시켰다고 한다. 원종을 도둑맞고 역수출되어온 백합 구근에 로열티(10~15%)를 주고 있는 현실에서 새삼 우리 토종종자들의 귀중함을 깨닫게 된다. 작년부터 제주농업기술원에서 5종의 우수한 품종의 백합을 우리기술로 개발했다고 하니 로열티를 물지 않고 오히려 로열티를 벌어들이게 되었으니다 행이다. 우리 들꽃 많이 사랑해주었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동산에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니까!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마태복음6:28) 말씀하시지 않으셨던가?
들꽃을 보며 창조주 하나님의 돌보심을 깨닫는다.
땅나리 솔나리 털중나리
섬말나리 하늘나리 말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