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송이 보,약큐티 1년 1독 성경-통독학교, 23년6월17일(토) >
*오늘의 읽을 말씀: 시편93편~100편
온 땅이여 주를 찬양하라
*묵상자료
1. 온땅이여 여호와를 찬양하라!!!
시편 100편은 감사의 노래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가 경배하는 찬송시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하라고 외치고 있다. 그리고 온 땅과 만물들에게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명령하고 있다.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그를 예배하며 그를 찬송케 하기 위함이다. 감사와 찬송은 성도의 마땅한 의무다. 내가 찬송하지 않으면 돌들이 소리지를 것이다.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고 계신다. 지금도 하늘 보좌에서는 천군 천사들의 찬송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가 찬송할 때 천사도 가담한다. 이와 같이 구원받은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든지 감사와 찬양을 드리느라 바쁜데 주를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은 기쁨과 감사를 잊어버리고 사망의 종 노릇 하며 살고 있다. 사랑에 목말라 외로움과 우울증 그리고 세상에 대한 환멸 속에 살아 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하나님은 사랑이신데 하나님을 모르니 사랑이 메마르고 고독과 비교의식, 피해의식 속에 기쁨을 잃어버리고 사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애송되는 `청파동을 기억하는가`라는 시를 쓴 최승자 시인도 안타깝게도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으니 절망의 시를 많이 지었다. 그녀의 절규를 들어 보라.
“ 일찍이 나는
–최승자-
일찍이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마른 빵에 핀 곰팡이. 벽에다 누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 아직도 구더기에 뒤덮인 천년 전에 죽은 시체. 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 주지 않았다.쥐구멍에서 잠들고 벼룩의 간을 내먹고 아무 데서나 하염없이 죽어 가면서 일찍이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떨어지는 유성처럼 우리가 잠시 스쳐갈 때 그러므로, 나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너를 모른다. 나는 너를 모른다.너, 당신, 그대, 행복. 너, 당신, 그대, 사랑.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1980년대 대표적인 여성시인의 한 사람인 최승자. 그녀의 시는 송곳의 언어로 위선적인 세계와 정면으로 맞선 하나의 살의(殺意)였다. 이 시에는 폐광과 같은 유폐와 자기 방기가 있다. 시인은 `곰팡이'와 '오줌 자국'과 '죽은 시체'에 자기 존재의 흔적을 견준다. '나'라는 존재는 세상의 귓가를 정처 없이 떠돌다 사라지고 마는 '영원한 루머'일 뿐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삶을 저주받은 운명이라고 감히 말하며 아예 내 존재의 근거를 박탈해 버리려는 이런 듣기 거북한 발언은 그녀의 다른 시편에서도 흔하게 있다. 그녀에게 "이 조건 반사적 자동 반복적/ 삶의 쓰레기들.// 목숨은 처음부터 오물이었다."(미망(未忘) 혹은 비망(備忘) 2). 그녀는 이 세계가 치유 불가능할 정도로 깊이 병들어 있다고 보았다. 세계가 비명으로 가득 차 있고, 탐욕의 넝마이며, 치명적인 질환을 앓고 있는데 누군들 그곳서 생존을 구걸하겠는가. 그러므로 내 존재를 루머도 없게 치워달라고 할밖에. 세월은 길고 긴 함정일 뿐이며 오직 슬퍼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서슴없이 말하던 시인.
'허무의 사제' 최승자 시인은 세상을 혹독하게 앓고 시를 혹독하게 앓았다. "나는 아무의 제자도 아니며/ 누구의 친구도 못 된다./ 잡초나 늪 속에서 나쁜 꿈을 꾸는/ 어둠의 자손, 암시에 걸린 육신.// 어머니 나는 어둠이에요./ 그 옛날 아담과 이브가/ 풀섶에서 일어난 어느 아침부터/ 긴 몸뚱어리의 슬픔 이예요." 〈자화상〉
시편 100편의 감사의 시를 읽으면 대낮에 있는 기분인데 최승자의 이런 절망의 지독한 메아리를 들으면 캄캄한 밤에 있는 것 같다. 혹 누가 나를 비판할지 모르겠다. 왜 목사라는 분이 그런 불신자의 시를 길게 인용 하냐고… 하지만 우리가 누리는 이 믿음 안에서의 구원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지는 가끔 불신자들의 의식세계와 비교해 볼 때 더 확연히 드러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침에 떠 오르는 태양에 감사하는 자들은 혹독한 흑암을 경험한 자들이기에 이런 시를 인용하는 나를 용납하라. 그리스도인은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했던 것처럼 낮에 속한 자들이다(롬13:13). 그래서 낮에 속한 우리에게는 빛 가운데 거하며 새처럼 감사의 노래를 부른다. 감사를 잊어버리면 우리는 존재 가치가 없는 한갓 루머에 불과한 교인으로 전락하기 쉽다. 세상은 어둠 속에서 사랑 없어 절망하는데 우리 성도들은 항상 시편 100편에서 살아야 한다. 오늘도 시편 100편의 정원에 거닐면서 감사의 제사를 드리고 찬송으로 춤추는 하루가 되어 보자. 아멘.
https://youtu.be/WptmQGkj14A